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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일기』를 읽다가 휴지 한 통을 다 썼다

『상우일기』 편집한 안병률 북인더갭 편집자 세월호 세대가 펴내는 슬프고 아름다운 문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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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일기』의 저자는 현재 저동고등학교 1학년생인 권상우 군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3학년 때 ‘최연소 블로거’가 된 상우는 첫 책을 내기에 앞서, “부모님께는 이제 그만 감사하고 대신 내 자신이 대견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모든 책에는 첫 번째 독자가 있습니다. ‘책의 또 다른 작가’로 불리는 편집자가 바로 그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저자의 좋은 글을 발견하고 엮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편집자들을 <채널예스>가 만나봅니다. 저자와의 특별한 인연, 책이 엮이기까지의 후일담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상우일기』는 2005년부터 올해 5월 7일까지, 고등학교 1학년생 권상우 군의 일기를 기록한 책이다. 한 평범한 소년의 일기는 왜 책으로까지 출간되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왕따에서 세월호까지, 소년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 일상사’를 부제로 한 『상우일기』는 한 소년의 성장사인 동시에 한국사회의 티없는 단면이다. 엉뚱하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던 초등학교 시절, 많은 시민단체와 상인들의 도움으로 강제 철거에서 지켜낸 부모님의 가게, 성폭행 사건에 대한 분노, 광우병 촛불시위, 올해 봄 세월호 참사까지. 한 소년의 눈으로 본 개인과 사회, 학교의 풍경은 익숙하면서 또한 낯설기도 하다. 독자가 아이이든, 어른이든 퍽 마음에 동요가 이는 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솔직함과 순수함 때문이다.

 

‘최연소 블로거’로 여러 차례 매스컴을 탔던 상우는 “블로그는 나에게 일종의 탈출구였고 중학생 상우에게 블로그 속의 상우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표였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억지로 일기 숙제를 했다면, 상우는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며 스스로의 성장을 실감했다. 상우는 2010년 교육과학부 블로그 기자로 선발되고, TEDX에서 인권에 대해 강연하고, 2012년에는 서울시장 블로거 간담회 참석을 계기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일일 서울시장을 체험했다. 하나, 이 모든 이력보다 상우가 꿈꾼 건, 독자들에게 진짜 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상우는 책을 내기에 앞서 “정말 진솔해지고 싶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싶고, 세상을 이해타산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고, 고개 들어 마주치기 싫은 나의 진짜 모습을 이젠 똑바로 바라보고 싶다”고 밝혔다. 『상우일기』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까닭이다.

 

내가만든책

 

주변 일상을 아름답게 그려낸 빼어난 글 솜씨


안병률 북인더갭 편집자(대표)가 『상우일기』 원고를 접하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하다. 블로그 세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최연소 블로거’였지만 안병률 편집자가 상우의 글을 읽게 된 동기는 『골목사장 분투기』의 저자인 강도현의 추천 덕분이었다.

 

“상우 군의 아버지가 홍대 앞에서 카페를 운영하셨는데 임대한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는 바람에 1년도 못 돼 퇴거 집행을 당하셨어요. 이때 중학생이던 상우 군은 평소 운영하던 자신의 블로그 ‘상우일기’에 당시의 철거 집행, 그리고 주변 시민들이 철거를 막아준 과정 등을 올렸는데, 때마침 강도현 선생님께서 상우의 일기를 읽고 저희에게 출간을 권하셨어요. 상우 군의 일기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글 솜씨로 주변 일상을 아름답게 그려내어, 한 권의 책으로 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어요.”

 

안병률 편집자에게 상우 군은 ‘최연소 저자’였다. 고등학생이 된 저자의 일기를 어떻게 편집하면 좋을까, 고민이 된 건 잠깐. 상우의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빨리 책으로 펴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또 실제로 만난 저자 권상우 군은 배우 권상우 못지않은 빼어난 외모와 매력적인 성격이 인상적이었다.

 

“상우 군은 굉장히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처음 말을 걸고 친해지는 것이 쉽지 않은 스타일이에요. 대신 말을 시작하면 약간 더듬거리면서도 아주 조리 있고 솔직 담백하게 말을 잘하는 편이에요. 뭔가 꼭꼭 숨겨두었던 유머도 막 나오고요(웃음). 그래서 막상 대화를 나누면 조곤조곤 하니 몽환적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아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외모는 그 나이 또래의 전형적인 소년이지요. 정말 소년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외모예요. 키가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수줍은 듯한 미소 속에 어딘지 어린 시절의 장난기를 숨겨놓은 듯한 외모라고 생각했어요.”

 

『상우일기』를 편집하며 안병률 편집자는 늘 휴지를 옆에 끼고 원고를 읽어야 했다. 한 아이의 내면이 무척 예쁘고 사랑스러워, 눈물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 상우의 글을 보고 천재라고 말한다면, 이 아이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온몸으로, 만신창이가 되도록 살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만든책

 

부모로서의 걱정을 버리게 된 상우일기


안병률 편집자가 상우의 일기를 읽으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부모로서의 마음가짐이다. 그 역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언제나 아이 걱정이 가득했는데, 상우의 일기를 읽으며 걱정들을 대부분 내려놓게 됐다.

