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 “불평등 해소를 위해 싸워라, 자연적으로 되는 것은 없다”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에 나온 내용이다. 여기서 차별을 불평등으로 바꿔도 다르지 않다. 불평등을 경제적 불평등으로 세분화해도 마찬가지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공익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온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는 어떤가. 시쳇말로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이다. 능력과 무관하게 불평등은 세습되고 있으며, 부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자본, 권력 모두 그러하다. 양극화 사회, 격차 사회는 이 사회를 대변하는 수사가 됐다. 우리는 불평등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일까.
불평등, 특히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화두로 던진 『21세기 자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는 불평등과 싸우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진세 혹은 부유세나 재산세 등을 거두고 거액의 보수를 받는 ‘슈퍼 경영자’들이 그만한 보수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20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토마 피케티 특별 초청 강연에서였다. 이날 900석 넘는 강연장이 채워졌음은 물론 곳곳에서 입석으로 강연을 듣는 독자들도 많았다. ‘피케티 열풍’을 실감하게 만든 자리.
불평등의 이유
피케티 교수는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노동소득의 불평등보다 크다며 소득 대비 자본의 비율을 뜻하는 ‘자본소득비율’이 높으면 부의 편중이 생기고 이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에 책에서는 자본소득 불평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1870~2010년대 유럽 내 국가들의 자본소득비율을 보여주는 자료를 소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소득비율이 상승한 그래프를 보면, 1차 세계대전까지 자본비율이 높다가 2차 세계대전이후 줄었다. 그러다가 2010년 소득보다 자본이 더 커졌다. 자본 축적이 이뤄진 것.
피케티는 자본 축적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좋게 쓰인다면 자본 축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즉 자본과 부를 평등하게 분배했다면 자본 축적은 좋다는 것. 그러나 문제는 자본은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소유됐다. 노동소득의 불균형보다 자본소득의 불균형이 커졌다. 국민소득에서 자본 비중이 커질수록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피케티에 의하면, 소득세 제도는 20세기 초반에 주로 생겨났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이것은 ‘조세제도의 혁명’이었다. 그 이전까지 소득과 관련한 자료를 취합하지 못했고, 소득을 취합하게 만듦으로써 소득에 따라 세금을 내게 하는 제도였다. 이를 바탕으로 학교 등 공공시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특히 소득세가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 것은 국가 내 혹은 국가별 소득의 분배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방대한 각국의 소득세 자료를 수집했다. 19~20세기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을 많이 이야기했으나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었다. 최근 불평등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상위 10%의 부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문제다. 1950~1960년대 모든 사람이 경제성장으로 비슷한 혜택을 받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경제가 성장해도 하위 계층은 혜택을 못 받는 것은 큰 문제다. 부가 상위 계층으로 몰릴수록 하위 계층은 점점 더 많은 어려움에 취하고, 경제시스템은 취약해진다.”
그는 소득 불평등을 불러오는 요인 중의 하나로 교육 불평등을 꼽았다. 미국의 예를 들며, 상위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성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나타난다고 들었다. 물론 교육만으로 불평등을 규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가 문제를 제기한 또 하나는 고액 연봉을 받는 슈퍼경영자다. 슈퍼경영자의 고액 연봉은 대부분 생산성에 기반 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는 강하게 반문했다. “회사에서 적임자를 적절한 장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큰 임금 격차가 나는 것이 맞을까?” 슈퍼경영자들의 끊임없는 임금상승 욕구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세습사회, 이대로 좋은가
피케티 교수는 세습사회, 세습적 자본주의의 복귀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를 한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즉 저성장 국가에서 부의 축적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없다. 저성장 기조는 불가피하다. 인구증가도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일부 국가는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소득이 높은 것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피케티는 소유 불평등,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면 나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습적 사회는 부의 불평등이 전제돼 있는데, 이는 노동소득에 있어서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능력과 무관하게 소득을 거두지 못함으로써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
“부를 갖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은 계속 하위 계층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노동소득의 불평등 때문에 이런 것이 발생한다. 우리는 기업 임원들이 그렇게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이 정당한가, 그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가, 의심해야 한다.”
그는 세습 자본주의의 회귀를 언급하며, 1970년~2010년대 사적자본의 진화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시기, 부동산, 금융자산, 토지, 빌딩 등의 여러 자산을 이해하고 분류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이에 역사 속에서 부동산 가격의 변화, 토지 가격의 변화를 감안해 자본을 살펴봐야 한다.
피케티 교수는 민영화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사적자본과 공적자본의 역사적 변화 추이를 보면, 사적자본은 우상향인데 반해 공적자본은 살짝 우하향 한다. 사적자본의 증가는 민영화에 기댄 것도 있다. 경제적으로 부를 쌓은 나라에서는 공공부채에 대해 걱정이 많다. 이는 다음 세대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국가가 빈곤해지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뭐가 남겠는지 우려하는 시각도 많아진다.
“1997년부터 포브스 자료 등을 통해 분석했는데,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부의 증가율을 그룹별로 나눠봤다. 상위 부자들이 상당히 많은 부를 가져갔다. 자본수익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증가율이 이뤄질까. 아무도 모른다. 세계의 부가 상위 부자에게 얼마까지 몰릴까. 그것도 모른다. 이것이 계속해서 가면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슈퍼 경영자에게 부가 몰리는 것이 문제다.”
