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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민 “난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나는 3D다』펴낸 배상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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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의 나이로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교수가 된 디자이너, 세계 4대 디자인 어워드를 석권하고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디자인상을 47차례나 수상한 디자이너. 이 모두가 『나는 3D다』의 저자 배상민의 ID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꿈(Dream) 디자인(Design) 나눔(Donate)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그래서 배상민 디자이너는 자신이 좇는 꿈과 디자인으로써 나눔을 실천하고,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꿈과 디자인을 완성시키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3D다』의 저자인 배상민은 분명 성공한 디자이너다. 27세에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파슨스디자인스쿨의 교수가 되었고,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인 스마트디자인과 데스키에서 근무했으며, 코카콜라와 존슨앤존스, 코닥, 3M과 같은 유명 기업들과 함께 작업하며 실력을 인정 받았다. 달콤한 명예와 화려한 생활로 디자이너의 성공을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일찌감치 성공을 이룬 디자이너였다. 그러나 배상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두를 움켜쥐기보다는 내려놓기를 선택했다. 2005년, 승승장구하던 뉴욕에서의 삶을 뒤로한 채 돌연 한국행을 결심한 것. 이후 카이스트 산업 디자인학과로 무대를 옮긴 그는 ‘나는 디자인한다. 고로 존재한다(I design therefore I am)’는 의미의 디자인 연구소 ‘ID IM’을 열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나눔을 위한 디자인을 창조해내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배상민의 삶이 성공적이라 말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뉴욕에서 그가 이룬 성공은 꿈과 디자인이라는 철학 위에 세워진 것이었으나, 그곳에는 나눔이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루는 3D(Dream, Design, Donate)의 마지막 한 조각을 찾기 위해 스스로 힘겹게 쌓아올린 성을 떠나왔다. 마치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듯 미련 없이. 그렇게 그는 움켜쥐지 않고 내려놓는 데 ‘성공’했고, 홀로 행복한 삶보다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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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의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한 가지


지난 9월 19일, 서울 도심의 작은 카페에서 만난 배상민 교수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배상민표 바지’를 입은 모습이었다. 언뜻 배기팬츠처럼 보이는 그의 바지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 재학 시절에 ‘한복 바지저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디자인한 것이다. 개성 강한 뉴요커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로 평가받던 이 옷에는, 디자이너로서 배상민이 가진 자기표현의 욕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처음 ‘배상민표 바지’를 입었을 때는 사람들이 무대의상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이상한 아이로 보고요(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옷이 저의 아이덴티티가 되었어요. 다른 디자이너들이 제 이름은 기억 못해도 이 옷은 기억할 정도니까요. 저한테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거죠. 그런데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그 자체로 브랜드죠. 예전처럼 군중에 묻히면 안 되잖아요.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대체 불가능한 것일 때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찾는 이유가 되고요. 어떤 분야의 일을 하든 자기만의 브랜드화 된 이미지가 있어야 해요.”


한 벌의 옷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그 안에 담긴 ‘나다움’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다. 배상민 교수에게 디자인과 자아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3D다』 안에서 “자기만의 정답, 자기만의 관점, 자기만의 개성을 찾으려면 먼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롤 모델을 찾으려면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저는 벤치마킹이라는 말을 한국에 와서 처음 들었어요. 뉴욕의 디자이너들은 왜 벤치마킹을 안 했을까,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해요. ‘누군가 이걸 만들어 냈으니 따라서 해보자’가 아니라 ‘우리는 그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벤치마킹 이전에 셀프마킹을 해야 해요.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배상민 교수는 다른 이의 성공사례를 모방하는 ‘벤치마킹’에는 그와 내가 똑같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걷는 것은 자신의 꿈이 아닌 그의 꿈을 좇는 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은 벗어버리고 ‘내가 누구인지’ 묻는 일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말했다. 


