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중국에서 가장 뜨거운 소설가, 옌롄커에게 듣다

『풍아송』은 나 자신의 정신적 자서전 과감하게 의문을 던지는 것, 지식인의 기본적 소명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현재 중국에서 가장 화제를 많이 몰고 다니는 소설가는 누구일까? 201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위화? 그 답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옌롄커가 후보 중에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루쉰문학상과 라오서문학상을 비롯해 프랑스 페미나문학상 최종후보, 영국 맨아시아문학상 최종 후보 등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옌롄커.

그가 쓴 소설은 현실과 불화하기로 유명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의 사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간과 동시에 판금조치와 함께 전량 회수되었다. 『딩씨 마을의 꿈』은 AIDS에 집단 감염된 한 마을을 다루면서 중국의 모순을 풍자했다. 근작인 『사서』에서도 그의 펜이 향한 곳은 부조리한 구조였는데, 중국에서는 금기인 문화혁명이 그 대상이었다.

 

이번에 한국에 소개되는 『풍아송』도 마찬가지다. 중국 지식계와 지식인의 모습을 비꼰 탓에 출간과 함께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풍아송』은 촉망받던 고전학자가 부조리한 구조 탓에 타락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600쪽에 조금 못 미치는 긴 분량인 만큼,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대학 내 정치의 문제, 학문에서조차 고전이 외면 받고 대중문화가 환영 받는 세태, 도시의 욕망을 흉내내는 농촌, 그밖에도 다양한 소재가 이야기 속에 깃들었다.

 

옌롄커 1.JPG

 

현재 대학은 봄 학기 개강 시즌입니다. 이와 관련해 대학 얘기로 서문을 열어볼까요. 이 책의 주요한 테마는 ‘나의 시골과 대학’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셨지요. 『시경』과 대학, 어쩌면 양커 교수의 텅 빈 강의실처럼 고전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 대학은 어떤 곳일까요.

 

『시경』은 중국 최초의 시가집으로서 중국 최초의 시들이 보존되어 있는 책입니다. 중국 문학과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대학은 교육이 가장 먼저 실현된 곳으로 문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대학교육은 『시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풍아송』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교육 그 차제이자 중국 문화의 뿌리입니다. ‘나의 시골과 대학’이라고 말했던 것은 문학이든 교육이든, 아니면 ‘대지’든 간에 모두 ‘나의 것’, 나 개인만의 독특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들에 근거한 모든 인식이 타인의 것이 아닌 나 자신의 것이라는 뜻이지요. 이 소설에서 『시경』의 상실 혹은 『시경』이 설 수 있는 자리의 상실을 쓴 것은 교육과 문화의 뿌리의 단절 즉, 중국의 현실과 전통문화의 단절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양커 교수의 텅 빈 강의실은 중국 문화에 대한 현대화의 대항할 수 없는, 홍수 같은 충격을 상징합니다.

 

