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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 표창원의 원칙과 믿음 (1)

우리는 왜 자신의 성취를 드러내길 꺼려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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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라는 것이 신자유주의만을 보고 있는, 혹은 그 이전의 특권층의 기득권 유지만이 보수의 모습인 것처럼 보는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보수냐, 진보냐. 저는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향은 어쩌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사상이나 이념 등의 철학적인 노력들에서 그리는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고루 잘사는 사회거든요.

표창원은 남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는 이야기 속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보수주의자다. 자본의 탐욕과 기득권의 맹목적 사수에 눈먼 가짜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표창원은 대한민국의 그 가짜 보수주의자들의 항체로서 자신의 자리를 위치시킨다. 나, 혹은 몇몇과는 분명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기꺼이 악수를 청할 수 있다. 그는 사이비들이 판치는 이곳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진짜’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삶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자

김태훈 : 최근에 <무한도전> 탐정 편에 출연하셨잖아요. 거리에서 알아보시는 분들이 부쩍 늘지 않으셨습니까?

표창원 : 방송 나갈 때, 제가 미국에 있었어요. 돌아온 지 사흘 밖에 안 됐거든요. 그래서 시차 적응하고 회복하느라고 집에만 있었습니다(웃음).

김태훈 : 최근 강연 활동을 자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대상에 따라 강연의 내용이 바뀌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언급하는 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표창원 : 청중에 따라 다른데요. 일반 대중의 경우에는 주로 한국 사회 현황, 문제에 대한 것들을 많이 요청하시고요. 거기에 주로 ‘정의’라는 개념이 많이 들어가죠. 대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에 대한 요청이 많아서, 주로 ‘대학생을 위한 행복 과정’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태훈 : 추상적인 질문이 될 수 있겠지만, 교수님의 책들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보수라든지 정의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념적 정의를 어느 정도 해주신 것 같아요. 지금 이야기 해주신 것처럼 대한민국 사회에서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 번쯤은 질문을 던져야 될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최근 대학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부모 세대의 이입된 가치관이겠습니다만,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쪽으로 등가를 성립시키는 경우들이 너무 많아서 ‘행복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행복이라는 것, 젊은이들에게 행복이란 것은 어떤 형태로써 이루어져야 할까요?

표창원 :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잖아요. 인간이 사는 이유, 목적이 행복이다. 그럴 정도로 행복이란 것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 우리가 너무 초조하다고 할까요? 자신감이 없다고 할까요? 그렇다 보니까 행복을 너무 좁게 보는 것 같아요. 남들보다 뛰어나야, 뭔가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것 같고, 그리고 불안이나 위험 요소가 없이 넉넉하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마련되어야 행복하리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사실 행복이란 것은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이잖아요. 주관적이고요. ‘자기가 과연 만족하느냐’ 그리고 ‘이 정도면 됐다’라는 여유로움을 마음으로 느끼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일 텐데요. 무엇보다 관계에 대한 것도 중요하고요. 인간이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보니까.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리고 ‘그 사람의 존재가 나와 주고받는 상관관계이냐’ 그리고 ‘그 관계가 돈독하게 지속되느냐’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면 가족이겠죠. 가족과 서로 사랑하고 믿으며 살기 위한 수단으로 돈이 필요한 것이고, 그런 수단으로써 자신의 직업이나 자기 시련이나 욕구 등의 발현이 필요할 텐데요. 그 수단과 목적이 바뀌다 보니까 최근에는 직업, 돈, 이런 부분들이 마치 행복의 수단이요 또는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궁극의 행복,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하느냐?

