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루시드 폴(Lucid Fall), 낮음을 향한 애정

‘낮게 더 낮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루시드 폴이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일상의 자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네요. 앨범을 채우고 있는 여름의 감성이 조금은 낯설지만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앨범, 루시드 폴의 <꽃은 말이 없다>입니다.

루시드 폴(Lucid Fall) <꽃은 말이 없다>


루시드 폴 음악에는 낮음의 미학이 있다. 더없이 순한 음성으로, 그의 음악적 시선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아래된 존재를 세심하게 파고든다. 오직 높게 오르는 것만을 특별함으로 인정하는 시대에 ‘낮게 더 낮게’ 하강하려는 그의 의지와 자세는 그 자체로 묘한 거스름이자 하나의 반문이다. 평범하고 미약한 것들은 가치가 아닌가 하는. 따뜻함 속에 숨겨진 이러한 차가운 의문과 순응을 거부하는 냉정의 구간은 편히 듣는 귀를 이따금 시리게 베곤 하며 루시드 폴 음악의 매력을 끌어올렸다.

어쿠스틱 기타에 서정 가득한 노랫말을 얹어 조곤조곤 말하듯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는 흔히 있음에도 루시드 폴이 그 속에서 독립적인 존재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미선이 시절부터 오래 이어 온 멈춤 없는 음악 이력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그만의 나지막한 파워와 날카로운 감수성이 차별화된 덕이 컸다. 낮음을 향한 애정은 신보 <꽃은 말이 없다>에서도 변함없다. 앨범에는 그라서 볼 수 있는 세상과 할 수 있는 말들이 그라서 가능한 어투와 자세로 정갈하게 담겼다. 그러나 특유의 시린 감성이 전처럼 돋보이진 않는다. 날카로움은 가고 나지막함만 남은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겨울로 접어드는 문턱에 세상에 나왔지만) 앨범의 계절이 ‘여름’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부터 두 달가량 자신의 집에서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이번 6집은 때문에 겨울의 이미지와 어울렸던 과거 다수의 루시드 폴 음악들과 그 온도와 습도가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앨범 전체에 느껴지는 느긋하고 한가로운 정취는 ‘여름의 풍경’이기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핍의 자리에 안분의 정서가 들어선 셈이다.

앨범의 테마는 초여름의 연둣빛 자연, 그것도 ‘일상의 자연’이다. 이를테면 우리 주위에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생을 살아내고 있는, 집 앞의 「검은 개」, 화단에 날아드는 「나비」, 「늙은 금잔화에게」, 「서울의 새」 등을 모티프삼아 전작 「고등어」 나 「문수의 비밀」 식 시선을 이어 나간다. 어쿠스틱 원단에 여러 가지 기타들과 피아노, 콘트라베이스를 다양하게 직조해 노래마다 조금씩 다른 무늬를 새겨가지만, 그 각각이 큰 차이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곡이 마치 거대한 한곡을 이루기 위한 개별의 움직임인 듯, 싱그러움과 편안함을 기조로 통일감 있게 조화한다. 이는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인상인 까닭도 있겠지만 보이스 톤의 단일한 표정이 사운드의 차이보다 두드러진 탓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단조롭고, 살짝 지루하게도 들린다. 그 가운데 「가족」 에서의 불길한 음성과 몽롱한 터치의 돌출은 조금은 다른 표정이라 귀를 끈다. 가족을 ‘걱정을 주고받는 불안한 관계’로 해석한 지점도 흥미롭다.


‘내가 사는 만큼만 노래하고 싶어/노래만큼만 살아야겠다 싶어/세상 소리에 지친 귀를 또 울리지 않고/누군가와 울어주는 노래’ 스스로의 바람을 고백한 「바람 같은 노래를」 이나, 특별하게보다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연두」 등 음악화된 사색은 앨범 속 은은한 울림이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2013년 6, 7월이 음악작가의 눈과 마음에 박혔을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가 느낀 일상의 감흥이 온전히 체감되는 앨범이다. 그럼에도 따뜻함과 시림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과거 그의 노래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했다면, 따뜻함에 저울추가 기울어진 이번 앨범은 아무리 풍경의 질감이라 하더라도 뭔가 아쉽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부분들이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서 맴돈다.

글/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관련 기사]

-소설가 데뷔한 루시드 폴, 이제는 누군가의 약혼자이고 싶다
-루시드 폴, 글을 쓰니 말을 못하게 되더라
-순수한 음악적 탐구 - 루시드 폴(Lucid Fall) <1집 : Lucid Fall> (2001)
-김동률 음악 여정의 시작점 - <The Shadow Of Forgetfulness>
-성시경 “연예인이 아닌 가수가 꿈”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