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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서툰 그리움
달짝지근한 꽃게 한 상
짠 내 나는 부둣가, 아침 해가 떠오를 준비조차 하고 있지 않은 신 새벽녘 두툼한 장화에 작업복 갈아입고 연안부두 수협공판장을 향했던 아빠의 뒷모습, 채 떠지지 않은 눈 비비며 바라본 아빠의 뒷모습이 새삼 그리운 가을입니다.
포구에서 기분 좋은 일 중의 하나는 이리저리 걷다 마주치는 배들의 이름을 읽는 것이다. 배들의 이름에는 선주들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주들은 자신의 배에 어린 시절 고향 동리의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젊은 날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이나 술 이름을 적어놓은 로맨티시트도 있다. …… 이름들의 의미를 다 모아놓으면 그것이 그대로 한 포구가 지닌 그리움의 실체가 되리라.
포구에 다다르기 전부터 이미 코끝에 확 몰아닥치는 비릿한 바다 내음, 새벽녘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귀항 후 그물과 선박을 정리하고 있는 어민들, 생각보다 큰 갈매기의 퍼덕임, 상인들의 목청 높은 호객의 울림까지, 포구의 아침은 어느 곳이 됐든 늘 활기가 넘쳐납니다.
이 시기, 서해와 동해의 극명한 차이점, 알고 계신가요? 바로 바다의 게, 서해는 꽃게, 동해는 대게라는 점입니다. 서해에서 먹었던 꽃게를 동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은 서해(인천)에서 동해(울산)로 이사 온 저로서는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거기다 동해 대게의 몸값은 참으로 높디높았거든요. 그러던 2014년 가을, 뉴스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 “대게 보다 꽃게, 울산 북구 정자항에 해가 뜬 후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꽃게를 가득 배에 실은 만선의 어선이 입항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랍니까! 동해에 꽃게라니요! 수온이 상승하면서 정자항을 비롯해 신명항, 산하항 등 울산 북구 일대 어선과 가까운 경북 경주시 수렴항의 어부들이 건져 올리는 꽃게는 많을 때는 하루 1t에 육박한다는 뉴스를 듣고, 곧장 정자 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가을이라 살이 꽉 찬 꽃게와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꽃게는 맛으로 치면 봄 꽃게, 노란 알을 품고 있는 암꽃게가 최고지만, 요즘 같이 가을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살을 꽉 채운 숫 꽃게를 최상으로 칩니다. 해양수산부에서 10월 제철 웰빙 수산물로 꽃게와 문어를 선정했다니까, 그 맛 역시 보장된 셈이고요. 꽃게는 등딱지의 양 옆이 가시처럼 삐죽 튀어나와 있어 ‘곶(튀어나온 것)’과 ‘게’가 합쳐진 합성어라고 합니다. 꽃게로는 대개 찜, 탕, 게장을 만들어 먹죠. 오늘은 달짝지근한 꽃게 한 상,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이 모든 요리를 섭렵해 볼까합니다.
일단, 꽃게 손질부터 해 볼까요? 흐르는 물에 솔로 깨끗이 씻어주세요. 그리고 게 배꼽 부분을 손으로 들춰내고 게딱지와 몸통을 분리한 뒤, 몸통에 붙어 있는 아가미와 모래주머니를 제거해 준 뒤 요리법에 따라 꽃게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주면 됩니다.
# 달짝지근 꽃게 찜
재료: 손질한 꽃게, 물, 찜통
1. 흐르는 물에 솔로 꽃게를 깨끗이 씻어주세요.
2. 꽃게 등딱지를 밑으로 해서 배가 보이도록 해서 뚜껑을 덮고 20-30분 정도 푹 쪄주세요.
3. 한 김 식힌 후, 목장갑을 끼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잘 발라드시면 됩니다.
