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구 “다르다는 것부터 인정하자”
『그때 장자를 만났다』 강상구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저자 강상구가 이번에는 『장자』로 돌아왔다. 그가 『장자』에서 읽어낸 핵심 키워드는 ‘다름’이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저자 강상구가 『장자』를 본격적으로 읽게 된 때는 후배 기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할 시기였다.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후배들을 다그칠 때, 마침 그는 미국 연수로 떠났다. 미국 연수에서 만난 『장자』. 『장자』는 ‘다름’을 이야기하는 고전이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장자』를 다시 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부제가 의미심장한데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요.
자리를 바꿔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은 거죠. 『장자』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예컨대 거실에서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 편안해서 잠까지 솔솔 오겠죠? 그 순간 우리에게 ‘쓸모있는’ 공간은 엄밀히 말하면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소파 한 칸, 등받이 한 칸 밖에 없어요. 그런데, 한번 상상해 봐요. 소파 한 칸과 등받이 한 칸만 빼고 모든 바닥이 푹 꺼져내렸다면 어떨지. 그러니깐, 천길 낭떠러지 위에 소파 한 칸 덜렁 놓여 있고 그 위에 앉아 있다면 어떨지. 그래도 졸음이 솔솔 오도록 편안할까요?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지지 않나요? 우리가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만, 그냥 말만 할 때가 많죠. 전 감히 ‘상대방의 입장’까지도 아니고 그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조금만 옮겨서 주변을 바라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지금도 버릇을 완전히 고치진 못했습니다만, 예전부터 절 아는 사람들에게 ‘강상구’라는 이름은 ‘직선’으로 통했어요. 세상에 선과 악이 분명하고, 그러니까 나는 선을 향해서 가고, 내가 가는 길을 막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악이 되죠. 이런 고집이 젊은 기자들에겐 어느 정도 미덕이 되기도 합니다만, 나이가 들고, 제가 그 젊은 기자들을 지휘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까 예전에 ‘악’이라고 규정했던 일을 제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럼 내가 어느덧 세상의 때가 묻어 악의 편에 서게 된 것인가? 전 가슴에 손을 얹고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고 싶거든요. 그럼 젊은 기자들이 철이 없어서 그런가? 그렇지도 않아요. 후배들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선과 악이 헷갈려지던 터에 제가 미국으로 1년동안 연수를 가게 됐어요. 유학생도 아니고 연수생이라는 신분은 매우 독특한 게, 대외적으로 전 여전히 기자인데, 기사를 안 써요. 제 관심은 여전히 미국보다는 한국인데, 한국에 살지도 않아요. 이런 애매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깐, 신기하게도 한국 땅에 살고 있을 때보다 한국이 더 잘 보이고, 기사를 쓸 때보다 기자의 일에 대해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뭔가가 있더라고요. 바로 그 순간의 경험, 그 경험을 『장자』라는 틀에 담아서 풀어낸 게 바로 이번 책 『그때 장자를 만났다』입니다.
다른 중국 고전도 그렇듯, 『장자』도 판본이 여러 가지이고 원저자도 모호한데요. 게다가 분량도 방대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원칙으로 장자를 읽어나가셨는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는 게 좋겠죠. 한때 전 ‘고전’이라고 이름 붙은 모든 책을 읽어내겠다고 덤빈 적이 있었어요. 사실 그런 독서는 썩 권장할 만한 건 아닌 것이, 그저 ‘내가 읽은 고전’의 목록에 책 한 권을 더하는 게 목적이 되기 십상이거든요. 다른 분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그랬어요. 그러니까 제가 처음 『장자』를 읽을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쭉 읽어내려갔죠. 솔직히 남는 것도 전혀 없었어요.
그리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2~3년쯤 전에 KBS 2FM 황정민의 FM대행진에 ‘고전 페퍼민트’라는 고전 해설 꼭지를 1주일에 한번씩 하면서 『장자』를 다시 찾게 됐어요. 읽었던 고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텍스트를 만지작거리다 『장자』를 다시 보게 됐는데, 방송용으로 ‘딱이다’ 싶더라고요. 대중을 상대로 얘기를 하려던 ‘스토리’라는 요소가 반드시 필요한데, 장자는 책 자체가 ‘우화집’이라고 이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 창고더라고요. 그래서 방송 아이템을 찾느라고 뒤적뒤적하며 장자를 조금씩 조금씩 되새기기 시작했죠. 청취자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리고 『장자』를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읽은 건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부터였어요. 아시다시피 장거리 비행만큼 무료한 시간도 없잖아요. 그 시간을 채워줄 친구로 『장자』를 선택했는데, 잠을 너무 안 자서 후회할 정도로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방송 준비하면서 한 토막씩 읽을 때는 그야말로 단편적으로 와 닿던 장자의 생각이 작심하고 처음부터 순서대로 다시 읽으면서 하나의 줄기로 엮이는 느낌, 그런 거 아실지 모르겠어요. 퍼즐들을 조각조각 모아서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시키는 느낌이 비슷할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은 공부의 재미이기도 하죠.
