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행복을 느끼는가
행복은 ‘목적이 아닌 수단’
뚜렷한 결론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 이 둘의 공통된 원천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심리학 연구 내용들을 보면 왜 사람이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저자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작곡한 독일의 막스 브루흐Max Bruch는 정작 스코틀랜드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다가올 미래 사회의 폐단을 상상으로 그린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는 사실 194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문학과 예술 작품은 굳이 예술가의 직접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어떤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할 때는 얘기가 다르다. 탁월한 통찰력이나 상상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냉정하게 그 현상을 직접 관찰하고, 만져보고, 기록해야 된다.
최근 행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많은 책과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가슴으로 호소하는 책들은 많지만, 냉정한 분석에 바탕을 둔 ‘차가운’ 책은 많지 않다.흥미롭지만 사실이 아닌 일도 널리 보도된다. 일례로 방글라데시가 매우 행복한 국가라는 언론 보도는 학계의 결론과 다르다. 이 책은 흥미나 과장된 희망보다 행복의 적나라한, 사실적인 측면에 더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쓰게 되었다.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최초로 시작한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의 연구실에 유학을 간 이후, 나는 지금까지 어느덧 반평생을 행복에 대해 읽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다(그렇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생각이 모두 맞다는 뜻이 아니라, 이 책의 내용들은 나의 개인적 가치나 경험이 아닌 과학적 연구들에 기초한 것임을 말하고 싶다. 마치 하나의 세포나 행성처럼 행복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행복에 대한 우리의 많은 직관은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행복의 가장 큰 결정변인이 ‘유전’이라는 점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 책은 행복을 소재로 한 다른 책들과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여타 많은 책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how’를 묻고 있다. 반면 이 책의 핵심 질문은 ‘why’다.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할까? 또, 이 경험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이 중요한 행복의 속성을 이해하기 전에 행복의 비결이나 기술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 역으로, 이 본질적 모습을 이해하면 행복이라는 것이 어쩌면 매우 단순한 현상임을 알게 된다. 너무나 똑똑한 현대인들의 실수는 그 단순성을 외면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삶을 바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행복의 본성과 궁합이 맞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책은 행복의 이성적인 면보다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면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2천 년 전 행복에 대해 처음 토론한 사람들은 철학자였고, 이들은 행복을 하나의 관념 혹은 생각으로 취급했다. 이 생각의 기류는 지금의 서구 행복 연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일면만을 부각시켰다고 생각한다.
넥타이를 매고 있는 모습이 김 과장의 전부는 아니다. 간간히 새어 나오는 그의 욕망과 이기심, 절망과 슬픔이 김 과장이라는 인간의 실체를 훨씬 더 잘 나타낼 수도 있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그가 매고 있는 사회적 관습과 가치의 넥타이를 풀게 하고, 그의 발가벗은 모습을 볼 필요가 있다.
셋째, 이 책은 행복에 대한 통상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철학자들의 주장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모든 일상의 노력은 삶의 최종 이유인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매우 비과학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행복 연구 결과들을 재구성해보면, 산만한 발견들 속에서 일관된 패턴이 나타난다. 내 생각에는 지난 30년간의 연구가 한눈에 정리되는 것 같다. 행복 분야의 굵직한 결론들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생존과 맞물려 있는지를 이 책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뚜렷한 결론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 이 둘의 공통된 원천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심리학 연구 내용들을 보면 왜 사람이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연의 아픔을 달래는 데 진통제가 효력 있다는 연구도 있고, 따뜻한 스프를 먹으면 덜 외로워진다는 논문도 있다. 이 황당한 사실들이 왜 행복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를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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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교(샴페인)에서 이 책의 저자 디너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성격/사회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9년부터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심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이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았다. 행복, 성격, 문화에 관련된 40여 편의 그의 논문들은 여러 저명 국제학술지에 현재 2500회 이상 인용되고 있다. 에드 디너교수와 함께 『Culture and Subjective Well-Being』를 편저했으며,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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