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금요일 밤, 음악회에 초대받았을 때
커피 한 잔과 음악 한 곡, 『백다섯 명의 오케스트라』 한 권의 행복
음악회 초대의 답례 그림책 목록 첫 번째는 칼라 쿠스킨이 글을 쓰고 마크 사이먼트가 그림을 그린 <백다섯 명의 오케스트라>입니다. 바이올린 케이스가 기대어 있는 화장대 앞에서 레이스속치마 차림 여성이 양 팔을 번쩍 쳐든 채 검은 드레스를 머리 위로 꿰어 입는 표지 그림부터가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과 오해를 까맣게 잊을 만큼 마음을 끕니다.
‘마흔 넘어서는 공짜 티켓으로 공연장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공짜 티켓으로 들어간 공연에 실망했거나 공연팀들의 열정과 노고에 열광했거나, 그런저런 계기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장년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어른다운 품격’을 그렇게 그려본 듯합니다. 기묘한 결심을 지켜오면서도 공연장으로 직접 초대받는 경우만큼은 그와 별도로 간주하여 반기고 즐겨 왔으니, 답례로 건넬 만한 멋진 그림책이 있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혹시 받은 적이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선후배 친구 여러 분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시길! 깜박 잊긴 했지만 틀림없이 보관되어 있고, 조만간 건네드릴 테니까요.^^)
음악회 초대의 답례 그림책 목록 첫 번째는 칼라 쿠스킨이 글을 쓰고 마크 사이먼트가 그림을 그린 『백다섯 명의 오케스트라』입니다. 바이올린 케이스가 기대어 있는 화장대 앞에서 레이스속치마 차림 여성이 양 팔을 번쩍 쳐든 채 검은 드레스를 머리 위로 꿰어 입는 표지 그림부터가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과 오해를 까맣게 잊을 만큼 마음을 끕니다. 이어서 펼쳐지는 빨간 색 면지도 가슴 뛰게 만들지요. 그림책 애독자들은 눈치 채겠지만, 빨간 색으로 면지를 구성한 책들은 대개 예술과 관련 있습니다.
첫 장면은 마치 영화의 시작 장면 같습니다. 짙은 핑크빛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빌딩과 아파트가 늘어선 도시 실루엣이 펼쳐진 가운데 담담하고 세련된 목소리가, 글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금요일 저녁이 되었어. 바깥은 점점 쌀쌀해지고,
집집마다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해.
시내와 교외 곳곳에 사는 백다섯 명은 옷 입을 준비를 해.
일하러 나가려고 말이야.
그러고는 이제 남자 아흔 두 명과 여자 열 세 명이 차례차례 등장하며 어떻게 옷 입을 준비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세세히 보여줍니다. 그림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남자 어른과 여자 어른이 샤워를 하고 욕조에 누워있는 모습, 수건으로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리고 면도를 하고 코털을 자르고 수염을 다듬는 모습, 줄무늬 팬티에 두 다리를 다 넣은 채 위로 끌어올리거나 노란 팬티에 한 발을 꿰거나 하얀 팬티를 엉덩이 위로 끌어올리고 우주복 스타일의 빨간 내의 앞 단추를 잠그는 모습들 그 하나하나가 뒷표지를 덮고서도 오래 잊혀지지 않게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아버지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은 화가의 재능 덕분이지만, 그림책 출판계의 고수로 일컫는 이름난 편집자들 샬롯 졸로토와 니나 이그나토비치의 저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온갖 몸짓과 자세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볼썽사나운 이미지를 재치있게 비껴가는 것이, 품격 있는 글과 함께 멋진 유머를 구현한다는 사실입니다.
남자들은 삼각팬티나 사각팬티를 입어. 그중 몇몇은 반팔 러닝셔츠를 입고, 몇몇은 소매가 없는 러닝셔츠를 입지./ 위에는 속옷을 전혀 입지 않는 남자들도 더러 있어. 하지만 밤이 깊어지면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에 빼빼 마른 한 남자는 아래위가 붙은 긴 내복을 입기로 했지.
속옷을 입은 남자들이 양말을 신는 그림, 속옷 입는 여자 연주자들의 그림이 이어집니다. 누이가 많은 집에서 자랐을까, 얼마나 오랜 동안 조사하고 연구했을까, 문득 궁금해질 정도로 이 남성 화가가 포착한 여성 고유의 몸짓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다양한 속옷 입기에 이어 겉옷 입는 모습의 쪽그림들도 하나하나 눈길을 붙듭니다. 물론 이 모든 몰입은 훌륭한 그림책에서만 즐길 수 있는 ‘글 이상의 그림’과 ‘그림 이상의 글’이 이루는 멋진 씽크로나이즈드 또는 오버랩 덕분이지요.
