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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미술 감상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출간한 이명옥 관장 천재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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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취향을 존중했으면 합니다. 취향이 미술 감상에도 반영이 되거든요. 취향이 있다면 그 취향에 맞는 작품부터 보는 게 좋아요. 동일한 취향인데도 좋은 작품이 있고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습니다. 이를 보는 능력은 훈련으로 기를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 자주 와서 친해지는 게 필요해요.

필자가 두려워하는 곳을 꼽으라면 백화점, 그리고 미술관. 백화점에 가면 뭔가 사야 할 것 같아 두렵다. 미술관에서 10분이고 20분이고 지긋하게 작품을 소통하는 사람을 보면 왠지 나만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무안했다. 공부하고 보면 좀 낫겠지? 서점에 갔다. 서점에서 미술 관련 책을 봤다. 어려웠다. 입체파, 야수파, 낭만주의 초현실주의 등 ‘파’, ‘주의’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했다. 분명 미술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본 용어인데, 미술이 수능 교과목은 아니었던 탓인지 그때 외웠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이 쓴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은 필자와 같이 미술을 감상하고 싶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전문용어를 배제하고 일상에서 쓰는 쉬운 말로 작품을 설명했다. 책에 수록한 작품이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것이라 많은 사람에게 친숙하기도 하다!

 

이명옥 관장은 사비나미술관장,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 과학융합포럼 공동대표 등 여러 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미술을 친절하게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이야기』,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팜므 파탈』, 『그림 읽는 CEO』외 다수의 책을 썼다. 그녀를 사비나 미술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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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게 미술을 설명하려는 이유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을 냈습니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노력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무슨 생각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요. 이 때문에 가족조차도 갈등이 생기죠. 미술 작품은 예술가의 생각, 감정, 철학을 일상 언어가 아니라 시각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러니 일반인이 이해하기 더 어렵죠. 미술에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아졌습니다.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고, 교양을 쌓거나 정서 함양하기 위해서 미술을 향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책이 의외로 많지 않아요. 그래서 전문가의 시선으로 쓰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예술가가 되지는 않지만 예술적 감성을 가진 사람을 독자로 예상하고, 대안 교과서를 만드는 심정으로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을 냈습니다.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을 쓰면서, 혹은 평소에도 교과서를 많이 봤을 텐데요. 요즘미술 교과서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미술을 학교에서 배웠을 때는 감상 교육이 부족했어요. 화가나 조각가가 되려는 사람이 아닌데도 (교과서에서 지시하는 대로) 대다수 학생이 그려야 했죠. (교과서가) 미술을 멀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요즘 교과서는 감상 위주로 바뀌었고 현대 미술 작품도 수록해요.
 
수학, 과학, 경제 등 다른 분야와 융합을 시도했는데요. 이유가 있었나요?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관객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죠. 미대 학생, 미술 전문가만 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와 융합이 필요하더군요. 전시를 하고, 책도 출간했습니다. 수학, 과학 전문가가 전시를 많이 찾았고 책도 많이 읽혔어요.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로 과학문화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재가 융합의 시대잖아요. 융합의 시대가 오리라고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관 운영, 3가지가 중요해


2011년에 쓴 동아일보 칼럼 ‘사립미술관장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미술관을 세우겠다고 하면 말리겠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사비나 미술관을 세우고 겪은 일 중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나요?
 
미술관은 열정, 전문성, 재력 등 3가지가 있는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죠. 20년 전 미술관을 만들려고 했을 때는 지금처럼 절감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비싼 수업료도 치렀고요. 보통 미술관을 화랑으로 생각해요. 작품 매매하는 영리공간으로도 보고요. 그러다 보니 수집한 작품이 많으니까 미술관을 세워 볼까,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미술관에는 이보다 기능이 많습니다.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연구, 교육 기능을 하고요.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수집하고, 지방 미술관은 커뮤니티 역할까지 맡습니다. 복합 예술 공간이죠. 이런 걸 고려하면 전문적인 사람이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내용을 칼럼으로 썼죠.


1990년대와 지금, 미술관 운영에서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요?


예전에는 작가를 초빙할 때 돈이 들긴 했어도 지금처럼 돈이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세계적인 거장이라도 편지를 잘 써서, 초빙하는 게 가능했는데요. 지금은 전시공간이 많아지고 기업도 미술관을 세우니까 경제력이 많은 곳으로 좋은 전시가 몰립니다. 아티스트도 artist fee를 무조건 요구하는 시대가 됐어요. 삭막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사회 각 분야가 승자독식으로 가잖아요. 미술계도 그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재력이 많은 전문적인 화랑, 공적 자금을 투입한 미술관, 대기업 문화재단이 설립한 큰 규모의 미술관이 살아남고 중간 쪽이 없어졌습니다. 이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미술관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술적 재능이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생각과 작품 결과가 다르더군요. 머릿속에서는 걸작인데, 표현되어 나온 결과물이 그에 미치지 못했어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한계를 느꼈지만 미술을 워낙 좋아하니 이쪽을 떠나긴 싫었죠. 내가 미술계에서 일을 하려면 아티스트가 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습니다. 작품 보는 것도 재능이거든요. 나는 안목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작품을 하는 예술가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활용하고자 미술관 경영인으로서 사는 길을 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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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미학에서 ‘천재론’이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고, 관장님도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 『이명옥의 크로싱』에서 천재를 논했는데요. 천재는 어떤 존재인가요?


