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을 말하는 21가지 키워드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프랑스인들의 삶과 철학을 집약해 놓은 책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은 스물한 개의 키워드로 파리를 말한다. 여성과 명품에서부터 문화와 톨레랑스에 이르기까지, 파리지앵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번쯤 파리지앵을 꿈꿨던 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파리로 떠나는 작은 여행이 되어준다.
‘시크’한 프랑스의 할머니들
당신의 귓가에 파리를 속삭여줄 또 한 권의 책이 찾아왔다. 그 이름부터 판타지를 자극하는 책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이 그 주인공이다. 이미 『일생에 한번은 파리를 만나라』 『관능의 맛, 파리』 『민혜련의 파리 예술 기행』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파리를 들려준 바 있는 저자는 이번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에서 ‘파리를 이야기하는 스물한 가지 방법’에 대해 말한다. 파리의 역사와 문화, 사랑과 결혼, 패션과 여성,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쩌면 이것은 당신이 파리를 향해 던지는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세계를 발견하려면 기존의 익숙한 수용방식과 단절해야 한다”고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가 말했다. 이만큼 파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익숙하다는 것은 편안하지만 열정은 없다. 파리가 그토록 화려한 몇 세기를 보내며 문화의 힘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익숙함을 버리고 모험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이곳에 오면 억눌렀던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하고, 예술가가 된다. 이 도시는 도무지 인간의 상상력에 아무런 구속을 가하지 않는다.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5~6쪽)
저자 민혜련은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후 10여 년간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갈색 눈의 파리지앵으로 살면서 체득한 것은 프랑스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상과 격조 있는 인생철학이었다. 그를 바탕으로 귀국 후에는 수많은 기업체와 대학에서 프랑스 문화에 대해 강의하고, 프랑스 회사의 계열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또한 와인 발효로 공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한 그녀는 국내에서 프랑스 요리 전문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다. ‘작은 프랑스’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10년 넘게 운영했으며, 현재는 이태원에 위치한 ‘마론 키친 앤 바’를 경영하고 있다. 바로 그곳 ‘마론 키친 앤 바’에서 민혜련 저자와 독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지난 6월 14일 오후의 일이었다.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은 프랑스인들의 삶과 철학을 집약해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책은 딸아이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쓰게 됐는데요. ‘앞으로 이 아이가 어떻게 살면 좋을까’를 생각하다 보니까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대의 여성들은 저와 같은 이전 세대와 최근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성취나 성에 있어서는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에서는 여전히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묶여 있는 모습도 보이거든요. ‘전근대적인 가치관과 근대적인 가치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지 않나’ 생각돼요. 그래서 여성들이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을 쓰게 됐습니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 역시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파리지앵의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한국이 지향하고 있는 사회 발전을 일찌감치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길을 그들은 이미 14~15세기부터 걸어오고 있는 까닭이다.
민혜련 저자와 독자들은, 저녁 무렵 식탁에 둘러앉은 파리지앵처럼, 함께 음식을 나누며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자들은 저자가 직접 준비한 이탈리안 음식과 와인을 맛보며 자신들이 만난 파리에 대해 말했다. 파리를 여행하며 만난 문화와 건축, 패션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그 위로 파리를 읊조리는 저자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프랑스 사람들의 문화재 보호 의식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에요. 아마 생활 속에서 문화재와 만나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프랑스 아이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은 건물 앞에서 공기놀이를 하면서 자라요. 레스토랑에 가면 나폴레옹이 썼다는 모자가 걸려 있고요. 그렇게 문화유산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기 때문에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보전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거죠.”