“파슨스디자인스쿨에 있는 친구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난리예요. 그런데 제가 카이스트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본 바로는, 천재라고 평가받는 이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더라고요. 정답을 제시하고 똑같이 따라해 보라고 하면 기가 막히게 해내요. 그런데 ‘네 것을 해봐’라고 하면 좀처럼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거죠. 셀프마킹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누군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들여다 볼 시간이나 여유나 기회가 없었거든요. 부모님과 사회와 선생님이 만들어줬기 때문이에요. 결국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데,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아닐 수 없죠.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장되어 버리니까요.”


그가 정의하는 셀프마킹의 동의어는 자아인식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어디에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러워지는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가. 이상의 질문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 배상민을 ‘큰 성공을 거둔 디자이너’로 성장시킨 토양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잊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탐색이 끝난 후에는 성찰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아인식이 끝나면 자아성찰을 해야 해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생각들을 거듭할 때 자기만의 언어와 캐릭터가 나와요. 자아가 녹아들어간 캐릭터는 아주 고유한 거죠. 남과는 다른 시간과 기억이 담겨 있으니까 나만의 색깔이 나와요. 결국 자신이 어떤 인간이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인 거예요. 자신만의 브랜드, 창의성, 캐릭터, 스토리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배상민표 바지’도 그런 연습 중의 하나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유치한 일이지만 ‘나는 나만의 것이 있으니 남들과는 다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발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시도 덕분에 저만의 것이 생긴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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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되는 방법? 나만의 무대를 만들어라!


“한동안 파슨스에서 나는 존재감 없는 엑스트라였다”고 고백할 만큼, 유학 초기 그는 “병풍만도 못한 신세”의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는 미술학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그림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유학길에 오른 이유는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관심 갖게 된 사진을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함이었고, 사진과 만나기 전의 그는 꿈도 열정도 없는 영문과 학생이었다.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익히고 파슨스에 입성한 친구들과는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아무런 코멘트도 듣지 못하는 날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테러블terrible’이니 ‘호러블horrible’이니 온갖 나쁜 소리는 다 듣는” 날들도 비일비재했으니. 


그 시절 청년 배상민이 겪었던 당혹감과 혼란은 많은 이들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것이다. 열정으로만 가득 찬 시기, 같은 무대를 동경하는 친구들과의 경쟁은 으레 그런 모습을 하고 있기 마련이다. 동료들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해 보는 일은 늘 초조하고, 누군가 앞서 나가기라도 하면 ‘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선 건 아닌지, 나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것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지금도 누군가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멀게만 보이는 꿈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것이고, 20여 년 전의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100명의 사람이 모두 같은 걸 추구하면, 1등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99명은 병풍이 되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엑스트라처럼 생각되잖아요. 그런데 어른이 되면 내가 엑스트라인 것처럼 느껴져요. 저는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인 거죠. 나만의 무대를 만들어 버리면 그 안에서 주인공은 나예요.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만 1등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인 거죠.”


스스로가 주인공인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배상민 교수는 ‘나만의 색깔’을 찾아 나섰다. 그 시작은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습이 없는-다양한 문화와 유행이 공존하는 맨해튼의 골목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거리 위에서 서로 다른 문화들을 관찰하고, 그 차이에 대해 거듭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 나갔다. 그의 그림이 교수님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어떤 예술 사조에도 얽매이지 않는, 배상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각이 드러난 것이다.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실망하고 포기하는 건 비겁한 행동 같아요.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보면, 이름도 없이 빛을 받지 못하다가 40대 50대가 되어서 갑자기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에요. 실패를 거듭하면서 오랜 시간 힘든 생활을 견디고 있었던 거예요. 소설가와 디자이너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대중과의 공감이에요. 수많은 인생 역경을 견딘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거죠. 오랫동안 꾸준하게 노력하면서 자기만의 스타일과 스토리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중들은 공감해요.”


『나는 3D다』 안에서 배상민 교수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수준의 감을 타고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흔히 디자이너는 타고난 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감’이라는 것 또한 노력이고 훈련이라고 말한다. 