다만, 『장자』를 처음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이번 책에서 저 자신이 『장자』를 재미있게 읽은 독법,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씩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장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장자』의 텍스트를 시사적인 이야기와 함께 또 서구 철학 등 다양한 화제를 병렬적으로 기술한다는 점입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기에 『그때 장자를 만났다』가 다른 장자 책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 로마의 이야기를 대거 차용해 장자를 설명한다는 점이 아닐까요? 장자를 말하면서 서구 철학을 끌어들인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제가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사람이 살면서 느낀 고민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3천 년 전의 동서양이 같고, 3천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과거와 현재가 같아요. 같은 고민에 직면해서 어떤 답을 내놓는지 비교하는 게 고전을 공부하는 재미이기도 하고요.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현실적인 것인데, 제가 장자 전문가가 아니잖습니까. 취미로 고전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숱한 전문가들이 공들여 쓴 장자가 이미 많이 있는데, 거기 제가 하나 더 보탤 이유가 없잖아요. 저만의 방식으로, 제가 공부한 내용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장자』를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면 『그때 장자를 만났다』가 다른 장자 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전문가가 쓴 책이 아니라는 게 되겠네요. 옛날이야기 좋아하는 직장인 고전해설자가 쓴 장자 해설, 그러니까 『장자』를 처음 만나는 분들께는 손쉬운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자’는 누구나 들어봤을 법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알지는 못하는 느낌입니다. 선생님께서 읽은 장자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이 시대의 화두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어차피 정답은 없겠죠. 저는 ‘공존’이라고 생각했어요. 지난 대선 때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대통합위원회’를 만들었잖아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갈라져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니겠어요? 저도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통합’이 그 답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통합은 자칫 ‘획일’로 오해될 소지가 많은 것 같거든요.
저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싶었어요. 우리말에서 흔히 ‘다르다’를 ‘틀리다’로 쓰곤 하잖아요. 사소한 말버릇일 수도 있지만, 우리 내부 깊숙이 숨어 있는 단면을 노출하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다름’을 거부하다보니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나와는 다른 행동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거부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과 다른 나 자신의 모습마저도 거부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자신의 본성마저 거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인거죠.
오리와 두루미가 있어요. 오리는 두루미한테 “넌 왜 쓸데없이 다리가 그렇게 길어?” 타박하면서 다르려 들고, 두루미는 오리에게 “넌 다리가 왜 이렇게 짧아?” 무시하며 억지로 늘리려 들어요. 만약에 두루미 떼 사이에 오리 한 마리가 섞여 있다면 “난 왜 이렇게 다리가 짧을까!” 한탄하는 격이에요. 참 바보 같은 모습이죠. 그런데 우리 주변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나요? 두루미는 다리가 길만 하니까 길고, 오리는 다리가 짧을 만하니까 짧은 거죠. 그걸 억지로 자르려 드는 것이고, 억지로 늘리려 하는 것도, 모두 폭력이죠. 그 폭력에 길들여지면 나중엔 자기 다리까지 자르려 들지 않겠어요? 그냥 서로를 인정하면 되는데, 왜 그래야 하죠?
『그때 장자를 만났다』는 주로 그리스 로마 사람들을 끌어들여 장자의 사상을 설명하지만, 예외적으로 몽테뉴를 자주 인용하는데요. 몽테뉴가 『수상록』(에세이)을 쓸 때 당시 프랑스는 종교전쟁에 휘말려 있었어요. 몽테뉴는 사람 잘 살자고 만든 종교가 왜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 고민을 담은 책이 바로 『수상록』이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도 어쩌면 몽테뉴가 겪었던 종교전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장자를 만났다』도 제목이 최종 결정되기 전에 제 작업 노트북 컴퓨터에서의 파일명은 『장자 에세이』였어요.
책 앞에서도 명시하셨지만, 『장자』의 구성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그리고 『장자』의 원문이든 해설서든, 『장자』 읽기 팁을 주신다면.
『장자』를 마음잡고 읽어보겠다고 원전을 한 권 사시면 일단 무게감에 움찔하실 거예요. 꽤 두툼하거든요. 순전히 번역만 해도 5백 쪽이 훌쩍 넘어요. 원문만 6만5천자에요. 이게 어느 정도 분량이냐면, 『손자병법』의 10배가 넘어요. 제가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은 『손자병법』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단락씩 전체를 소개했지만, 『장자』는 그렇게 못한 이유도 두께 때문이에요. 원문 다 쓰고 거기다 해설까지 쓰면 아무리 짧아도 1,000쪽이 넘겠더라고요. 일단 두께에서 질리겠죠? 그런 책을 교양으로 볼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그래서 전 재미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장자를 풀어냈어요. 독자들도 『장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겠다는 욕심을 내기보다는 편안하게 책장을 넘겨가다가 눈길 멈추는 이야기부터 먼저 읽어보면 어떨까 싶네요.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이야기가 한 줄기로 엮이는 기쁨의 순간도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장자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여러 편 소개해주셨는데요. 이중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지요. 이유도 말씀해 주세요.
