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목수의 따뜻한 공간
가구 디자이너 유정민 씨의 쇼룸 겸 작업실 ‘밀로드’에서는 그의 완성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뿐이랴, 바로 옆 작업장에서 나무를 재단하고 자르고, 천연 오일로 마감하는 것까지 전 과정이 오더메이드, 수제 작업으로 이루어지니 무엇보다 믿음이 간다. 그가 만든 가구에선 나무의 온기는 존재하되 투박하고 거친 면은 찾아볼 수 없다. 똑 떨어지는 심플한 라인, 섬세한 디테일은 단단하면서도 강인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그만의 재미있는 상상력이 세련된 방식으로 담겨 있다. 그가 디자인만 하지 않고 이렇게 공방에서 목수 일을 병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디자인을 열심히 하지만 과연 상품화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제가 알아야 주장할 수 있잖아요. 반대로 직접 만들어봐야 그 가구의 문제점을 짚어낼 수 있고요.” 목수는 쓰임에 조응하는 사람이다. 나무라는 재료를 다루어 쓸모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가구를 만드는 일은 사람이 직접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제작 과정이 더욱 녹록지 않다. 모든 작품은 만들고 사용해보고,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사용자, 즉 사람이 우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목수의 작업실은 기계적인 도구들로 가득 찼지만 유난히 따뜻한 기운이 돈다. 소박한 목수, 유정민 씨의 공간도 그러했다.
저는 나무를 짓는 목수입니다
유정민 씨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것이 만능인 디자인을 최고로 치는 제품 디자인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 그는 막연히 ‘나무’가 주는 편안한 물성에 대한 호감 때문에 가구 디자인으로 전향했고, 친구들이 모두 제품 디자이너로 입사할 때 그는 작은 공방에서 목공을 배웠다. 그러다 한 일본 가구 디자이너의 홈페이지에서 ‘칼 펠라 가든’이라는 가구 학교에 관한 글을 읽었다. “칼 펠라 가든은 스웨덴의 칼 발름 스탠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가구 디자이너가 세운 학교지요. 그곳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졸업 전시를 하면 전 세계에서 이 작품을 사기 위해 몰려든다고 합니다. 졸업생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만든 가구를 팔면서 가격부터 홍보 방향까지 스스로 결정하는데, 소비자와 소통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죠.” 그는 가구를 만드는 기술, 디자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가구를 만들 수 있도록 마케팅 능력까지 키워주는 커리큘럼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졸업 작품 가구를 제작해준 인연으로 타 공방에서 3년간 근무하며 마케팅 감각을 익혔다. 또 가람 가구 학교, 우드 스튜디오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목공을 배웠다. 그렇게 내실을 다진 다음 2010년 초 집성목 대신 질 좋은 원목을 소재로 모던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 가구를 선보이겠다는 일념으로 밀로드라는 가구 브랜드를 론칭했다.
만드는 사람과 만든 물건은 닮아 있다
밀로드에서 생산하는 가구에는 모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원형에 가까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의자면 의자, 테이블이면 테이블, 서랍장이면 서랍장 이렇게 직관적인 디자인을 선호한다. 그의 쇼룸에서는 오리지널 퍼니처와 오더 메이드 퍼니처를 모두 만날 수 있는데 보통은 원하는 디자인을 가지고 오는 손님이 많다. 이때는 소비자가 원하는 포인트를 찾아 밀로드만의 색깔로 각색한다. 이 모든 공정은 밀로드 자체 내에서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디자인만 하고 공정은 목수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그는 디자인을 하고 그것에 맞춰 목공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그래야 디자인에 따라 구현되지 못하는 기술을 개선하고, 사용할 때 편안한 기능까지 꼼꼼히 챙길 수 있다는 것.
‘밀로드’는 일본의 트러웍스라는 가구 브랜드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일본은 밀로드처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브랜드가 많은데, 소규모 양산을 바탕에 둔 ‘오더 메이드’를 내세워 가구를 디자인하기 때문에 개성은 살리고 손맛 나는 가구를 만들 수 있다. 그는 일본 브랜드 트러웍스, 스탠다드 트레이드와 같은 브랜드를 한국 실정에 맞게 선보이기 위해 찬찬히 준비 중이다.
“작가라면 항상 또 다른 무언가를 창조해야겠죠. 하지만 저는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내기보다는 이처럼 평소에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게 좋아요. 단,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내는 게 아니라 내 손길이 닿아 만들어지는 손맛 나는 가구를요.” 열 명 정도의 작은 회사를 꾸려, 잘 만든 가구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에게 밀로드의 가구를 선보이고 싶다는 유정민 씨. 극소수의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아트 퍼니처를 만드는 ‘작가’와는 분명 다른 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퀄리티가 좋으면서 손맛과 그 가구가 나오기까지의 스토리까지 담긴 가구. 그가 만드는 것은 공간에서 혼자 돋보이는 가구가 아니라 좋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웰메이드’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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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글은 <행복이가득한집>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현재 작업실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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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방’이나 ‘작업실’ 은 그 단어만으로도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간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공간은 그 어떤 곳보다 동경과 기대의 대상이 된다. 《작업실, 구경》에는 이처럼 엿보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작가들의 공간이 소개돼 있다. 그곳에는 그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잘 반영한 소품과 도구들로 가득 차 있고, 때로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상충하며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책을 통해 화가,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패션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가구 디자이너, 조각가 등 스물다섯 명의 공간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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