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국사 선생님의 이상한 듯 안 이상한 말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오랜만에 TV 예능을 보며 두 번 울컥했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레이스를 포기하는 장면이 하나고, <1박2일>에서 국사 선생님이 제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나머지 하나다. 이번에는 <1박2일>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한다.
고백하자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박2일>은 강호동이 하차하면서 곧 사라진 줄 알았다. 이렇게 무관심했던 내가 언젠가부터 일요일 저녁이면 어김 없이 TV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밀양 편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얼마 안 됐구나.)
6월 29일 방영된 밀양 편에서는 제작진과 출연자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주제는 더위 체험. 게임에서 이기면 밀양까지 에어컨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진다면 에어컨은 물론이고 창문까지 고장난 차량으로 가야 한다. 출연진은 게임에서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제작진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결국 에어컨도 안 나오고 차창도 내려가지 않는 차로 밀양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쯤 되자 제대로 빡친 출연자는 단체 행동에 들어가며 경로에서 이탈했다.
괴산에서 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이는 많은 시청자도 똑같았을 텐데, 비유하자면 고려 시대 ‘만적의 난’을 읽었을 때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마냥, 출연자들의 반란은 성공하지 못하고 출연진과 제작진은 타협하기에 이른다. 어쨌거나, 이 장면을 깔깔대며 웃었는데 더 재미있는 방송이 바로 이어졌다. 그것은 여름방학 특집.
여러 지역의 학교 선생님들이 <1박2일> 멤버와 각각 짝을 지어 이동하고 게임을 했다. 방송 초반부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선생님은 아마 ‘세종고 김탄’ 선생님이었을 게다.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외모. 하지만 유부남인 내가 굳이 그 선생님을 주시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처음부터 유심히 봤던 선생님은 별명이 ‘크레이지 독’인 국사 선생님이었다.
국사 선생님은 묘하게도 알고 지내는 지인과 닮은 까닭이었다. 경상도 억양을 구사하면서, 외모도 비슷했다. 옷 입는 스타일도, 성격도 판박이였다. 어라, 내 친구가 왜 저기 나왔지, 하는 심정으로 그 친구와 국사 선생님 간의 비슷한 점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첫 번째 방송이 끝났다.
첫 번째 편에서도 그랬지만 두 번째 편에서도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국사 선생님이 게임에서 이기길 기원했다.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이어졌다. 선생님들에게 제작진은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다. 국사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내면서 출세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냐”라는 감동적인 말을 덧붙였다.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면 코로 면을 뱉어낼 정도로, 울컥했다.
공교롭게도 <1박2일>을 보던 무렵에 읽어가던 책이 이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책 제목은 다소 웃긴데,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다. 부제는 더 직설적이다. ‘재수 없고 짜증나는 12가지 진상형 인간 대응법’이 그것. 책을 쓴 산드라 뤼프케스는 범죄소설을 쓰는 소설가, 모니카 비트블룸은 범죄심리학을 연구한 프로파일러. 두 사람의 관심사는 ‘이상한 인간’으로 수렴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2가지 유형은 이렇다. 남의 업적을 가로채는 사람, 뭐든지 아는 체하는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치근덕거리는 사람,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 까다로운 척하는 사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그때그때 인격이 달라지는 사람, 거저먹으려는 사람, 불행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 긍정을 강요하는 사람.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이상한 사람의 첫인상은 의외로 좋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상한 사람, 또는 이상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짜증스럽고 불쾌한 인간들이 감옥에 있지 않고 우리 주변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직장 최고위층, 정치계 또는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언론계에는 유독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솔직히 당신도 당신의 사장이 원래 이상한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사장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해고나 임금 삭감 같은 어려운 결정들도 내려야 하는데, 그럴 때 당사자에게 감정이입하지 않으면 훨씬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보험사 직원은 아무리 절망에 빠져 있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더라도 규정에 적용되는 사안이 아니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여배우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친하게 지내는 다른 여배우의 주인공 역할을 빼앗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24~25쪽)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아, 착하게 살면 이상한 사람 때문에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겠군.’ 하고 체념할 수 있지만 좀 더 읽어보자.
사장 자리에 짜증 나는 인간이 앉아 있으면 장기적으로 회사에 이익보다는 손해가 크다는 주장은 상당히 흥미롭다. 견디기 힘든 상사 밑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한 번 핀잔을 들은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섯 번의 성공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심리 실험 결과도 있다. (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25쪽)
책의 내용을 좀 길게 인용하긴 했는데, 결론은 이렇다. 이상해져서 성공하든 성공한 뒤에 이상해지든, 이상한 사람은 주변을 괴롭게 한다. 장기적으로 공동체에 좋을 리 없다. <1박2일>의 국사 선생님은 그러니까, 지극히 안 이상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남의 피눈물을 양분 삼아 성공하지는 말라는 가르침. 그런데 그 지극히 안 이상한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게 우리가 사는 사회인 듯하다. 사회에서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 좀 더 성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 맥락은 없지만 사족
원고를 한창 쓰는 시점에, ‘이상한 사람’에 관한 의미 심장한 뉴스가 들려왔다.
이번 주에는 『내 주변의 싸이코들』을 읽어볼 심산이다.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는 꽤 흥미롭긴 하지만, ‘대응법’에서는 건질 만한 지식이 별로 없다. 역시 이상한 사람은 빨리 알아보고 멀리 하는 게 최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상한 사람을 좀 더 빨리 확인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그 사람과 엮이고 나서는, ‘노답’이다.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모니카 비트블룸,산드라 뤼프케스 공저/서유리 역 | 동양북스(동양books)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는 말 그대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남의 업적을 가로채는 사람, 뭐든지 아는 체하는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치근덕거리는 사람,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 까다로운 척하는 사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그때그때 인격이 달라지는 사람, 거저먹으려는 사람, 불행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 긍정을 강요하는 사람. 이상 12가지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이상한 사람의 유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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