김태훈 : 보수에 대한 정의에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 번쯤 해주셨던 것 같은데요.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는 건, 결코 보수의 완성일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요. 저도 학교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느껴지는 좌절감은 이런 겁니다. 소위 숫자라고 이야기하죠. ‘몇 평대의 아파트, 얼마의 연봉, 몇 천 cc의 자동차가 있을 때 그것이 행복이다’라는 식으로 수치화 되어 있는 계산법을 사용해서 성공과 행복에 대해서 규정짓는 세대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그런 사회적인 현상들이 계속해서 더 심화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암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런 요인들을 제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비책 같은 건 아닐지라도, 첫 걸음을 떼야 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표창원 : 일단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어린 초등학교 단위부터 시작을 해서. 아까 제가 초조함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우린 너무 급박하고 초조한, 쫓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이걸 놓치거나 뒤처지면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후순위로 처지게 된다, 그러면 인간으로서 존중, 대접을 못 받는다는 초조함 속에 살고 있는 거죠. 특히 부모님들이 자녀를 어린 나이부터 그런 틀 속에 몰아넣고 있거든요.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삶에 대한 어떤 창의적인 태도라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추구하는 자세라든지, 또는 다른 사람을 존중, 배려하면서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연습이라든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점점 젊은 세대들이 갈수록 숫자라는 것에 얽매인다든지 객관적인 평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표창원 : 그렇게 되면 결국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 하면, 사실 삶이라는 건 미지의 세계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과거에 전혀 없던 것이 새로 나타나는 것이 인간 사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숫자로 계량할 수 있는 것만을 쫓아다니다 보면, 결국 미지의 행복을 줄 수 있고 기쁨을 줄 수 있고 알지 못하는 세계 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결국 예정되어 있고 알고 있는 것을 주어진 인생 동안 그저 따내서 가지려고 발버둥치다 보면, 도대체 왜 사느냐에 대한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궁극의 행복은 ‘이 세상을 떠날 때 크게 두려움 없이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느냐,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았다, 재밌게 살았다, 이제는 가도 되겠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떠난다면, 아마도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행복했느냐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데요.

김태훈 : 소유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겠지요.

표창원 : 돈이라든지 평수, 자동차, 이런 숫자에 매달리다 보면 그건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하는 것들이잖아요. 거기에 매몰되어 있다 보면 죽을 때가 됐을 때 아마 상당히 심각한 두려움과 공포와 허탈감이 엄습하리라고 봐요. 많은 분들에게서 그걸 보고 있고요. 그런 부분들을 생각한다면 결국 우리가 조금 더 학교나 집에서 또 사회적인 담론 TV 방송 이런 곳에서도 ‘삶이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런 문제들을 조금 더 많이 다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무래도 젊은 분들도 그렇고 숫자나 정형화된 것에 얽매이는, 삶의 진정한 행복을 놓치거나 두려워서 가까이 하지 못하는 현상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김태훈 : 그런 이야기에 대해, 많은 분들이 어린 시절부터 사회와 철학을 중심으로 한 공부가 아니라,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에 대한 시스템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진입이라는 절대적인 명제 하에서 경쟁을 중심으로 해서 사회가 발전해 왔단 말이죠. 가속을 붙이기 위한 방법으로서 개인의 경쟁과 경쟁에서의 우위가 곧 성공이자 행복이라는 방식으로요. 이제 우리 사회가 그 단계를 넘어서서 개인의 창의라든지 개인의 행복을 통해서 사회가 융합이 되어야 하는 시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과거의 시스템에 얽매이는 것 아니냐? 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경쟁이라는 것을 통해서만 행복을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의견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표창원 : 시대정신이라는 말로 그 문제를 풀어보고 싶어요. 절대적으로 옳고 그름이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과연 지금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거든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무엇인가를 물리적으로 만들어내고 재료를 사용하고 그 과정 내에서 반드시 경쟁이 있어야만 생산력이 높아지고 효율성이 있고, 삶의 기본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성이나 가족 관계나 이런 것들은 조금 손해보고 파손되더라도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삶의 조건을 갖추자’라는 것이 20세기적인 삶이란 말이죠.

김태훈 : 여기서 과잉 생산의 문제가 발생하죠.

표창원 : 어떤 곳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격 하락을 일으킬까봐 바다에 던져버리고 매몰시켜버리는 문제가 생기고, 다른 한 쪽 편에서는 너무나 모든 것들이 결핍되어 있거나 없고요. 아울러 그런 적자생존, 이겨내야만 살아날 수 있고 뒤처지면 루저가 되는. ‘그들은 삶의 기본 조건을 향유할 권리가 없다’ 이런 식의 무한경쟁의 개념들이 적용되다 보니까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반란, 반항이 범죄의 증가, 적대적인 사회관계, 부자에 대한 혐오, 이런 부분들로 이어져 왔잖아요.




