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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극으로 만나는 <뿌리 깊은 나무>, 그리고 임철수
임철수“서울 토박이에요. 제 얼굴을 사랑합니다!”
서울예술단이 한글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를 무대에 올립니다.
달력에 빨갛게 새겨진 10월 9일은 무슨 날일까요? 맞습니다. 올해로 568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25년, 서기 1443년에 완성돼 3년의 시험 기간을 거쳐 서기 1446년 세상에 반포됐죠. 올해 10월 9일에는 국립한글박물관도 문을 엽니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들어서는 한글박물관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인데요. 이와 함께 문을 여는 것이 있으니 바로 뮤지컬, 아니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입니다.
서울예술단이 한글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를 무대에 올립니다. 이렇게나 뜻 깊은 작품에 배우 임철수 씨가 참여한다고 해서 서울예술단 연습실이 있는 예술의전당으로 찾아가 봤습니다. 아, 임철수라는 이름이 낯선가요?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공동경비구역 JSA>의 인민군이라고 하면 바로 아시겠죠?
“고향은 서울입니다. 서울 방배4동 토박이에요(웃음).”
그는 서울 토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실제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생각될 정도로 맛깔 나는 북한 사투리와 토속적인 외모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임철수 씨. 2년째 인민군으로 살다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이번에도 서울이 아니고 한양이네요.
“이번 작품에서도 10년 동안 북방에서 여진족을 물리치다 한양으로 온 거예요(웃음). 북한 말은 실제 그곳에서 살았던 분들한테 배웠어요. 그런데 어감을 잘 모르니까 갖고 놀 수가 없더라고요. 뉘앙스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그래서 답답하고 말에 갇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들었을 법한 사극 톤이기 때문에 북한 말보다는 덜 힘들었어요.”
데뷔 이후 평상복을 입고 표준어를 쓰며 무대에 서 본 적이 있습니까?
“없는 것 같아요. 아, 찾고 싶은데 정말 없네요(웃음).”
<뿌리 깊은 나무>는 이정명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비롯해 한석규 씨 주연의 드라마까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지도가 있는 만큼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부담도 클 것 같아요.
“그렇죠. 소설도 두 권짜리고 드라마도 시리즈니까 긴 호흡의 작품을 압축해야 하는데, 사실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소설이나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극 중 장소가 여러 번 바뀌는데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 무대 장치가 많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제 움직임에 따라 관객들의 시선도 함께 움직이는 형태거든요. 아무래도 현장성이 더 있고 생동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전달될 거라 생각합니다.”
한글날, 한글박물관 개관과 함께 개막합니다. 배우들 입장에서도 의미가 남다르겠죠?
"그럼요, 저보다는 세종대왕님이 더 남다르겠지만(웃음). 한글날 개막해서 정말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가무극’이라는 말도 맘에 들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큰 극장에서 이렇게 비중 있는 역을 맡게 돼서 감사하고요. 부담은 없어요. 그냥 하던 대로 열심히 하는 거죠.”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며 한글 창제의 비밀을 풀어가는 채윤 역을 연기합니다. 인물에는 어떻게 다가가고 있나요? 전작에서는 좀 까불까불한 이미지였는데요.
“소설을 읽었는데 심리묘사가 자세히 나와 있더라고요. 그걸 기본으로 함께 캐스팅된 (김)도빈이 형과 저희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중이에요. 전작들과 인물이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이 친구도 까불어요. 제가 원래 좀 까불까불 하기도 하고. 채윤은 나이가 어리니까 평소에는 무모한 짓을 하기도 하다 살인사건을 맡으면서 굉장히 진지해지죠. 무대에서는 그 간극이 클 것 같고, 그래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단타만 해왔는데, 이 작품에서는 일대일로 계속 다른 사람들을 만나거든요. 때마다 호흡이 달라야 하고 분위기도 달라야 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로 관통하는 게 이어야 하니까 긴 호흡을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서울예술단 단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불편하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지레 겁먹은 부분이 있었는데, 정말 좋은 분들이에요. 처음에는 포커페이스인가 했는데, 다들 항상 기분이 좋은 상태더라고요(웃음). 편하고, 활짝 열려 있고, 작품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 나누고.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게 돼서 감사하죠. 함께 공연 준비하면서 술 담배도 줄이고, 무술도 배우고, 호흡 훈련도 다시 하고, 객인데 피해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웃음).”
