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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어떻게 하면 요리를 잘할 수 있냐고요?

요리라는 게 참 길고 지루한 득도의 과정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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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요리는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애인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손님을 위해서 하는 일,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 중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서 하는 일. 저는 그래서 요리가 참 좋습니다.

요즘은 저를 당연히 “최강록 셰프님!”이라 불러주시지만,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괜히 저 혼자 민망해진 적이 종종 있습니다. 일식을 하는 사람들은 ‘셰프’라는 말을 잘 안 써서 그렇기도 하고, 제가 생각하는 셰프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인데, ‘내가 그런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고, 또 처음 제가 요리를 시작할 때가 문득 생각나서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요리사가 될 마음이 없었습니다. 20대 초반에 만화로 본 일식 요리사, 특히 회를 뜨고 초밥을 쥐는 요리사가 멋있어 보이긴 했습니다. 게다가 그때 먹어본 캘리포니아롤이 꽤 맛있고 신선했습니다. 그래서 일식집을 차려야겠다 결심을 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음식이라는 것은 저에게 그저 사업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스물네 살 때 처음 일식 분식집을 차렸습니다. 무척 일렀지요. 식구들도 모르게 사고를 쳐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냥 집에서 부모님 도장을 가져다가 찍어버리는 무모한 짓을 저질렀지요. 롤과 초밥, 우동 같은 것을 팔았는데, 잘될 줄 알았습니다. 손재주가 있으니 레시피대로 만들면 팔리지 않겠나, 뭐 별거 있을까 싶었습니다. 예상하신 대로, 장사는 안 됐습니다. 레시피에 나온 그대로 했는데, 맛이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가게를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유명하다는 가게들을 찾아가 한 달만, 두 달만 일해보겠다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맛집의 레시피를 얻어서 따라하면 내가 만든 음식도 맛있을 거라 생각을 한 겁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맛집에서 먹어본 음식 맛의 반쪽짜리도 못 됐습니다.


문제는 기본기였습니다. 테크닉이 부족하니 흉내만 내게 되고, 재료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이걸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식당을 운영했다니, 사실 돌이켜보면 참 아찔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궁지에 몰리니 오히려 본격적으로 요리라는 것을 해봐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그래서 일본으로 유학도 가게 되고 돌아와서 요리학원에서 일을 하고 여러 가게들을 차려보게 된 것이지요. ‘사업’의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만, 경험이 쌓여가면서 재미도 생기고 보람도 느끼고 이게 내 길이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요리를 잘할 수 있냐, 어떻게 해서 요리를 잘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실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요리도 많이 해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제일입니다. 저는 맛에는 ‘신의 한 수’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이 엉망인데 어느 한 가지 비법으로 맛있는 요리가 될 리가 없겠지요. 요리는 ‘천재처럼’ 하는 게 아니라 ‘개미처럼’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겠지요. 맛있는 요리를 위한 기본적인 방법이자 어찌 보면 궁극적인 방법일 수 있는 것이 바로 ‘T-T관리’입니다. 시간(Time)과 온도(Temperature)를 관리한다는 말인데, 이를테면 고기는 몇 분 동안, 몇 도에서 구워야 원하는 맛과 식감이 나는지를 알고 그에 맞게 다뤄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조리할 때의 시간과 온도뿐만 아니라 제공할 때의 시간과 온도도 중요하겠지요. 이렇게 시간과 온도를 잘 관리할 줄만 알아도 맛을 낼 수가 있습니다.

 

 최강록

 


지금까지 저와 함께 재료의 성질과 활용법을 알아보신 것도 다 이런 데이터를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실전의 경험이 더 중요하겠지요. 많이 해본 사람은 더 많은 데이터가 있겠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이란 것은 초보자가 당해낼 수 없는 법이니까요. 저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제가 구한 레시피에 가지가 나와 있으면 그 가지를 가지고 완성품의 생김새만 흉내를 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지를 보면 어떻게 튀기면 더 맛이 나겠다, 어떻게 가열하면 부드러워지겠다, 어떻게 익히면 색이 날아가겠다 생각이 들 만큼, 가지만의 시간과 온도 데이터가 저에게 꽤 쌓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10년쯤 걸린 것 같네요.


집에서도 혼자 이런 실험은 해볼 수 있습니다. 요리책에 나온 요리를 해보실 때는 단순히 레시피대로 진행한다는 데 의미를 두지 마시고요. 레시피에 글로 설명되지 않은 상태, 사진 찍히지 않은 상태를 파악하려는 게 중요한 듯합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지금 이 단계는 어떤 상태일까, 고민을 하고 실험을 해보는 것이지요. 간을 보는 것도 처음 시작할 때, 중간에 재료가 조려졌을 때, 그리고 완성됐을 때 세 번을 해보는 겁니다. 시간에 따라, 온도에 따라 재료와 국물의 맛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확실히 느껴질 겁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데이터를 축적하면 됩니다. 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했더라도 완성품은 어차피 본인만의 요리이니까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요리라는 게 참 길고 지루한 득도의 과정 같습니다.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었는데도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실 수도 있고, 요리를 할 의욕이 안 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맛은 이미 다 나와 있습니다. 제 요리의 목적은 아무도 모르는 맛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앞서 프롤로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재료가 가진 맛을 제대로 내도록 노력하는 것이지요. 거기에 음식을 먹을 때의 좋은 분위기가 더해지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게 요리입니다. 이 세상에 먹다가 기절할 만큼 맛있는 요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요리를 해보신 분들은 다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내가 한 요리를 먹어보고 누군가 “맛있다!”라고 말해주는 순간의 짜릿함이요. 또 그런 칭찬을 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요리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요리는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애인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손님을 위해서 하는 일,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 중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서 하는 일. 저는 그래서 요리가 참 좋습니다.

 

지금까지 제 변변찮은 요리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좀 더 연구하고 경험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모아 가을쯤 책 한 권에 담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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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강록/(그림)권재준

일본요리 전공. 한때 조림요정이라 불리던 <마스터셰프 코리아 2> 우승자. 지금은 은둔형 맛덕후. 집에 틀어박혀서 맛을 실험해보기를 좋아함. <최강록의 맛 공작소>에서는 부엌을 구석구석 뒤져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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