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아닌 후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김연아로 봐주세요. 소치 올림픽에서 현역은퇴를 하겠습니다.” 2012년 7월 2일. 갑작스레 열린 긴급 기자회견.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팬들 곁에 돌아오던 날이다. 그렇게 그녀의 피겨인생 제 2막이 막을 올렸다.
이름 세 글자만으로도 감동 그 자체인 김연아. 필자 역시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으로써 그녀 이름 세 글자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그 감동을 잘 알고 있다. 그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밤낮 가리지 않고 모두 챙겨봤었다. 수많은 명장면 중 잊을 수 없는 한 장면. 바로 2010년 벤쿠버 올림픽 당시, 새파란 옷을 입고 프리 경기를 끝내며 두 손을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올리던 그 장면. 그렇게 그녀는 금메달이라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꿈이던 값진 결과를 품에 안았다. 다음 시즌,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으로 돌아와 팬에게 감사함을 전한 그녀는 그렇게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게 제 1막이 끝이 났다.
은퇴를 발표하고 대략 1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다시 빙상 위로 돌아왔으며 그녀는 여전했다. 여전하다는 것. 쉬워 보이는 것 같지만, 정말 어려운 단어. 특히 정상의 자리에서 그 실력을 유지한다는 건 보통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하고 있듯, 여태껏 공들였던 탑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고생했을지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뱀파이어의 키스>, <레미제라블>로 돌아온 그녀는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운동선수가 몇 년을 쉬다가 돌아와서도 여전하다는 것. 보기 드문, 거의 없는 경우라고 한다. Queen Yuna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았다.
올림픽을 앞두고 그녀가 마지막 실전 무대로 삼은 곳은 ‘전국 종합 선수권 대회’. 이 대회를 앞두고 특집 다큐가 방영되었다. 이름마저 아련한 “마지막 선곡, 아디오스 노니노”, ‘김연아’라는 존재만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성공했다. 피겨를 중계하듯 남자와 여자해설자가 다큐를 해설해 나갔다. 올 시즌 첫 경기였던 자그레브 대회를 담은 짧았지만 짧지 않았던 프로그램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한 선수의 노력과 인내의 긴 과정을 모두 보여주었다는 것. 그 모든 과정들을 담기에는 부족한 한편의 다큐였지만, 그녀의 마지막 행보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담고 있었다. 굵고 짧았다. 7분이란 피겨의 드라마 속에 한 선수의 땀 수백 수천 방울이 포함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
10년 전 노비스 레벨의 선수이던 때 처음 갔던 국제대회, 자그레브. 세계 최고가 되어 다시 찾은 그 곳에서 그녀의 마지막 시즌은 시작 되었다. 부상으로 인해 처음 선보인 프로그램은 그녀의 대단했던 피겨인생을 차분하게 끝내기에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잔잔한 음악 선율과 하나 되는 오묘한 노란빛 의상을 입은 그녀. 노란 장미의 꽃말은 ‘이별’이다. 중년 여성의 이별을 표현하는 음악까지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쇼트경기에 적합했다. 피겨선수라기엔 적지 않은 나이. 25살의 그녀는 이제 팬들 곁을 또한 그녀의 정들었던 빙상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아디오스 노니노
프로그램 공개도 전에 어렵다고 소문이 나있던 <아디오스 노니노>. 긴밀하게 잘 짜여진 구성은 쉴 틈 없이 음악에 집중해야했으며 성공할 경우 멋지고 또 멋진 프로그램이었다. 만일 한 부분이라도 놓치게 된다면 도미노처럼 모든 것이 쓰러질지도 모르는 큰 위기가 닥치는 프로그램. 사실 이 프로그램을 연기하는 선수가 김연아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역시나 그녀였다. 이 전의 <록산느의 탱고>와는 또 다른 탱고.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난 만개한 꽃의 탱고랄까. 훨씬 성숙했으며 애잔했던 그녀의 연기. 그녀에게 탱고가 잘 어울린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새로운 감동이었다.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살펴보면 자그레브대회에 출전한 어린 선수들 중에는 김연아를 자신의 롤모델로 꼽는 선수들이 많았다. 늘 지켜보고 존경하던 선수와 한 대회에 함께 출전한다는 그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라는 선수들. 김연아 역시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나가노 올림픽을 보며 미셸 콴 선수를 롤모델로 삼았던 꼬마 연아는 알았을까? 자신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리라고. 누군가에게 우상이 된다는 것. 즉, 어떤 이에게 삶의 지침이 되는 것이다. 천재라고 불리 우는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것은 연습벌레 김연아였다는 사실. 그녀 또한 정상을 바라보며 울고 웃으며 스케이트 탔다는 것. 전 세계 어린 피겨 선수들의 꿈이 되어 버린 그녀이기 이전에 한때 그들과 같았던 소녀 김연아. 부상에 시달리며 아사다 마오 선수와 경쟁하던 그녀의 어린 시절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의 그녀가 있었다는 걸 알기에, 지금의 그녀는 아주 탄탄하게 만들어 졌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something special
외신 기자와의 인터뷰 중, 필자의 귀에 쏙 들어온 말이 있었다. 바로 “something special”. 그녀를 수식하는 그 많은 단어들보다도 와 닿는 말이었다. 그녀는 이미 피겨 역사에 오랜 세월 길이 남을 선수가 되었다. 피겨 불모지인 한국에서 전 세계 으뜸가는 선수가 된 그녀. 사막위에서 핀 꽃과 다름이 없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 달 뒤를 끝으로 그녀의 경기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덕분에 벤쿠버 올림픽, 소치 올림픽까지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녀와 동시대에 태어나 피겨라는 스포츠를 알게 되어 영광이다. 김연아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피겨의 아름다움. 하얀 빙상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 손짓 발짓하나에, 우수에 찬 표정 하나하나에 우리는 녹아들었으며, 그녀의 스케이팅은 말 그대로 예술이다.
한 달 뒤면 그녀는 빙상장에서 내려오게 될 것이다. 피겨 국가대표 선수인생은 막을 내릴테지만, 항상 온 국민들 마음속에 그녀는 영원히 Queen Yuna. 잊지 못할 것이며 언제 어디에 있든 늘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마지막 경기가 될 소치 올림픽. 결과가 어떠하든 단순한 마침표가 아닌 느낌표로 길이길이 간직되길 바라며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 행보만을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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