우리는 왜 자신의 성취를 드러내길 꺼려하는가?

김태훈 : 최근의 대한민국 사회의 대립 구조를 보면 보수와 진보라고 불리는, 양쪽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대립처럼 보이는데요. 사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21세기 대한민국을 과연 현대라는 이름으로, 또는 근대에서 연결된 지금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조금 회의적인 부분들이 있어요. 근대라는 것은 사실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특권 계층을 타파하고 평등주의에 입각한 형태로써 기회 균등을 공유하는 형태로써 시작된 것인데요. 사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도 특권 계층이 가장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고, 앞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경쟁을 통한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결국은 기득권에 의한 자신들의 계급을 종속하기 위한 시스템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면서 사회가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있거든요. 여기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표창원 : 바로 그 점이죠. 경쟁을 통해서 사회 계급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라선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된 거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짓밟아 왔기 때문에, 그렇게 뒤처져 간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봤고, 전혀 그들에게 동정이나 제3의 기회나 손길을 내밀지 않았던 자기들의 모습을 알기 때문에, 자기들이 지금 밀리면 그런 비참한 위치로 떨어지게 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진입장벽이라는 걸 쌓기 시작했죠. ‘우리는, 내 자식들은, 절대로 그러한 실패나 좌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할 거야’라는 절박함이 다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진입장벽들을 쌓아나간 거죠.

김태훈 :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표창원 : 그야말로 하나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삼성 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자녀를 불법적으로 특정 중학교에 입학시키는 모습에서, 하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교육이라는 것 자체도 결코 모두가 함께 같은 균등한 선상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것들. 그러면 결국 뭘까요? 그들 스스로가 세상의 사는 모습을 바꾸려고 노력하면 되거든요. 그러면 피 튀기는 경쟁으로 누구든 위에 올라가면 아래에 있는 사람 머리를 짓밟고 결국 진 사람들이 비참하게 사는 모습이 아니고 ‘우리 이제 공정하게 서로 배려하면서 살자’라는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노력을 해왔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거죠.

김태훈 : 그들이 과연, 행복할까? 를 생각해본다면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표창원 : 그들이 사람들 머리 위에 발로 밟고 올라서있고 주체 못할 부를 누리고 사치와 향락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그들이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있어서 저는 ‘절대 아니다’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청중을 향해서도 늘 그런 질문을 던져보는데, 자기보다 이건희 회장, 정몽구 회장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란 말이죠. 그런 부분인 거죠. 그래서 ‘우리는 뭔가 잘못 살고 있다’. 부자라는 것, 열심히 노력해서 부를 일궜다는 것이 얼마나 칭찬해줘야 할 일이고 격려해줘야 할 일이고 그걸로 자신은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 부의 사용이라는 것에서도 역시 사회 공익을 위한 사용이 되어야 할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취를 통해서 행복감도 느끼고 문제 해결도 맛보고 복지라는 것도 누리고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구조 속에 스스로의 천박한 기존 기득권만 지키려고 하는 진입 장벽 쌓기에만 몰두해 오다 보니까 그들은 그들대로 늘 불만족인 것이고 ‘왜 항상 우리를 욕해?’라는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거고요.

표창원 : 많은 시민들의 경우에는 그들에 대한 반감과 함께 패배감, 피해의식 ‘저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어, 저들이 모든 걸 다 가져가잖아’라고 생각하는 구조인 거죠. 그런 부분들을 바꿔가려는 노력을 해야지 ‘우리가 더 이상 경쟁에 내몰려서 혹시라도 떨어질 수 있는 위험성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이렇게 되어가다 보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특권 계층, 과거 봉건주의에서나 가능했던, 이미 근대정신에서 극복된 특권 계층이라는 것이 오히려 지금 21세기에 더욱 공고하게, 돈에 의해서 그리고 힘을 가진 자는 힘을 이용해서 돈 가진 자들과 혼인을 맺음으로써 결합을 하고 새로운 자본주의적 특권 계층 속으로 편입되어 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죠.

