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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마저 극복한 사람, 김만덕

김만덕, 이 언니의 위대한 점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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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가진 것과 명예가 생기면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추해진다. 그때, 진정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당신이 그동안 이룩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내가 극복하고자 싸우느라 얽매인 것과 다른 가치를 꿈꿀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만덕, 이 위대한 언니처럼.

김만덕, 그녀는 왜 위인일까?

현재 5만 원 지폐 도안의 인물은 신사임당이다. 5만 원 신권 도안을 공모할 2009년 당시, 후보명단에 오른 언니들로는 신사임당 외에 유관순, 소서노, 선덕여왕, 허난설헌, 김만덕이 있었다. 각각 인물의 삶과 업적이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만덕 초상 [출처 : 제주 김만덕 기념관]

우리는 어떤 사람을 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처럼 예술적, 학문적 업적을 이루어내야 위인일까? 소서노와 유관순처럼 나라를 세우거나 독립운동을 해야 위인일까? 선덕여왕처럼 공주로 태어나 여왕이 되어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위인일까? ‘여성’ 위인이라는 점에서, 일부 보수적 시각에서 신사임당을 평가하듯 자신의 업적도 있으되, 원만한 가정을 꾸리고 남편과 자식까지 성공시켜야 위인일까? 그렇다면 앞서의 경우에 다 해당되지 않는 김만덕, 이 언니는 왜 위인일까. 우리는 이 언니의 어떤 면에 감동해야 할까.

김만덕의 생애를 정확히 재구성하는 것은 어렵다. 전해지는 기록도 후에 덧붙여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종합해 보면, 김만덕은 1739년 제주에서 양인 신분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고아가 된 후 기녀에게 의지하여 살았기에 기적에 이름이 올라 관기가 되었다. 20세가 지나 관아에 억울함을 호소하여 양민 신분을 회복했지만 만덕은 결혼하지 않고 상업에 종사하여 거상이 되었다. 그러나 늘 검소하게 살았다. 그녀가 50대 중반이던 1792년부터 제주에 흉년이 들어 수천 명의 사람이 굶어 죽었다. 몇 년째 흉년이 계속되자 1795년, 조정에서 구호미를 보냈지만 바다를 건너 오는 도중 수송 선박이 침몰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만덕은 전 재산을 털어 육지의 곡식을 500여석 사들여 십분의 일은 자신의 친족을 살리고, 나머지 450여석은 구호 식량으로 쓰라고 관아로 모두 보냈다. 이듬해 만덕의 선행이 알려지자 정조는 상을 주고자 관을 통하여 그녀의 소원을 묻는다. 만덕은 한양과 금강산에 가 보고 싶다고 답한다. 정조는 내의원 의녀반수 벼슬(평민이 임금을 알현할 수는 없었기에 벼슬을 하사해야 했으나 만덕은 내명부에도 외명부에도 속한 여인이 아니었기에 당시 현실적으로 줄 수 있는 여성의 관직은 이뿐이었음)을 준 후 만덕을 만나고 금강산 관광을 시켜준다. 제주로 돌아오기 전, 채제공이 <만덕전>을 지어 준다. 1812년, 만덕은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제주에서 만덕은 의녀(義女)이자 만덕할망으로 불리며 존경받고 있다.

<정조알현 상상도> [출처 : 제주 김만덕 기념관]