서범석 씨와는 이번이 첫 작품인가요? 서범석 세종대왕은 어떤가요?
“네, 공연장에서 같이 공연은 많이 봤었고,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 인사드린 적은 있어요. 굉장하시죠, 선배님은. 평소에도 여유가 넘치는데, 그 연륜이 배역에서도 느껴져요. 도빈이 형이 어제 연습 중에 선배님의 후광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배우들도 그때 다 감동했어요. 선배님의 연륜이 공기를 사로잡더라고요. 평소에는 개구쟁이 형님 같은데, 장면 들어가면 진짜 왕 같고, 정말 멋있어요.”
작품을 홍보하는 문구에 ‘신념에 의한, 신념을 위한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배우도 신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직업이 아닐까 합니다. 올해 나이 서른한 살, 어떤가요?
“저는 아직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선배인 박해수, 이기섭 배우와 함께 사는데 매일 지겹게 연기 얘기만 하거든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이거 안 된다.’ 묻고, 직접 해보고,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게 저희 직업이니까요. 그게 신념일 수도 있고요. 무대 위에 인물이 허구인 줄 알면서도 마침표가 찍히고 커튼콜 때 무대에 서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느끼거든요. 그 인물을 제대로 구현해내는 게 잘 안 되니까 계속 과도기인 것 같아요.”
이른바 ‘얼짱 배우’의 이미지는 아닙니다. 그래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될 수 있고, 반대로 더 다양한 배역을 맡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도빈이 형이 <쓰릴 미> 같은 작품에 들어간다면 ‘나랑 더블이니까 나도 <쓰릴 미>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궤변을 하곤 합니다(웃음). 전 캐릭터로 태어났고요, 부모님이 주신 제 얼굴을 사랑합니다.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극단적인 면에서 여유 있는 것까지. 그런 면에서는 제 얼굴이 나은 것 같아요. 언젠가는 <맨 오브 라만차> 하고 싶고요.
산초요(웃음)? 하하, 산초도 매력적이죠. 둘 다 하루씩 번갈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석준이 형님이 하셨던 <스테디 레인>의 대니도 꼭 해보고 싶어요.”
계원예고에서 단대 공연영화학부까지 배우라는 신념을 지켜왔는데, 앞으로 어떤 배우를 꿈꾸고 있나요?
“캐릭터에 관계없이 무대에서든 화면에서든 배우의 인성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성을 갈고 닦는 게 가장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관계가 좋으면 아무리 안 좋은 작품도 좋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거든요. 좋은 사람은 그것과 꼭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배우로서 더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다행히 제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저는 복이 많은 것 같고, 이제 저도 그 복을 뿌려야겠죠.”
임철수 씨를 인터뷰하면서 두 번 놀랐습니다. 안정된 톤의 깔끔한 표준어, 그리고 남다른 패션 감각. 지금껏 한 번도 이 두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없었던 걸 보면 그는 바람대로 정말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나 봅니다. 임철수 씨는 민준호, 박해수, 주민진, 최성원, 신성민 등과 극단 ‘하고 싶다’도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언젠가는 문화 소외 계층을 위해 공연하는 꿈도 키우고 있습니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걸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모아졌다고 하네요. 젊은 배우들의 신념과 열정, 그리고 선한 인성이 잘 녹아든 것 같죠? 전작들에 비해 비중이 커진 임철수 씨의 색다른 모습은 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에서 먼저 확인해 보시면 어떨까요?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공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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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