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는 시선의 무게
강신주는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에도 주체성을 강조했다. 고전을 밑줄 쳐가면서 익히는 시험용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학생들에게도 어느 순간 시험을 보지 않는 나이가 온다. 타인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 아니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많은 것을 체험해보아야 한다. 책을 읽는 것도 다르지 않다. 여러분의 감각이 살아있는 자신을 위한 독서가 되어야 한다. 박완서, 신경숙, 조정래와 같은 작가들이 여러분과 다른 것은 이 점이다. 누구의 추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점에 가서 책을 골라 소개할 정도로 안목을 키워야 한다. 좋은 독서법은 좋은 책은 읽고 나쁜 책을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안목으로 고른 좋은 책이 생기고, 이를 읽었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지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계속 하다가 좋아한다고 착각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대학에 가면 남는 것은 붕괴된 자아다. 이때 필요한 게 진정 좋아하는 것을 리스트업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둘 수 있는데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Yes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른 것도 할 수 있는데도 한 선택은 진짜 Yes이고 그 선택에 무게가 생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역량이 쌓여야 지성인이 될 수 있다. 침묵을 견디는 만큼 말이 무거워지듯, 긍정의 무게와 깊이는 부정할 수 있는 용기에 달려있다.”
100편의 영화를 본 사람이 101번째 본 영화에 평가를 내린 게 1편의 영화를 본 사람이 2번째 본 영화를 보고 한 평가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많이 읽어봐야 한다. 다독만 한다고 끝나지는 않는다. 다독하면서 고전을 읽을 때마다 자신의 시선을 담아 읽는 게 중요하다.
장자를 통해서 본 사랑하기에 하는 ‘폭력’과 ‘수용’
일부 학자는 장자의 사상이 방임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무위자연이 곧 방임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강신주는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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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소,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장자』 「지락(至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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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왕이 바다새를 데리고 온 이유는 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존재는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폭력에는 두 가지 폭력이 존재한다. 존재를 부정한 폭력과 사랑에 의한 폭력이다. 이 우화에서 나타난 폭력은 후자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사랑에 의한 폭력이 야기하는 비극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임금이 바다새에게 베풀었던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다. 바다새가 원하는 것은 바람소리와 벌레였을 뿐, 술과 고기, 궁궐의 음악이 아니었다. 강신주 철학자는 우리의 주변에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벌어지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어머니의 바람으로 이루어진 아이의 교육, 나아가 사랑이라는 이유로 벌어지는 종교전쟁도 같은 맥락이다.
강신주는 바다새를 사랑하면서 그것을 죽이지 않는 방법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장자는 조삼모사의 일례를 통해 사랑하는데 파괴하지 않는 방법을 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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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키우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 주겠다.” 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 (그 원숭이 키우는 사람도) 있는 그대로를 따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름’(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대립을 조화시키고, ‘천균(天鈞)’에 편안해한다. 이를 일러 ‘양행(兩行)’이라고 한다.-『장자』 「제물론(齊物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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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에서 일반적으로 조삼모사의 핵심을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사람을 놀린다.’ 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아야한다. 여러분이 일정한 사정으로 한 마리당 7개의 도토리를 배분할 수 없는 원숭이 조련사가 입장이 되어보라. 이 이야기의 전제는 원숭이 조련사의 원숭이에 대한 사랑이다. 만일, 조련사가 원숭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강압하면 될 문제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조련사는 결정권을 원숭이에게 맡기고 있다. 이것이 조련사와 노나라 임금의 차이이다.”
강신주 철학자는 원숭이 조련사의 입장에서 원숭이들의 먹이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 학생은 7개를 배분하되, 재량으로 나눠먹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고, 어떤 학생은 7개보다 많이 배분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강신주 철학자는 이 모든 것은 원숭이 조련사의 입장에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답은 없다. 분명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의견은 조련사 입장에서는 더 옳은 선택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련사는 자신이 옳다고 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라 원숭이들이 ‘No’라고 외친 주장이 아닌 ‘Yes’라고 한 의견을 수용하였다고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의견을 수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바다새를, 그리고 원숭이를 죽이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전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 저자의 입장되기
이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강신주는 고전 『장자』 로 학생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주었다. 고전이란 단순이 오래 전에 써졌다고 고전이 아니다. 고전에는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다. 그는 이성복 시인의 시 「남해 금산」 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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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문학과지성시인선 52』 「남해금산」 시인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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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인은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이미 방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사람은 사랑 때문에 방법을 창조하게 하고 그것이 이후에 보편성을 띠게 되어 고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을 하면 방법을 찾듯, 저자의 시각에서 고전을 사랑할 때 비로소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 강신주 철학자는 끝까지 학생들이 저자의 입장이 되어 고전을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강의를 마쳤다.
숭실대학교의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고전 읽기 강연회’는 EBS가 공동기획하고 예스24와 서울시교육청이 후원하에 11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10월 강연은 고전 『국가』 를 가지고 이태수가 교수가 12일, 26일 양일에 나누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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