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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의 탄생> 아름다워도 용서할 수 없는 멍청함
SBS <미녀의 탄생>
나는 아름다운 것에 곧잘 매료된다. 눈은 쉽게 현혹된다. 아름다운 것은 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름다움만이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녀의 탄생>에 아무리 아름다운 한예슬이 나온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드라마가 된 까닭은 ‘예쁘면 다 된다’라는 천박한 가치를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반성 없이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허술함 속에서도 미녀는 빛이 난다
오랜만에 한예슬이 드라마에 복귀하는 작품이었기에 <미녀의 탄생>은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드라마 자체에는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개연성 부분에서 ‘말도 안돼’라고 생각해서 그만 보고 싶었지만 나는 다른 채널로 돌릴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사라 역을 맡은 한예슬 때문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한예슬이 나오기만 하면 “왜 이렇게 예쁘지?”, “어쩜 저렇게 사랑스럽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 끊임없이 감탄사를 내뱉았다. 한예슬의 귀여운 입술, 사랑스러운 눈동자, 바비인형의 재현인 듯 비인간적인 몸매를 보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이없는 대사가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만 볼 수가 없었다.
이토록 견딜 수 없는 이야기 속에 던져놓아도 한예슬 때문에 참고 볼 수 있는 매력이라니. 새삼 대단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미련의 탄생
이 드라마는 지나치게 시간관계를 무시해서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졌다.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헌신적인 아내 사금란(하재숙)을 두고 교채연(왕지혜)와 바람을 피는 남편 이강준(정겨운)라는 설정은 남자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결혼이 가능했다는 사실 조차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게다가 그 둘은 결혼식만 했지 같이 산 것도 아니고 ‘7년’이나 떨어져 지냈다. 남편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시부모와 시누이의 무시와 구박을 받으면서 치매 시할머니를 정성스럽게 모셨다는 건 그저 성품이 ‘착하다’라고 보기 어렵다.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미련스러움이 사금란을 그렇게 살도록 만든 것이다. 결혼이 사랑의 종결이고 그렇기에 미국에 가 있으면서 연락도 없는 그가 돌아오기만 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는 건 순수에 멍청함을 더한 순진한 수준이다. 현실 직시가 안 되는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불쌍하다고 말하기도 참 애매한 사례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인식했을 때 취한 행동이 ‘예뻐지겠다’였다. 좋은 결심이다.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것보다 분명 사는데 편리한 부분이 있다. 인생을 개조해 보겠다고 생명을 걸었다. 의사에게 자신의 사연을 팔아 그 엄청난 비용의 수술을 공짜로 받지 않았는가, 물론 한태희(주상욱 분)에게는 다른 목적도 있었지만 그런 둘이 만나 의기투합하는 것도 우연치곤 지나치긴 했다.
<미녀는 괴로워>처럼 극한에 몰렸을 때 대수술을 감행할 수 있는 용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꾸준히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건강하고 시간을 들여 자신을 가꾸어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며 뜨악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당장의 결과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기에 실패를 염두에 두고 뛰어든다는 점에서 방법론을 가지고 덧붙여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실제로 수술을 해보면 그것이 ‘당장’ 결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완벽하게 아름다운 모습이 되려면 수술 흉터자국이 사라지는데 필요한 시간만 일 년이 넘게 걸린다. 피트니스 장면에서처럼 가슴을 드러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과격한 운동은 할 수도 없다. 사고 후에 자신의 장례를 목격하고 의사를 설득해서 사금란이 사라가 되려면, 49재가 되기 전에 절대 완료될 수 없는 탈바꿈 미션인 것이다. 그래서 섬망 증상이라는 걸 알기 전에는 49재를 하는 절에서 사라와 사금란의 영혼이 바뀌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사라가 자신이 사금란인 걸 알고 난 뒤 한태희에게 이강준을 다시 유혹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이렇게 예쁘잖아요.”라며 전략 부재의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걸 보면서 한예슬이 아무리 예뻐도 견디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렇게 예뻐졌으면 새로운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면 과거로 복귀에 그들과 얽힐 게 아니라 현재의 즐거움을 찾아 좋은 사람을 만나 생을 즐겨야 한다. 게다가 복수하겠다더니 이강준이 조금만 친절하게 굴자 넋이 나가서 눈에 하트를 그리다니. 전형적으로 나쁜 관계에 빠져들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존감 낮은 여자를 보여줄 뿐이었다. 인생을 바꿀 노력을 허무하게 만드는 사라의 회귀성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다.
외모의 변화가 답은 아니기에
이미 <미녀는 괴로워>에서 보았듯이 외모가 바뀐다고 타고난 성품과 그간의 콤플렉스가 한 번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외모는 하나의 손쉬운 수단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해줄 뿐이다. 물론 효과 좋은 수단이지만 나라는 존재는 같은데 달라진 외모로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는 건 사실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눈에 쉽게 현혹되고 마는 가벼운 인간의 태도에 경멸감마저 들 정도이다.
자신의 바뀐 외모로 태도가 돌변하는 이강준이나 시댁 가족을 보면서 사라는 분노를 느껴야 맞다. 하지만 그런 과정 없이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사랑스러움을 드러낸다. 사금란 주변에 천박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을 보여주어 시청자가 느끼는 분노나 괴로움이 복수를 지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면 사라는 철저하게 이중적인 태도와 전략을 가지고 그들을 대해야 했다. 외모는 사라로 변했지만 여전히 사금란이 그러했듯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추며 조신하게 구는 모습은 이 드라마가 사라를 통해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모르게 만들었다.
차라리 이 드라마가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예쁜 한예슬이 아니라 하재숙이 주인공으로 내세워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미 외모지상주의적 가치가 판치는 세상에 굳이 그것을 공고히, 그것도 타고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아름다워져서 얻어지는 성과를 보여주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드라마 <드롭 데드 디바>의 설정을 빌려왔으면 훨씬 더 좋은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해줄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다. 예쁘고 아름답고 자존감도 높은 사라가 우연히 사고를 당하고 천국에 와서 천사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설명을 듣는데 그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고 리턴 버튼을 눌렀더니 그 순간 사고로 응급처치를 받고 있던 사금란의 몸으로 들어가 깨어나서는 그간 사금란이 받아온 대접이 어떤 것인지 파악을 하고는 비록 예전의 자신처럼 타고난 아름다움을 가진 몸은 아니지만 자신감과 뻔뻔함 그리고 기존의 사금란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성격적 매력으로 남편의 내연녀를 처리하고 시댁 식구를 골탕먹이고 재산 한 몫 챙기며 이혼까지 하면서 사금란이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을 구현했다면 앞으로도 챙겨보고 싶은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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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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