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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혜 “제가 동심을 강조하는 이유는요.”

이야기 있는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 낸 송지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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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예술가와 관객의 소통이 강조되는 흐름이 있듯, 동화책에도 그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컬러링북이 그렇다.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직접 색을 칠할 수 있는 컬러링북이 속속 존재를 드러냈다. 『시간의 정원』은 그중에서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시간의 정원』을 만나기 전까지 컬러링북이 뭔지 몰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컬러링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휴대폰 컬러링이 먼저 생각났다. 컬러링북은 휴대폰과 별로 상관이 없다. 작가가 그려놓은 그림이 있고, 독자가 그 그림을 색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 컬러링북이다.

 

컬러링북이 많은 독자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시중에 나온 종류도 많다. 그중에서 송지혜 작가가 그린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은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 스토리가 있는 컬러링북이다. 둘째, 원래 존재했던 작품을 책에 넣어서 작품 완성도가 높다. 셋째, 책에 있는 그림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시간의 정원』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다. 부엉이 시계를 선물받은 소녀가 밤에 부엉이의 안내를 받아 시계 속을 여행한다는 줄거리다. 송지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들어간 설정이면서도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법한 이야기다.

 

송지혜 작가는 200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섬유 아티스트로서 여러 차례 전시를 해왔고 『시간의 정원』은 첫 책이다. 이번 책에 들어간 작품을 실제로 만나 볼 수 있는데, 전시는 1월 4일까지 빌라수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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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컬러링북

 

스토리가 있는 컬러링북, 신선한 형식입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뒷이야기를 공개해주세요.

 

컬러링북과는 상관 없이 옛날부터 동화책을 내고 싶었어요. 2009년부터 조형작품을 만드는 작가 생활을 해왔는데, 제 작품의 주제는 언제나 동심이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토리가 계속 연결되는 작품을 만들어 왔죠. 출판사로부터 컬러링 북을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왔고, 현재까지 해왔던 작품 이미지들을 모아서 도안으로 풀어낸 것이 『시간의 정원』이에요.

 

요즘 컬러링북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컬러링북의 매력은?
 
동화책은 독자들이 읽고 느끼고 감동하는 데서 끝나잖아요. 컬러링북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독자들이 직접 칠함으로써 자기 걸로 승화해서 재해석할 수 있어요.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작가와 관객이 소통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분야가 있는데, 컬러링북도 그런 종류의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컬러링북의 장점으로 안티-스트레스, 그러니까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의견도 있던데요.

 

작업을 하는 것이 저에게 명예나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계속 작업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몰입’으로부터 오는 쾌감 때문이에요. 작업에 빠지다 보면 아침에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밤이 될 만큼 집중하게 되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얻는 쾌감도 크고요. 컬러링북이 ‘안티-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창조적인 행위로부터 오는 쾌감을 일반인들도 부분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스토리 있는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

 

『시간의 정원』이 다른 컬러링북과 다른 점은?

 

제가 처음 컬러링북 작업을 시작할 때는 시중에 책이 몇 권 없었는데, 지금은 70여 종이 나왔더라고요. 제 책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확실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책을 의식하지는 않았어요. 다른 컬러링북들은 자잘한 패턴 위주로 그려져 있어 지루할 수 있다면 『시간의 정원』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이루어진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동화책처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 마다 주인공 소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컨셉이죠. 또한 제가 작품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온 그림들이기 때문에 유행따라 급하게 찍어낸 컬러링북보다는 조금 더 완성도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책 속에 나오는 도안들이 실제 조형작품으로 존재하는데, 가로수길 ‘빌라수향’에서 1월 4일까지 전시하고 있으니 『시간의 정원』의 동화 속 세상을 전시장에서 직접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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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수향에서 전시 중인 작품

 

소녀가 시계 속으로 들어가서 여행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런 이야기를 생각한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나요?

 

어렸을 때 했던 유치한 공상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어른들로부터 분리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놀기도 하잖아요. 집 구석구석에 있는 소품을 보면서, 엄지 공주가 되어서 작은 소품 안으로 들어가 나만의 은신처를 만드는 상상을 했죠. 어느 날 아버지가 이국적인 뻐꾸기 시계를 사서 오셨어요. 어린 소녀의 눈에는 정말 신비롭게 보였죠.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궁금했어요. 저 안에 태엽을 감고 있는 요정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이런 기억으로부터 시작하여 시계를 컨셉으로 잡게 되었어요. ‘뻐꾸기’ 시계였지만, 밤을 상징하는 부엉이를 대신 등장시켰어요. 그렇게 해서 자정이 울리면 부엉이가 소녀를 찾아와 함께 시계 속 세상으로 여행하는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었죠.

 

이야기 배경이 이국적인데요. 미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경험이 반영된 걸까요.

 

아버지가 여행을 좋아하셔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여행했어요. 어렸을 때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지만 다른 데보다 제가 살았던 샌프란시스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파스텔빛 빅토리아풍 목조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책에 나오는 소재는 어린 소녀의 눈으로 봤던 샌프란시스코에 관한 추억들로 가득해요. 피어39, 기라델리 초콜릿 공장, 케이블카, 회전목마도 그렇고요.

