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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아픈 예능 <나 혼자 산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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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외로움의 정서를 잘 포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웃기고 재미있다가도 어느 순간 턱,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외로움이 도무지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나를 포함한 시청자들은 기꺼이 텔레비전 앞에 앉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려 ‘불금’이라 부르는 금요일 야심한 시각에.

그 고시원은 지금쯤……

서울이라는 이 괴물 같은 도시에 처음 올라왔을 때(나는 경상도 ‘싸나이’다) 내가 기거한 곳은 고시원이었다. 가진 돈이 없으니 어엿한 집을 빌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첫 직장 생활을 서울에서 한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했고 드디어 집을 떠난다는 사실에도 가슴이 부풀었다. 어린 시절부터 4형제가 한 방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왔으니 내 꿈은 바야흐로 혼자만의 방을 갖는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으로 고시원 방을 확인하고 얼른 입금을 했다.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생전 처음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하철에서 좀 헤매긴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신당동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에서 고시원까지도 그 설렘을 그대로 간직한 채 물어물어 잘 찾아갔다. 내 방(호수도 아직 기억한다. 406호)에 도착해서 문을 열기까지 그 설레는 마음은 계속됐다. 물론 좁디좁은 복도가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짜잔! 총무 형이 열어 준 내 방은……방이라 부르기엔 차마 민망해서 ‘쉴 곳’ 내지는 ‘쉼터’, 혹은 ‘캡슐’이나 ‘칸’ 정도가 적합한 공간이었다. 아무렴, 한 평짜리 방이었으니까. 그나마 3만원을 더 주고 창문이 있는 방을 선택했던 게 ‘신의 한 수’였다. 신문지를 반으로 접어놓은 것 같은, 창문이라 부르기엔 어딘지 민망해서 차라리 ‘흔적’이라고 말하고픈 그 창문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그곳에서 1년 가까이 기거할 수 없었으리라.

여자 친구에게 구원을 받아 결혼이라는 걸 하기 전까지 나는 계속 고시원에서 살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시원 생활에 어찌어찌 적응할 수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침대에서 돌아눕는 법을 배웠고 이어폰을 낀 채 텔레비전을 보는 법도 익혔다. 침대라기보다는 관처럼 보이는 그 작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고 자는 법도 체득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화장실, 주방, 세탁실, 샤워실을 오가게 되었으며 옆방에서 들리는 각종 소리에도 무감각하게 되었다.

적응하지 못했던 건 딱 하나였다.
외로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온갖 기억들이 떠올랐다. 동생들과 다퉜던 일, 여자 친구와의 추억, 엄마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 그리고 기타 등등……. 창밖에서는 밤늦도록 점멸하지 못한 도시의 불빛들이 내 방을 기웃거렸고 옆방 남자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곧잘 훌쩍거렸다. 고시원의 그 한 칸짜리 방은 여름에는 더웠고 겨울에는 추웠다. 침대는 늘 앓는 소리를 냈다. 어느 날인가는 몹시 아팠다. 혼자서 끙끙거리며 길거리로 나와 택시를 주워 타고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았다. 수속도 내가 했고 정산도 내가 했다. 아! 그날 새벽은 왜 그리 춥고 또 외로웠던지.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있으면 수 년 전의 그 우라질 고시원 생활이 떠오른다. 물론 연예인들의 화려한 싱글 라이프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넓고 편한 집과 여유로운 돈이 있다고 해서 외로움을 피할 수야 있겠는가. 혼자 산다는 건, 그게 고시원이든 고급 빌라든 외로움과 투쟁하는 일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 그 고시원은 어떻게 됐을까? 406호에는 또 어떤 외로운 청춘이 살아가고 있을까? 그 혹은 그녀도 소리 죽여 울까? 외로워서 볼륨을 줄인 채 밤새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을까?




웃기고 아픈 예능, <나 혼자 산다>

시커먼 남자들이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뿐인데도 <나 혼자 산다>는 제법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노홍철의 수다스러움도 프로그램 콘셉트와 썩 잘 어울리고 각자 개성이 뚜렷한 출연진도 그 나름의 매력을 선사하며 보는 재미를 더한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다 다르다. 카페처럼 집을 꾸며놓은 노홍철과 습기 때문에 고생하는 데프콘, 그리고 늘 멋지게 꾸미고 다니는 이성재와 노총각 김광규의 삶은 극명하게 대비되기에 더 큰 웃음을 준다. 바뀐 멤버인 양요섭, 전현무, 김민준, 김용건까지 더한 이 여덟 남자의 삶은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의 생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 한 장면들이 <나 혼자 산다>에는 수시로 등장한다. 세탁기 앞에서 쩔쩔매는 전현무나 딱히 보지 않더라도 집에 오면 자동으로 텔레비전을 켜는 홍석천의 모습은 바로 내 친구의 모습이며, 또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 혼자 산다>는 그래서 재미있다. 웃기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지난 주 방송에서 이성재가 쓰레기를 치우다 손을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 나는 거의 울 뻔했다. 아무도 없어서 혼자 치료를 했다는 이성재의 담담한 고백을 들으며 울음이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왔다. 아내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주먹으로 입을 막고 꺼이꺼이 울었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 산다>의 여덟 남자들은 각자 나름의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의 외로움을 감추지는 못한다. 기러기 아빠인 이성재는 가족이 그리워서 외롭고 김광규는 짝이 없어 외롭다. 외로운 것은 주위에 사람이 많을 것 같은 노홍철이나 잘 나가는 아이돌인 양요섭도 마찬가지다. 전현무도, 김민준도, 데프콘도, 그리고 김용건도 외로움의 그늘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나 혼자 산다>의 남자들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고 충실히 살아간다. ‘더 무지개 라이프’에 등장한 홍석천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하루를 보낸다.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맡은 일은 철저히 처리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늦은 밤 귀가해서 텔레비전을 틀고 어머니에게 전화하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홍석천이 맨얼굴을 드러낸 그 순간, 그 역시 외로운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고 나는 비로소 인간 홍석천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혼자 산다>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외로움의 정서를 잘 포착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웃기고 재미있다가도 어느 순간 턱,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외로움이 도무지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나를 포함한 시청자들은 기꺼이 텔레비전 앞에 앉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려 ‘불금’이라 부르는 금요일 야심한 시각에.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서 삶을 견디는 인간들은 모두 외롭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해낼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외로움을 견디는 자세가 중요할 뿐이다. 외로움에 사무쳤던 고시원에서의 그 숱한 밤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침이 밝아 오리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꾸역꾸역 찾아오는 새로운 하루가 간밤의 외로움을 밀어냈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외로움은 점점 옅어 졌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갔다.

<나 혼자 산다>의 무지개 회원들 또한 외로움에 허덕이면서도 매일 열심히 살아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뭐야, 외로움을 이길 신묘한 비법은 없단 말인가?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리라. 그런 비법 따위는 없다. 애인이 생기고 결혼을 하고 토끼 같은 내 새끼가 태어난다 한들 천형과도 같은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덜하기야하겠지만. 고시원 생활을 할 때의 나와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자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시 외롭다. 그래도 살아간다. 살아서 외로우니 살아서 이겨낸다.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로웠던 지난 날, 한 평 방 안에서 소리 없는 인간으로 변해가던 그 시절, <나 혼자 산다>를 보며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어 준 그때 그 시간 동안 내게 위안이 되었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이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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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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