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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 많은 남자

『여자 없는 남자들』을 보면 생각나는 그때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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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역시나 하루키. 제목을 보면 이번 단편집은 왠지 외로운 남자가 많이 읽을 것 같은데, 주위에 찾아보니 그런 남자가 있다. 이 글은 그를 위해서 썼다.

역시나 무라카미 하루키다. 단편집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나올 때, 나는 ‘에이, 아무리 하루키라도 단편집인데, 뭐 그리 팔리겠어.’라고 생각해버렸다. 역시나 예상은 틀렸다. 하루키는 그냥 다 이겨버렸다. 그렇다고 지금 화제작이 없는 시기도 아니다. 대우 김우중 회장의 육성을 담은 책 『김우중과 대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등 쟁쟁한 신간이 넘쳐난다. 도대체 하루키의 이번 책은 어떤 작품으로 채워졌단 말인가!

 

『여자 없는 남자들』은 단편집이지만 각 작품을 꿰뚫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있다고 한다’라고 표현한 건,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앞으로도 ‘~고 한다’는 표현을 여러 번 쓸 텐데,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여하튼, 주변에서 들은 내용을 토대로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살짝 해 보겠다.

 

이 단편집에는 제목 그대로 ‘여자 없는 남자들’이 등장한다고 한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을 건지는 게 인생이거늘, 여자 없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는 모태솔로 남자가 꽤 많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해버리자니, 스크롤 밑으로 자리잡은 여백이 압박이므로, 글 전개를 위해 남자에게는 원래 여성이 있다고 치자. 


『여자 없는 남자들』에 등장하는 남자에게는 한때 여성이 있었다. 죽음이든 바람이든 기타 등등의 이유로 여성은 떠나버린다. 그리고 남겨진 남자. 이 남자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이 된다…… 위안이라 한다면, 이런 남자가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제목은 ‘남자’가 아니라 ‘남자들’인 셈이다.

 

자, 이제부터 본론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소설집 제목을 보고 생각난 건 어떤 한 인물이다. 바로 ‘여성들 많은 남자’. 한국어 표현에서 ‘들’로써 단수/복수 구분을 굳이 안 해 줘도 되지만, 내용이 내용인 만큼 여성’들’로 표기하기로 한다. 하루키 소설집에서 ‘여자 없는 남자들’은 외롭지만, 그렇다고 ‘여성들 많은 남자’라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아마조녜스라는 곳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 편의상 그 친구를 ‘가’군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친구의 성과 ‘가’는 꽤 가까운 편에 속하니, 완전 틀린 표현도 아니긴 하다. 그 ‘가’군은 남중남고를 졸업했다. 그런데 처음 들어간 회사는 그가 다녔던 학교와는 완전 딴판. 어처구니 없게도 ‘가’군은 청일점이 된다. 그 ‘가’군에 관해 좀 더 설명하자면, 가장 인상 깊게 본 애니메이션으로 <러브히나>를 꼽는다. <러브히나>는 케타로라는 주인공이 여성이 많은 여관에서 살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잔잔하게 그린 성장 만화다. 설정 자체가 내포하듯, 꽤 마초적인 작품. 여하튼, ‘가’군이 청일점이 되는 순간, 그는 ‘나도 연애를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보다는 망했다는 예감이 들었다.
 
당시 그가 남긴 기록을 필자는 운좋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20XX년의 0월 00일 여의도의 XXXXX 식당. 어두운 조명, 긴 식탁. 그 위에 올라간 온갖 마늘 쿠진. 가가호호 떠드는 20명의 여성들. 그 중심에는 반인반웅 케타로가 있었으니...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해 앉아서 마늘을 먹고 있었다. (눈치챈 독자라면 알겠지만, 단군신화를 패러디해봤다) 그에게 다가온 1000Kcal 빠바 케이크. 그 케이크는 그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맛이라 떨떠름한 기분으로 후~ 하고 케이크 위의 초를 끈다. 박수치는 40개의 손. 그리고 문제의 눈초리들. 바로 음식을 나르던 스탭들의 눈초리. "저 (행복하게 보이는) 남자는 뭐지?"

 

거의 1년간 20명이나 되는 팀에 청일점으로 근무했다. 아 드디어 나도 러브히나인가!! 라고 생각했을까? 케타로가 되는 걸까? 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머슴이었다. "타로씨~~ 이것 좀 들어줘. 다른 남자가 없네. 흐흐." "타로씨~~ 정수기에 물이 없네. 물통 좀 꽂아 줘. 흐흐." "흐흐, 예, 알겠습니다. (아놔)"의 연속인 세월이었다. 러브히나는 판타지였다. 거짓말이었다. - 『색채를 잃은 가타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에서

 

가타로.jpg

『가쉬푸스의 신화』에서 매일마다 날랐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물통.

 

나 역시 청일점으로 근무하는 처지로, 가타로의 생각을 백분 공감한다, 라고 쓰고 싶지만 왜소한 필자에게 굳이 저런 부탁을 하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가타로의 기록은 그저 휴지통에 버릴 뿐, 보편적으로 통용될 만한 지적은 아닌 듯하다. 다만, 그가 18.9리터 정수기 물통을 꽂을 때, 수학캠프에서 수많은 경품을 나를 때, 신생아 독후감 대회 시상식에서 탈을 쓰고 땀을 뻘뻘 흘렸을 때, 내년의 책 시상식에서 무거운 DSLR로 사진 촬영하느라 목 디스크 걸릴 뻔 했을 때, 족구대회에서 참가자에게 선물을 나눠줬을 때 느꼈을 고독감은 짐작이 되었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낄낄. 미안하네, 가타로. 왠지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오네 그려. 어쨌든, 케이크 자르면서 박수는 받았잖나.

 

성급하게 글을 마무리 짓자면. 그러니까, 인간은 결국 외롭다. 외롭기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소설을 쓰고 소설을 읽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게 아닌가… 여기서 라캉의 욕망 개념을 끌어 오자면,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것, 이라고 하더라. 권위자를 빌어 오긴 했으나, 써 놓고 보니 꽤나 재미 없는 팩션이다.

 

하루키 선생님, 다음 단편집으로는 가타로를 위해 『여성들 많은 남자』를 써 주세요. 가타로는 하루키 선생님 팬이거든요. 일본어 원서로 읽을 정도라니까요.

 

* 이 글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고유명사는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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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문학동네
제목처럼 ‘여자 없는 남자들’을 모티프로 삼은 이번 소설집에는 말 그대로 연인이나 아내로서의 여성이 부재하거나 상실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병으로 인해 사별하거나(「드라이브 마이 카」), 외도 사실을 알게 되어 이혼하고(「기노」), 본인의 뜻으로 일부러 깊은 관계를 피하는 경우도 있으며(「독립기관」), 혹은 이유도 모르는 채 타의로 외부와 단절되기도 한다(「셰에라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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