뭐, 이렇게 무장해도 꽃게의 최강 비린내를 잡을 수 없긴 해요. 하지만, 막 쪄낸 꽃게 찜을 손에 들면, 비린내쯤 감당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실 거예요. 그리고 꽃게탕, 시원한 맛이 일품이죠.
# 시원함으로 무장한 꽃게탕
재료: 꽃게 2-3마리, 무 7-8조각, 애호박 1/3개, 양파 1/2개, 대파, 마늘 적당량,
고춧가루 2큰 술, 된장 1/2큰 술, 소금 약간
1. 흐르는 물에 솔로 꽃게를 깨끗이 씻은 후 게 등딱지를 떼고, 아가미를 떼어주세요.
2. 꽃게 아가미 옆에 모래주머니를 떼어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세요.
3. 냄비에 물을 붓고, 된장을 풀어주세요.
4. 그리고 손질한 꽃게, 애호박, 양파, 무, 대파, 마늘, 갖은 양념을 다 넣고
바글바글 끓여주세요. (꽃게탕은 끓이면 끓일수록 진국이 됩니다.)
5. 위에 거품은 걷어내 주시구요. 마지막으로 소금 간을 해 주시면 됩니다.
# 감칠맛 최강 양념꽃게
재료: 꽃게 3마리, 간장 2큰 술, 정종 1큰 술, 매실청 2큰 술(설탕 대체 가능),
고춧가루 3 큰 술, 양파 1/4개, 생강 1/2 작은 술, 마늘 2 작은 술, 파와 깨는 적당량,
홍고추나 청고추 1/2개씩
1. 손질한 꽃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2. 양념장을 만든 후 꽃게를 버무려 주시면 완성됩니다.
가을 바다의 진미, 달짝지근한 꽃게 한 상, 잘 받으셨나요? 고향인 나주 영산 포구에서 꼬맹이 시절을 보내고, 인천 연안부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현재 정자항 포구가 있는 울산에 살고 있어 바다의 비릿함에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아직까지도 바다 냄새에는 그다지 친숙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1인입니다. 수산물 도매인이었던 아빠는 신 새벽이면 연안부두 수협공판장을 향하셨고, 아침 퇴근과 함께 항상 그날 도매한 생선들을 상자 째로 집에 들고 오셨는데, 어찌 된 것인지 아빠 외에는 엄마와 4남매 모두 회를 먹지 못 했던 관계로 그다지 환영받지 못 했던 수산물들은 곧장 구이로, 탕으로, 찜으로 활용되는 불운한 운명을 맞이하곤 했습니다.(사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죠. 그 싱싱한 횟감들의 운명을 불의 기운으로 다 사라지게 했으니 말이죠.)
어찌 됐든, 비릿한 생선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던 우리였지만 유독 반겼던 것이 바로 꽃게였습니다. 상자 가득 바글대며 기어오르는 꽃게와 마주했던 4남매는 꽃게 집게에 대한 두려움과 통통하게 살 오른 꽃게 찜에 대한 반가움에 환호성을 지르곤 했었는데요. 평소에는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던 아빠는 꽃게를 들고 오신 날엔 손수 찜통을 준비하고, 꽃게를 깨끗이 손질해 맛있게 쪄내셨습니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꽃게 살을 발라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듯 쩍쩍 벌리는 4남매 입에 쏙쏙 넣어주면서, 흐뭇해지는 아빠의 미소는 지금도 참 그립고도 그립습니다. 한 입 가득 꽃게 살을 입에 물고 나면 퍼지는 그 달짝지근했던 맛은, 아마도 무뚝뚝한 아빠가 우리에게 건네는 사랑이었을 겁니다. 주신 사랑, 제대로 돌려드리지도 못했는데, 무에 그리 서둘러 하늘로 향하셨는지. 떠오르는 그리움과 함께, 소중한 이들, 곁에 있을 때 그 사랑 지켜가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건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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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잡다한 것에 손을 뻗어가며, 매일매일 가열!!!차게 살아가고 있는 프리랜서 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