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과소평가 받는 ‘자넷 잭슨’
그녀를 대표하는 15개의 히트곡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마돈나와 필적할 수 있는 유일한 여성 댄스 팝 싱어 송라이터
1990년대부터 흑인음악은 전 세계에서 초강세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상대적, 아니 절대적으로 푸대접을 가수가 바로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 자넷 잭슨이죠.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 토니 브랙스톤, 보이즈 투 멘, 올 포 원 등이 우리나라에서 수십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울 때도 자넷 잭슨의 음반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김건모와 서태지와 아이들, 솔리드, 듀스로 대표되는 흑인음악의 열풍은 2000년대 들어서도 여전하지만 자넷 잭슨에 대한 국내에서의 미적지근한 반응은 요지부동입니다. 물론 그의 음악이 정통 알앤비와는 거리가 있는 댄스 팝에 가깝긴 하지만 '참을 수 없는 댄스 음악의 가벼움'으로 댄스곡을 하찮게 치부해 버리는 우리나라 음악 팬들의 비뚤어진 시각도 큰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자넷 잭슨의 노래는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지미 잼과 체리 루이스라는 명 작곡가 겸 프로듀서와 함께 작곡과 제작에도 깊숙이 관여한 그는 그저 그런 꼭두각시 댄스 여가수가 아닙니다. 비록 2004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가슴이 드러나는 사고 이후로 급속히 쇠락했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마돈나와 필적할 수 있는 유일한 여성 댄스 팝 싱어 송라이터였다는 점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코너에서는 국내에선 평가절하 된 자넷 잭슨의 수많은 히트곡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15곡을 시대 순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 (from Control)
자넷 잭슨의 첫 번째 싱글 히트곡으로 198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4위, 영국차트 3위에 올랐습니다. '네가 요즘 나한테 해준 게 뭔데?'라는 제목만 봐도 순종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죠. 남자친구한테 그의 잘못을 당당하게 따지는 이 곡은 1980년대 중반에 많은 여성 가수들이 외치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의 마음가짐을 담은 노래입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자넷 잭슨과 백댄서들은 절도 있으면서 현란한 춤을 보여주는데요. 이 안무를 고안한 사람이 몇 년 후에 「Straight up」과 「Rush rush」로 인기를 얻은 폴라 압둘입니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에 안무가로 활동했던 폴라 압둘이 직접 출연한 이 뮤비에서는 우리나라에선 소위 '올챙이 춤'으로 알려진 동작이 등장하죠.
2. Nasty (from Control)
부담스런 타이즈를 입은 남성들이 골반을 열심히 흔드는 춤이 참으로 거시기했던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역시 폴라 압둘이 안무를 맡았습니다. 미국에서 3위를 기록한 「Nasty」는 자넷 잭슨의 안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곡입니다. < Control >을 만들 때, 자넷 잭슨이 녹음실로 가다가 길거리에서 양아치들을 만나 언어로 성적인 모욕을 당했다고 해요. 그들은 자넷 잭슨에게 “Hey baby”라고 부르면서 희롱했겠죠. 이 나쁜 경험을 토대로 한 「Nasty」에서는 그래서 'No, my first name ain't baby, It's Janet'이란 가사가 등장합니다. 이 노래 역시 당당한 여성을 대변하는 곡인데요.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의 프로듀싱은 이 노래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합니다. 인더스트리얼의 요소도 감지되는 「Nasty」를 반드시 헤드폰으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VH1에서 집계한 '1980년대의 위대한 노래 100'에서 45위를 차지했고, 음악 전문지 < 롤링 스톤 >의 '위대한 팝송 100'에서는 79위에 올 습니다.
3. When I think of you (from Control)
자넷 잭슨의 첫 번째 빌보드 넘버원입니다. 이 노래로 오빠인 마이클 잭슨과 함께 빌보드 정상을 따로 배출한 최초의 남매라는 기록을 만들었죠. 자넷 잭슨과 지미 잼, 테리 루이스가 < Control > 앨범을 만들 때, 조지 머렐과 셰넌 루비캄이라는 작곡 콤비로부터 노래 하나를 제공받았지만 그 곡을 거절하고 「When I think of you」를 수록했는데요. 이 거절당한 노래가 바로 휘트니 휴스턴이 불러서 빌보드 1위를 차지한 「How will I know」였죠. 베이스 리듬이 충만한 이 노래는 나중에 노르웨이의 애시드 재즈 그룹 디사운드의 「Sunshine」과 비슷해서 화제가 됐습니다.