김태훈 : 제가 잠실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그 지역에 거주하는 젊은 부부들의 얘기를 가끔 듣게 돼요. 그러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면, 공교육의 정상화를 별로 원치 않는 듯한 뉘앙스들이 있습니다.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것은 결국 교육의 기회가 균등해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아이들이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대치동의 사교육 열풍이라는 것도 결국은 진입장벽을 높게 만듦으로써 모든 것을 시험으로 해결하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시스템 하에서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첫 번째로 하게 되고요. 두 번째로 느끼게 되는 것은 자신들이 쌓아올린 부나 사회적 지위 자체가 스스로도 공평한 기회 속에서 얻어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기 때문에, 부자라는 걸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도 일종의 공포감 같은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반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외국인 친구 한 명이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한국 사회에서 부자들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해서 혐오감을 나타내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부자들이 돈을 많이 써줘야 그 돈을 가지고 경제가 돌아갈 수 있는 것인데 부자들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부자들이 자신의 돈을 꽁꽁 숨겨놓고 쓰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이것이 굉장히 기형적인 형태가 아니냐고 말하더라고요.

표창원 : 그렇죠. 부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취가 다 그렇잖아요. 스포츠 스타들 같은 경우에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하면 국위를 선양했다고 박수를 쳐주지만, 우리 사회 내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질투심이 유발되어 버리거든요. 뭔가 문제가 생겨서 망하기를 바라는 심리도 많이 엿보이고, 작은 흠집이 발견됐을 때 떼로 덤벼들어서 헐뜯는 모습도 보이고요. 연예 스타들도 마찬가지죠. 어쨌든 어떤 분야에서 자기가 노력해서 성취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축하받아야 되고 존중받아야 하고 존경받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할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는 거죠. 언제나 어떤 성취에든 무엇인가 결탁, 협잡, 불공정,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표창원 : 예를 들어서 영화 한 편이 크게 흥행하면 늘 나오는 말이 ‘스타 몇 명이 돈을 다 가져간다, 천만 명 이상 관객이 관람한 영화에 실제 날밤을 새워가면서 참여했던 스태프들은 결국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영화는 엄청난 성취를 이뤘지만 그 영화 속에 일했던 수많은 스태프들은 여전히 배를 곯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 자꾸 비춰주기 때문에 축하해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버린단 말이죠. 그래서 무엇보다 공정한 시스템,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잘난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신의 성취들을 누릴 수 있고 거기에 대한 존중을 받고, 반면에 그들의 성취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그 과실을 나눠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만 자신의 부를 숨기거나 있는 것 자체를 소비하지 못하는, 그래서 사회 전반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나타나는 현상들이 극복될 수 있죠.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얼마나 공정한가?

김태훈 : 어제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땄는데요. 오늘 아침의 포털 뉴스 자체가 재밌습니다.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가 큰 대제목이면 밑에 ‘그러면 연금은 얼마나 받을까’라는 기사가 달리기 시작하고요(웃음). 연예인들 같은 경우도 그렇고 영화라든지 대중매체도 마찬가지고요, 크게 성공을 거뒀다고 하면 ‘과연 벌어들인 수익이 얼마냐’가 바로 그 다음에 붙고 연예인들의 집은 몇 채고 그 집이 시가가 얼마인지 따라붙는단 말이죠. 그들이 우리들에게 준 즐거움에는 박수를 쳐주다가도 그 다음에 따라붙는 기사들에 의해서 달리게 되는 댓글들이 거의 대부분 그렇죠. 성공이 금액으로 환산됐을 때 상대적인 박탈감, 거기에 대한 분노의 형태들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표창원 : 비교를 해버리죠. 일반인들의 몇 년치 연봉을 받는다고요(웃음).

김태훈 : 얼마 전에 추신수 선수도 가족사진을 찍는데 ‘천 몇 백 억의 사나이’라는 식으로 제목이 붙어서 나오는 식이죠. 그들이 정당하게 얻어낸 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적 시스템 자체가 거기에 대한 분노와 사회적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것이 공정치 않은 경쟁에서 이루어진다는 의견이신 것 같습니다.

