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있어줘서 고마운 ‘서울, 그 카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에서 느끼는 봄기운
카페 명소를 다룬 책을 내고자 할 때는 심사숙고 해야 한다. 언제 사라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을 붙이려나 싶었는데, 사라져버린 카페들을 뒤로 하고 묵묵히, 그 자리 그대로 있는 서울의 오래된 카페들을 찾아보았다.
3월, 봄이다. 짧아서 더 매력적인 계절, 어디를 가도 새롭게 느껴지는 봄에는 어디를 가면 좋을까? 거창한 계획보다는 즉흥적으로 떠날 수 있는 곳도 나쁘지 않다. 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테니까. 다만, 따뜻한 날씨를 만끽하며 잠시 쉬어갈 만한 카페는 조금 특별하게 선택해보자. 별다방, 콩다방은 이제 그만, 공간이 주는 추억을 만끽해보자. 누구와 함께하더라도 대화의 주제가 달라질 것이다. 신촌에서 40년 세월을 보낸 ‘미네르바’ 서울의 역사를 만나는 ‘대오북카페’ 70년대 문화예술인의 아지트 ‘학림다방’ 미술관과 함께 즐기는 한옥카페 ‘전통다원’ 클래식 애호가들의 추억 공간 ‘브람스’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원두커피 전문점 ‘미네르바’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원두커피 전문점 ‘미네르바’는 1975년부터 계속 한 자리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조금은 촌스럽지만 사랑과 낭만이 넘쳐 흐르는 곳’이라는 테마 아래, 다락방 같은 분위기, 옛날 다방에서나 볼 수 있는 푹신한 의자가 70년대 대학가를 떠오르게 한다. 카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한 해도 쉰 적이 없는 카페. 매일같이 변하는 신촌 명물거리의 터줏대감이다. 대학가에 위치하고 있어 대학생들이 단골이지만, 연애 시절 미네르바를 즐겨 찾았던 중년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미네르바는 40년 전, 커피를 좋아하는 연세대학원생 모임에서 시작됐다. 당시 대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었던 미네르바는 손님들이 밖에 서서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북적이는 신촌 거리를 걷다가 시간이 멈춰버린 곳에 잠시 들리는 것도 좋은 나들이가 된다. (신촌역 3번 출구/ 02-3142-5337 /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13-26)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중고서점 ‘대오북카페’
서울에서 가장 변하지 않은 동네, 낮은 건물들이 주를 이루는 경복궁 서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중고서점 ‘대오서점’을 만날 수 있다. 1951년에 문을 연 대오서점은 권오남 할머니와 이미 세상을 떠난 조대식 할아버지가 자식같이 키워온 책방이다. ‘대오’는 두 부부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40년 전까지는 인근에 있는 학교 학생들로부터 헌책을 팔고 사는 공간으로 북적거렸다. 지금은 서점의 기능이 사라졌지만, 대오서점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으로 2013년 12월부터 대오서점과 안채를 볼 수 있는 ‘대오북카페’로 재탄생했다. 카페는 권오남 할머니의 다섯째 딸 조정원 씨가 운영하고 있다. 75년 전 할아버지가 중학교 시절에 쓰던 책장과 옛날 LP판, 할머니가 쓰던 부엌 살림들, 서까래, 옛날 추저울 등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어 마치 1960년대, 서울의 풍경에서 차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도 옛날 교과서, 가요집을 찾으러 들리는 손님들이 있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자녀와 함께 카페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대오서점은 드라마 <상어>에서 두 주인공이 샤갈의 도록을 구하기 위해 들렀던 헌책방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경복궁역 2번 출구 / 02-735-1349 / 서울 종로구 누하동 33)
70년대 지식인들의 역사가 있는 ‘학림다방’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과 장변호사가 장기를 둔 곳, <1박 2일> 서을여행 편에서 소개되어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학림다방’은 예술인들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학생들이 많이 찾던 카페다. 대학로가 생기기 전인 1956년, 과거 서울대학교 문리대 맞은편에 문을 연 학림다방은 서울대 문리대의 옛 축제명 ‘학림제(學林祭)’에서 유래됐다. 이청준, 전혜린, 김지하, 황석영, 김민기 등 예술계 인사들의 아지트로 대학생들의 토론 공간으로 사랑 받았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58년째 아침마다 학림다방에 들러 베토벤 ‘운명교향곡’을 듣는다. 학림다방 방명록에는 문화계 인사 800여 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근 방송에 연이어 소개되면서, 주말에는 1,2층이 모두 만석이다. 1만 장이 넘는 LP판을 보유하고 있고, 단골들의 신청곡도 틀어준다. 1987년부터 학림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충렬 대표는 7잔 분량 원두로 만드는 ‘학림 로열 브랜드’ 커피를 개발해 차별화를 꾀했다. 대학로의 수많은 카페 체인점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비결이기도 하다. (혜화역 3번 출구 / 02-742-2877 / 서울 종로구 명륜4가 94-2)
인사동 경인미술관 옆 ‘전통다원’
인사동 쌈지길에 위치한 전통다원은 1983년 개관한 경인미술관 내에 있는 한옥 카페다. 처마끝 은은한 풍경소리와 한옥의 옛스러움이 마치 산사를 찾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15종의 우리나라 전통차를 맛볼 수 있어 이미 많은 내외국인들에게 명소로 알려졌다. 운치 있는 한옥 안에 자리해 있어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은은한 차 향기와 함께 전통 음악이 흘러나와 서울의 옛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미닫이문을 열면 툇마루와 함께 바로 정원이 내다보이는 방 안이 매력 포인트다. 인사동을 산책하다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공간이다. (안국역 6번 출구, 종로3가 5번 출구 / 02-730-6305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11-4)
문학가, 평론가들의 아지트 ‘브람스’
안국역에 자리한 카페 ‘브람스’는 80년대 유행한 클래식 카페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던 카페 주인이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30여 년 전, 문을 열었다. 40, 50대 중년 손님들이 주를 이루지만 클래식을 듣고 싶어 오는 20, 30대 커플들도 많다. 정호승 시인도 브람스의 단골 인사. 카페에는 재미있는 메뉴가 하나 있다. '28년된 다방커피'. 씁쓸한 커피향이 지겨울 때, 달콤한 다방커피 한 잔도 나쁘지 않다. (안국역 2번 출구 / 02-743-2059 / 서울 종로구 재동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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