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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라디오 PD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에세이집 『마술 라디오』펴내 꿈꾸는 대로 살고 싶다면 마술을 부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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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는 정혜윤 작가가 들려주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 같이 ‘마술’로써 삶을 바꾼, 평범하지만은 않은 이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마술사가 되었나.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다음을 주목하시길.

인간이 생존만을 목적으로 할 때, 도대체 이 존재는 여타의 다른 생명체와 무엇이 다를까. 아마 이 질문의 역사는 수천,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최초의 인간을 시작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 질문의 숫자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해답들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분명 그 안에는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가 끼어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살고자 바라는 것. 그 바람을 위한 몸짓을 그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생각은 어제 혹은 오늘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왔다. 정혜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주목받지 않고 한 점처럼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또한 작가는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고.

 

결국 그녀는 작게 빛나는 그들의 삶에 사로잡혔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자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됐다. 작가는 그것을 ‘마술’이라 불렀다. 마술을 끊임없이 속삭이는 라디오가 그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마술 라디오』 안에 담긴 것은 바로 그 ‘마술 같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만나고-정혜윤

 

꿈꾸는 대로 살게 하는 ‘마술’의 힘


“살고 싶은 삶, 여전히 가능성으로만 있는 삶은 쉽게 포기하게 되어 있어요. 그 일이 힘들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니까요. 그렇게 포기하는 것이 슬프기는 하지만 어렵지는 않아요. 그래서 쉽게 포기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는 삶을 진짜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삶을 봤고, 그것이 우리를 조금 더 마술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때 마술이라는 건 믿는 거예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죠. 동시에 우리도 그쪽으로 옮겨갈 수 있음에 대한 믿음이에요.”

 

『마술 라디오』 안에서 정혜윤 작가는 라디오 PD로 근무하며 자신이 만난 사람들-누군가는 포기하는 ‘살고 싶은 삶’을 진짜로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사람들인 동시에, 누군가에는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친근한 이웃이다. 그들은 바다의 어부이고 산골의 촌부이며 시장의 상인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사람이 아닌, 이름만 대면 아무도 몰라보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기를 낚으며 자유를 말하고, 산속에서 나무에 글자를 새기며 이상을 말하고, 시장에서 야채를 팔며 변화를 말한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고행과도 같은 삶을 살면서도 이상을 놓치지 않는 ‘마술’을 부리게 된 걸까. 그리고 그 건너편에 있는 누군가는 왜, 어떤 이유로 마술을 잃어버리게 되었나.

 

 

“『여행 혹은 여행처럼』은 시를 쓰는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돼요. 농사짓는 할머니가 밤에 불을 켜고 늘 시를 쓰는 거예요. 상상하기 힘들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고 계세요. 우리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실제 원했던 삶과 달라서 괴로워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이런 저런 진단을 해보죠. 그리고 결국에는 ‘그냥 이렇게 살아야 될 것 같아’하고 현실에 짓눌려 버려요. 그리고 자신이 내린 엄격한 진단에 따라서, 현실에 맞춰서 행동하죠.

 

그렇게 하면 삶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그냥 살게 돼요. 동시에 굉장히 수동적으로 일을 하게 되죠. ‘하루를 열심히 살자’고 말할 때 그 말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잖아요. 그렇다고 하루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수입과 소득의 문제, 소득과 지출의 문제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세계를 창조해 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의 삶은 어디에 매여 지탱되고 있나. 혹시 소득과 지출의 밧줄에 매달린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정혜윤 작가는 그것들과는 다른 제3의 밧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마술 라디오』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소득과 지출 외의 세 번째 밧줄. 누군가는 그것이 학벌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에게는 야합이었을 수도 있다. 작가는 ‘마술’이라는 이름의 밧줄에 삶을 걸어놓기로 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매여 있던 제3의 밧줄 말고 ‘진짜 우리를 살게 하는 게 무엇인가’를 물어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있느냐고.

 

“『마술 라디오』는 이야기책이에요. 우리는 의견을 많이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저는 의견 말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 것 같아요. 의견은 본의 아니게 나를 설명해야 하고 방어해야 하는 말들이지만, 이야기 안에 들어가면 다른 인간과 나 사이에도 마술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조금은 알게 될 것도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아무것도 없었던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언가가 조금씩 채워지는 거예요.”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마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순간 자신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나’를 잊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그 모두가 그녀에게는 마술이었다.