 

“보통의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가 공부는 잘하나, 친구들은 괜찮은가, 핸드폰 게임을 너무 많이 하면 안될 텐데’ 같은 걱정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상우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걱정이 쓸모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우리 아이들은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애쓰며 무엇보다 우리의 이웃에게 따듯한 연대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가 무엇을 하든 걱정을 할 게 아니라, 힘껏 칭찬하고 북돋워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한 아이의 성장이 오롯이 담긴 상우의 일기를 읽으며, 편집자로서의 고민은 적지 않았다. 상우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병률 편집자는 상우가 2005년부터 올해 초까지 쓴, 수백 장의 일기 중에 더욱 보석 같은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 원고를 수차례 읽었다. 『상우일기』가 연도별로 구분되지 않고, ‘푸른 나무 상우’ ‘초딩 상우’ ‘좋은 친구 상우’ ‘생각하는 상우’ ‘행동하는 상우’ ‘함께하는 상우’ 등 6부로 나뉜 것은 주제에 따른 상우의 성장을 더욱 깊이 있게 보기 위함이었다.

 

“편집을 하면서 고민이 많이 됐던 건, 상우의 그림을 어떻게 담을까 하는 문제였어요. 이 책에는 상우 군이 그린 그림들이 실려 있어요. 그런데 모두 컬러 그림들이라 전체에 걸쳐 다 실으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책값이 비싸질 거 같았어요. 어린이,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책인데 너무 비싸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아쉽지만 그림을 최대한 엄선해서 줄였고, 컬러로 인쇄되는 부분에만 몰아서 그림을 실었어요. 결과적으로 책값도 싸졌고, 그림도 살릴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또 표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는데 뉴욕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황은정 작가가 표지를 맡겠다고 수락해줘서 쉽게 해결됐어요. 결과적으로 황은정 작가의 아주 독창적인 캐릭터들이 상우 군의 상상력 넘치는 글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게 돼 매우 기뻤습니다. ”

 

안병률 편집자가 『상우일기』를 읽으며 가장 인상이 깊었던 글귀는 상우 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2007.10.20) 쓴 ‘가을바람’이란 제목의 일기다. 바람이 부는 자연현상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발견하며 비상하는 무서운(?) 초딩의 글이다.

 

“아무도 없는 모래밭에 서서 숲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바람은 왜 부는가? 어디서 불어오는가?’ 이상하게도 나는 어릴 때부터 바람이 불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바람과 함께 마구 흥분해서 날뛰었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이 싸늘한 가을바람이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훌쩍 데려다 줄 것 같은 상상에 사로잡혀 내 속에서 무언가 깨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그건 아마 내가 바람처럼 이 세상을 힘차게 날아 보려는 에너지가 깨어나는 소리 아닐까!” (『상우일기』 173쪽)

 

“일기는 사적인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저 그런 일상의 기록을 통해 내면의 속살과 깨달음이 암시처럼 드러날 때 일기는 어떤 철학서보다 깊이 있고 아름답죠. 『상우일기』를 읽다 보면 어린아이가 쓴 글이라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로 사유와 성찰의 내공이 남다르고, 아픔과 유머도 균형을 잃지 않으며, 분노와 연대도 녹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은 감동과 재미, 아름다움과 품격, 도전과 저항의식을 한 데 버무려 독자에게 선사하는 종합선물세트라 할 수 있죠. 이보다 더 매력적인 일기는 없을 듯합니다.”

 

『상우일기』는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더욱 좋을까. 안병률 편집자는 “어른, 아이를 모두 포함해 책 읽기를 완전 싫어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런 책을 잡으면 단숨에 읽어 내려갈 게 뻔하잖아요(웃음). 책과 안 친한 분들에게 책을 선물로 주고도 욕먹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깊이도 있어서 자신합니다.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어요.”

 

 

 



안병률 편집자가 추천한 또 다른 책


곰스크로 가는 기차





아주 유명한 책은 아니지만 입에서 입으로 꾸준하게 소문을 타는 책입니다. 언젠가 베스트극장에 방영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연극으로도 공연되었지요. 누구에게나 인생의 목표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목표는 쉽게 잊혀지지요. 이 소설은 낡은 서랍에서 다시 꺼낸 먼 곳에서 온 엽서처럼 읽힙니다. 비록 지금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한때는 내 마음속에 숨겨둔 보물 같은 진실을 일깨워주지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마침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에 출간돼 마치 제목을 시류에 맞춘 것 같지만 원제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산문은 증언 문학이라고 불립니다. 끔찍한 아우슈비츠에 대한 증언인 동시에 아주 아름다운 산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참혹한 만행이란 점에서 아우슈비츠를 능가할 것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과연 세월호 역시 인간에 의한 만행이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쓰디쓴 다짐을,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곱씹게 됩니다.


 

<내가 만든 책>은 이번 회로 막을 내립니다. 추후 새로운 기획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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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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