한 가지만 꼽기는 너무 힘든데, 굳이 꼽으라면 ‘빈 배 이야기’를 꼽고 싶어요. 좁은 강물 위에 내가 탄 배가 한가로이 흘러가고 있는데 저 멀리 배가 한 척 다가와요. 처음엔 무심하게 바라보는데, 보다보니 내가 탄 배를 향해서 오고 있어요. 계속 오다간 부딪히겠어요. 황급하게 소리치죠. “어이, 비켜. 이러다 부딪히겠어.” 그런데도 그 배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내가 탄 배 쪽으로 와요. 나중엔 욕을 하죠. “어이, 미친 거 아냐? 다 같이 죽고 싶어?” 그래도 상대방 배는 들은 척도 안 해요. 자세히 보니까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에요. 사람이 없으니 들은 척도 안 한 게 당연하죠. 그제야 나는 황급하게 배를 돌립니다. 그리고 가까스로 충돌을 피하죠.
장자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러니까 너도 빈 배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피해가도록 만들어라’고 가르칩니다만, 전 다른 걸 느꼈어요. 어차피 내가 피할 수 있었다면, 왜 진작 피하지 않았을까요? 왜 상대에게 계속 피하라고 소리만 질렀을까요?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나요? 내 자리 바꿀 생각은 안 하고 무조건 상대방 탓만 하는 모습이...
선생님 책의 독자는 주로 3,40대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다른 어떤 동양고전 책보다 공감의 반응이 큰데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혹은 3,40대 직장인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읽히길 바라시는지.
직장인들이 즐겨 읽어주신다면 우선 고마운 일이죠. 직장인들이 공감해주신다면, 글쎄요, 저자 역시 직장인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평생 한문책 속에서만 살았던 전문학자가 아니라, 다른 직장인들처럼 상사한테 스트레스 받고, 말 안 듣는 후배들 때문에 속 썩는 또 한 명의 직장인이 직장인의 고민을 담아서 썼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직장인들은, 특히 지금의 3,40대 직장인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요? 남들이 ‘그 길이 좋은 길’이라고 해서 학교를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나 자신의 규칙이 아닌 회사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난 오리인데 두루미들 사이에서 ‘난 왜 이렇게 다리가 짧을까’을 한탄하며 살고 있지 않나요?
오리는 오리의 삶을, 두루미는 두루미의 삶을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자존감이고, 자존감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윤택하게 하고, 윤택한 관계가 직장 생활을 활기차게 해줘요. 요새 『미생』의 대사 한 토막이 유행이더군요. “넌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맞습니다. 스스로 존중하십시오. 남이 만든 태양을 좇지 말고 자신의 태양을 찾고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때 장자를 만났다』가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기자, 하면 대표적으로 바쁜 직업인데요. 선생님께서는 방송 활동과 저술 활동도 병행하고 계십니다. 이런 활력은 어디서 나오는지요.
따지고 보면 기자라는 일과 작가라는 일이 본질적으로 같아요. 제가 아는 정보를 시청자들과 나누는 게 기자로서의 일이고요. 제 지식을 독자들과 나누는 게 작가로서의 일이죠. 그래서 전 ‘이야기 거간꾼’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싶어 해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전하는 것, 그게 제 일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책 쓸 시간이 없지 않느냐’고들 하시는데, 맞습니다. 『그때 장자를 만났다』도 제가 미국에서 1년 동안 연수하는 기회가 없었다면 쓰지 못했겠죠. 제 전작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은 6개월 동안 야간 근무를 하면서 아무도 없는 보도국 사무실에서 집중력을 갖고 썼더랬습니다. 살면서 집중력을 갖고 책을 쓸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쓴 셈이죠. 완벽하게 기자일과 작가일을 병행하는 건, 아직은 제게도 벅찬 거 같아요.
장자가 살았던 시대 상황과 21세기 대한민국을 비교한다면.
그 대답은 아까 몽테뉴의 시대와 지금을 비교해서 말씀드린 것으로 대신하고 싶네요. 정치부 기자로서 방송에 출연해서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게 제 일이긴 합니다만, 작가로서 사회 현안에 대해 너무 깊숙하게 발언하는 건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2014년이 저물고 있는데요. 정치부 기자로서 2014년을 논평해 주신다면?
숙제는 쌓여 가는데 아무도 숙제할 생각을 안 하네요.
그때 장자를 만났다강상구 저 | 흐름출판
다른 동양 고전과 달리 《장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로만 되어 있다. 그 속에 담긴 깊은 상징과 메시지 때문에 철학, 문학, 예술 등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다양하게 연구되는 대표적 동양사상이다. 요즘 말로 융복합 인문학의 표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상징과 비유 때문에 원문만 읽어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반 대중에게는 《장자》의 해설이 필요한데, 전문 학자들의 해설서들 사이에서 한 직장인이 자신이 만난 장자 이야기를 풀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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