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파주북소리 2013’가 펼쳐지고 있는 파주 출판도시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는 『일식』 『달』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히라노 게이치로가 나타났다. 『결괴』 출간 기념으로 김연수 작가가 초대손님으로 등장, 히라노 게이치로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연수 작가의 첫 인상은 어땠나? 시간 지난 뒤 오늘 다시 만났는데, 어떤지도 듣고 싶다.
히라노 게이치로: 처음 만났을 때 김연수 작가가 부끄러운 듯 인사하고 어색해서 머뭇거렸는데, 말을 나누면서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웃는 모습이 굉장히 좋다. 화통하게 웃진 않지만 부끄러운 듯 미소 짓는 모습이 좋다(웃음). 김연수 작가와는 문학 심포지엄에서 만날 일이 있아서 문학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비슷한 동년배 작가이자 한국 작가 중에 문학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굉장히 좋았다. 김연수 작가의 장편은 일본에 번역돼 있지 않지만, 번역된 두 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역시 그 답다고 생각했다. 내년 즈음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 번역집이 나올 거라고 얘기를 들었다. 그의 장편소설을 드디어 읽을 수 있어서 기대하고 있다. 내 작품 『결괴』 를 읽고 감상평을 보내줘서 기뻤는데, 이런 자리가 생겼으니 다시 여쭤 봐도 될까?
김연수: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가 등단했을 당시 나는 출판 잡지 기자로 있었다. 일본에서 한 대학생이 소설을 써서 큰 상을 받았고, 신주쿠에 큰 서점이 있는데, 그의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고 풍문으로 들어서 기대가 있었다. 그의 2기인 문명 비판적인 소설이 나오고 『결괴』 를 읽어보는데, 처음엔 히라노 작가의 소설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문명을 비판하는 내용도 있지만, 이 소설이 긴데도, 굉장히 잘 읽힌다. 문체나 전개가 이전 작품과 달리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처럼 느껴지더라. 펼치면 계속 읽게 되더라. 그러다 살인이 벌어지는데, 그 이후는 깊이 들어간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그동안 써온 질문의 연장선상이다. 대단하다고 느꼈다. 굉장히 집요하게 사건을 바라본다.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속도가 빨리 진행되는 것을 참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역설적으로 천천히 진행되는데, 빨리 읽힌다. 모르긴 해도 예전보다 가독성 측면에선 쉽게 읽혀도 작가 본인은 힘들게 썼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은 악을 응시하는 소설이다. 현대 사회에서 악이 무엇인가는 오래된 주제인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있다. 그렇게 오래된 주제인데, 이 작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답하게 해준다. 악은 행복하지 못한 경우를 악이라고 본다. 그게 참신한 생각이었다. 힐링, 요즘 많이 얘기하는데 힐링이 안 된 사람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잖나. 힐링 안 된 사람들은 나쁜 거고 악이 된다. 악의 반대가 선이 아니고, 악의 반대는 행복이다. 이 결론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식으로 읽혔다. 물론 내가 더 적극적으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잘 읽히고 깊이 들어가고 독자에게 뭔가 질문을 던지는 이런 소설은 정말 쓰기 어렵다.
가독성 높은 문장으로 악과 선, 행과 불행, 인간의 정체에 대해 노골적으로 묻는 소설은 근래 드물었다고 본다. 이 소설을 읽고 악의 반대어가 행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김연수 작가가 그랬는데, 히라노 작가는 행복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
히라노 게이치로: 김연수 작가가 깊이 있게 이해해줘서 고맙다. 현대 사회는 다양화 돼 있고, 하나의 사회로만 향해 달려가는 사회는 아니다. 가치관이 총체화 되면서 허무주의적인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여러 가치관 중에서 이것이 맞니, 저것이 맞니 의심을 하게 되면 끝이 없는 시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가 중요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가가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본에 살면서 부정할 수 없는 가치관 두 개가 있다. 행복과 건강. 누구나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고 살고 싶다는 소망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소망, 좋다. 문제는 더 건강해지고, 더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행복은 어려운 개념이고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느끼는 것,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 더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더 행복한 쪽이 있음을 뜻한다. 행복 안에서도 서열이 생겼다. 21세기 일본에서 격차사회가 주목받고 있고 경제적인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절대적으로 부정하지 못하는 긍정과 행복의 가치관이 확산된 가운데, ‘나는 저들만큼 왜 행복하지 못할까’ 생각하면서 반발을 하는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만약 현재의 나와 사회에 만족한다면 이런 사회가 계속 진행되기를 원하겠지. 그렇지만 사회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 피라미드의 맨 아래 있다면 이런 사회가 지속되는 것에 반발할 테고, 반발의 한 형태가 테러가 될 것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이후 불황이 오래 되고 초고령 사회가 됐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일본의 미래가 밝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래가 밝지 않음에도 더 행복해야 한다고 몰아세우니 모두가 지쳐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 다룰까 생각하고 있다.
일본은 불황이 지속되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는데, 행복도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큰집, 자동차, 화목한 가족 등 행복의 이미지를 크게 잡았다. 그러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행복을 사치라고 생각하고, 일이 있고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행복 자체가 디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2년 전 동북부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는 경지는 종교인이 아니면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내 마음 어딘가에선 ‘좀 더, 좀 더’라며 원하는 것 같다. 행복은 굉장히 어려운 성질인데, 같은 상태라도 자발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와 다른 이로부터 강요를 당할 때는 다르다. 이 소설에선 ‘악마’라는 등장인물이 요스케에게 정말 행복하냐고 따져 묻는 장면이 나온다. 요스케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책을 통해 읽어봐 줬으면 좋겠다(웃음).
김연수 작가는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나?
