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 속을 사는 가족 예찬, <두근두근 내 인생>
소소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장점은 분명하다
‘두근두근’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설렘보다는 살아내야 하는 ‘인생’에 방점을 찍은 연출은 조금 아쉽지만, 두근거리지 않더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은 충분히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너무 일찍 많은 것을 겪어버린 청춘들, 어떤 고통과 슬픔도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품새로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다독인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어, 너무 일찍 늙어버리는 아들을 키워야 하는 이 젊은 부모는 세상의 이치를 깨치고, 삶은 그렇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절망 혹은 그것을 뛰어넘어 관조하기에도 여전히 젊은 청춘이다. 이 가족들은 가끔 아주 반짝 반짝 빛나는데, 그들이 여전히 철없는 청춘의 나이이고, 이미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조로증 아들 역시 늙어버린 모습과 달리 그 마음만은 여전히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여전히 젊어서 반짝이는 세 식구를 통해 우리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화려하고 행복한 생활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는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훌쩍 떠나버리고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그 삶 속에 서로의 존재가 누구보다 소중한 철부지 가족의 이야기는 그렇게 덜컹, 마음을 움직인다.
16세 소년 아름(조성목)은 조로증에 걸렸다. 3살 때부터 늙어가기 시작해서, 이제 곧 죽음을 앞두고 있다. 아름의 부모인 대수(강동원)와 미라(송혜교)는 17세에 아름이를 가졌기에 이제 겨우 33살의 젊은 부모이다. 아름이는 대수와 미라를 위해 마지막 선물로 부모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 한다. 김애란 소설가의 동명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기대처럼 원작의 장점들에 기대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철없어 여전히 귀여운 아빠, 17세에 임신해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욕쟁이 엄마, 그리고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두근두근’한 인생을 들려주는 아름이라는 캐릭터는 자칫 신파일 수도 있을 이야기를 매력적인 판타지로 만들어주었다. 영화에서는 아름이가 너무 조용하고 성숙한 아이, 욕쟁이 ‘X발 공주’인 엄마가 그저 아픈 아이를 돌보는 평이한 엄마로 그려진 것은 조금 아쉽다. 게다가 ‘두근두근’ 떨리는 그 생생한 마음의 움직임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묻는다면, 그 답은 명쾌하지 않다. 고통까지도 동화처럼 유유하게 넘겨 버리는, 현실에서 한 뼘 쯤 둥둥 떠 있는 원작 소설의 판타지를 영화로 끌어오면서 영화도 현실에 깊이 발을 딛고 서진 못했다.
소소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장점은 분명하다. 삶을 위로하고, 긍정하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고, 이를 통해 감동을 느끼게 하려는 이재용 감독에 의해 연출된 이야기는 억지스럽지 않고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죽음을 앞둔 한 아이의 삶을 따뜻한 정서로 품어내는 영화의 설정은 소설의 발랄한 정서를 가능한 건져 올려, 자칫 인간극장 같아질 이야기의 한계를 극복한다. 너무 예쁜 배우들이라 적합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강동원과 송혜교는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쁜 어린 부모를 성심껏 담아낸다.
아름이 역의 조성목은 호들갑스럽지 않게 작고 늙은 아이의 슬픔과 정서를 담아내고, 귀여운 할아버지 백일섭과 짧은 등장에도 아비의 속 깊은 사랑을 보여준 김갑수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옆집 할아버지, 자기 자신이 아버지이지만 정작 자신의 아버지와 관계를 끊어버린 대수와 그 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철부지 대수와 철든 아들 아람이의 에피소드는 누군가의 아들, 딸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나 누군가의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이고 울컥하는 정서를 느끼게 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 속 주인공들은 세상과 다른 속도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10대에 부모가 되었고, 병에 걸린 아이를 키웠고 17세를 앞두고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소년의 시계는 세상의 일상적인 흐름에서 유리되어 있지만, 또 그 다른 속도 때문에 다른 결의 이야기를 품어낸다. ‘두근두근’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설렘보다는 살아내야 하는 ‘인생’에 방점을 찍은 연출은 조금 아쉽지만, 두근거리지 않더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은 충분히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원작자 김애란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등단했다. 『달려라 아비』를 통해 전통적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를 철부지로 표현하면서도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아픔을 경쾌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어머니를 말하는 딸이라는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칼자국」에서는 상처를 상처로 드러내지 않는 특유의 화법으로 주목받았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이다. 문단과 독자의 기대에 위축되지 않고,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칼날 같은 관계 대신 담백하고 신선한 필력으로 부모된 자의 태도와 나이를 먹거나 혹은 죽어가는 사실에 대해 신파적 정서를 깔아놓고서도 결코 그 정서에 휘청이지 않는 필력으로 울컥, 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올 2월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고, 현재 영어권 출판을 기획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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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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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단 두 권의 소설집만으로 문단과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이자 한국문단의 차세대 대표작가로 떠오른 김애란. 모두가 기대하고 기다려왔던 그의 첫 장편소설이 드디어 출간된다.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우리 모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청춘과 사랑에 대한 눈부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