아마도 이러한 전통에 대한 존중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물리적인 구조 자체가 주는 문화적 분위기에서 올 수도 있다. (중략) 프랑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백 년 된 건물 속에서 산다. 오래된 수도원을 개조해서 만든 학교에서 공부하고, 천 년이나 된 중세의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며, 과거의 왕이나 영주들이 살았던 성의 뜰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그리고 지역 사회의 유산 하나하나가 위대한 프랑스를 만들어왔던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온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24쪽)
파리의 패션과 여성을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있다. 바로 ‘프렌치 시크(French Chic)’다. 무심하게 걸친 재킷과 머플러,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이 단어를 저자는 “궁극의 자연스러움”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은 여성에 대한 파리지앵의 시각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파리지앵은 성숙한 여성상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의 나이듦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적고요. 또 파리의 여성들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여성들은 아줌마가 되면 여자이기 보다는 엄마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잖아요. 패션에 신경 쓰는 일은 뒤로 미루고요.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할머니들도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자신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요. 여성이 늙어가는 일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바라봐 주는 시선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파리라고 하면 유행의 첨단을 걷는 멋쟁이 여성들만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프랑스 여성들은 특별한 꾸밈이 없다. 화장기도 별반 없어 보인다. (중략) 자신의 몸 관리에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예쁜 여자들이 많은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들이 수수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214쪽)
프랑스에서는 찾기 힘은 루이뷔통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여성에게도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와 같은 프랑스 사람들의 인식에서 저자는 ‘톨레랑스’를 발견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말로 ‘관용’이라 번역되는 ‘톨레랑스’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와 의견이 같지 않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톨레랑스-자신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그 톨레랑스 덕분에 그들의 토론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계속 이어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토론을 해요.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면서 ‘너는 그렇구나, 나는 이렇다’라고 이야기를 이어가죠. TV 프로그램을 봐도 토론 프로그램이 정말 많아요. 그들에게는 토론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인 거예요. 한 예로, 처음 에펠탑이 세워질 때 파리지앵들이 엄청나게 반대를 했어요. 프랑스는 목가적인 국가이고 돌로 지어진 건축물이 많은 돌의 나라인데, 도시 한 가운데에 철기 구조물인 에펠탑이 생긴다고 하니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거죠. 한 마디로 에펠탑은 신 철기 시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도 충분한 토론을 거쳤기 때문이에요.”
또한 저자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톨레랑스가 중요한 것은 “바로 민중의 힘으로 선택하여 성취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톨레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인 동시에 혁명 이후에 시민 의식을 성장시키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톨레랑스의 정신을 갖고 있는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절제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엄마들은 엄하다. 길바닥이나 마트에서 아이가 조금만 떼를 쓰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면 가차 없이 응징한다. 무섭게 야단치는 것은 물론 뺨을 올려붙이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만약 미국의 길거리에서 엄마가 이런다면 곧 경찰이 출두할 텐데 프랑스에서는 아무도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프랑스 부모들은 타인을 존중하는 공중도덕에 관한 한 아이와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138쪽)
저자는 프랑스에서 생활할 당시, 공공장소에서 떼를 쓰는 아이의 뺨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러한 공중도덕에 대한 가르침은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녀는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교육 방식이 “사회적인 절제력을 길러 성숙한 시민을 만드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톨레랑스의 문화는 여성과 나이듦, 교육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패션을 비롯한 소비생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오래된 사회가 대부분 그렇듯이, 프랑스에서도 계층 간의 이동은 쉽지 않은 편이에요. 하지만 거기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크지 않은 것 같아요.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생활 스타일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거든요.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소비 생활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자신도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서 애쓰지도 않아요.”
정작 프랑스에서는 루이뷔통이나 샤넬을 든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이런 브랜드의 제품들을 그야말로 1퍼센트의 상류층만 소유하는, 중산층 이하인 자신들과는 무관한 물건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프랑스 루이뷔통 전체 판매량의 대부분은 일본, 한국, 중국에서 소비된다고 한다.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289~290 쪽)
파리지앵의 스타일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돈을 지불하고 애써서 구현하는 인위적인 내추럴이 아닌 일상에 배어 있는 자연스러움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파리에는 유행이 없다. 아니 모든 시대의 유행이 모두 공존한다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중략) 입고 싶은 대로 각자의 몸에 맞게 입는 게 그들의 유행이다. 최신 유행을 따르는 여성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223~224 쪽)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 안에서 민혜련 저자는 파리지앵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말한다. 그리고 지금의 그 모습들을 있게 한 과거의 시간들에 대해 말한다. 과거와 현재의 파리지앵, 그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은 결국 파리다. 파리와 파리지앵은 두 개의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 파리지앵처럼』은 파리와의 만남이요, 파리로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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