나는 감각 또한 개발하고 학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재능이 없다는 타인의 냉혹한 평가, 자기 스스로 느끼는 불안과 불신에도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또한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는 무명 생활도 견뎌야 한다. 혜성처럼 나타나는 감 뛰어난 동료들에게 위축되지 말아야 하며 일희일비하지 않는 꾸준함으로 묵묵히 노력해야 한다. 이 모든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감 떨어지는 그(혹은 그녀)는 분명 일취월장한다.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나 역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해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3D다』


“제가 지금까지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결과,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아이들도 있어요.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들이 있기는 한데, 만 명 중에서 한 명 정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항상 1등을 하는 건 아니었어요. 끝도 없이 올라가는 인생은 없는 법이잖아요. 오히려 너무 어릴 때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길을 힘들어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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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키우고 싶다면 관찰하고, 메모하고, 반복하라


‘감’을 기르기 위한 방법으로 배상민 교수가 추천하는 세 가지는 관찰하고, 메모하고, 반복하는 것이다. 그가 ‘저널’이라고 명명한 메모장에는 이 모두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일상에서 관찰한 풍경과 사람, 문제적 순간들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기록에 그쳤다면 그가 이 메모장을 두고 ‘보물 창고’라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널에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인 ‘what if’가 숨어있다.


“어디를 가든 주변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찾아요. 그리고 ‘what if, 나라면 어떻게 바꿀까’를 생각하죠. 그렇게 생각한 내용을 저널에 적어 놓고요. 관찰하는 대상은 디자인된 물건뿐만이 아니에요. 사람도 관찰하고 그들의 패션도 관찰해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동선이나 인종마다 다른 반응도 관찰하고요. 누군가는 제품 디자이너가 인테리어나 여자들의 패션을 신경 쓸 이유가 없지 않냐고 물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저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디자이너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상황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해결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물건이나 시스템은 해결의 매개체일 뿐이죠. 그러니까 저에게는 영역을 구분 짓는 일이 의미가 없어요.”


‘저널’ 속에 담긴 관찰과 메모의 시간들은 종종 새로운 디자인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2007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한 ‘롤리폴리팟Roly-poly pot’이 대표적이다. 평범한 화분처럼 보이는 이 제품의 남다른 점이라면, 아랫면이 평평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불룩하다는 것인데, 여기에 비밀의 열쇠가 감춰져 있다. 충분한 양의 물이 담겨있을 때에는 화분이 균형을 잡고 서있지만, 물이 부족한 상태가 되면 한쪽으로 쓰러지는 것이다. ‘나 목말라요’라고 몸으로 말하는 화분이라고 할까. 배상민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식물을 의인화한 화분”인 롤리폴리팟의 아이디어는 십 수 년 동안 저널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동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화초를 키웠던 그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물주는 양을 조절하지 못하고 애꿎은 화초들을 죽이게 됐다. 새 화초를 사와서 더욱 정성을 기울여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상심에 빠진 그는 “열렬히 사랑했던 화초 ‘에마’마저 죽어나간” 어느 날 “저널에 이 문제에 대한 고민과 에마를 잃은 슬픔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롤리폴리팟은 바로 그 날의 기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작품이다. 


“클라이언트로부터 디자인 의뢰를 받았을 때, 저널 속에서 그 힌트를 찾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 그와 관련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경우죠. 가끔씩 학생들이 ‘어떻게 교수님은 모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세요?’라고 질문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요. 어느 마을에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옆 마을에 천발천중의 사수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와 겨루기 위해 찾아갔더니, 그가 과녁이 없는 곳을 향해 화살을 쏘더래요. 그리고 자신의 화살이 지나간 곳에 과녁을 그리더라는 거죠.”


