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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했을 때부터 축구 봤죠?

소설가 한유주, 축구하면 떠오르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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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왜 축구를 좋아하는지, 왜 하필이면 아스날을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실 이유는 없었다. 내게 야구는 지나치게 느린 경기였고, 아스날이라는 팀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는 정도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유주

 

축구 관련 커뮤니티나 게시판에서 가끔 보이는 질문이 있다. “월드컵 했을 때부터 축구 봤죠?” 이런 질문을 볼 때마다 나는 고개를 반쯤 끄덕거린다. 여기서 말하는 월드컵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축구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볼 수밖에 없던 때였다. 

 

축구란 무엇인가? 내 마음은 썩어가고


2002년 월드컵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친구들과 매일매일 술을 마셨다. 종강과 맞물린 월드컵은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가족과 살든, 혼자 살든, 기숙사에 살든, 합법적으로 집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 시기였다. 우리는 월드컵을 핑계로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그러다 홍대 정문 앞 삼거리에서 버스에 기어오르는 사람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홍대 앞은 아수라장이었고, 우리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섬이 되어 흘러 다녔다.

 

우리는 가끔 생각했다.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일까, 대~한민국 사람일까. 그러나 그 경험이 강렬하기는 했던지,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조금씩 축구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내가 반한 팀은 아스날이었다. 왜 아스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로렌츠의 각인 효과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튼 우리는 밤마다 누군가의 자취방에 맥주를 사들고 모여 경기 중계를 지켜보았다.

 

각자 취향이 다른 만큼 응원하는 팀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렇다고 한국 국적을 지닌 우리가 웨스트햄이나 레딩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었으니까. 해서 우리는 역시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엄청나게 유명한 팀들인 아스날,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리버풀의 지분을 나누어 가졌다.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우리는 동교동 팀이나 망원동 팀이 골을 넣은 것처럼 기뻐했다. 어느 선수가 반칙을 하거나 주심이 오프사이드 휘슬을 불지 않으면 맥주를 마시며 분노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잊어버렸다.

 

아스날 팬이었던 또 다른 친구와 나는 닉 혼비의 『피버 피치』를 성경처럼 끼고 다녔다. 이 말은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하듯 경기 내용과 스코어를 읊었다. 경기가 아스날에게 불리하게 진행될 때마다 나는 “축구란 무엇인가? 내 마음은 썩어가고……”라고 외쳐댔고, 그 소리가 꽤나 시끄러웠던지 한 친구가 내게 『축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선물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왜 축구를 좋아하는지, 왜 하필이면 아스날을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실 이유는 없었다. 내게 야구는 지나치게 느린 경기였고, 아스날이라는 팀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는 정도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친구들과 치킨을 뜯고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보던 추억이 강력하게 남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도 새벽마다 혼자 멍하니 리그 중계를 볼 때마다 그때가 떠오르고는 하니까. 그 친구들은 거주지를 옮겼거나 결혼했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멀어졌다. 가끔 페이스북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뿐이다. 2006년과 2010년 월드컵을 구실로 만나기도 했다. 그 사이에는 결혼식과 장례식들이 있었다. 그리고 2014년 월드컵이 된 지금, 선뜻 만나자는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축구, 하면 떠오르는 순간들


2006년이나 2007년쯤, 나는 친구들 몇몇과 강서구에 위치한 우장산 인조잔디구장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축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나는 축구는커녕 어떤 종류의 운동이라도 전혀 해본 적이 없었고, 게다가 나를 제외한 나머지 구성원들은 죄다 남자들이었다. 체력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구박을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다 동네 중학생들과 시합을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아, 내 또래 친구들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기는 했다. 그러나 중학생들의 체력에는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꼬마들에 불과한 사내애들이 우리를 잔뜩 비웃으며 말했다. “밤새 술 마셨어요?” 경기는 대개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끝났다. 우리는 계산서를 쥐고 허허로이 웃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나는 충분한 스트레칭 없이 경기에 나섰다가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장렬한 은퇴였다. 그때 누군가가 찍었던 사진들을 가끔 다시 볼 때가 있다. 그러면 웃음이 난다.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그리고 2014년이 되었고, 어김없이 월드컵이 돌아왔다. 나는 평소에도 국가대표 경기를 거의 보지 않고, 혹은 보지 못하는데다가, 주로 새벽이나 아침에 열리는 경기를 다 챙겨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축구, 하면 떠오르는 순간들이 몇 있다. 그 중 하나는 상암구장에 FC서울 경기를 보러 갔을 때, 당시 아스날 선수였던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의 형 피타 아데바요르와 마주쳤던 순간이다. 나와 내 친구와 그는 나란히 사진을 찍었고, 우리를 목격하고 삽시간에 모여든 초등학생들이 “위 러브 토고!”를 외쳤다. 그 순간 들었던 이상한 감정은 지금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그와 사진을 찍었던 이유는 그가 아스날 선수인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와 똑같이 생긴 친형이었기 때문이었고, 초등학생들이 “위 러브 토고!”를 외쳤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 순간을 생각하다보니 다시 “축구란 무엇인가, 내 마음은 썩어가고……”라고 외쳤던 때가 떠오른다. 정말이지 축구란 무엇일까. 왜 내게 축구는 “한낱 공놀이”가 아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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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유주(소설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을 수료. 2003년 단편 『달로』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 희곡과는 다른 소설만의 고유한 장르성이 어떻게 획득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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