이 소설은 ‘귀향’에 대한 염원‘에서 나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이 책의 제목도 ‘귀향’이었지요. 『풍아송』에서도, 『물처럼 단단하게』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바러우, 즉 ‘고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집으로 돌아가다』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감정적 의미에서의 ‘고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철학적 의미에서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정신의 상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귀향은 ‘바러우산맥’이라는 문학적 지리공간과 무관합니다. ‘바러우산맥’은 모옌의 ‘둥베이향’처럼 저의 문학적 지리지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는 ‘집이 없음’에 대한 감정적, 철학적 추구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나중에는 작품 제목을 『풍아송』으로 바꿨습니다. 첫째는 이런 제목이 소설의 문체에 있어서 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지식인 분위기에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풍아’는 중국문화에서 거의 지식인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제목을 그대로 유지해주신 ‘문학동네’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독자들께서도 『풍아송』의 열독을 통해 중국의 지식인과 『시경』 풍아송의 시편들, 그리고 중국의 현실 속에서의 ‘풍아’가 보여주는 미묘한 연관성을 이해하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문화대혁명 이후 현재도 상산하향 즉, 하방운동과 관련된 지식인들의 귀향 소식을 종종 접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양커 교수는 고향으로 도피하다시피 내려갑니다. 현재 중국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하방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 책에서 말하는 ‘귀향’과 문화대혁명 시기의 ‘하방’이나 ‘하향’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풍아송』에서의 ‘귀향’은 정신적이고 도피적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혁 시기 ‘지식청년들의 하향’과 1957년에 있었던 지식인들의 대규모 ‘하방’은 혁명이자 징벌이었지요. 문혁 시기에 도시에서 이루어진 청년들의 상산하향은 일종의 ‘붉은 혁명’이었습니다. 혁명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취업의 어려운 현실을 해결하려 했던 것이지요. 또한 1957년의 ‘반우파투쟁’과 ‘하방’은 혁명의 이름으로 지식인들을 ‘적’이나 개조의 대상으로 취급했던 운동입니다. 전자는 문학작품에서 종종 지식인들의 정신적 쇠퇴로 묘사되고, 후자는 순수하게 혁명과 피혁명의 현실적 재난으로 묘사되곤 하지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 출간 당시 벌떼 같은 쟁론에 휩싸였다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의 상황이 좀더 궁금합니다. 일각에서는 ‘베이징 대학’을 겨냥했다는 비난도 있었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확실히 그랬지요. 『풍아송』이 출간된 뒤에 발생한 쟁의는 처음과 끝이 없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출판사 여섯 곳을 거치는 동안 모두들 일부 삭제와 개조를 요구했습니다. 저도 기본적으로 삭제와 개조에 동의했지요. 중국에서 출판된 『풍아송』은 사실 부드럽고 연약합니다. 날카로운 부분이 전혀 없지요. 하지만 뜻밖에도 출판되자마자 엄청난 풍파를 몰고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이징대학을 겨냥해서 썼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이것이 심각한 모욕으로서 중국 지식인들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지요. 이 모든 게 실은 쟁론의 구실에 불과합니다. 진정으로 독자들과 비평가들을 불쾌하게 했던 건 베이징대학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지식인에 대한 비판과 풍자였습니다. 그들은 내 작품이 그들의 존엄을 손상시켰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작품이 갓 발표되었을 때, 저에 대한 적지 않은 비판과 쟁론의 글들이 쏟아졌습니다. 이러한 쟁론과 비판을 통해 저는 아주 분명하게 제가 ‘쟁의의 대상이 되는 작가’라는 점을 체감했습니다. 무엇을 쓰든, 어떻게 타협하고 어떻게 고치든 간에, 저는 항상 특수한 조사와 쟁의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기초하여 적지 않은 글에서 『풍아송』은 ‘나 자신의 나약함’을 쓴 ‘나 자신의 정신적 자서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머리에 오줌을 갈기는 말이었지요. 이렇게라도 해서 저에 대한 쟁론을 줄이고 사람들이 저에 대한 쟁론을 위해 인터넷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모두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의 작품을 새롭게 읽으면서 점차 『풍아송』과 중국 지식인 사이의 내재적 연관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밝히자면, 한국에서 출판된 『풍아송』은 타이완본을 가지고 번역한 것입니다. 덕분에 한국 독자들께서는 “저의 완전한 『풍아송』”을 읽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천쓰허가 말한 ‘괴탄’ 사실주의, 또는 이 책의 한 띠지에서는 ‘황탄현실주의의 대사 옌롄커’라는 표현도 있던데요. 흔히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비견하거나 부조리 문학과 비교하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이런 견해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저의 소설이 부조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의 부조리는 카프카의 부조리와 다르고 남미의 마술적 풍격과도 다릅니다. 독자와 비평가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창의성이 없이 이론에 의지하여 저의 작품을 평가한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스허 교수의 ‘괴탄현실주의’라는 표현은 수용합니다. 하지만 이를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뭉뚱그리는 것은 곤란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나중에 ‘신실주의’라는 용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풍아송』의 부조리와 괴탄은 사실 제가 말하는 ‘신실주의’와 다름없습니다.

 

이 작품 『풍아송』에서 한 축의 긴장은 『시경』의 체제를 변주했다는 점일 텐데요. 이 고전을 읽지 않고도 재밌게 읽히는데, 왜 이 형식을 차용한 건지, 내용과의 연관성에 대해 좀더 듣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부분의 경우 소설은 ‘무엇을 쓰는가’보다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한 작가가 ‘무엇을 쓸 것인가’만 고려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훌륭한 작가가 아닐 겁니다. 이러한 문학관에 기초하여 저의 거의 모든 소설작품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풍아송』을 『시경』의 문체와 구조와 결합시키지 않았다면, 절반의 의미를 잃었을 겁니다. 게다가 소설의 주인공 역시 『시경』을 연구하는 교수지요. 이 때문에 『시경』을 이용해 『풍아송』의 틀을 구성한 건 물이 흘러 도랑을 이루듯 대단히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의미에서는, 이 소설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 이야기나 인물이 아니라, 바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옌롄커 2.JPG

 

일면 주인공 양커 교수는 아주 수동적이고 무기력해 보입니다. 첫 장면만 하더라도, 아내와 부총장 리광즈의 불륜 현장에서 뜻밖에도 무릎을 꿇지 않습니까. 직접적으로 투쟁하고 싸우는 인물 대신 이런 인물을 중심인물로 내세운 이유가 궁금합니다.