그는 소득불평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초고소득층에게 글로벌 부유세를 걷자는 주장도 내놨었다. 이번 강연에서도 소득세를 언급했다. 즉 민주적인 시스템을 통해 세제를 조정해 나가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독일, 프랑스, 미국 등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상위 계층의 부가 축적되는 정도에 비해 그에 걸맞은 소득세를 걷지 못했다는 것. 이는 상위 계층의 부가 커질 수밖에 없는 제도적 환경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상속세의 최고 세율 변화 추이를 보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40~50%로 비슷하다. 각기 역사적?문화적인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하다. 지금은 한 국가에 일어난 일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세금이 좀 더 부가가 돼야 한다고 본다. 불평등은 오래된 문제이고 평등의 정치적인 결과물이 바로 나올 것이라 보진 않지만,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피케티에게 묻고, 피케티가 답하다
『21세기 자본』에도 다양한 문학 등을 인용했는데 추천하고 싶은 책이나 영화가 있다면?
발자크 소설을 좋아한다. 책에서 문학 작품을 소개한 이유는 역사 때문이다. 발자크의 소설을 통해 부(富)를 이해할 수 있다. 그 부는 생활방식, 생활수준, 연애 등 모든 것을 보여준다. 부와 소득의 관계는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문학을 보면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돈과 재산을 통해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책에 문학작품을 소개했다. 사회통제, 정치적인 차원의 모든 이야기가 문학에 잘 나온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가르치나?
학생들에게 조금 더 많은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발자크가 왜 빚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했는지 연구도 했다. 사회적 관계를 비롯해 모든 것이 부에 의해 결정되는 지금은 발자크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가 민주적으로 배분돼 있다. 발자크 시대와 비교했을 때 노동소득의 변화도 생겼고, 유산에 대해서도 변화된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학생들에겐 항상 불평등에 대해 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왜 이런 불평등이 일어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얘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 맑시스트라고 생각하는지, 케인지안이라고 생각하는지?
내 스스로 맑스나 케인즈 어느 쪽에 가깝다고 정의하지 않는다. 사회과학자로서 작업을 하는 것이고, 경제학의 여러 측면을 본다. 경계선은 없다. 경제적인 것을 역사적, 사회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역사의 진화 속에서 소득의 문제를 어떻게 볼지 연구하고 있어서 어디에 속한다고 보긴 어렵다. 모든 시각을 아울러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진세 등 좀 더 진보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특정 학파에 속해있진 않다.
불평등을 놓고 보자면 하나의 메커니즘 때문에 불평등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 속도를 능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황이 나타났다. 경제성장이 5% 정도 높게 나타난 경우에는 예외였다. 이제 이런 시대는 다시 오기 어렵다. 지금 저성장 시대에는 불평등이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가령 프랑스는 미국에 비해 불평등이 심하지 않은데, 교육에 대한 접근성도 상당히 큰 차이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우리는 보다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고등교육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정부는 데이터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대학교도 그렇다. 민주주의에서 투명성은 중요한 가치다. 과장이 있거나 해당 정보가 호도되지 않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려면 민주적인 절차가 제대로 이행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정경유착 등과 같은 것 때문에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불평등이 너무 과도해서 민주적인 절차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지금 미국에서도 불평등이 너무 심화돼서 정치적인 제도가 이에 포획됐다. 즉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치제도가 왜곡되고 있는 거지. 큰 위험이다. 유럽 국가들이 왜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까.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의 불평등이 너무 컸다. 1913년 상위 1%가 70%의 부를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엘리트들은 부정했지만 불평등이 심했다. 왕족은 없고 공화정이 있었지만, 부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해소책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파격적인 쇼크들이 있었다. 프랑스도 1920년대에 우파 쪽이 누진세를 받아들였다. 20세기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가 이끄는 역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질서를 지킬 수 있었던 측면도 있었으나 21세기가 똑같을 순 없다. 민주적인 논쟁을 통해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고, 민주적인 제도도 계속 재창조되어야 한다. 쉽지는 않다. 긍정과 부정이 왔다 갔다 하는데, 싸우고 행동하고 쟁취해야 한다. 자연적으로 되는 것은 없다.
불평등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효용이 있으나 너무 심화되면 성장을 저해한다. 사회 이동성은 없어지고 제도를 무너뜨릴 수 있다. 불평등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극심한 불평등이 안 좋은 것이다. 부가 극심하게 편중될 때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 수준의 극심한 불평등이 와서는 안 된다. 더 효율적인 분배 제도가 필요하다. 불평등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각국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과 제도는 다르지만, 반드시 누진세는 필요하다.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도 재산세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아주 중요한 논의가 될 것으로 본다.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저/장경덕 등역/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전 세계에 ‘피케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한다. 지난해 8월에 프랑스, 올해 4월에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이후 경제계는 물론 세계 지성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온 『21세기 자본』은 국내에서도 이미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의 동학에 대한 참신하고 실증적인 분석과 대담하고 파격적인 대안 제시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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