 

“어딘가에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이야기보다 사랑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최근에 출간한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 르포(『그의 슬픔과 기쁨』)도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우리 형님을 사랑하고, 그 형님의 형님을 사랑하고, 형님의 등판과 흰 머리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죠.

 

저는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읽었을 때 행복감에 휩싸이는 이야기들은 서로가 좋아하는 이야기더라고요. 서로가 최고의 모습을 끌어내는 이야기죠. 제가 생각하는 마술도 다르지 않아요. 진짜 최고의 마술사들은 자기도 변신하지만 다른 사람도 변신시키죠. ‘비비디바비디부’ 하면서 변신시키잖아요(웃음). 우리가 함께 지내는 동안에 서로에게 최고의 것을 끄집어내는 것들, 같이 있는 시간 동안에 서로의 힘을 얻는 것, 훨씬 더 좋은 사람 쪽으로 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마술이라고 생각해요.”

 

만나고-정혜윤

 

좋은 책과의 만남은 ‘사건’이다


정혜윤 작가는 자신이 책의 마술에 홀려있는 사람임을 고백했다. 책은 그녀에게 인생에서 소중한 것, 우리가 정말 기억하고 살아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현실에 짓눌리지 않을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모든 글들은 현실에 짓눌리지 않게 하는 어떤 것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책은 계속해서 저를 끌어당기고 있어요. 지금도 그 마술에 빠져 있어서, 늘 읽고 존중하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죠. 그러면서 책에서 본 아름다운 세계들을 현실에서도 봤어요. 그게 왜 아름다운지 계속 생각해 왔고, 그것을 나누려했어요. 책을 읽으면서 제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이라는 알게 됐듯이, 이번에 『그의 슬픔과 기쁨』을 쓰면서 인간은 여전히 나에게 설레는 존재라는 걸 확인했어요.

 

환멸과 실망의 순간보다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 힘을 내는 순간이 많았어요. 그런 이야기에 훨씬 더 많이 끌리는 이유, 그런 이야기가 가슴에 더 강하게 박히는 이유는 실망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체념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그 모든 걸 극복할 만큼 인간이 더 좋은 거죠. 그래서 왜 그렇게 인간이 좋은지에 대해서 계속 말하고 다니는 거예요. 보고 들은 바를 말하고 기억하고, 그걸 현실 생활과 접목시키려고 하죠.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사라져요. 이 모든 게 저의 마술적인 행동이고 실천인 거죠.”

 

그녀에게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사건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책을 읽는다는 건 ‘강렬하게 다가오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정혜윤 작가에게 책은 자신을 ‘존재’하도록 만들어주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엇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여기에 존재하고도 싶고 생각도 잘하고 싶어요. 그렇다 보니까 내가 생각을 잘 하고 있는지 ‘내 생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어볼 대상이 필요했죠. 그래서 사람에게 묻기도 했지만 책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저에게는 읽고 듣는 것이 생각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나는 읽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혼자서는 그냥 그런 사람이지만 ‘책의 세계에 속한 나’로서는 조금 더 노력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요. ‘나는 하나로서는 자신이 없지만 읽고 듣는 도움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생각이란 걸 해 볼만 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믿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마술 라디오』 안에서 라디오 PD로 일하며 작가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들려준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의 이야기이겠거니’ 쉽게 짐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이름 한 번 불려본 적 없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볼테르는 『깡디드』에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세계가 최선의 세계다’라고 말했잖아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살 게 틀림없단 말이죠. 존재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 연결된 존재라는 걸 아는 세계예요. 모두가 성공하려는 세상에서 ‘나는 성공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필시 우리가 모르는 깊은 정신세계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그들은 그런 삶을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내죠. 저는 그런 삶이 우리의 미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흐릿하고, 희미하고, 점점이 흩어져있지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다들 세상은 변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하나의 직선 코스를 걷고 있어요. 그 사이에서 ‘이건 내가 믿고 있는 바와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가치는 어마어마한 거죠. 저는 모두가 가는 길에 문제제기를 하고,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순진하다 못해 아둔할 정도로 자신이 믿는 길로 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떤 삶을 살든지 그들은 우리 사는 것을 더 괜찮게 만들어줘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덜 실패하고 덜 실수할 수 있게 해주죠. 우리를 성공하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차마 그런 짓까지는 안 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인 거예요. 저는 그렇게 ‘인간이 더 인간이게, 사람이 더 사람이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는 거고요.”