5만 원권 위인 후보에 올랐던 2009년까지만 해도 김만덕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 해, <거상 김만덕>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그녀에 대한 책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만덕이 더 널리 알려지는 것은 좋지만, 이 책들이 나는 불편하다. 김만덕에 대한 정확하고 구체적인 기록은 없는 상황에서, 그녀 인생의 빈 곳을 작가의 상상으로 채우다 보니 책마다 저자의 시선에 따라 그녀에 대한 평가가, 그녀 삶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기계발서에서 그녀가 ‘성공한 여성 CEO’ 로 평가받는 것이 나는 매우 당황스럽다. 돈 많이 벌었다고 다 성공한 것이고 위인인 것은 아니잖은가. 물론 대부분의 책과 초중교 교과서에 실린 글은 김만덕의 나눔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김만덕, 이 언니의 위대한 점은 과연 무엇일까? 더 나아가, 진정한 위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세 겹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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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위대성은 신분, 성별, 변방 출신이라는 세 겹의 한계를 스스로 뛰어 넘은 점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래 양민이었든 아니었든 그녀는 관기였고, 당시 그녀의 신분은 엄연한 천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스스로 관아에 진정해서 자신의 본래 신분을 회복했다. 어떻게 하여 기생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 과정은 기록에 없다. 조선시대 관기란 관청에 소속된, 국가의 재산이었다. 단지 불쌍히 여겨 쉽게 기안에서 이름을 빼주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만덕은 기생이 된 후, 자신의 신분 회복을 위해 몸값을 준비하는 등 구체적인 준비를 했음에 틀림없다. 바로 이 점이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한 만덕의 위대함이다. 더구나 그녀는 양반의 첩이 되는 식으로 남에게 의존하여 기생 신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 신분의 한계를 극복했다.
<정조 실록>은 그를 ‘제주의 기생 만덕’이라고 적어 그가 실제 기적에서 삭제되었는지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조선시대 기생은 노비와 마찬가지로서 한 번 기적에 오르면 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에서 신음해야 했다. 기생이 양반과 관계해 아이를 낳아도 종모법에 따라 아들은 종이 되고, 딸은 기생의 신분을 세습해야 했다. 기생이 속신(贖身)할 수 있는 경우는 양반나 부유한 양인의 소실이 되어 속가(贖價)를 납부했을 때 뿐이었다. (중략) 관청에 속한 기생들은 대개 15세부터 기녀 명부에 올라 50세가 되어야 비로소 기적에서 빠지는데 이때도 딸이나 조카 등을 대신 기적에 올려야 했다. -『이덕일의 여인열전』 (pp.466~467)
만덕, 그녀는 여성이었다. 알다시피, 봉건시대의 여성이란 지금 여성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았다. 남성의 그늘에 있지 않고서는 기본 의식주가 불가능했던 시대에 만덕은 기적에서 몸을 뺀 후에도 혼인하지 않았다. 경제적 자립을 택했다. 남성의 일을 대신 할 머슴을 두고, 스스로 객주를 차려 주인이 되었다. 당당히 성공한 거상이 되었다. 여기에서 그녀의 위대성은 큰 돈을 모아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당시로는 여성의 직업이라 생각조차 못했던 객주에 도전할 생각을 했다는 발상 자체와 조선 후기 변화하던 경제 흐름을 읽고 한발 앞서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 그녀의 위대함이다. 이렇게 그녀는 성차별의 굴레도 넘었다. 하지만 그 성공 과정에서 만덕은 아마 기존 제주의 상권을 장악한 객주, 상인들과 경쟁하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그녀는 제주도 바닷가인 산지에서 객주를 벌였다 하며 객주를 벌인 지 1년만에 ‘천냥 부자’가 되었다 한다. 물상객주는 남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업을 하기도 하고 상인에게 잠을 재워주고 밥을 파는 여관업을 하기도 하면서 물종의 도매업을 벌였다. 내륙의 객주는 마포 등 물종이 많이 드나드는 포구에 자리를 잡고 영업했다. 제주도는 조선 후기에 들어 한때 미역, 양태, 진주 등 제주에서 나는 해산물이나 물종을 육지 사람들에게 팔거나 직접 배에 싣고 나가 전라도 해남, 강진 등 연안지방을 중심으로 팔고, 대신 양곡과 옷감을 비롯해 화장품 등 사치품을 수입해 왔다. 제주도는 금싸라기라 할 정도로 농토가 절대 부족한 탓에 언제나 양식이나 옷감이 달렸던 것이다.
만덕이 여자의 몸으로 물상객주를 벌였다면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사의 아웃사이더』 (p.77)
다음으로 만덕, 그녀는 제주 사람이었다. 당시 제주는 조선의 변방으로 중죄인의 유배지이자 말 목장으로 이용되었고, 감귤과 전복 등을 바치라는 조정의 과한 공납 요구에 시달렸다. 주강현의 『제주기행』 을 보면, 제주도를 ‘조선 시대 플랜테이션’이라 표현했을 정도이다. 노동력 유출을 막기 위해 제주도민의 출륙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기에 살기 힘들거나 관의 횡포에 시달려도 바다 건너 다른 곳에 가서 새 인생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현재 우리의 추측 이상으로 당시 제주는 소외된 주변부였고, 제주 사람은 중앙 정부의 강한 억압을 굴레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그러기에 정조가 만덕에게 소원을 물었을 때 그녀가 한양에 가서 임금님을 뵙고 금강산 유람하기를 청했던 것은 국법에, 제주 사람의 운명에 저항하는 놀라운 발언이었다. 이렇게 그녀는 변방 출신이라는 굴레도 넘었다.
만덕의 이 같은 발언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즈음 제주 여인들은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이 있어 어떠한 경우라도 육지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디 제주는 땅이 척박하고 물, 가뭄, 바람 등 삼재(三災)로 인해 살기 어려운 땅이었기 때문에 많은 도민들이 섬을 떠나 육지에 가서 살고자 했다. 그 결과 인조 7년(1629)에 제주도민의 출륙을 엄금한다는 명이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들의 출륙은 더욱 엄하게 금지되었다. 즉 제주 여자는 바다를 건너 뭍으로 나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뭍의 남자와 혼인을 해서 그곳으로 옮겨가 사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러므로 만덕의 발언은 국법을 어기는 것이자 금기를 깨뜨리는 행위였다.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p.213)