천발천중의 사수와 배상민 교수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쓰는 저널의 방식이 그런 거예요. 저널이라는 구멍을 미리 뚫어놓은 거죠. 여러 가지 케이스로요. 그러다가 클라이언트의 제안을 받으면 이미 뚫어놓은 구멍에 과녁을 그려 넣는 거예요. 디자이너로서 가장 창피하고 자괴감이 느껴지는 순간은 ‘이미 뚫어 놓은 구멍이 없어서 클라이언트의 제안을 거절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 경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저널에 구멍을 뚫어놔야 하는 거죠. 클라이언트가 그려 놓은 과녁에 조준해서 쏜다면, 어떻게 매번 적중시킬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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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드는 디자이너


천발천중의 사수 배상민에게도 아직 그리지 못한 과녁이 남아있었다. 어떤 기업도 요구하지 않았던 과녁, 그것은 나눔이었다. ‘어떻게 하면 디자인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그 끝에서 얻은 아이디어들은 그의 저널 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디자이너 배상민에게 기업이 요구하는 아이디어는 ‘돈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해서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 이를 두고 배상민 교수는 “쓰레기만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단언했다. 그가 『나는 3D다』에서 “내가 하는 일은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었다”고 고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욕에서 잘나가는 디자이너로 살던 시절, 나는 돈을 좇는 소비문화의 일선에서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내 직업이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크 푸드처럼 쉽게 가치 없는 물건들로 사람들의 눈을 가려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일. 나 역시 언젠가 그 세계의 논리에 지배될까 두려웠다. 『나는 3D다』.


자신이 소비주의의 첨병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배상민 교수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3년 전 카이스트 측에서 제안한 대로 산업 디자인학과의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한 것. 물론 한국으로 간다고 해서 그가 원하는 사회 공헌 디자인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가 뒤따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더 큰 나눔이 필요한 곳으로, 더 많은 재화를 나누어줄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도 대단한 클라이언트들의 칭찬도,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소비주의 문화의 부속품으로 사는 일은 공허하고 무의미했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할 작정이었다. 내가 이룬 것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더 가치 있는 디자인, 90퍼센트의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 인간애를 실천할 수 있는 디자인,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이 그것이었다. 『나는 3D다』 .


“뉴욕이라는 곳은 저에게 도전이었고, 너무나 새롭고 재미있었어요. 14년 동안 지내면서 한 번도 외롭다거나 한국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정도로요. 그런데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10년 후의 내 모습이 뻔히 보이더라고요. 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 테고 회사가 더 커지겠지만, 똑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겠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조금 더 크게 할 뿐인 거예요.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싶었어요.”


뉴욕에서 한국으로, 촉망받는 디자이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의 변화는 그에게 커다란 도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도전이 그렇듯이 약속된 미래도 없었다. 뉴욕에서 이룬 성공을 뒤로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했을 때,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교수들이 그에게 ‘미쳤다’고 이야기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카이스트는 저와 정반대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죠. 그동안 제가 감성의 끝을 달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카이스트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야에서 1등이 되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요. 한국이라는 나라 역시 도전이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제 고향이기는 하지만, 한 번도 그곳에서 디자인을 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갈등했던 거죠.”


많은 우려가 뒤따랐고, 새롭게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불투명했으며, 이미 얻은 많은 것들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저는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할 때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해요. 이미 많은 사람을 걸어간 길은 그 끝을 알 수 있으니까 안심할 수 있죠. 하지만 저는 항상, 객기 때문인지 반항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가지 않아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 끝을 뻔히 아는 길을 뭐 하러 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끝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길은 신기해 보이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했을 때 제 나이가 서른 넷 즈음이었어요. ‘아직 청년인데 벌써 안정적인 삶을 살면 안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에 가면 제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상상하기도 했고요.”

 

나눔의 디자인으로 달성한 그랜드슬램


그의 간절한 바람에 대한 응답이었을까. 한국으로 돌아온 1년 뒤, 배상민 교수는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월드비전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나눔을 목적으로 판매될 제품의 디자인을 맡아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 뒤따랐고, 그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요’를 외쳤다. 당시를 회상하며 배상민 교수는 “그 순간 내가 찾아 헤매던 길이 눈앞에 열리는 느낌이었다”고 적었다. 


