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홍명보 감독에 대한 변명

아, 나의 주장님! 주장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이제 와서 밝히지만 나는 2002년 월드컵이 양산해낸 얼치기 축구 팬이었다. 그 이후로 약 2년 여간은 K리그 경기를 쫓아다녔으니 얼치기 치고는 꽤 뜨겁게 불타올랐다고 할 수 있다.

mbsign_s.jpg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받아든 성적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무 2패 이후 16년 만의 최악의 성적이라고 한다. 이미 예견된 결과였지만 축구 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 아니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경기 결과는 당연히 축구 대표팀 감독인 홍명보에게로 쏟아지고 있다. 원칙 없는 팀 운용과 특정 선수만 감싸고 도는 ‘의리 축구’ 등 홍 감독의 팀 운영과 전술은 초라한 성적보다 더욱 팬들을 실망시켰다. 귀국한 대표팀에서 엿을 투척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말이다.

 

생활에 찌들어(?) 이제 스포츠 관람을 멀리 하는 나지만, 한때 축구를 사랑했던 팬으로서 홍 감독에 대한 이런 논란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지금이야 홍명보라는 이름은 악의 축에 가깝지만, 2002년 월드컵 당시만 해도 믿음직스러운 대표팀의 주장, 국민 영웅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2002년 월드컵을 경험했던 우리였기에 그 실망이 더 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2002년 월드컵이 양산해낸 얼치기 축구 팬이었다. 정작 월드컵 기간에는 ‘축구를 보지 않을 권리, 열광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고 주장했으며, 포르투갈전 당시 극장에서 ‘소림 축구’를 관람하고 있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스페인전과의 승부차기에서 키커로 나서 마지막 골을 성공시킨 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던 홍명보의 모습이 TV에서 무한 반복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팬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저 분은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우리 홍명보 주장님이시구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했던가. 당시 홍명보의 소속 팀은 포항 스틸러스였는데, 2002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미국 프로 리그팀인 L.A. 갤럭시로의 러브콜을 받고 이적이 결정되어 있던 터라 팬의 마음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올해가 지나면 홍명보는 L.A.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럼 주장님(=홍명보) 한 번 보러 갈까?’로 시작했던 K리그 올스타전 관람에 이어 부천, 수원 원정 경기까지 섭렵하니 이제 전국 팔도를 누비는 것 따위는 가뿐한 일이 되어 버렸다. 포항행 고속 버스에 몸을 싣는 것도 몇 번 반복하니 부산 원정 경기도 비행기 타고 가서 무박으로 관람하고 돌아오는 무모함까지 선보일 수 있었다. 그래 뭐 주장님의 경기를 보러가는 거라면…! 포항에 경기 보러 갔다가 선수 차를 얻어 타기도 하는 등 짧은 포항 팬 생활은 다채로웠다.

 

20_2.jpg  홍명보.jpg

 

처음엔 분명히 홍명보를 보겠다는 소박한 야심(?)에서 비롯된 축구 관람이라 선수만 눈에 들어왔지만 보다 보니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4-4-2나 4-2-3-1과 같은 포메이션, 팀 전술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구분하지 어렵다는 오프사이드도 제법 구별해내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었다. 알면 보이나니 그 때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 했던가, 얼치기로 시작했던 축구 팬 생활은 2002년 이후 약 2년 간이나 이어졌다. 주장님이 없어도 축구는 충분히 재미있었고, 경기장에서 보는 축구는 TV보다 훨씬 더 박진감 넘치고 흥미로웠다.    

 

2014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의리 축구를 남발하며 아집으로 가득 찬 홍명보 감독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운동장을 뛰어다니다가 허리에 손을 짚고 경기장을 바라보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멋지게 공을 막아내거나 약간 옆으로 휘게 킥을 하고선 머리를 쓸어올리던 홍명보 주장이 있다. 평소 잘 웃지 않았기에 더욱 화사하게 느껴지던 스페인전 마지막 승부차기의 웃음도-.

 

2002년엔 주장님 미국으로 가시다니,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부르짖었지만, 2014년의 주장님은 과연 이제 어디로 가실 것인가? 대표팀 감독 유임인가 아니면 사퇴 혹은 경질일까. 그 어느 쪽이 되었던 간에, 부디 2002년의 사랑받던 주장님으로 다시 거듭나시길 바라는 바이다.


[추천 기사]

- god 플라이투더스카이, 그리고 나의 20대

- 문유석 “판사의 관능적인 서재가 궁금하다면”
- 비틀어 보면 잔인한 동화, 피노키오
- 프라하의 미스터리한 아름다움을 말하다
- 다른 길을 찾고 싶나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조선영(도서1팀장)

뽀로로만큼이나 노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저8,010원(10% + 5%)

'동양의 베켄 바우어'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 등으로 불리는 축구선수 홍명보는 2002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공격수를 제치고 '월드컵에서 가장 주목할 선수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이 책은 홍명보의 자서전으로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담겨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