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10년이 넘도록 지킨 서약, 그러나
그동안 나는 (1) 둘 다 맏이인데다 동생이 둘, 셋이라는 점도 딩크족이 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외로움에 대해서라면 앞으로 더 큰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므로 익숙해져야 했다. 각오는 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결혼하면서 남편과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십 년이 넘도록 그 서약을 지키며 살았다. 합의에 이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건 누구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이었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에는 마당이 넓은 집에서 아이와 큰 개가 같이 뛰어노는 장면이 없었다. 거기에는 많은 책을 수용할 수 있는 튼튼하고 커다란 책장과 각자의 작업실, 정갈한 탁자, 길이 잘든 1인용 가죽 소파 같은 게 있었다.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안 뒤에 우리는 조용히 환호했고 깊이 안도했다. 그리고 서로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둘 다 맏이인데다 동생이 둘, 셋이라는 점도 딩크족이 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북적이는 가족이나 아기에 대한 환상이 없었고 기질적으로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좀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카페나 음식점에 갔을 때 아기를 데려온 손님이 있으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는 사람이었다. 그 아이가 우리 테이블 쪽으로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보통의 사람들은 아파트나 백화점의 엘리베이터에 유모차나 아기 띠를 맨 엄마가 타면 아기의 통통한 뺨이나 웃는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고 가까이 다가가지만 그때도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쪽이었다.
마트에서 떼쓰며 우는 아이를 볼 때, 영화가 한창 상영 중인데 아이를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가는 젊은 부모를 볼 때,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밤을 새웠다는 얘기를 들을 때, 아이의 교육 때문에 이사 가고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푸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순수하게 안도했다. 그런 상황과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에 나는 너무 나약하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결혼생활이 길어지면 아이들이 예뻐 보이면서 더 늦기 전에 낳을까, 하는 쪽으로 변하기도 한다는데 살수록 이 세계는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사람이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란 생각이 짙어졌다. 끔찍한 사건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지킬 것이 없어 잃을 것도 없는 자의 심정으로 홀가분했다. 그것은 외로움을 동반한 것이었으나 외로움에 대해서라면 앞으로 더 큰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므로 익숙해져야 했다. 각오는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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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