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옥은 다양한 필드와 소통하는 패션 디자이너다. 뮤지컬, 현대 무용, 식기 등 다양한 작업을 섭렵하고 있으며, 패션과 문화를 접목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탈리아 리빙 브랜드 구찌니와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가 하면 공간 디자이너 김백선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패션과 예술의 신나는 화학반응’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기도 했다. 뮤지컬 ‘대장금’ 등의 공연에서 의상 디렉팅을 맡았고, 뮤지컬 ‘자유부인’에서 단독 패션쇼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통해 대종상 의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암동에 임선옥의 작업실과 쇼룸이 있다(‘382 플레이 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오픈했던 멀티 컨셉트 숍에서, 최근 리런칭한 브랜드 ‘파츠파츠PartsART by IMSEONOC’로 브랜드 네임을 교체했다). 이곳에서 그녀의 철학이 담긴 패션 컬렉션과 작업 세계를 만날 수 있다.
1년을 앞서 살아가는 패션 디자이너의 숙명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 씨. 스산한 겨울로 치닫는 날씨에도, 그는 이미 겨울을 지나 여름을 향하고 있다. 매해 S/S 컬렉션을 준비해야하고 끝나는대로 바로 다음해 봄에 열릴 F/W 컬렉션을 준비해야 하니 족히 1년은 앞서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패션 디자이너의 숙명이리라. 그런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더디게 흐를 것 같은 동네, 종로구 부암동에서 은둔하며 첨단과 유행이라는 패션의 속성을 가뿐히 초월하고 있다.
임선옥 씨를 만난 것은 멀티숍 ‘382 플레이 그라운드PLAY ground’의 오픈 날(2011년)이었다. 그의 표현대로 ‘코끝이 맑아지는 동네’에서 생활한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상권이 활성화할 무렵, 패션계의 빠른 ‘속도전’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한숨 고르고 싶은 그에게 한적한 부암동은 구원의 안식처였다. 또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디자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 오기 전과는 스스로 느끼기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큰 변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열린 노동, 창작의 ‘놀이터’
소담한 골목길 입구, 하얀 벽면으로 둘러싸인 ‘임선옥IMseonoc’ 쇼룸은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드러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 엉성하게 천을 드리운 안쪽이 작업실, 바깥쪽이 쇼룸이다. 현란한 컬러의 패브릭 때문일까, 이곳을 지나는 이들은 언제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곤 한다. “오리고 박음질하고, 피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나의 작업물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고 고귀하다는 걸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반은 성공한 셈이지요.”
그리고 같은 골목길의 안쪽에 자리 잡은 멀티 콘셉트 숍 ‘382 플레이 그라운드’는 패션, 문화 콘텐츠, 디자인 프로덕트, 패브릭 등을 보여주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임선옥 씨는 2011년 10월에 오픈한 이 두 번째 쇼룸을 통해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다. “페인팅, 타일까지 온통 화이트 컬러로 마감해 아무 벽에나 설치 영상을 틀거나 영화를 상영할 수 있어요. 동네 사람들을 불러놓고 쇼룸을 캣워크 삼아 하우스 패션쇼를 열 수도 있고요.” 이와함께 임선옥 씨가 마음먹었던 것은 직원들의 쉼터를 마련해주는 것. 머리를 식히고 싶으면 책 한 권 들고 가도 좋고 크게 음악을 들어도 좋다. 그러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법이니까.
Fashion is not business
임선옥의 옷은 디자인이 특이한 게 아니다. 대상이 다를 뿐이다. 20~30대를 대상으로 하는 옷은 가늘고 타이트하지만,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임선옥의 옷은 트렌드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낱장의 티셔츠지만, 그 위에 턱시도 재킷을 입고 시장에도 가고 사무실에도 가는 이 시대 여성을 위한 옷. 디자인은 평균적이되 누가 입어도 편안한 밸런스를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고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대문에서 1만 원짜리 머플러를 사서 문제가 생기면 싼 게 비지떡이라며 값을 탓하지만, 브랜드 임선옥에서 1만 원짜리 머플러를 샀는데 문제가 생기면 얘기는 달라진다. 인지도만큼 리스크가 큰 것. “저희 스태프가 모두 여덟 명이에요. 패션업계의 기준에서 보면 생산량에 비해 직원 수가 많은 편이지요. 투자가 많은 것에 비해 수익이 크지는 않지만 감안할 수 있어요. 우리가 시장에 요구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 제일 잘하는 디자이너인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매출로 이러한 평가가 가능할까. 디자이너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노련한 방법을 통해 그 디자이너의 창의적 요소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크리에이티브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집단’, 그것이 바로 디자이너 임선옥 씨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이자 목표인 셈이다. 그는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실크 패브릭에 가면을 씌우고 늘어뜨린 설치 작업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미 미술계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의 의상이 예술화되면 미술관도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어요. 사실은 의상실에 있어야 하는 옷이 미술관으로 옮겨갔을 때의 충돌과 서로 다른 감각을 받아들일 거라는 얘기죠. 저는 고물상에 다니는 걸 워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이들이 찾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에요. 서로 소통하되 해석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 경계를 나누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창의력의 원천이지요.” 이쯤 되면 디자이너보다는 ‘크리에이터’가 더 맞는 역할인 듯싶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계속되는 쇼를 준비하느라 “침대라도 갖다놓고 지낼 판”이라던 사무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벽면 한 구석의 선반 위에는 금속 정리함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금속 정리함이 올려진 선반 너머 재단실 사이에 그의 자리가 있다. 생각과 노동이 분리되지 않고 한꺼번에 수반되어야 한다는 그의 이상은 그의 공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작업실은 그 순간 무수한 의미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창조적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영감의 공간이자, 힘든 작업을 즐겁게 수행할 수 있는 노동의 공간. 그리고 모델들이 금방이라도 옷을 갈아입고 뛰쳐나갈 수 있는 캣워크가 된다. 작업실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작업대. 임선옥 씨는 작업대를 사이에 두고 춤추듯 그곳을 흘러 다니며 디자이너들을 진두지휘한다.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 그게 바로 디자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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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글은 <행복이가득한집>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현재 작업실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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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방’이나 ‘작업실’ 은 그 단어만으로도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간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공간은 그 어떤 곳보다 동경과 기대의 대상이 된다. 《작업실, 구경》에는 이처럼 엿보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작가들의 공간이 소개돼 있다. 그곳에는 그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잘 반영한 소품과 도구들로 가득 차 있고, 때로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상충하며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책을 통해 화가,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패션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가구 디자이너, 조각가 등 스물다섯 명의 공간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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