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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남녀>, 왜 우리는 국치프에 열광하는가

‘마귀’ 국치프가 인기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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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이 캐릭터에 주목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 터. tvN은 이혼한 두 남녀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라 드라마를 홍보했고, <응급남녀>라는 제목도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두 남녀, 창민(최진혁 분)과 진희(송지효 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연 지금, 시청자들은 두 남녀 주인공에 보내는 지지 못잖게 국천수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또 다른 반란이라고 말해야 할까, 예상치 못한 성과라 해야 할까. 이제 주인공을 제치고 서브 남자 주인공이 시청자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아마 그의 선전만큼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테다. 전작의 악역 이미지가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렬히 남아 있었던 데다 그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러브라인의 한 축을 이끈다는 말엔 의아함부터 들었으니까.

다행이다. 능숙한 연기력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모았고, 이제 그는 극중에서 누구보다 많은 성원을 얻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 말이냐고? tvN <응급남녀>에서 생각 외의 뜨거운 지지를 이끌어낸 캐릭터 국치프, 국천수(이필모 분) 이야기다.

출처_ tvN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이 캐릭터에 주목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 터. tvN은 이혼한 두 남녀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라 드라마를 홍보했고, <응급남녀>라는 제목도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두 남녀, 창민(최진혁 분)과 진희(송지효 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연 지금, 시청자들은 두 남녀 주인공에 보내는 지지 못잖게 국천수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에선 진희와 천수가 사랑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과연 ‘마귀’ 국치프가 인기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이 캐릭터의 의외성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초반부, 얼핏 국천수는 흔한 메디컬 드라마의 멘토 캐릭터처럼 보였다. 늘 냉철하고 엄격한 모습으로 주인공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주어진 역할의 전부인 그런 캐릭터. 인턴들의 실수에 버럭 호통을 치고 당장 그만두라 윽박지르는 모습에선 역시 그랬구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그리 짐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극이 진행될수록 점차 자신만의 인간적인 매력을 드러낸다. 자신의 실수에 당황하고 절망해 사직서를 낸 진희에게 “그렇게 완벽하고 멋진 이상은 존재하지 않아. 그런 의사?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판타지일 뿐이야.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죽을힘을 다해서 살려내는 사람. 그게 의사다.”라는 따뜻한 말로 그녀를 격려하기도 하고, 진희에게 모질게 구는 성숙(박준금 분)의 앞에서 부러 그녀의 역성을 들기도 한다. 뿐이랴. 병원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당장 왕진을 와 달라는 진희의 무리한 부탁에도 응급키트를 들고 달려 나가고, 돌아오는 길에 종내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꾸벅꾸벅 조는 부분에선 그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출처_ tvN


타인에 무관심하고 냉정했던 그는 진희에 대한 호감을 깨달은 이후부터 그녀에게는 평범한 한 남자가 된다. 진희가 선물한 점퍼를 아무도 없는 방에서 몰래 입어볼 때도, 그녀의 질문에 “좀 전에 물어본 거…. 설레는 사람.”이라 머뭇머뭇 진심을 전할 때도 그렇다. 오로지 그녀에게만 자신을 허락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한편 메마르고 무뚝뚝한 그에게 진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되었는지 확인시킨다. 감정적인 면에서 미성숙하달 정도로 서툴고 요령부득인 그가 진희로 인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천수가 치프로서 그녀를 성장시키는 것 이상으로 진희가 그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진희의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을 북돋우고 사회적 책임을 갖춘 성인이 되도록 돕는 것이 천수라면 한 남자로서 천수의 이성과 감성을 일깨우는 것은 진희다. 이는 그들이 상호보완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들의 관계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도하고 성장시키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가 더 흥미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창민에겐 없는 어른의 도량도 천수만의 매력이다. 저돌적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창민의 매력도 물론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만, 천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한다. 창민이 현실에 버거워 흔들리고, 변하겠다는 말 외에는 진희에게 어떤 약속도 주지 못할 때 천수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진희에게 나아간다. “오진희한테 관심이라도 있으세요?” 삐딱한 창민의 말에도 “그래. 관심 있다. (…) 왜, 내가 관심 좀 있으면 안 되나?” 그에게 덤덤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창민이 진희를 좋아하지 말라 어깃장을 놓아도 “네가 포기하란다고 포기하는 그런 사람 아냐.” 웃으며 돌아설 만한 아량도 갖추고 있다. 

진희와 함께 공유한 시간은 창민에게 큰 강점이지만 한편으로 약점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들의 짧은 결혼은 처참한 결말을 맞았고, 너무나도 다른 각자의 성격과 집안, 시어머니의 지나친 간섭 등 갈등 요소는 아직도 산재해 있다.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또다시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창민은 용감하지만 한편으로 무모하고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다. 반면 천수는 어떤가. 그는 진희가 힘들지 않도록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간다. 흔들리거나 갈팡질팡하지는 않지만 자칫 자신의 마음이 부담이 될까 천천히 다가서는 모습에선 그의 배려가 느껴진다. 망설이다 [아프지 마라.] 짧게 진심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을 때도 그렇다. 그가 수없이 썼다 지웠을 메시지들을 모르더라도, 진희가 어떤 감정적 강요도 없는 깊고도 담백한 그의 마음에 흔들렸을 것을 응당 짐작할 수 있다. 하필 자신의 마음을 받아 달라는 창민의 강권에 난처해하던 때 아닌가.

“설레는 사람.” 내가 당신에게 느끼는 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백 마디의 고백보다 이 요령 없는 말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도 그래서다. 솜씨 좋게 마음을 전달할 깜냥은 없어도 그녀가 젖지 않도록 빗속에 먼저 뛰어들고, 자신의 체면보다 그녀의 감정을 먼저 신경 쓰는데 이르면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다. 얼른 말을 돌리는 진희가 무안하지 않도록 어색하게 꺼내던 대답에서 그의 사려 깊은 애정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리기만 한 창민의 사랑보다 성숙하고 포용력 있는 천수의 사랑이 시청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한 가지 더 짚고 싶다. 국천수가 이처럼 뜨거운 성원을 얻는 데엔 물론 배우 이필모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로맨스 장르 대부분의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현실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이 그리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은 힘든 일이거니와 제작진의 능력은 물론 배우의 역량도 상당히 중요하다. 국천수를 연기하는 이필모가 아주 뛰어나거나 잘생긴 외모를 가진 배우는 아니지만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그가 그리는 서툴지만 속 깊은 사랑은 그 어떤 뛰어난 외모가 제공하는 판타지보다 환상적이다. 일에는 완벽하고 냉철하지만 한 여자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서툰 남자가 되는 매력적인 캐릭터 국천수를 배우 이필모가 탁월하게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천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는 상당 부분 거기서 기인하는 것일 테다. 차근차근 잘 쌓인 캐릭터를 훌륭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대단하다. 16년차 배우인 이필모는 국천수를 만나 자신의 역량을 시청자들 앞에 남김없이 선보이고 있고, 시청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이필모의 재발견이랄 만한 ‘국치프’에 열광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7회를 남긴 이 드라마에서 좋은 마무리를 기대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드라마 내의 모든 캐릭터들이 나름의 행복한 결말을 맞고, 성장하고 자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배우와 캐릭터가 마지막까지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고, 이필모의 필모그래피에 국천수라는 인상적인 한 획을 남기는 것도 기대할 만한 일이다. 오래오래 두고 볼 수 있는 배우는 필시 해피엔딩보다 더 큰 기쁨을 남길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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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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