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철학자 강신주가 이른바 핫한 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대중 철학자로는 이례적으로 공중파 예능에도 입성할 정도니 말이다. 물론 강신주가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로 강연을 꾸준히 이어나갔기에 지금의 강신주가 있을 수 있었다. 지식인 마을에서 나온
『공자 & 맹자』,
『장자 & 노자』 그리고
『회남자 & 황제내경』 은 강신주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기 전에 쓴 책이다. 지식인 마을 완간 기념 강연, 세 번째 주인공은 철학박사 강신주였다.
병이 나기 전에는 동양의학, 병이 나면 서양의학
강신주는 지식인 마을에서 책 3권을 썼다. 그 중에서 강신주가 가장 애착을 보인 책은
『회남자 & 황제내경』 이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에서
『회남자 & 황제내경』 의 위치는 다소 독특하다. 다른 책들은 사람과 사람을 묶은 반면
『회남자 & 황제내경』 은 책과 책을 묶었다. 회남자와 황제내경은 동양 전통 과학사상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강신주는 기철학을 다루고 싶어
『회남자 & 황제내경』 을 썼다고 한다.
몸이 아플 때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강신주는 이 질문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양쪽의 권리를 모두 인정하고 선택은 개인의 영역으로 넘긴다. 강신주는 몸에 탈이 나기 전에는 동양의학에 의존하고 몸에 탈이 나면 서양의학에 의존하라고 권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양의학은 보건의학, 즉 질병을 예방하는 성격이 강하다.
평균 수명과 영아 사망률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의학은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대해 숙고해야만 합니다. 이 점에서 서양의학은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서양의학은 병이 걸린 다음에 아픈 곳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니까요. 반면에 한의학은 이런 문제점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한의학의 모토는 ‘병이 아직 걸리지 않았을 때, 병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회남자 & 황제내경』 pp.181~182
물론 동양 의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당장 맹장이 터질 것 같다면 동양 의학에 의지하지 말고 병원으로 달려가 외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
책을 잘 읽고 싶다면 친구와 이야기를 해라
지금 내 몸이 좋은지 안 좋은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변을 확인해 보면 파악이 가능하다. 배변이 원활하다면 건강한 것이고 원활하지 않다면 몸 어딘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강신주는 책 읽는 것을 배변활동에 비유한다. 책을 읽는다. 읽은 내용을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새로운 책을 읽는다. 새롭게 읽은 내용을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책의 내용이 배출되고 배출이 된 만큼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다. 배변 활동은 먹은 만큼 나와야 한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읽은 만큼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정상이다. 표현할 수 없는데 강제로 계속 읽기만 반복하면 변비처럼 속만 더부룩해진다. 강신주는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돌이키다 보면 저절로 새로운 책도 읽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어찌되었든 말로 표현해야 하나 보다.
강신주는 고전 읽기를 권한다. 그가 말하는 고전이란 쉽게 메워지지 않는 책으로 쉬이 메워지는 허름한 책과는 다르다. 확실히 고전은 쉽지 않다. 꽤 많이 읽은 것 같아 페이지를 확인해보니 아뿔싸 10장도 못 넘겼다. 이번에는 때가 아니라며 책장에 고이고이 꽂아둔다. 강신주는 여러 경험을 하다 보면 언젠가 고전이 읽히는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네가 나를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공부를 더 하고 오너라. 이렇게 고전은 우리에게 도발적으로 존재한다.
파르헤지아, 진실을 말하는 용기
콜레주 드 프랑스는 일반인에게 열려있는 인문 교육 기관이다. 프랑스에서 이름 꽤나 알려졌다는 철학자들은 다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했다. 미셸 푸코도 마찬가지다.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연한 내용 중에서 강신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은 파르헤지아(parrhesia)다. 영어로 번역하면 ‘Telling The Truth’, 한국어로 번역하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푸코는 생의 끝자락에 파르헤지아를 부르짖었다.
위대한 철학자가 생의 말기에 탐험한 주제로는 조금 싱거워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진실을 말하는 게 생각처럼 쉬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남편을 보고 시집을 왔는데 시어머니가 이상하다. 혹은 급여가 높아서 취직을 했는데 사장이 이상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어머니나 사장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시어머니나 사장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할 용기가 부족해서다. 만약 용기를 내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시어머니의 구박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회사에서는 곧장 잘리고 말 것이다. 말을 함으로써 삶의 방향이 선택된다. 물론 쉬운 길이 선택되는 건 아니다. 험난하다. 바꿔 말하면 삶의 방향을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진실을 말할 때 주저하는 이유가 꼭 용기 부족만은 아니다. 나는 시어머니와 사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은 시어머니와 사장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진실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강신주는 객관적인 진리를 따지지 말라고 말한다. 나의 생각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것. 그것이 강신주가 말하는 파르헤지아다.
“객관적 진리요? 그런 것 없습니다. 짜장면이 눈 앞에 있습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파르헤지아입니다. 짜장면이 눈 앞에 있지만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배가 부릅니다. 먹고 싶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파르헤지아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세상과 불행한 사람의 세상은 다릅니다. 배고픈 사람의 세상과 배부른 사람의 세상은 다릅니다. 세계는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파르헤지아를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신信이다. 신이란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는가? 동양철학에서는 동쪽을 동쪽이라 말하고 서쪽을 서쪽이라 말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다고 본다. 사기에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진시황이 죽고 나서 간신 조고가 권력을 잡았다. 조고는 사슴을 가져다 놓고 말이라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사슴과 말을 구분하지 못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당시 조정에 있던 신료들은 조고가 데려온 사슴을 가리키며 모두 말이라고 말했다. 명백히 사슴인 것을 사슴이라 말하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이처럼 쉽지가 않다. 조고가 데려온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을 하려면 조고에게 목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결국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기다.
처음 김영사에서 강신주에게 준 강연 주제는 ‘방향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에 철학은 어떤 의미인가?’였다. 강신주는 이 주제가 잘못 되었으며 우리 시대는 방향을 잃어버린 시대가 아니라 용기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용기가 있으면 방향을 상실하지 않는다.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함으로써 삶이 어떤 방향으로 선택되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행복이 쉽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비겁해서는 행복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비겁하면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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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남자 & 황제내경 강신주 저 | 김영사
왜 동양에서는 서양에서와 같은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없었을까? 동양의 과학정신이 서양 과학의 대체물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에 동양의 과학정신은 너무 오래 잊혀져 있었고, 우리는 동양 과학정신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중국인들의 과학적 경험과 상상력이 빚어낸 과학사상의 정수, ‘회남자’와 ‘황제내경’을 통해 서양과학의 대안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동양 과학사상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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