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Lucid Fall) <꽃은 말이 없다>
루시드 폴 음악에는 낮음의 미학이 있다. 더없이 순한 음성으로, 그의 음악적 시선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아래된 존재를 세심하게 파고든다. 오직 높게 오르는 것만을 특별함으로 인정하는 시대에 ‘낮게 더 낮게’ 하강하려는 그의 의지와 자세는 그 자체로 묘한 거스름이자 하나의 반문이다. 평범하고 미약한 것들은 가치가 아닌가 하는. 따뜻함 속에 숨겨진 이러한 차가운 의문과 순응을 거부하는 냉정의 구간은 편히 듣는 귀를 이따금 시리게 베곤 하며 루시드 폴 음악의 매력을 끌어올렸다.
어쿠스틱 기타에 서정 가득한 노랫말을 얹어 조곤조곤 말하듯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는 흔히 있음에도 루시드 폴이 그 속에서 독립적인 존재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미선이 시절부터 오래 이어 온 멈춤 없는 음악 이력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그만의 나지막한 파워와 날카로운 감수성이 차별화된 덕이 컸다. 낮음을 향한 애정은 신보
<꽃은 말이 없다>에서도 변함없다. 앨범에는 그라서 볼 수 있는 세상과 할 수 있는 말들이 그라서 가능한 어투와 자세로 정갈하게 담겼다. 그러나 특유의 시린 감성이 전처럼 돋보이진 않는다. 날카로움은 가고 나지막함만 남은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겨울로 접어드는 문턱에 세상에 나왔지만) 앨범의 계절이 ‘여름’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월부터 두 달가량 자신의 집에서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이번 6집은 때문에 겨울의 이미지와 어울렸던 과거 다수의 루시드 폴 음악들과 그 온도와 습도가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앨범 전체에 느껴지는 느긋하고 한가로운 정취는 ‘여름의 풍경’이기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핍의 자리에 안분의 정서가 들어선 셈이다.
앨범의 테마는 초여름의 연둣빛 자연, 그것도 ‘일상의 자연’이다. 이를테면 우리 주위에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생을 살아내고 있는, 집 앞의 「검은 개」, 화단에 날아드는 「나비」, 「늙은 금잔화에게」, 「서울의 새」 등을 모티프삼아 전작 「고등어」 나 「문수의 비밀」 식 시선을 이어 나간다.
어쿠스틱 원단에 여러 가지 기타들과 피아노, 콘트라베이스를 다양하게 직조해 노래마다 조금씩 다른 무늬를 새겨가지만, 그 각각이 큰 차이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곡이 마치 거대한 한곡을 이루기 위한 개별의 움직임인 듯, 싱그러움과 편안함을 기조로 통일감 있게 조화한다. 이는 앨범 전체가 하나의 인상인 까닭도 있겠지만 보이스 톤의 단일한 표정이 사운드의 차이보다 두드러진 탓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단조롭고, 살짝 지루하게도 들린다. 그 가운데 「가족」 에서의 불길한 음성과 몽롱한 터치의 돌출은 조금은 다른 표정이라 귀를 끈다. 가족을 ‘걱정을 주고받는 불안한 관계’로 해석한 지점도 흥미롭다.
‘내가 사는 만큼만 노래하고 싶어/노래만큼만 살아야겠다 싶어/세상 소리에 지친 귀를 또 울리지 않고/누군가와 울어주는 노래’ 스스로의 바람을 고백한 「바람 같은 노래를」 이나, 특별하게보다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연두」 등 음악화된 사색은 앨범 속 은은한 울림이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2013년 6, 7월이 음악작가의 눈과 마음에 박혔을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가 느낀 일상의 감흥이 온전히 체감되는 앨범이다. 그럼에도 따뜻함과 시림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과거 그의 노래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했다면, 따뜻함에 저울추가 기울어진 이번 앨범은 아무리 풍경의 질감이라 하더라도 뭔가 아쉽다. 무엇보다 너무 많은 부분들이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서 맴돈다.
글/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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