4. Control (from Control)
자넷 잭슨을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세 번째 앨범의 타이틀트랙. 그의 여러 히트곡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리듬 패턴을 소유한 이 노래는 빌보드 5위에 랭크됐고 1988년도 < 소울 트레인 어워즈>에서는 오빠 마이클 잭슨과 휘트니 휴스턴, 조디 워틀리를 제치고 최우수 알앤비/소울 비디오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처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조 잭슨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우울한 10대를 끝내고 이젠 자신의 인생을 콘트롤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이 곡은 카일리 미노그가 「Too much of a good thing」에서 샘플링했죠.
5. Miss you much (from Rhythm Nation 1814)
1989년에 공개한 명반 < Rhythm Nation 1814 >의 첫 싱글로 자넷 잭슨의 통산 두 번째 넘버원입니다. 지미 잼이 헤어진 여자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게 된 이 노래는 강한 비트와 리듬과 맞아 떨어지는 가사의 운율 때문에 왠지 딱딱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흑백 영상으로 처리된 뮤직비디오를 통해 접하면 그 청각적 쾌감은 대단하죠.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잠깐 인기를 얻었던 남성 가수 양준일의 데뷔곡 「레베카」는 바로 「Miss you much」를 따라한 노래였고, 2006년에 큰 성공을 거둔 영화 < 미녀는 괴로워 > 사운드트랙에는 김아중이 부른 버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6. Rhythm nation (from Rhythm Nation 1814)
앨범 < Rhythm Nation 1814 >의 두 번째 싱글로 빌보드 2위를 차지한 곡인데요. 사실 이 곡은 노래자체보다는 뮤직비디오가 더 유명합니다. 흑백으로 처리된 영상에서 경찰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절도 있는 춤을 선보인 자넷 잭슨과 백댄서들의 움직임은 차가운 분위기의 「Rhythm nation」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래미, MTV, 빌보드 등 많은 매체에서 선정하는 뮤직비디오 부문을 싹쓸이했습니다. 오빠 마이클 잭슨이 「Billie Jean」과 「Beat it」으로 뮤직비디오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처럼 동생 자넷 잭슨도 선명한 발자취를 새긴 것이죠. 레이디 가가, 비욘세, 셀레나 고메즈 등이 「Rhythm nation」의 춤을 따라했고, 소녀시대와 애프터 스쿨은 텔레비전에서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정도로 「Rhythm nation」의 뮤직비디오와 안무는 전 세계 댄스 가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죠. 펑크(Funk)음악의 1세대 뮤지션 슬라이 & 더 패밀리 스톤의 1970년도 넘버원 싱글 「Thank you」의 베이스 리프와 건반 연주를 샘플링한 힙합 리듬 위에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요소까지도 포함한 「Rhythm nation」은 시대를 앞서간 노래였습니다.
7. Escapade (from Rhythm Nation 1814)
이 밝고 경쾌한 노래는 자넷 잭슨의 세 번째 1위곡이 됩니다. 「Escapade」는 「Dancing in the street」로 유명한 모타운 출신 걸그룹 마사 & 더 반델라스의 1965년도 히트곡 「Nowhere to run」에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사실 자넷 잭슨은 「Nowhere to run」을 리메이크하고 싶었지만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는 그 의견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대신 「Nowhere to run」과 유사한 노래를 만드는데 그게 바로 「Escapade」죠.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만드는 노래는 멜로디도 좋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쳐주는 리듬이 정말 일품입니다.
8. Black cat (from Rhythm Nation 1814)
1990년에 차트 넘버원에 오른 이 곡은 자넷 잭슨에게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줍니다. 이 노래로 그래미 최우수 여성 록 보컬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요. 티나 터너 이후 오랜만에 록 필드에 노미네이트 된 흑인 여가수가 됐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헤비한 기타 연주 덕분이죠. 데이브 배리라는 기타리스트의 육중한 기타 리프는 당시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헤비메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뮤직비디오 버전에서는 익스트림의 기타 주자 누노 베텐코트가 연주했고, 기타 리믹스 버전에서는 흑인 4인조 하드록 밴드 리빙 컬러의 기타리스트 버논 레이드가 연주했습니다.