그렇게 월드비전과 배상민 교수가 함께한 ‘나눔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의 접이식 MP3 플레이어 ‘크로스큐브’를 시작으로 전기를 이용하지 않는 친환경 가습기 ‘러브팟’ 전등갓의 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빛의 밝기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스탠드 조명 ‘딜라이트’에 이르기까지, 실용성과 심미성 모두를 갖춘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특히 ‘크로스큐브’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대회인 IDEA에서 애플의 아이팟을 제치고 은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아이팟은 동상에 머물렀고, 금상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차지했다). IDEA의 평가 기준 중 한 가지가 북미 판매량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일개 대학 연구팀인 ‘ID IM’이 다국적 기업들 사이에서 이뤄낸 성과는 믿기 어려운 ‘이변’이었다. 이밖에도 나눔 프로젝트 제품에 대한 찬사는 곳곳에서 쏟아졌다. ‘러브팟’은 IDEA 뿐만 아니라 독일의 iF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일본의 굿 디자인 어워드를 모두 수상하며 세계 4대 디자인상을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IDEA와 일본 굿 디자인 어워드는 ‘러브팟’에 이어 ‘딜라이트’에도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일생동안 단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상을 배상민 교수가 독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결은 간단하다. 그가 디자인한 나눔 프로젝트 제품들은 굿 디자인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능과 미학, 상징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부의 목적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 디자인적 요소나 기능적 측면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조금 덜 아름답더라도, 좋은 일을 위해 구매하는 것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상민 교수의 관점은 다르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혹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을 뿐인데 그 수익금이 좋은 일에도 쓰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착한 소비’에 동참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눔 프로젝트의 성공 이면에도 이렇듯 ‘배상민식 발상의 전환’은 숨어있었다. 그 결과 나눔 프로젝트는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총 15억 원의 수익금을 조성했고, 240명의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월드비전과 같이 시작한 ‘나눔 프로젝트’는 죽을 때까지 할 거예요. 그 뒤에도 후배들이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고요. 나눔 프로젝트는 선진국에서 자선 상품을 만들어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현금을 기부하는 건데요, 지금 제2의 나눔 프로젝트를 기업과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저는 모든 기업이 이런 프로젝트를 했으면 좋겠어요.”


‘나눔 프로젝트’를 통한 재능 기부 외에도 배상민 교수는 자신이 직접 기획한 ‘시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생존을 위협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돕고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그 어떤 후원도 받지 않고 배상민 교수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나는 저 척박한 땅이 아니라 이 풍요로운 땅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내 선택도 노력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하나의 차이 때문에 나와 그들은 엄청나게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중략) 내가 엄청난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이 행운이 당연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행운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지금껏 당연한 줄만 알았던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그리고 이것이 ‘시드 프로젝트Seed project’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3D다』


시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배상민 교수는 아프리카에 산재한 문제들 중 ‘모기’에 주목했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사망하지만 백신의 보급률은 낮고 위생 시설은 부족한 탓에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지속적으로 이용 가능하면서 실질적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배상민 교수는 ‘사운드 스프레이’를 고안해냈다. 흡혈을 하는 암컷 모기가 수컷 모기의 소리를 피해 다닌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한 이 제품은, 수컷 모기의 주파수와 같은 소리를 발생시켜 암컷 모기의 접근을 차단한다. 간단히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전방 5미터 이내에 모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제품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만으로 충전을 할 수 있다. 


“진짜 그들을 돕고 싶다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마침내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말로 ‘진짜 나눔’을 정의하는 배상민 교수. 그는 2008년을 시작으로 매년 ‘ID IM’ 연구팀의 학생들과 함께 아프리카를 찾아 식수와 전기부족 등 그곳의 이웃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떠나고 그곳으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이끄는 이유는 단 하나,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불편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내가 그들보다 더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모두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한 이 진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잊고 있다. 