<탐라순력도>의 <감귤봉진>. 감귤과 귤 껍질을 진상하는 그림. [출처 : 제주시 감귤박물관]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극복한 사람

만덕, 그녀는 신분, 성별, 출신지 모두 주변부에 속했던 사람이다. 이렇게 여러 겹의 주변부라는 굴레를 지고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는 점은 참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여성 위인 열전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인물들이 왕실이나 상류 계급 출신으로 봉건시대의 성차별은 받았지만, 만덕에 비하면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렇다.

그렇다, 만덕은 제주도의 여성으로 관기 출신 상인이었다. 이렇게 만덕의 신분과 살아온 과정에 비추어 만덕의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인 제주도민 구휼을 보면, 그녀의 특이한 점이 보인다. 물론 전 재산과 바꾸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점은 두말할 것 없이 그녀의 가장 위대한 점이다. 그런데 만덕의 선행은 기근이나 흉년 시에 곡식을 기부한 다른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니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고아출신으로 억울하게 관기가 되었다가 양민 신분을 회복했다. 아마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관에 대한 로비 활동이 있었을 것이고, 이때 금전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객주가 되어 육지와 제주를 연결하는 도매업에 나서면서, 늘어가는 재산은 그녀의 전부가 되어 그녀를 보호했을 것이다. 만덕은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늙어서 양자를 두었을 뿐이다. 역경을 이겨내고 자기 힘으로 천금을 모은 부자들이 그렇듯, 그녀는 의식주의 사치도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돈만 모았다. 그런 그녀에게 재산이란 믿고 의지할 유일한 대상인 동시에, 바로 자기 자신인 셈이었다.

그런데 만덕은 재산을, 그런 자기 자신을 던졌다. 홀몸으로 보내야할 노후에 대한 두려움 없이, 그동안 고생하며 모아온 전 생애를 내놓았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문헌에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난 50대 후반의 이미 성공한 만덕이 이런 결심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오히려 나이 들어갈수록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고생해 봐서 아는데…”,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타인을 무능하다고 질타하는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개인의 노력과 자기 계발을 강조할뿐,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을 바로 보지 못한다. 자신은 이미 성공했기에. 힘든 상황에서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여기기에. 그러나 만덕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성공에 자만하여 타인의 불행에 눈멀지 않았다.

심노승은 <노래기생 계섬>이라는 그의 작품에서 만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제주에 있을 때 만덕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었다고 하면서, “만덕은 품성이 음흉하고 인색해 돈을 보고 따랐다가 돈이 다하면 떠나는데, 그 남자가 입은 바지저고리까지 빼앗으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바지 저고리만 수백 벌이 되었다”고 하였다. 또 “육지에서 온 상인 중 만덕 때문에 패가망신한 이들이 잇달았는데 이렇게 해서 그녀는 제주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이라고 하였다. 심노승에 의하면, 만덕은 가증하고 허위로 가득한 탐욕스러운 인물이다. 그러나 만덕에 대한 기록 중 부정적인 내용은 현재 오로지 이 문건 하나가 있을 뿐이다.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p.205)