표창원 : 그렇죠. 가장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거예요. 제가 강의 때 주로 많이 쓰는 비유인데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발렌타인데이 때 연인과 함께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특별하게 독점적인 레스토랑에서 최고급의 요리를 해준단 말이죠. 악사들이 연주를 해주고 멋진 종업원들이 서빙을 해 주고요. 얼마나 환상적이고 멋져요? 그런데 그 멋진 테이블의 바로 옆에 3~4일 또는 일주일 정도 굶은 것으로 보이는 남루한 차림의 탈북 꽃제비 소녀가 쓰러져서 퀭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면, 과연 수백만 원짜리의 한 상 차림이 행복을 줄까요? 입에 넘어 갈까요? 자꾸 신경 쓰이고 거리낄 것 아니냐는 말이죠. 그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왔을까를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이 멋진 식사를 연인과 즐기려고 하는데 왜 이런 기분 망치는 노숙인이 혹은 꽃제비가 여기에 와 있어, 빨리 다른 데로 치워주시오’ 이런 것이 우리가 살아오던 모습 아니냐는 거죠. 그것보다는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식사의 반만 해도 충분히 멋지지 않을까, 나머지 반을 이렇게 굶주린 애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기본적인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내놓는, 세금의 방식이든 기부의 방식이든, 그런 접근이 자신들도 더 행복하고 우리 사회도 충분히 그들로 인해서 나아질 수 있지 않느냐는 거죠.

표창원 :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의 접근 방법은 ‘내 눈앞에서 내 행복을 누리는데 이들이 방해 안 되게 치워줬으면 좋겠어’가 아니었나요? 파업하는 노동자들 문제라든지 쌍용 문제라든지 다 그렇더라는 거죠. 그런 부분들이 과연 우리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얼마나 공정한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시스템 자체가 공정하지 못할 때 정말 순수하게 자신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마저도 그 성취를 제대로 누릴 수 없는, 마치 잘못한 게 없는데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려야 하는, 그런 대단히 비정상적인 사회로 가고 있다는 거죠.

김태훈 : 지금 교수님이 얘기해주신 부분이 바로 두 권의 인터뷰집 『보수의 품격』 『새로고침』 에서 다뤘던 이야기의 핵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일단은 진보 쪽 입장에서 조금 혼란스러웠던 것이, 교수님은 당당하게 ‘나는 보수주의자다, 고백한다’라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이야기하시고 있는 부분은 사회주의의 계량의 형태인 사회보장주의라든지 이런 이념도 담고 있는 것 같고요. 제가 예전에 ‘같은 공간 안에 특권을 누리는 우리가 있고 불행을 당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의 특권이 저들의 불행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한다’라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결국은 우리들이 눈을 감는 자체가 사회적 공범으로서 일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의식을 나타내고 계신 것 같아요. 여기에서 저도 조금 진보와 보수의 틀에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웃음). 앞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부자들이 기부의 형태로 내놓는 것도 있겠지만 세금과 같은 형태로 요구할 때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그것이 좌파적이며 진보적인 방식이라고 비난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것도 보수의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는 겁니까? 보수의 내용 속에서?

표창원 : 네. 저는 정말 그것이 편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보수라는 것이 신자유주의만을 보고 있는, 혹은 그 이전의 특권층의 기득권 유지만이 보수의 모습인 것처럼 보는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보수냐, 진보냐. 저는 그들이 지향하는 이상향은 어쩌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문학작품이나 사상이나 이념 등의 철학적인 노력들에서 그리는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고루 잘사는 사회거든요. 나는 남 위 에 올라서 있고 남들은 다 고통 받는데, 나 혼자 배부르게 먹고 있는 모습을 상정하는 이상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우리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어요. 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의 방법 면에 있어서 급진적으로 모든 것들을 바꿔서 현 체제를 무너뜨리고 다수가 지배하는 사회, 그래서 평등이 조금 더 우선되는 사회, 이것이 진보의 방법이고요.

김태훈 : 보수는요?