 

만나고-정혜윤

 

정혜윤 작가에게는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이야기의 모든 주인들, 그들의 삶을 보듬는 그녀의 온도가 하나같이 뜨겁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술 라디오』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질문인 줄을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책에 담긴 ‘마술 같은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픈 욕심 때문이었다. 그 어리석은 마음을 알면서도 작가는 흔쾌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나를 만든 목소리’라고 말하며 들려준 이야기는 제주도의 낚시꾼에 대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첫째 아이는 자폐 2급, 둘째는 자폐 1급 판정을 받았고, 막내아들은 비장애인이다. 그 중에서도 둘째 아들은 하도 도망을 잘 다녀서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낚시꾼은 지금까지 빠삐용을 백 번쯤 잃어버렸다. 아들을 찾아 나설 때마다 휴가를 쓰기가 미안해서 직장도 그만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의 삶은 얼마나 고단할 것인가. 얼마나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까. 그러나 빠삐용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르다.

 

제일 나쁜 건 제가 장애인의 아버지란 게 아니에요. 제일 나쁜 건 저에게 둘러댈 만한 확실한  핑계거리가 있다는 거죠. 이 애는 내 삶이 힘들다는 언제나 편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핑계일 수 있다는 거죠. 얘를 보면 누구나 내가 힘들 거라고 쉽게 생각하니까. 저는 힘들면 아들 때문이라고 하면 되는 거죠. 그럼 간단하죠. 그러나 애가 아니어도 사는 건 어차피 힘들어요. 애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아요. 사는 건 복잡하고 까다롭게 제멋대로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죠. 그렇지만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변함없이 낯설 정도로 까마득하게 신기하기만 해요. (『마술 라디오』 89쪽)

 

아들을 자신의 고단한 삶의 핑계로 삼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값싼 동정을 보내는 이들은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렇게 작지만 강한 울림을 준 빠삐용의 아버지를 위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주여, 저를 주의 도구로 삼으시되 (그건 알아서 하시고)
빠삐용을 저의 도구로 삼지 않게 해주소서.
그에게서 살과 뼈를 싹싹 발라내 내 그림자로 삼지 않게 해주소서.
그를 살과 뼈로 여기게 해주소서. (『마술 라디오』 91쪽)

 

“‘빠삐용을 저의 도구로 삼지 않게 해주소서’라는 문장은 지금도 저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나의 도구로 삼잖아요. 그런데 빠삐용의 아버지는 빠삐용을 자신의 도구로 삼지 않게 해달라고 해요. 그런 이야기에서 배우는 거죠. 빠삐용의 아버지를 위한 기도문은 제가 써놓고도 스스로에게 배우는 거예요. 저는 그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거든요. 그러면 그대로 살아야죠. 이 문장이 옳다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마술 라디오』의 주인공들은 빠삐용의 아버지처럼 가슴 속에 깊은 상처와 가볍지 않은 사연들을 담고 살아간다. 좀처럼 꺼내 보이기 쉽지 않은, 어쩌면 그들과 매일 마주치는 이들조차 알 수 없을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그들은 처음 본 작가에게 그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걸까.

 

“인터뷰의 기술은 대화의 기술과 다르지 않아요.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말의 의미가 더 분명해질 때가 있어요. ‘그렇게 반응하니까 내가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한 것 같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거죠. 그걸 알아볼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남의 말을 듣는 것도 다른 일처럼 훈련이 필요해요. 단순한 말도 깊다는 걸 알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봐야 하죠. 아무렇지 않게 하는 한 마디 말에도 정말 깊고 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야 해요. 다른 사람을 쉽게 규정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돼요. 인간만큼 알기 힘든 건 없으니까요. 한 사람의 어투, 어미, 눈빛, 몸동작도 모두 말이라는 걸 알아야 하고, 자신이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 되면 안 돼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인터뷰를 할 수 있죠.”

 

만나고-정혜윤

 

당신의 라디오 주파수는 몇 번입니까?


『마술 라디오』는 누구나 가슴속에 라디오를 품고 산다고 이야기한다. 이때의 라디오란 자신의 안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라고 작가는 말한다. 혼자 있는 시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순간 찾아드는 생각들은 나만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라디오가 있어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화학공장이라고 표현했죠. 우리가 비슷한 걸 먹고 비슷한 걸 들으며 살아도 서로 다른 존재인 이유는 가슴에 화학공장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 거예요. 가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죠. 저는 사람의 가슴에 라디오가 있다고 생각해요. 라디오 방송국이 있어서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어떤 것들은 밖으로 송출하는 거죠. 자신의 라디오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자기가 보여요. 내가 혼자 있을 때 제일 자주 하는 생각이 뭔지, 남에게 제일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뭔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내 마음속의 주파수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진짜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몇 번일까.

