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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안녕하지 못할 우리(1) : <집으로 가는 길>

대한민국이 외면한 안타까운 사건 “저는…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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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연히, 혹은 실수로 정연과 같은 상황에 빠졌을 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얼마나 보호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내 처지도 정연과 크게는 다르지 않을 거란 자각. 이 절망이 꽤 오래 뇌리에 맴돈다. 영화 속 정연을 구한 건 인디언처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 남편의 뚝심과 방송과 네티즌의 힘이다. 2013년 현재, 정연이 같은 위기에 빠졌다면 보다 발달된 SNS를 통해 보다 더 빨리 정연의 비극이 끝을 맺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그녀를 구한 건 절대 정부는 아닐 거란 사실이다.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이 아니라, 한국이란 나라에서 힘없는 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란 사실이다. 방은진 감독이 보여준 한 여인의 지옥은 바로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대한민국의 불안정한 현실과 불신의 바로 미터다. 영화의 후반부 겨우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주인공 정연(전도연)은 씁쓸한 표정으로 여권을 들여다본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 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외교통상부장관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관계자 여러분’께 대한민국 국민의 편의 및 보호를 요청하는 대한민국은 과연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 대답을 뼛속부터 알고 있다.


안녕하지 못한 우리를 위한 진혼곡



2004년 10월 프랑스 오를리 국제공항, 평범한 대한민국 주부 정연은 마약소지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다. 정연은 남편 후배의 부탁으로 프랑스 원석을 밀반입하는 중이었다. 보증을 잘못 선 남편 때문에 돈이 급한 정연은 원석 밀반입이 불법이란 사실은 알지만, 가방을 운반하기로 한다. 하지만 여행 가방에 든 것은 마약이었다. 현행범으로 잡힌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교도소에 수감되고 만다. 정연의 남편 종배(고수)는 아내를 돕고 싶지만 한국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종배는 당연하게도 공권력의 힘을 빌어보려 한다. 하지만 검찰, 외교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은 늘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다. 결국 정연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대서양의 외딴섬 마르티니크 교도소로 이송된다. 강압적인 교도관들과 거친 재소자들 사이에서 버티는 정연의 하루하루는 악몽이다. 무엇보다 정연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제발 1년인지 10년인지 그것만 알려달라고 울부짖어보아도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 정연은 자신이 행한 불법보다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지만 법적 절차에서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물론 영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 허구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프랑스에서 마약범으로 잡힌 주부가 감옥에 갇힌 채 절망하다 2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명백한 실화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철저하게 잊혀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으로 묻혔다. 방은진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현실, 그 현실을 묵도하는 대한민국 정보의 태도를 되짚는다. 그리고 실화의 주인공인 장미정씨가 처한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프랑스 오를리 공항, 도미니카 공화국의 나야요 여자교도소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로케 촬영을 성사시키기 위한 준비작업만 2년이 걸릴 정도로 <집으로 가는 길>은 ‘공간’을 담기 위해 세밀한 노력을 기울인 영화다. 이 공간이야 말로 주인공 정연의 몸이자 마음, 그리고 지옥 같은 현실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마르티니크 교도소와 흡사한 분위기의 나야요 여자 교도소의 교도관과 재소자들이 직접 출연하고, 전도연은 교도소 안에 갇힌 채 연기해야만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연이 처한 상황의 답답함에 함께 매몰되어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다.

정연이 처한 답답한 현실과 외로움을 위해 방은진 감독은 영화적 픽션을 가미하지 않는다. 그저 전도연의 얼굴을 훑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공권력의 지독한 무관심을 묵도하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은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하고 울고, 먹먹한 기분에 사로잡힌 관객들은 활짝 웃는 가족사진을 보면서 온전히 안도할 수 없다. 시련 속에 그들의 사랑은 더 깊고 절실해졌지만, 골수까지 파묻힌 고통은 어떤 형태로든 보상되지 않았다. 방은진 감독이 터져야할 분노 앞에서 숨고르기를 한 이유가 다소 모호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미 골진 주름과 눈빛으로 주인공의 처지와 그 절망을 온 몸으로 표현해 내는 전도연의 연기는 영화 전체의 흐름을 통제하며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태원 살인사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의 현실을 영화 속 주인공 정연에 대치하여 보게 된다. 내가 우연히, 혹은 실수로 정연과 같은 상황에 빠졌을 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얼마나 보호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내 처지도 정연과 크게는 다르지 않을 거란 자각. 이 절망이 꽤 오래 뇌리에 맴돈다. 영화 속 정연을 구한 건 인디언처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 남편의 뚝심과 방송과 네티즌의 힘이다. 2013년 현재, 정연이 같은 위기에 빠졌다면 보다 발달된 SNS를 통해 보다 더 빨리 정연의 비극이 끝을 맺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그녀를 구한 건 절대 정부는 아닐 거란 사실이다. 일부 실화의 주인공 장미정씨가 어떤 이유에서건 범죄를 저지른 건 사실인데, 영화가 너무 그녀의 죄를 미화한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앞서 영화화되었던 <이태원 살인사건>을 되짚어 보자. 미국정부가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은 ‘죄를 지은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죄를 은닉하거나 피하려는 수작은 철저하게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라도 대한민국 정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게 죄인이건 아니건 말이다.


동시에 우리는 죄를 지은 기득권자들이 철저히 보호받아온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나 명백히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우리 정부는 늘 망각하고 있다. 2004년 장미정씨가 외딴 섬 교도소에 갇힌 2년 동안 그녀를 방치했던 그 때 그 사람들은 지금 안녕하신지 궁금해졌다. 2004년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은 현재 모든 사람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UN사무총장이 되었고, 당시 주불대사였던 분은 현 정부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다. 우리가 안녕할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안녕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 다음주 ‘내일도 안녕들 하지 못할 우리(2), <변호인>’이 이어집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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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이태원 살인사건SE

<홍기선, 정진영, 장근석, 신승환, 고창식>7,160원(7%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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