 

동화책에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찾아내면 재밌는 요소가 있기도 한데요. 이 책에도 그런 요소가 있는 듯합니다. 독자가 좀 더 재밌게 읽고 색칠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실 수 있나요?

 

앞뒤 페이지 간의 연결고리들이 있어요. 앞 페이지에서는 소녀가 시계를 들여보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시계 내부가 나온다는 식으로요. 또 페이지를 넘기면 건물 내부와 외부가 연결되기도 해요. 이런 의도를 알고 칠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이 독자라면 어떤 색을 칠할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색을 칠하겠죠. 도안 전체를 연하게 파스텔 빛으로 칠하는 분들이 많은데, 비비드한 색을 포인트 포인트에 넣어주면 더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너무 욕심내서 전체를 강하게 칠해도 부담스러울 거예요. 색연필 종류는 많지 않아도 좋아요. 저도 36색을 쓰는데, 색연필도 물감처럼 색을 섞어서 쓰면 더 풍부한 색감을 낼 수 있거든요.
 

 

어른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동심을 유지해야

 

전시는 오래 했지만 책은 처음이잖아요. 첫 책이 나오니 느낌이 어때요?

 

작업만 하는 것도 벅찰 때가 많은데 저 스스로 제 작품을 알려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홍보를 잘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지만 저는 그런 면에서는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제가 원했던 것은 대중과의 소통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제 작업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런데 책을 내고 보니 짧은 기간에도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막혔던 소통의 구멍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에요. 각종 SNS에 올라오는 많은 대중들의 리뷰를 보면서 제 작품 내용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에서 '동심'을 많이 강조하잖아요. 작가님이 동심을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물론 지금이 어릴 때보다는 성숙하고, 지식도 조금 더 많죠. 발전한 건 인정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편견이 생겨요. 어느 순간 제가 기성세대가 되어 가고, 가르치는 학생들로부터 꽉 막혔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는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 넘어의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시야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 그 무궁무진했던 다채로운 시야를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는 게 어른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 중요하다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으로 동심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계속 찾으려 노력하죠.

 

어떤 계기로 미술을 좋아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그림밖에 그릴 줄 몰랐어요. 어머니 아버지는 싫어했죠. 제가 미국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두 분은 제가 영어로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고집을 부렸어요. 어렸을 때 겉돌았는데, 예체능으로 대학을 보내준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설득했어요. 대학 가서까지도 제가 밤새 작업하고 고생만 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부모님은 마음에 안 들어 하셨어요. 첫 개인전 때 제 작품이 팔리는 걸 보고 그때서야 아버지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셨어요. 금융가인 아버지는 이윤 창출이 안 되는 직업을 싫어하신 분인데, 그림으로도 제가 자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셨어요.

 

송지혜작가님07.jpg

 

작품에 섬유를 많이 쓰는 게 특징인데요. 스스로 섬유 아티스트라고 표현하셨잖아요. 섬유 아티스트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면.

 

요즘은 점점 재료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섬유 예술’을 한 분야로 말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과거로 치면 자수, 직조, 염색과 같은 것을 섬유 예술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기법에 한정시키지 않고 더 폭넓은 의미로 접근하려고 해요. 사실 제가 하는 작업은 서양화가가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제 머릿속에 있는 상상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거죠. 단지 특징이 있다면, 섬유적 요소를 그림 안에 흡수시킬 수 있다는 점이죠. 섬유는 기본적으로 따듯한 느낌이 있고, 가변성이 있어요. 딱딱하지 않고 움직이는 특징이 있어서 표현하기가 즐거워요. 패인팅만 하는 것보다 천을 융합하면 훨씬 더 재미있는 효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기법적으로 봤을 때 공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는 것?

 

작가님의 예술관을 말씀해주신다면.

 

현대미술은 가면 갈수록 더 심오한 시각적 자극을 추구하고 있어요. 점점 웅장해지고 복잡해지는 가운데 신선한 것을 찾기 위해 예술가들은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행위들도 서슴지 않아요. 이러한 사조에 따라 예술은 점점 어려워지고 일반 사람이 공감하기가 쉽지 않아요. 저도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사학도 공부했지만, 현대미술을 읽어내는 게 쉽지 않아요. 이러한 시대 가운데 저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마음 속에 푸근하게 새길 수 있는 조형언어를 찾고 싶어요. 동심의 세계는 누구나 한 번씩 겪어 봤기 때문에 현재는 그 주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아직 지식과 경험의 한계가 있는 젊은 작가이기 때문에 표현의 난관에 부딪칠 때가 많아요. 50대에는 좀 더 성숙한 조형언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2015년 계획은?

 

여태까지는 주로 작업실에 홀로 앉아 작업에만 몰두해왔어요. 소통을 원했지만 막상 그것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들이 부족했어요. 이번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제 작품이 알려지게 되었고 독자들로부터 그림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어요. 저의 취향이 강하게 배인 작품만 고집해온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다른 사람들의 동심의 세계에 대한 눈이 조금 열리게 되었어요. SNS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과 만나고 표현에 대한 시야를 넓힐 계획이에요. 그러다 보면 2015년에는 동화책 한 권 낼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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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정원송지혜 저 | 북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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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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