천재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죠. 똑같은 물건을 보더라도 예술가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이나 보지 못했던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구나, 볼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 줍니다. 지금 전시중인 함명수 작가는 도시 욕망을 표현하면서, 맨하튼을 욕망의 덩어리로 그렸죠. 이 작품을 봤던 사람이 뉴욕에 간다면 뉴욕을 욕망의 덩어리로 볼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예술 작품은 우리가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완성도 높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획일화 되어 있어요. 인맥, 학연 찾으면서 편을 가르고요. 다르게 생각하는 걸 방해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창의성 뛰어난 사람이 잘 나오지 않는 게 남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은 풍토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일찍부터 튀었습니다. 하고 다니는 것, 생각도 튀었어요. 남과 같은 것보다 다른 게 좋았고요. 유행을 피했어요. 개성 없어 보이니까. 20년 전 옷도 지금 입고요. 이렇게 본다면 저도 천재와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게 아닐까요? (웃음)


천재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예술가가 그런 존재잖아요. 관객이 미술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와도 자연스레 연결되네요.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있습니다. 뭉크는 세상을 죽음으로 바라봤어요. 엄마, 형제가 일찍 죽어서 그의 머릿속에는 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죠. 자신의 인생관도 죽음이었어요. 이에 비해 르노아르에게 세상은 온통 장밋빛이죠. 그의 작품은 늘 유쾌하고 낙천적이죠. 뭉크의 세상은 우울하고, 르노아르의 세상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없어요. 이런 식으로 예술작품을 볼 때마다 나의 세계관이 무한히 증식되는 걸 느끼게 될 것입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해서 유연하고 다양하며 경계를 뛰어 넘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서문에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예술작품 덕분에 우리들은 단 하나의 세계, 우리의 세계만을 보는 대신 그 세계가 스스로 증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창적인 예술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그만큼 많은 세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국에는 스타 예술가가 故 백남준 선생 이후로는 뜸하다고 하던데요.


결국은 나오겠지만 아직은 두드러진 작가가 없어요. 왜 그럴까 고민했는데요. 우리 작가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하고 통로가 없더라고요. 온라인상에서라도 한국 작가를 많이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구글 아트 프로젝트로 100명 정도를, 코리안 아티스트 프로젝트로 한국 작가 63명을 소개했습니다.


관장님 패션이 독특합니다.
 
강의 나가면 “모자, 두건이 많은데 도대체 몇 개나 되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400~500개가 넘어요. (웃음) 원래부터 모자를 좋아했어요. 예전에는 긴 머리를 즐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긴 머리를 못해요. 긴 머리를 향한 향수도 있고요. 나를 드러내는, 브랜드화 하는 역할도 합니다. 경제적이기도 하죠. 평범한 옷에도 모자 하나 쓰고 나가면 패셔너블한 느낌을 주거든요.


미술 작품, 어떻게 봐야 하나


앞으로 나올 책은 어떤 책인가요?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은 1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시리즈에요.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까지는 계속 이 시리즈로 책을 낼 것입니다. 미술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술에 얽힌 시대적 배경, 과학 기술 등 배경 지식이 들어가죠. 요즘 젊은 세대는 재미있고 짧은 걸 좋아하잖아요. 동서양 다양한 작품을 짧으면서도 재미있게 쓰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작품과 진지하게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 혼자만 이해 못하는 것 같고요. 요령을 알려 주세요.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다만 자신의 취향을 존중했으면 합니다. 취향이 미술 감상에도 반영이 되거든요. 취향이 있다면 그 취향에 맞는 작품부터 보는 게 좋아요. 동일한 취향인데도 좋은 작품이 있고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습니다. 이를 보는 능력은 훈련으로 기를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 자주 와서 친해지는 게 필요해요. 어떤 취미 생활도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잖아요. 좋은 선생님 만나고, 동호인 만나고, 책도 사보고요. 이런 과정을 안 하려는 게 문제죠. 내가 어떤 인간인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부터 알아보는 우선입니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 어떤 걸 좋아하는가? 이명옥 관장이 던진 질문은 결국 어떤 미술 작품을 봐야 할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에는 교과서에서 봐서 익숙한 작품이 다수 수록되었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고,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도 추운 겨울을 나는 한 가지 방법이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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