채제공의 <만덕전>에는 “그는 재산을 늘리는 데에 가장 재능이 있어 시세에 따라 물가의 높고 낮음을 짐작하여 사고팔기를 계속하니, 몇십 년 만에 부자로 이름을 날렸다.”라고만 적혀 있지만, 위의 인용 부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관기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물을 모으거나 객주업을 하면서 매점매석 등을 통해 부를 늘리는 과정에서 만덕은 그릇된 방법으로 남에게 모진 언행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개 그렇게 모질게 움켜진 재산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꾼다. 인성을 바꾼다. 곧 사람이 아니라, 재산이 사람을 움켜쥐게 된다. 그런데 만덕은 자신이 모은 재산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마지막 위대한 점이 바로 재산 축적만을 하고 살아온 자기 자신의 지난 세월을 이겨낸 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점이 가장 위대한 점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극복한 점.

김만덕 묘비 [출처 : 제주 김만덕 기념관]

우리는 시대나 환경, 개인적 한계를 극복하고 성공한 인물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말년까지 일관된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굴레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형성된 자신의 인생관이 나이 들어 어느덧 아집과 욕심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노력해서 이만큼 성공했는데 왜 요즘 젊은 것들은 이 좋은 세상에서 이 모양 이꼴이냐”며 잘못된 어른 행세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본다. 한때 존경받던 인물이 노후에 자기가 일생을 통해 이룩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계속 영향력 있는 인물임을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추하게 변절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이는 꼭 위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어느 정도 이룬 것, 가진 것이 조금은 있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인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결국 어떤 인물이 위인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우리는 평생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성장해야할까, 하는 문제가 된다.


진정 자유로운 존재, 만덕

그러니 만덕, 이 언니를 보라. 그녀가 기생출신이고 제주출신이어서 지명도가 낮아 지폐에 등장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녀의 위대함이 없어지지는 않으니, 신분과 지역과 성별이라는 삼중의 억압을 깬 그녀를 보라. 세상의 굴레에 저항하며 평생 힘들게 쌓아온 것을 세상에 흔쾌히 내놓은 이 언니를 보라. 마침내 자기가 쌓아온 재산과 인생과 자기 자신마저 극복하여 진정 자유였던 여자, 만덕. 이 언니를 보라. 임금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재산이나 권력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풍부하게 해 줄 무형의 소원을 말한 그 지혜를 보라.

어느 정도 가진 것과 명예가 생기면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고 추해진다. 그때, 진정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당신이 그동안 이룩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내가 극복하고자 싸우느라 얽매인 것과 다른 가치를 꿈꿀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만덕, 이 위대한 언니처럼.

“속량하고 세상에 나가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목사는 만덕이 울음을 그치도록 달래면서 물었다.
“돈을 벌고 싶습니다.”
“돈이라? 여자가 돈을 벌어서 무엇에 쓰겠느냐?”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섬을 하나 사서 착한 사람들만 모여서 사는 하늘나라 같은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소설 『섬의 여인 김만덕, 꿈은 누가 꾸는가?』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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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신영

한글을 뗀 이후로 책 읽고 글 끄적거린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 《소년중앙》과 계몽사 세계 명작 동화 전집, 삼중당 문고와 창비 시선, 문학과 지성사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 숙명여대 국문과 입학 후 대하 역사소설을 쓰겠다는 커다란 꿈을 품고 사학을 부전공했다. 그러나 신춘문예에 몇 번 떨어진 이후 그동안의 과대망상과 능력 부족을 깨닫고 겸허하게 독자로 돌아가기로 결심, 한동안 조용히 책 읽고 밥벌이를 하며 살았다. 그렇게 혼자 놀다 보니 너무 심심해서 블로그(blog.yes24.com/mkkorean)에 ‘껌정드레스’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 무작정 읽고 쓰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게으른 배짱으로 역사를 공부하며 독서 기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록들이 모여 어느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 책이 2013년 1월 출간한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이다.지금까지 문학, 역사, 인간이라는 세 개의 열쇠로 세상을 여는 역사 에세이를 쓰는 데 주력해 왔다. 앞으로도 익숙한 이야기들에 낯선 질문을 던지는 즐거운 탐험을 계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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