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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보다 더 복잡한 추함에 대하여

옴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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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과 두려움으로 인해 질문이 태어났다



격주 월요일, 시인 김소연이 읽은 책 이야기 
 ‘김소연의 내향적 삶을 옹호함’이 연재됩니다. 

 


 

 

길에서 예쁘고 앙증맞은 길고양이를 보았다. 그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곧 고양이를 잊었다. 며칠 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그 고양이와 다시 마주쳤다. 고양이는 죽어 있었다. 예쁜 고양이의 징그러운 시체를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추한 것들은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추한 것을 바라보는 일은 무섭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도 추한 것에게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 청소년기가 되자 추한 것을 손수 찾아내기도 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찾아보았고, 추한 인물이 그린 그림을 찾아보았고, 끔찍한 살인 사건 기사를 읽었다. 그런 걸 찾아볼 때마다 빨려 들어갈 것처럼 집중하게 되었고, 집중하는 만큼 공포를 느꼈고, 공포를 느끼는 만큼 공포를 직시하고 있다는 용감함이 뿌듯해졌고, 뿌듯한 만큼 죄의식이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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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볼 때에, 무섭거나 끔찍한 장면에서 애인이 내 눈을 가려주거나 친구가 고개를 돌려버릴 때, 나는 그들이 착하고 여린 사람들이라고 느끼는 와중에 의구심이 생겼다. 이런 영화는 이런 재미로 보는 거잖아? 또 한편으로는 뻔뻔하게 이런 장면들을 즐기고 있다는 게 두려웠다. 이런 것들에 쾌락을 느끼는 괴물이 되어 버릴까봐 두려웠던 걸 수도 있다. 사람의 육체가 가장 잔혹하게 훼손되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씨익 웃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죄의식과 두려움으로 인해 질문이 태어났다. ‘추’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왜 그런 것이 세상에 있는가에 대해. 왜 누군가는 추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고, 왜 다른 누군가는 추에게서 쾌락을 느끼는가. 누군가는 왜 추함을 아예 외면하고, 누군가는 왜 추함에 아무렇지도 않은가. 추와 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추는 악의 연관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추에서 이상한 아름다움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했고, 아름다움에서 이상한 추를 발견하기도 했다. 쾌락과 아름다움과 추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겹치고 있었다. 그때, 움베르트 에코의 『추의 역사』라는 책을 만났다.

 

 

이야기는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다. 그때에는 미와 추의 경계가 확연하였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 추한 것은 추한 것.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이 경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십자가의 못이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은 분명 보는 이들에게 추에 가까운 경악의 감정을 일으켰다. 그러나 분명 아름다운 것이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추에 한하여, 추한 것이 곧 숭고한 아름다움이라고, 사람들은 정의를 내린다. 그 이후, 서민들 사이에서 추를 풍자에 이용하기 시작한다. 왕이나 귀족 같은 권력자의 모습을 추하게 묘사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 것이다. 서민들의 이러한 은밀한 쾌락을 차용한 문학 작품과 미술 작품이 태어나면서부터, 풍자로서의 추는 철학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추를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예술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가 없는 노파라든가, 길가에서 썩어가는 시체에게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불행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저주받은 자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추한 것들의 운명이 자신들의 운명과 다를 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추한 것을 표현하여 세상을 직시하고, 권력을 조소하고, 복잡한 인간을 온전히 사랑하기도 한다. 추와 미의 경계는 그렇게 하여 점점 무너져갔다. 예전에 추한 것이라 여겨졌던 것이 미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예전에 미의 기준이었던 것이 추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악마의 모습을 흉 낸 것처럼 기괴한 스모키 화장을 하고 있는 록 가수에 대중은 열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추가 이제는 인간의 진면목에 관하여 더이상 새로운 정보나 진리를 담당하지 않는 요즘에도 여전히 우리가 추한 것들에 오래오래 사로잡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사로잡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움베르트 에코는 이렇게 정리한다.

 

“일상 속의 우리는 소름 끼치는 광경들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굶주려서 배만 퉁퉁 부은 채 해골처럼 말라서 죽어 가는 아이들의 사진을 본다. 여성들이 침략군 병사들에게 강간당하는 나라들을 보고,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는 나라들을 보고,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찍은, 가스실에서의 최후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살아 있는 해골들의 사진들을 또 그만큼 계속해서 접하곤 한다. 우리는 고층 건물 폭발이나 항공기 폭발 사고로 갈가리 찢긴 주검들을 보고, 내일이면 혹시 우리 차례가 될지 모를 테러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그런 것들이 도덕적으로뿐 아니라 물리적 감각으로도 <추하다> 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그 이유가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불쾌감, 두려움, 혐오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는 그런 것들이 한편으로 우리의 연민, 분노, 저항과 연대의 본능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이다. 설사 삶이란 어느 얼간이가 떠벌이는 것처럼, 소음과 광포함으로 가득한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고 믿는 자들의 숙명론적 태도로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말이다. 미적 가치의 상대성에 대한 어떤 지식도,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주저 없이 추를 인정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쾌락의 대상으로 전환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세기의 예술들이 왜 집요하게 추를 묘사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의 목소리는 주변적일지 몰라도, 일부 형이상학자들의 낙관주의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는 냉엄하고 슬프게도 악한 어떤 것이 있음을, 그 목소리는 우리에게 상기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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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역사움베르트 에코 저/오숙은 역 | 열린책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구의 미술 작품과 다양한 텍스트를 병치하는 체제 및 편집상의 방법을 취하고, 흔히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인 만큼 보다 희소성을 갖는 수많은 추의 이미지를 탐색하고 있다. 또한 인간 심리가 끊임없이 추에 매혹되어 온 역사를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소개하면서 큰 관심 없이 지나쳤을 대목들이 추에 대한 연민의 시선 아래서 빛을 발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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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소연(시인)

시인. 트위터 @catjuice_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을 출간했다.

추의 역사

<움베르트 에코> 저/<오숙은> 역58,500원(10% + 1%)

시각 문화와 예술 작품 속의 아름답지 않은 것들, 즉 그로테스크한 것, 괴물 같은 것, 불쾌한 것과 같은 "추"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탐색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악마", "마녀", "죽음", "괴물" 등을 추의 한 현상으로 아우르고 일종의 문화, 역사 비평을 통해 추의 기호학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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