표창원 : 보수는 보다 현실적이죠. 그동안의 인류 역사, 우리 사회의 역사 속에서 쌓아온 것이 최선은 아닐지 모르지만 차선이다, 현실에서 가능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 아니겠는가, 라는 접근인 거죠. 그래서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엘리트가 사회의 상층부를 점하고 사회 공익을 위해서 자신들의 윤리ㆍ도덕ㆍ전문가적인 부분을 발휘하고, 아울러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보수 전통의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누리고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일부를 내어놓고 먼저 모범을 보이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평등하지는 못하더라도 고루 잘사는 이상을 향한 계속적인 거북이걸음을 해 나가자는 게 보수의 모습이잖아요. 제가 택하고 있고 주장하는 것은 보수의 모습인 겁니다. 현재의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가진 자들, 부자들이 조금 더 사회 전체를 생각하라는 거죠. 스스로의 가치와 위치와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다면 기존의 시스템에 흔들림이 없어야 된다는 거죠. 민란이 발생한다든지 폭동이 발생한다든지 무질서가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자신들이잖아요.

김태훈 :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 상대적 빈곤의 문제, 범죄율의 증가, 자살율의 증가, 행복지수의 하락 같은 것들이잖아요.

표창원 : 그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 나타나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 대중을 탓할 건가요? ‘너희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을 원해? 있는 그대로 살아. 너희는 능력이 없잖아’ 이건 천박한 접근이고요. 어떻게 보면 자신들이 운이 좋고 기회를 잘 잡고 부모가 진입장벽을 잘 쌓는 비도덕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경쟁 개념에서 어긋나는 반칙을 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권리일 가능성이 높죠. 그런 사회에서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다면 사회적인 불만의 정도를 낮춰나갈 수 있는 복지적 혜택을 늘려나가라는 것이 보수적인 방법인 거예요.

김태훈 : 복지적인 혜택을 어떻게 늘려나가느냐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방법상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표창원 : 세금을 높이는 것은 진보적인 방법이죠. 가급적이면 세금이라는 것은 높여나가기 보다는 정확하게, 소득과 재산이 있는 곳에 과세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세 정의를 이루는 것이 보수적 방법이죠. 대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진 자들의 선행과 자선ㆍ기부 같은 부분들을 통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저들이 가진 것들을 내어놓는구나, 저들 덕분에 우리 자녀가 장학금 받아서 공부도 하고 미래의 꿈도 꿀 수 있고, 우리가 의료 혜택도 받는구나’ 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 되는 거죠.

표창원 : 미국이라는 곳이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지만, 왜곡되어 있기도 한 곳이잖아요. 할리우드나 스타 시스템이나 어메리칸 드림을 보면 유럽의 시각에서는 천박한 모습의 상업주의가 팽배한 나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책은 놀라울 정도란 말이죠. 예를 들어 소득 수준이 연봉 6만 불 이하라는 게 증빙이 되면 그 가족들은 대부분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의료, 각종 무상 혜택과 지원을 받는단 말이죠. 그 시스템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라는 거죠. 그 사회에서 워렌 버핏 같은 부자는 부자세 거두라고 스스로가 나서서 얘기하잖아요. ‘미국이 위기에 빠져있고 부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서 월스트리트의 문제 때문에 나라 전체 경제가 엉망이 아니냐, 부자들한테 세금을 거둬서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라’고 얘기하고 있잖아요. 그것이 보수의 모습인 것이죠.

김태훈 : 교수님이 사회적인 약자 문제라든지 복지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을 주장하니까 진보 아니냐는 편견도 있어요.

표창원 : 내용과 구체적인 방법들을 들여다보시면 진보와는 전혀 주장이 다릅니다. 가치와 목적은 같을지 모르지만요. 사실은 진보 쪽에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여러분들이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진보적 가치를 잘 내놓으시라는 거예요. 현실성 있는 비전을요. 많은 사람들이 ‘저들이 내놓는 저 방법, 정책, 거기에 따르는 재원 마련 대책, 사회 구조의 개혁 이런 부분들이 나에게도 도움이 되겠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비전을 홍보하고 알리게 된다면 진보도 다수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죠. 보수는 보수대로 보수적 가치를 내놓지 않은 채 굉장히 졸렬하고 편협하고 집단 이기적인 방법으로, 즉 부자들이 자기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내고 감싸 안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그러면서 처벌받지 않는, 이런 천박한 상황에서는 보수라는 것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거죠.


보수주의자 표창원의 원칙과 믿음 (2)에서 계속됩니다.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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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듣고, 보고, 읽고를 통해 세상을 생각해본다. 삐딱한 편견으로 40여 년을 살았고,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나머지 시간을 쓰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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