김연수: 현대문학이라는 것은 곤란한 것을 참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모더니즘 문학은 난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렵고, 텍스트가 참 곤란한데,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알아가려는 태도가 들어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을 굉장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감수하고 견디는 것이 문학의 행위라고 본다. 올바른 문학인의 자세라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를 놔두는 것, 못 받아들여도 없애려고 하지는 말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현대의 문제는 균을 제거하듯 불행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행복은 올바른 문학적인 태도가 아니고,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히라노 작가가 말한 행복 역시 그런 측면인 것 같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박멸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매스미디어가 주는 환상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없애면 된다고 말하는데, 인생 살면서 알잖나. 없앨 수 없다는 걸 알잖나. 환상에 젖어 있으면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정해버리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언제 행복을 느끼느냐면 언제나 느낀다. 모든 것을 나는 다 견딜 수 있다. 웬만한 것은 다 견딘다(웃음). 그래서 항상 행복을 느끼고 있다.
『결괴』 를 보면 다카시는 하나라기보다 복수형의 나이고 싶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의 몰개성적인 개인들, 반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히라노 게이치로: 내가 지금까지 계속 느끼는 모순은 이런 것이다. 인간은 한 명 한 명 모두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고 그 개성을 관철해야 한다고 들어왔다. 모두가 개성적이라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게 받아들여달라고 하면 반발을 하겠지.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 출판사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와 아내와 이야기할 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런데 사회는 개성은 하나뿐이고 하나뿐인 개성을 관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에 따라 자신을 바꿔나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이 사회는 본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사고방식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어떤 친구와 술을 마시는데, 이렇게 친구와 술을 마시는 모습이 나의 본디 모습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술을 즐거이 함께 마신 친구도 가면을 쓴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허무해지지 않을까. 반대로 집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 것이 내 본 모습이라면 그것도 너무 불행하지 않는가.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대등하지 않다. 자신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성적인 사람도 있다. 다카시가 고민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남에도 상대방에 따라 말을 잘 하고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정말 인간의 사고방식인가 고민을 한다. 인간은 내 안에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따라 달리하는 여럿의 내가 있고, 그런 여럿의 나와 동거 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루에도 인간은 여러 모습을 가진다. 가족, 직장 등 여러 모습의 내가 있고, 개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개성, 그것이 개성이다. 내 진정한 모습을 여러 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분인’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개인은 분인의 집합체다. 분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결괴』 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연수: 여러 명의 자아를 가진 사람이 현대인이라는 것에 무척 공감한다. 그것이 소설을 쓰게 하는 원천에 가깝다. 그 주제와 관련, 나는 무엇이고, 내가 경험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주제로 쓸 것 같다. 히라노가 쓰기 전에 내가 먼저 써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웃음). 소설 쓰는 입장에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소설을 쓸 때, 어떤 소설을 쓰느냐가 중요하다. 사실 쓸 수 있는 소설이 많지 않다. 50편을 맥시멈으로 치고, 가면 갈수록 무엇을 쓸 것이냐가 더욱 더 중요해진다. 그러다 보면 피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 살인 같은 끔찍한 일이 그렇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몰입해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마음을 하나하나 들어가서 봐야 하는 게 정말 힘든 일이다. 히라노 작가는 『결괴』 를 쓰면서 그런 힘든 작업을 했다. 심리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을 텐데, 쓰면서 몸의 이상 같은 것 없었는지, 쓰는 과정이 어땠는지 듣고 싶다.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가가 머릿속으로만 테마를 생각해서 끄적거리면 독자가 공감해주지 않는다. 소설가는 등장인물이 되어 써야 해서 굉장히 힘든 부분이 있다. 단순히 괴롭고 힘들어하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도 한다. 내가 좋아한 소설 중 19세기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그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읽으면 힘들긴 해도 굉장히 좋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을 좋아하는데, 주인공이 살인을 하고 죄의식으로 고민한다. 나도 그 주인공이 돼서 힘들고 고민하면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쾌감이라는 단어가 좋은 단어가 아닐 수도 있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자체가 인간을 좋게 만드는 것 아닐까. 이런 식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부분이 있어서 희극뿐 아니라 비극도 있는 것 같다. 『결괴』 를 통해 현대적 모순에 대해 썼는데, 고민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더 큰 고민과 번뇌가 오지 않나 생각했다. 비극적 문학 작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면,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문학을 읽어가면서 살겠다는 힘이 끓어오르는 것 아닐까.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행복해 보이지만 어두운 부분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은 소설을 통해 대리체험을 하면 좋지 않을까.
Q&A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이전 작품은 어렵게 읽혀서 좋았다. 이번 작품은 쉽게 읽히는데, 집필 동기가 궁금하다.
히라노 게이치로: 『결괴』 를 쓰기 전에 사전조사를 철저히 했다. 이런 사건에 말렸을 때 비일상적인 시간이 일상적인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간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것을 반영한 결과, 잘 읽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의 변화에 흥미가 있어서 또 이렇게 썼다. 김연수 작가의 장편을 못 읽어봤지만, 김연수 작가와 이야기해봤을 때 우리 둘 모두 소수적인 사람이 아닐까 본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밝다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는. 그런 것이 소설로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소설을 보니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 소설처럼 치밀한 느낌뿐 아니라 가벼운 느낌으로 순수한 행복의 개념에 대해 써 줄 의향이 있는지 묻고 싶다.
히라노 게이치로: 행복 그 자체가 의식의 문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행복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에 대해서 쓸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쪽으로 강요하는 현상이 지금의 이 소설이다. 지금 말한 부분도 이런 시스템에 휩싸여 있는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소설은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은 사람들, 강요당하는 상황에 대해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개개인이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행복해하는 것을 그려도 재미없지 않을까(웃음).
결괴 1히라노 게이치로 저/이영미 역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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