9. Love will never do (Without you) (from Rhythm Nation 1814)
1991년 초에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자넷 잭슨의 다섯 번째 넘버원이자 < Rhythm Nation 1814 >에서 일곱 번째로 탑 5 안에 든 싱글입니다. 이로서 자넷 잭슨은 한 앨범에서 일곱 곡을 빌보드 싱글차트 5위 안에 랭크시킨 유일한 가수가 됐고, 한 음반에서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동안 1위곡을 배출한 가수라는 기록도 보유하게 됩니다. 자넷 잭슨은 1987년에 유명한 트럼페터 허브 알퍼트의 히트곡 「Diamonds」에서 보컬을 맡은 보답으로 이 노래에서는 허브 알퍼트가 트럼펫을 연주해 주죠. 이 노래를 잘 들어보면 첫 소절은 마치 남자 가수가 부른 것처럼 들리는데요. 사실 이건 자넥 잭슨이 키를 낮춰서 부른 겁니다.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이 노래를 처음 만들 땐 프린스나 저니 길 같은 남자 가수와 듀엣 곡으로 작업을 진행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넷 잭슨에게 남자처럼 낮은 옥타브로 불러달라고 부탁해서 이 노래가 완성됐죠.
10. That's the way love goes (from Janet)
자넷 잭슨은 1990년대 초반까지 통통한 몸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검정색 의상을 자주 입었는데요. 1993년에 발표한 < Janet > 앨범부터 그는 체중을 줄이고 자신 있게 노출을 감행합니다. 이 음반의 첫 번째 싱글로 커트된 「That's the way love goes」는 제임스 브라운의 「Papa don't take no mess」를 샘플링한 곡으로 8주 동안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그래미에서 최우수 알앤비 노래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4,000만 달러를 주고 자넷 잭슨을 모셔온 버진 레코드는 < Janet > 앨범에서 「If」를 첫 싱글로 발표하길 원했지만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 자넷 잭슨은 「That's the way love goes」를 먼저 내야한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엔 이들의 결정이 맞았음을 증명했죠. 은근한 섹슈얼리티가 일품인 이 노래는 로빈 씩을 비롯해, 크리스티나 밀리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리고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냉소적이고 가멸찬 평가로 알려진 음반 제작자 사이먼 코웰 등이 좋아하는 곡이라고 합니다.
11. If (from Janet)
「That's the way love goes」에 밀려 두 번째로 발표된 싱글이죠. 위대한 걸그룹 슈프림스의 마지막 넘버원인 「Someday we'll be together」를 샘플링한 「If」는 펑키(Funky)한 알앤비 댄스 넘버지만 그 안에는 록뿐만 아니라 인더스트리얼의 요소도 끌어들여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합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2011년에 소녀시대의 공연에서 유리가 이 곡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지만 「If」는 아직도 유명하지 않은 미지의 댄스곡입니다.
12. Again (from Janet)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자넷 잭슨의 노래로 감정을 절제하고 부르는 그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발라드 곡인데요. 래퍼 투팍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 포에틱 저스티스 >에 삽입된 「Again」은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주제가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진 못했습니다.
13. Together again (from Velvet Rope)
1997년에 발표한 < Velvet Rope >는 이전에 발표한 음반들과는 또 다른 음악을 시도한 작품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와 트립합을 수용한 이 앨범은 자넷 백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상대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죠. 여기서 두 번째 싱글로 낙점된 「Together again」은 그의 8번째 넘버원으로 에이즈로 사망한 친구에게 바치는 곡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차분한 발라드 스타일의 노래였지만 여러 차례의 편곡과 어레인지를 거쳐서 하우스 리듬이 넘실대는 1960년대 모타운 걸그룹 풍의 발랄한 노래로 탈바꿈했습니다.
글/ 소승근(gicsucks@hanmail.net)
관련태그: 자넷 잭슨, 마이클 잭슨, What have you done for me lately, All for you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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