 

양커는 대단히 소설적이 인물이지요. 그를 이러한 디테일로 표현한 건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울러 이런 독특한 성격을 돌출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서 분노와 동정, 조소와 가련함의 정서를 유도하고자 했지요. 하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양커를 바라보면,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히려 중국의 모든 지식인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비판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과 사랑, 사회와 역사, 그리고 현실에 대한 포기가, 바로 오늘날 중국 지식인들의 가장 두드러진 병폐이지요. 권력과 물질적 이익에 대한 두려움과 탐욕, 아부가 중국 지식인들의 일상적인 행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셈이지요. 이런 문제들을 문학에 구체화하기 위해 형상화한 것이 바로 양커라는 인물입니다.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고 쟁론을 유발하게 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선생님의 작품에서 주로 ‘정치-혁명’와 ‘성-해방’이 아주 큰 작품 테마입니다. 여성을 중심인물로 내세운 작품이 있는지요? 또는 선생님 작품에서 여성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저는 『물처럼 단단하게』에 나오는 샤홍메이가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발표한 『작열지(炸裂志)』의 주인공 주잉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절대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여전히 남성입니다. 중국은 남성이 중심이 되는 세계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최근에 저는 줄곧 어떻게 하면 문학작품 속에 더 많은 여성들을 더 잘 묘사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해주신 데 대해 특별히 감사의 뜻을 밝히고 싶습니다.

  

2008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문학을 하게 된 계기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어느 나라든 가난한 작가지망생은 생활을 위해 돈을 벌다보면 노동에 지쳐 글쓰기와 점점 멀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28년간의 군인 복무와 작가 생활 사이에 어떤 긴장이나 상호보완성 같은 게 있었을까요?

 

이건 아주 복잡한 문제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업무관계에 있어서는 군대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전업작가’ 제도가 있습니다. 이런 제도하에서 저는 전업작가로서 상당히 특별한 보수와 주거, 의료 혜택을 누렸지요. 이런 게 저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면서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게 해줬어요. 이건 좋은 면이고, 안 좋은 면도 있습니다. 생각과 정신이 군대의 체제 및 사상과는 대립되는 것이지요. 군대는 제가 ‘혁명’과 ‘주선율’, ‘애국주의’를 쓰기를 원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의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회의하는’ 마음으로 세계를 바라보는데, 군대와 사회는 세계의 모든 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했지요. 바로 여기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겁니다. 제가 결국 군대를 떠난 것도 이런 갈등을 조절하거나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레닌의 키스(受活)』라는 작품은 오늘날의 중국에 대한 회의로 가득차 있습니다. 군대와 체제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지요. 이리하여 저는 군대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한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군대에 감사하고, 저의 운명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28년 동안의 군대생활과 그 단련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의 문학과 글쓰기도 없었을 겁니다.


⇒ 채널예스 인터뷰 보기

 

많은 작품이 외국에 소개되었고, 세계 여러 곳에서 강연도 하시고 계십니다. 곧 문학창작론 관련한 책이 나온다고 하여 기대가 큽니다. 각 나라별로 반응하는 독자들의 지점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이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어디인가요? 기억나는 독자의 질문이 있다면요?

 

최근 몇 년 동안 외국 여행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저의 글쓰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도처에서 강연을 하다 보니 저의 글쓰기 정력이 분산된 면도 없지 않지요. 최근에 저는 작년에 미국의 10개 대학에서 가졌던 강연의 권고를 정리하여 『침묵의 숨결―내가 경험한 중국과 문학』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글쓰기에 대한 저의 사유를 총결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주 대담하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와유(臥遊)와 강연을 줄이고 이 모든 경험을 저의 글쓰기로 되돌리려 합니다.

 

번역과 관련하여 말씀드리자면, 제 작품은 20여 종의 언어로 번역되어 약 25개 국가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국외에서 출간된 판본이 70종 가까이 되지요. 하지만 이것이 어떤 성공이나 문학적 가치를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한 작가의 문학적 가치는 시간이 증명하는 것이지, 번역본의 수량과 세계적인 영향력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으로 따지자면 아시아 작가 가운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최고 아닐까요? 그보다 성공적인 작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의 작품이 가장 큰 환영을 받고 있고 저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나라는 프랑스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출판된 제 작품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7, 8권 정도입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시장이 더 좋고 제 작품을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예컨대 한국에서도 곧 출간될 『연월일』은 프랑스 중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고, 『레닌의 키스』는 분량이 많고 이야기와 플롯이 매우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번역상을 수상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5년 동안 매년 2천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지요. 또한 『사서』는 프랑스 페미나문학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중국에서는 ‘민감성’ 때문에 출판되지 못한 이 책이 프랑스에서는 거의 모든 독자와 매체, 연구자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지요. 게다가 심의 주요 대상도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예술성과 창의성이었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영국의 맨부커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물론 번역, 출간되어 큰 환영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20년 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작가로서, 작품을 쓰면서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크게 세 가지 변화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원래 저의 글쓰기는 대단히 사실주의적이었습니다. 완전히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갈수록 글쓰기가 복잡해졌습니다. 부조리와 모던, 포스트모던, 마술적 리얼리즘, 유머, 꿈 등 다양한 요소와 기법을 구사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모든 주의와 형식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저 스스로 느끼기에는 아주 뚜렷한 ‘신실주의’의 방향과 실천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쓸 것인지 좀더 확실히 의식하고 있는 셈이지요. 둘째, 더이상 출판이 안 되더라도 문학을 위한 글쓰기를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그리 큰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중국에서는 ‘자유로운 글쓰기’라는 게 아주 긴 과정과 작지 않은 희생을 거쳐서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저는 자신을 소설가라고만 생각지 않습니다. 최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사유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설사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제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해도 말이지요.