여자 여덟 명은 검은색 긴치마를 입어. 그리고 치마와 어울리는 검은색 짧은 윗옷이나 스웨터, 블라우스를 입지. 네 명은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어.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검은색 셔츠 위에 검은색 조끼를 입지./ 여자들 몇몇은 목걸이나 귀걸이를 해. 하지만 팔찌를 차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팔찌는 일할 때 방해가 되거든.
아흔 한 명의 남자들이 저마다 다른 자세로 검은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턱시도를 입는 모습, 그리고 한 명의 남자가 아주 커다란 흰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연미복을 입는 모습이 이어진 다음엔 뜻밖의 정겨운 장면도 펼쳐집니다.
백다섯 명은 모두 인사를 해. 엄마, 아빠, 남편, 아내, 친구들, 아이들, 강아지, 새, 고양이...아무튼 집에 있는 모두에게 말이야.
그렇게 집을 나서서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 또는 버스를 탄 채 다양한 자세로 자기가 연주할 악기를 건사하는 모습이 달콤한 우수를 자아내고는 마침내 연주회장 무대에 오르는 모습, 악기를 나르고 조율하고 자기에게 맞는 의자를 찾아 앉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집니다. 어수선한 무대 장면에 이어 흰색 나비넥타이 연미복의 지휘자가 보무당당 등장하고 드디어 ‘샹들리에 여섯 개가 조용히 반짝’거리는 연주회장 전체가 펼쳐지지요. 그리고 다시한번 완벽하게 갖춰 입은 단원들이 연주에 몰입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치 연주회장 앞 좌석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정확하게 그려진 단원들의 손과 자세 덕분에 지금 막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해요. 그렇게, 각각의 악기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대단원의 홍수처럼 출렁이며 합쳐지고 흘러넘치는 장면으로 이 멋진 그림책은 끝이 납니다.
두어 달 넘게 멋진 약속을 잡을 수 없이 동분서주하느라, 그림책 주문도 선물도 할 수 없을 때, 호화로운 금요일이 무척 그리울 때, 그럴 때엔 나에게 선물합니다. 커피 한 잔과 음악 한 곡, 『백다섯 명의 오케스트라』 한 권이면 팔 할은 거뜬히 행복해집니다.
※그 밖의 음악회 초대의 답례 그림책 목록
데이비드 맥페일 저/이은석 역 | 문학동네어린이
작은 두더지 한 마리의 대단한 열정이 땅 위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아름다운 연주는 세상의 나쁜 기운을 모두 사랑의 기운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이야기이지만, 이런 동화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뿐만아니라, 상상속에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해줍니다.
조나 윈터 글/배리 블리트 그림/정지현 역 | 문학동네어린이
음악의 도시 빈에 살던 시절, 베토벤은 널리 알려진 위대한 곡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이사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사를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 당신 베토벤이 다섯 대의 피아노를 가지고 이사한 모습을 상상하여 만든 그림책입니다. 이야기의 기초가 된 몇 가지 사실은 ‘사실’이라고 따로 표시했습니다. 기발한 발상으로 경쾌한 추리를 마친 이 책을 통해 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순교 글/조은영 그림 | 웅진주니어
황병기는 '옛날 것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시대에서도 그것이 다시 창조되지 않으면, 전통이라기보다는 골동품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런 황병기가 중학생 소년 시절 가야금 소리에 매료된 이후, 백발의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한평생 가야금과 함께 걸어온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는 내내 가야금을 고집했지만, 그 마음과 음악은 과거에서 미래로,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통음악에서 현대음악으로 열려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낸 문장과 강렬하고 활달한 그림을 통해 만나보세요.
여송연 글/김솔미 그림 | 사계절
옛날 아주 먼 옛날부터 중국에는 먀오족이라는 민족이 살았더랍니다. 참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는데, 이 민족에게는 여와 신화라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창조신화가 있었답니다. 그림책 『세상에 음악이 생겨난 이야기』는 여와 신화를 재해석하여 다시 쓴 옛이야기 그림책입니다.
M.T. 앤더슨 글/패트라 매더스 그림/김은정 옮김 | 큰북작은북
평생 어린아이 같았던 에릭 사티. 빠르게’ 또는 ‘느리게’ 라는 연주기호 대신 ‘눈 끝으로부터’‘목구멍 안으로’처럼 색다른 연주기호를 썼던 작곡가! TV 광고나 영화음악을 통해 자주 듣게 되는 사티의 음악과 함께 엉뚱하지만 끝없이 도전하는 사티의 삶 속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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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어른에겐 추억을, 아이에겐 눈천사를
관련태그: 백다섯명의 오케스트라, 음악회, 그림책, 칼라 쿠스킨, 마크 사이먼트
시인ㆍ그림책 작가, 그림책 번역가로 그림책 전문 어린이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와 그림책작가 양성코스‘이상희의 그림책워크샵’을 운영하면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 건립과 그림책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소 찾는 아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은혜 갚은 꿩이야기』『봄의 여신 수로부인』등에 글을 썼고, 『심프』『바구니 달』『작은 기차』『마법 침대』등을 번역했으며,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쓰기』,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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