“아프리카에 가서 그곳 아이들의 눈을 보면 알게 돼요. 누군가는 저를 천부적인 아이디어로 성공한 디자이너라고 하지만, 그건 만들어진 이미지죠. 저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나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가 온 걸까요. 결코 제가 잘나서 얻은 기회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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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란 빚을 갚는 것


그도 한 때는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이야기는 20여 년 전의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학을 떠났던 1990년대 초반에는 뉴욕에 한국 유학생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 중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자녀들도 다수 있었죠. 그들 사이에 있을 때는 제가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뉴욕으로 유학 와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한국의 학생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그들 모두가 뉴욕으로 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정말 운이 좋았던 거죠. 그때쯤 우연히 TV에서 한국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를 봤어요. 그런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저렇게 힘겹게 육체노동을 하면서 얼마 안 되는 돈을 벌어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들이 볼 때 나는 얼마나 부러운 사람인가 싶은 거예요. ‘나는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도대체 내가 저들과 다른 게 무엇이기에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나’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만약 부모를 잘 만나서 갖게 된 행운이라면, 부모를 잘 만나기 위해 내가 한 노력이 뭔가’하고 저 자신에게 묻게 된 거죠.”


그때부터 배상민 교수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노력의 결과로 주어진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토록 평범한 자신에게 그토록 많은 기회가 주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 가서 더 극명하게 알게 됐어요. 제가 카이스트에서 가르치는 학생들, 소위 천재나 영재라고 하는 아이들의 눈빛과 그곳 아이들의 눈빛이 다르지 않더라고요. 똑같았어요. 제가 그 아이들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왜 저는 뉴욕까지 가서 공부를 하게 됐고 그 아이들은 대학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갈까요? 제가 더 많이 노력했거나 더 많은 업적을 쌓았기 때문일까요? 아니에요. 저는 단지 기회를 갖게 되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 기회는 그들을 위해 써야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들을 대신해서 기회를 갖게 됐으니까 저는 그들에게 빚을 진 거예요. 그러니 빚을 갚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잊고 있어요. 자신이 잘나서, 혹은 자신의 부모가 열심히 살아서 갖게 된 거라고 생각하죠. 그렇지 않아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어요. 태어나자마자 일주일에 한 끼밖에 못 먹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일할 기회를 어떻게 가질 수 있었겠어요?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으면서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거예요.”


배상민 교수는 자신에게 나눔이란 빚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회를 가진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의 삶을 한 단계 더 윤택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커다란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배상민 교수의 작은 날갯짓은 이미 시작되었다. 


“디자인은 배려예요. 나를 위해서 디자인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모든 디자인에는 타겟 유저가 있어요. 사용할 사람을 생각하고 만들기 때문에 배려가 들어가는 거죠. 그 본래의 진정성에 맞게만 한다면, 디자이너는 벌써 나누는 사람이에요. 제가 더 적극적으로 사회 공헌적인 디자인을 하게 되면, 다른 디자이너들이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생업 때문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없는 사람들도 쉽게 동참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들러서 재능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는 『나는 3D다』의 독자들에게도 “세상에 나눌 게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나는 3D다』를 읽은 독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뭔가 큰 것을 통해서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자신의 환경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게 무척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고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요. 저처럼 아프리카를 가거나 디자인을 공부할 필요도 없죠. 자신이 하고 있는 일로 기쁨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세요. 분명 창의적인 생각들이 떠오르실 거예요.”


누군가는 디자이너로서 배상민 교수의 성공 비결을 찾고자 『나는 3D다』의 책장을 펼 것이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때 그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성공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작은 움직임으로 거대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존재들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오래도록 가슴에 머물 것이다. 한 존재는 다른 한 존재의 삶을, 그리고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사로잡혔다면, 아마도 당신은 배상민 교수가 이야기하는 나눔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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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D다배상민 저 | 시공사
“어떻게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물음에 대한 그의 답은 ‘3D’다. 나다움을 찾아 자신만의 꿈을 꾸고(Dream), 그 꿈으로 삶을 디자인하며(Design), 궁극적으로는 세상과 함께 나누며 사는 것(Donate). 그의 3D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은 그의 꿈과 디자인, 나눔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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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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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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