 

작가님은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글쓰기로 유명합니다. 작가 중에는 시대가 변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비판과 저항보다는 인류애라든지 조화와 공동체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옌롄커 작가님은 어떤 작품을 쓰실지,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작가-지식인이 지켜내야 할 가장 큰 소명이 있다면, 그것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것을 회의(懷疑)하는 것입니다. 과감하게 의문을 던지는 것, 이것이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비판적인 글쓰기 자세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영원히 관심을 갖는 것은 중국의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사는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거든요.

 

이 책에 이어 곧 나오게 될 『레닌의 키스』 출간에 대해 잠깐 한국 독자에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현재 『레닌의 키스』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번역본이 출간되었습니다. 각국 독자들이 무척 좋아하면서 작품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고 있지요. 이 책이 최대한 빨리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작품이 저의 글쓰기에 있어서 대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중국의 현실에 대한 회의이자 관심으로서 소설의 상상과 창의성, 언어와 구조 등이 전부 『풍아송』과 완전히 다릅니다. 한 마디로 이 소설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그 사상에 있어서 유토피아로 인류의 유토피아를 해체했다가 다시 재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재난과 곤경을 묘사하는 동시에 유토피아에 대한 인류의 의존성과 불가피성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예술적 측면에서도 상상과 서사가 대단히 개인화되어 있고 심지어 배타성까지 지니고 있지요. 이 소설을 읽어보면, 이런 스토리텔링 방법 외에는 『레닌의 키스』 이야기를 더 적합하게 묘사할 수 있는 이야기 방법이 더이상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 번역/사진제공 : 김태성 번역가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img_book_bot.jpg

풍아송 옌롄커 저/김태성 역 | 문학동네
옌롄커의 장편 『풍아송風雅頌』(2008)은 출간 당시 “베이징 대학”을 겨냥했다는 비판과 더불어 대대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중국 당대 문학에서 최초로 지식인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또 한번 ‘중국에서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라는 화제를 불러모았다.

 



[관련 기사]

-중국문학의 거장 옌롄커를 만나다
- 『허삼관 매혈기』위화 작가 “『제7일』은 허구가 아닌 현실”
- 중국인에게 가장 민감한 주제를 다룬 대담한 소설!
- 2012년 노벨문학상 중국인 모옌 선정
-자녀를 믿으면서 믿지 않고, 믿지 않으면서 믿어야 하는 이유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7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오늘의 책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 에세이

좋은 어른은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을까? 어두운 시대를 밝힌 박노해 시인의 소년시절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가 출간됐다. 지금의 박노해 시인을 만들어 준 남도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의 추억과 유소년 “평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33편의 산문과 연필그림으로 담았다.

도도새 그림 속 숨겨져 있던 화가의 삶

도도새 화가, 김선우의 첫 에세이. 지금은 멸종된 도도새를 소재로 현대인의 꿈, 자유 등을 10여 년 동안 표현해 온 김선우. 이번에는 무명 시절에서부터 ‘MZ 세대에게 인기 높은 작가’로 꼽히기까지 펼쳐 온 노력, 예술에 관한 간절함, 여행 등을 글로 펼쳐 보인다.

왜 수학을 배워야 할까?

계산기는 물론 AI가 거의 모든 질문에 답하는 세상에서 왜 수학을 배워야 할까? 질문 안에 답이 있다. 수학의 본질은 복잡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것이다. 미래 예측부터 OTT의 추천 알고리즘까지, 모든 곳에 수학은 존재하고 핵심 원리로 작동한다. 급변하는 세상, 수학은 언제나 올바른 도구다.

기회가 오고 있다!

2009년 최초의 비트코인 채굴 후 4년 주기로 도래한 반감기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과거 세 차례의 반감기를 거치며 상승했던 가격은 곧 도래할 4차 반감기를 맞아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가? 비트코인 사이클의 비밀을 밝혀내고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