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나는 런닝맨을 좋아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런닝맨>의 애청자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삼십 대 중반의, 사회적 지위가 상당하며 지적인 모습의 소설가가 <런닝맨>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에는 좀 거시기한 구석이 있다. <런닝맨>은 그 뭐냐, 애들이나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선입견이 있으니까.
실제로 내 주위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 본 결과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런닝맨>을 챙겨본다는 성인은 열 명 중 한 두 명밖에 없었다. 반대로 십대 청소년들은 단연 <런닝맨>을 첫 손에 꼽았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 녀석의 말을 빌린다면 인생의 황금기의 마지막 한 달을 보내고 있는(진짜로 이렇게 말했다!) 교회 초등부의 한 소년은 <런닝맨>에 대한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잘 노는 아저씨들 보고 있으면 재미있잖아요. 우리도 따라할 수 있고.”
따지고 보면 그 시간대에 청소년들이 볼 만 한 예능 프로그램이 별로 없다. <아빠! 어디가?>는 감정이입이 안 될 것이고, <진짜 사나이>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심란해질 것이며, <1박 2일>은 별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도전! 골든벨>을 볼 수는 없는 노릇.
그런 점에서 <런닝맨>은 프로그램의 콘셉트 자체를 아주 잘 잡았다. 출연진들은 딱 십대들을 겨냥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고 매 회 펼쳐지는 게임도 어린 시청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설정, 이를 테면 초능력 특집 같은 것들도 <런닝맨>에서 하면 제법 자연스럽다.
<런닝맨>은 한없이 가볍다. 그야말로 한 점 깃털이다. 내가 기억하건데 첫 회부터 지금까지 그 흔한 감동 코드 한 번 나온 적이 없다. 아주 신나게 놀 뿐이다. 평균 삼십 대 후반인 출연진들은 추격전을 하건, 게임을 하건, 시간을 되돌리거나 이상한 야구를 하건 매 회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찧고 까분다.
사회적 메시지 같은 건 <무한도전>이나 하라 지, 따뜻한 우정은 <1박 2일>로 충분해, 리얼이라는 간판은 <진짜 사나이>나 내걸라고 해. 대신에 우리는 노는 거야. 그것도 아주 신나게!
제작진의 이 같은 선명한 의도는 십대들은 물론이고 나처럼 ‘잘 놀지 못하는’ 어른들에게도 대리만족을 준다.
<런닝맨>이 공유와 박희순을 다루는 방식
<런닝맨>의 지난 주 방송을 보면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걸 어떻게 구현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지난주에는 공유와 박희순이라는 예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타 두 명이 출연했다. 모든 시청자들이 짐작하는 바, 영화 <용의자>의 홍보 때문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영화에 대해 줄줄 늘어놓았겠지만 <런닝맨>은 달랐다. ‘사생결단 레이스’라는 부제를 달고 감옥에 갇힌 다양한 ‘용의자’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 <런닝맨>은 시종일관 ‘용의자’에 특화된 게임을 펼쳐나갔다. 전반부의 용의자 투표에서부터 후반부의 용의자 검거 추격전까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홍보 예능이었다.
나는 <런닝맨>의 뻔뻔함이 마음에 들었다. 아, 이것 참 영악한 것들. 당할 수가 없네. 뭐, 이런 느낌이었다. 프로그램 전체를 홍보로 채워버리는 대담함은 온갖 미사어구로 칭찬하고 광고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게다가 게임마저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각종 죄목으로 잡혀온 용의자라는 설정에서부터 피식피식 웃게 만들더니 유재석의 바지가 벗겨지고 박희순의 헐렁한 모습이 드러날 때부터는 아예 소리 내서 웃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십대는커녕 이제 다섯 살인 아들도 나와 같이 앉아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런닝맨> 안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박희순도 ‘박희순발력’이라는 괴상한 별명을 얻게 되고,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자 매력이 넘치는 공유도 능청스럽고 웃긴 캐릭터가 된다. 누구 하나 멋지게 포장되지 않고, 설령 멋진 모습을 보인다 해도 요상한 자막이 그걸 망쳐버린다. 마치 그런 멋진 건 다른 예능에서 하라는 듯이.
<런닝맨>의 이런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가 다섯 살 아들도 웃게 만드는 비결일 것이다. 또한 게스트들이 가식적인 모습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에 임하는 비결도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공유는 정말로 즐거운 듯 보였다. 예고편을 통해서 본 영화 ‘용의자’에서의 강인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숨고 달렸다. 박희순은 초반의 어색함을 딛고 곧바로 프로그램에 녹아들었다. 게스트들의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도 편안하게 만든다.
우리를 위로하는 건 유치 짬뽕
언젠가 한 번 친구에게 <런닝맨>을 좋아한다고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그 유치한 걸?”이었다. 그때 우리는 가위 바위 보로 손목 때리기 게임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유치한 게 뭐 어때서? 내가 묻자 녀석은 “우린 어른이잖아.”라고 대답하며 내 손목을 때렸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사실 나도 좋아해.” 나는 그 친구 녀석이 더 좋아졌다.
나는 어쩌면 유치함에 목말라 있는 게 아닐까?
유재석의 바지가 벗겨지는 걸 보며 박장대소하는 스스로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돌이켜 보면 나는 너무 근엄한 척 살아왔다. 어른이랍시고 괜히 무게를 잡았다. 마음은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신나게 놀던 그대로인데 이제는 목욕탕에서 떠드는 아이들에게 “이놈!” 꾸지람을 하는 꼰대가 되고 말았다. 아직도 친구와 손목 때리기를 하며 놀고 싶은데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죄다 정치와 경제. 그 옛날 유치한 말장난만으로도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삶의 톱니바퀴는 늘 뻑뻑하다. 되돌아보니 한 번도 매끄럽게 돈 적이 없는 것 같다. 덜커덕, 덜커덕 힘겹게 굴러간다. 나는 유치함이 윤활유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유치 짬뽕’한 생각과 행동이 삶의 활력소가 되리라 기대한다.
유치하다는 것은 앞뒤 재지 않고 마음껏 즐긴다는 의미이다. <런닝맨>에서의 유재석은 <무한도전>에서의 유재석보다 더 즐거워 보인다. 어떤 프로그램을 더 사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런닝맨>에서는 힘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과 추격전을 즐기고 특유의 “우헤헤” 하는 웃음을 터트리기만 하면 되는 일일 뿐.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예능을 볼 때와 달리 <런닝맨>은 나사 하나쯤 풀어놓고 시청해도 무방하다. 괜히 심각해 질 필요 없이 유재석을 따라서 “우헤헤” 웃으면 그만이다. 마치 그 옛날 고추를 달랑거리며 친구들과 함께 대책 없이 목욕탕에서 뛰어놀았을 때처럼. 누군가가 숨만 쉬어도 웃음을 터트렸던 그때처럼. 숨바꼭질과 잡기놀이와 얼음땡과 오징어 달구지로 하루하루를 불태웠던 그때처럼.
유치 짬뽕한 <런닝맨>은 어린 시절 친구 같다. 모든 걸 내려놓고 나도 유치하게 웃고, 유치하게 함께 놀고 싶은 친구. 십대거나 이십대거나, 혹은 삼십대 이상이라도 이 뻑뻑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때로는 유치함이 필요하다. <런닝맨>이 시청자들을 위로하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그리고 마음껏 유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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