 

“우리는 때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방어적이 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돼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반박부터 하려고 할 때도 있어요. 그건 자기 주파수, 즉 자기 목소리를 찾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주파수와 맞는 이야기들은 마음을 열리게 해요. 동의하게 만들고 더 듣고 싶게 만들어요. 저의 경우에는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 살면서 배우는 이야기에 주파수가 열리죠. 그런 주파수를 찾고 그쪽으로 가자는 거예요. 자기 목소리, 자기 주파수를 찾는다는 건 자기가 살 방법을 찾는 것과 같아요.”

 

작가는 자신의 마음속에 두 개의 라디오가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라디오 외에, 라디오 PD로서 품고 있는 라디오가 한 대 더 있다는 것.

 

“일로써의 라디오는, 그걸 빼놓고는 제가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저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라디오적 인간이에요. 라디오 PD의 가장 큰 특징들을 전부 몸에 가지고 있죠. 이를테면, 라디오 프로그램은 카메라로 보여줄 수 없으니까 제가 본 걸 같이 보자고 호소해야 돼요. 그런데 저의 문체가 그렇죠. ‘여러분도 상상해 보세요’라고 끊임없이 말해요. 상상력은 눈앞에 없는 걸 있는 것처럼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이에요. 생명력이고 곧 마술이죠. 그것이 저에게 구현되어 있고, 또 시간에 대한 감각도 구현되어 있어요. 이렇게 세세하게 라디오의 특징을 이미 몸 안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공중파 라디오가 저에게 미친 영향이죠.”

 

만나고-정혜윤

 

공중파 라디오가 정혜윤 작가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 안에 ‘붙잡고 싶다’는 감성을 심어준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의 열정과 노동, 그 모두가 배어있는 시간이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작은 소멸’을 경험해야 했던 까닭이다. 붙잡고 싶은 감성이 발달할수록 그녀는 고민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하루보다 길게 남겨놓고 싶은 건 무엇인가.

 

“적어도 하루보다는 영원한 것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무엇은 굉장히 좋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에게 하루 이상 지속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뭘까, 덧없는 아름다움과 영원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사랑하는 방법은 뭘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바우만의 책에서 ‘현대만큼 무병장수가 온갖 관심이었던 시절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주요 관심사가 되면서 잃어버린 것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벌어지는 일에 관한 것이다’라는 말을 보면서 생각했죠. ‘아마 나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건 나의 삶이 전하는 어떤 것으로 계속될 것이다’라고요. 사실은 그게 저의 마술이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 이야기하는 것,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

 

작가는 자신이 들려준 모든 이야기가 결국 ‘현실에 짓눌리지 말자’는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이 아니라 희망을, 성공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그녀에게 『마술 라디오』는 자신이 빠진 마술과 일상을 접목시키는 고민 끝에 탄생한 산물이었다.

 

이렇게 묻고 듣고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란 거야.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의심하고 동요하면서도 찾고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어.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누군가는 말했어. 인생은 자신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라고. 자신이 풀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마술 라디오』 48~49쪽)

 

정혜윤 작가는 ‘최고의 위대한 작품은 독자다’라는 말에 기대어 “책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알 수 없음이 신비롭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무한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마술 라디오』 안에 감춰진 ‘마술’을 찾는 일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독자들이 들어설 길목에 이정표를 세우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마술 라디오』를 읽으면서 ‘내가 어떤 힘으로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될 거고요.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생 전체를 하나의 질문으로 보는 모험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마술 라디오』와 만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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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정혜윤 저| 한겨레출판
20년 동안 라디오 PD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정혜윤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마술 라디오』를 내놓았다. 이 책은 그들을 만나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 잘했건 아쉽건 자랑스럽든 후회되든 반복적으로 혹은 기습적으로 생각나는, 정혜윤 자신과 그녀가 만났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녀는 언젠가 라디오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고 한다. 그 바람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제작 뒷이야기가 아니라, 방송을 하는 사람과 방송을 듣는 사람 모두 가슴이 깊어지게 만드는 삶의 이야기들로 묶여 『마술 라디오』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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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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