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세계에서 발견한 말의 힘
말의 힘은 대단하다. 글의 힘도 마찬가지. 말 없는 바벨에서 말이 병든 세상을 물어본다
소설은 '여기'가 아닌 '저 너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발을 내딛고 사는 '여기'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소설 속 '바벨'이라는 공간은 분명 '비현실'이지만 지극히 우리네 현실을 담아낸, 또 다른 이름의 '현실'로 독자의 눈 앞에 실재한다.
말 없는 세계에서 발견한 말의 힘
말의 힘은 대단하다. 글의 힘도 마찬가지. 인류는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의 의사와 행위를 표현해왔고, 다양한 소통 체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며 삶을 이어왔다. 소통 체계의 가장 심화된 단계인 말과 글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당 사회의 가치와 세계관을 전수하는 가장 핵심적인 매개체의 역할을 해왔다. 우리는 말 한마디에 울고 웃었고, 책을 읽으며 삶의 소중한 가치를 가슴에 깊이 새겼다. 말과 글이 없는 인류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소설 『바벨』은 이런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소설은 '여기'가 아닌 '저 너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발을 내딛고 사는 '여기'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소설 속 '바벨'이라는 공간은 분명 '비현실'이지만 지극히 우리네 현실을 담아낸, 또 다른 이름의 '현실'로 독자의 눈 앞에 실재한다. 소설가가 자신의 상상력에 말을 덧입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창조주다. 하나의 세계를 뚝딱 만들어 내는 작가의 위대함은, 글이 가진 힘에서 비롯된다. 말이 없는 세계를 만들어낸 글의 힘을 분명하게 마주하게 될 소설, 바로 정용준의 『바벨』이다.
악취인간
'그'의 세계에는 말이 없다. 아니 말은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말을 하며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말을 하면 심한 악취가 나는 '펠릿'이라는 물질이 몸 여기저기에 쌓인다. 펠릿이 발목에 주렁주렁 매달려서 절룩거리며 살아갈 수 밖에 없고, 폐 주변에 쌓이면 숨이 막혀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펠릿이라는 고약한 물질 덕분에 사람들은 말을 잃어간다. 말을 잃어가는 사회는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집단에 의해 대립과 갈등의 터널을 지나가면서 점점 더 병들어 간다.
하지만 문제는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말을 잃어버리기 전에도 역시 인간 사회는 병들어 있었다. 말이 이미 부패하고 병들었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그릇에 거짓과 위선, 이기심과 욕심으로 범벅이 되면서, 말은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어 버렸다.
말은 그릇에 불과하다.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말로 나오는 법이다.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표출되기 마련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행동과 표정으로도 그 속의 진심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소설은 말을 잃어버린 '바벨'이라는 상황을 설정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의 유무가 아니다. 말을 하면 튀어나오는 펠릿은 어떤 말을 하는냐에 따라 다르게 생성된다. 펠릿은 그 마음 속에 담긴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말이 있거나 없거나, 그릇이 다를 뿐 그릇에 담기는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말이 없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보여주지만, 인간의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다.
말의 폭력성, 아니 인간의 폭력성은 익명성을 담보로 하는 온라인 세상에서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포털의 각종 기사와 커뮤니티의 덧글을 보면 그 심각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쉽게 입에 담지 못하는 욕설과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게 뱉어내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한 언어 폭격을 거침없이 날려버린다. 다양한 소통이 가능한 모바일 세계가 도래했지만 그릇이 바꼈을 뿐,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은 점점 더 악취가 심해져 간다. 소설 속 펠릿의 냄새보다 더 심한 말과 글의 악취가 주변에 가득하다. 아마 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인간의 마음 속이 가장 부패한 곳이 아닐까. 바벨이라는 비참한 세계을 읽으며 현실 속에서 실제 마주하는 말의 악취를 맡으며 더욱 비참해진다.
"이 비참한 세계에서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멈출 수 없는 희망의 노래
부패한 펠릿으로 가득한 '바벨' 속에서, 작가는 아직 요원해보이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제 아무리 추악한 인간이라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진심을 느낄 수 있고, 사랑하고 위로할 수 있기 떄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하기에 서로에게 위로가 된 노아와 룸.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참혹한 현실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여준다. 말을 할 수 없을지라도 "단조가 없고 슬픈 단어가 없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언젠가 올 봄을 기다리는 요나의 모습도 그러하다. 작가는 그 희망을 '공통 감각'이라는 소통 체계에서 찾고 있다. 단순한 말을 넘어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진실된 소통이 있을 때, 분노와 폭력으로 점철되기보다 존재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마음을 채워갈 때 비로소 '공통 감각'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 그것은 존재의 문제다. 소설 『바벨』은 '언어 없음'을 통해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언어 없음'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을 마주하게 한다. 여전히 비참한 현실이 눈 앞에 버젓이 펼쳐져 있고 인간의 갖은 폭력은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여기 이 자리에서 노래해본다. 이 비참한 세계에서 누군가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 말에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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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방가를 즐기는 딴따라 인생.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며,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정용준> 저12,600원(10% + 5%)
‘말’을 가진 모든 인간을 가두는 극단의 체험! 이 비참한 세계에서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2009년 등단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짙은 인상을 남기며 평단의 기대를 받아온 소설가 정용준이 첫번째 소설집 『가나』(2011)에 이어 첫번째 장편소설 『바벨』을 출간하였다. 말이 얼음 결정이 되어 사라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