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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소포의 노래방엔 그것이 없다?

소리는 소포를 휘돌아 저 하늘로 날아가고 전남 진도 소포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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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은 회관 옆,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이제 막 지어진 양옥집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옛 것을 간직한 아담한 한옥이었다. 낮은 돌담에는 담쟁이가 자라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합창하던 풀벌레는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그 곳의 입구에는 세로글씨의 현판이 걸려 있었다. 소포어머니노래방.

흥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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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에는 키 작은 한 남자가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그는 모시 반팔티를 입고 펄럭이는 하얀 면바지에 녹색 장화를 신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다 싶지만 들고 있는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엔 낚시 도구가 있을 것만 같다. 이미 잡힌 물고기가 바구니 안에서 첨벙대고 있는지도. 낡은 배 앞에 선 폼은 영락없는 뱃사람이다. 그에 비해 배는 너무 낡고 생기가 없다. 밧줄을 풀고 바다로 나가기 두려워하는 것만 같다. 노쇠한 당나귀처럼 힘없이 뱃머리를 육지로 찧는다. 남은 세 척의 배는 왠지 모르게 초라하다. 소포의 나루는 이미 70년대에 간척이 되었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다. 그렇다면 그의 바구니 속엔 낚시가 아닌 호미가 든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바다를 응시하는 동안만큼은 다시 어부다.

 

아직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은 더운 바람은 그의 희끗한 머리를 흐트러트린다. 바다는 금빛가루를 뿌린 듯 찬란하게 빛난다. 파도의 포말은 선착장에 미처 닿기도 전에 스러진다. 언제부터인가 먼 곳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흥타령이 들려온다. 하지만 소리의 시작은 먼 곳에 것이 아니다. 그가 바다를 향해 부르는 노래다. 소리는 저 멀리 퍼져나갔다가 금세 되돌아온다. 그의 몸이 서서히 움직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가 싶더니 높이, 저 하늘을 향해 그는 팔을 치켜든다. 그의 입은 함지박만 하게, 바다를 삼킬 듯이 벌어져 있고, 그 속에는 흥(興)이, 한(恨)이, 음(音)이 한데 엉켜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깨이니 또 꿈이고,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헐거나
아이고 대고 어허 흥 성화가 났네 헤
                                  - 남도 흥타령 中


진도노래의 명성은 익히 들어온 터, 갯가에 서 있던 키 작은 남자에게 소리꾼은 아닌지 물었다.
 
“땅이 노래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어. 말을 뱉으면, 그것이 다 노래가 되는 거야. 노래가 재미있어, 술도 한 모금 하고, 그러다보니 노래가 더 깊어지고…….”


그의 말로는 소포의 사람들은 모두가 노래를 한 자락씩 한다고 했다. 진도에선 글씨 자랑, 그림 자랑, 소리 자랑하지 말라던 옛말은 결코 풍문이 아니었다. 그는 소리꾼도 아니었고, 달리 배운 적도 없었다. 그저 말을 하는 거라고, 그렇게 노래했다. 말을 할 뿐이라고, 노래했다.

 

뱃노래
 
소포리는 진도 본섬의 서쪽 해안에 접한 해안가 마을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소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작게 포장했다는 뜻(小包)으로 생각했었다.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선물이 들어 있을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이름이었다. 알고 보니 흴 소(素)에 개 포(浦)쓰고 있었다. 말 그대로 하얀 포구라는 뜻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오래전부터 염업을 주업으로 하던 마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70년에서 77년까지 소포만 방제공사가 진행되었고, 소포 나루는 그 역할을 잃게 되었다. 소포리는 진도대교가 생기기 전만 해도 목포를 잇던 진도문화권의 관문이었는데, 그 수로가 막힌 것이다. 나루가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들의 문화는 교류한다. 그 속에 소리가 있고, 농악이 있고, 사람이 있었다. 염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라졌다. 생산증가를 목적으로 한 새마을 운동의 여파로 바다를 막아 농지를 가꾸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으로 손길을 돌렸다. 나루가 사라지자 사공들은 길을 잃었다. 배들이 소포를 떠나기 시작했다.

 

어기야 차아 어기야 차아
어어 어허야
어기야 차아 어기야 차
만경창파 너른 바다
어느 곳으로 행하느냐 어기야
                  - 뱃노래 中

 

사공은 사라졌지만 뱃노래는 남았다. 바다에서 들려오는 뱃노래는 이제 술안주 삼아 통발을 올리는 한 할아버지의 노래였다. 노래는 소포 바다의 물결처럼 잔잔하면서도 깊었다.

 

진도 아리랑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그러니까 소포가 보낸 역사의 걸음처럼 그렇게 나는 마을로 들어갔다. 소리로는 전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마을인 만큼 곳곳에서 그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소포리 전통 민속 체험관과 전수관, 강강술래하는 아낙들을 그려놓은 창고의 한쪽 벽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림 속 주인공들이 밭을 매는 풍경이었다. 아낙들은 호미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고된 노동을 달래기 위한 소리였다. 그러자 마을 자체가 살아있는 듯 생기가 돌았다. 바다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마을 한편에서 진도 다시래기 전수 조교인 이인석 선생님을 만났다. 너른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았고, 쇠와 소고와 장구와 북을 잘 다루는 여행객도 만날 수 있었다. 이즈음 되니 진도의 소리에 가깝게 닿았다 싶었는데, 오로지 나의 착각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입을 모아, ‘노래방’, 그곳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경운기가 돌아다니고 해질녘이면 컴컴해지는 이 마을에 노래방이 있다는 것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노래방은 도시의 전유물처럼 느꼈던 탓이리라. 나는 기회가 되면 실력발휘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노래방을 향했다.
 
노래방은 회관 옆, 마을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이제 막 지어진 양옥집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옛 것을 간직한 아담한 한옥이었다. 낮은 돌담에는 담쟁이가 자라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합창하던 풀벌레는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그 곳의 입구에는 세로글씨의 현판이 걸려 있었다. 소포어머니노래방. 그때, 귓속이 뚫리는 듯한 아낙들의 시원한 타령이 집 안에서부터 솟구쳐 나왔다. 그렇다. 이 노래방에는 마이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피커가 있는 것도 아니니, 가사가 나오는 기계를 바라거나, 탬버린을 떠올리면 큰일 날 수밖에 없었다. 소포 노래방은 민요를 수련하고 연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요공동체였다. 노래방의 역사는 아낙들의 어머니까지 이어졌지만 잠시 사라졌던 것을 1975년부터 다시 부활시켜놓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소리를, 소리를 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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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낮게 깔리고 모든 것이 숨죽인 저녁이었다. 나는 노래방을 두 눈으로 보았을 때, 그곳에서 솟구쳐 해질녘의 밤하늘을 향해 높이 오르는 소리의 실체도 함께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작은 사랑방에서 비롯되었다.

 

아리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제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청천하늘에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에 희망도 많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날다려 가거라 날다려 가거라 무정한 우리 님아 날다려 가거라.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가지 많은 오동나무 바람잘날 없고 자식많은 우리부모님 속 편할날 없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산중에 머구달이는 얼쿠러살쿠러두고 졌는데 나는언제 누굴만나 얼쿠러설쿠러지거나.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나 갈길을 왜 왔던고.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진도 아리랑
 
북 하나를 둘러싸고 앉은 예닐곱의 아낙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한 소절을 마치면 후렴을 제창하고, 옆 사람에게 다음 소절을 넘겼다. 나는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사랑방 문턱에서 밝은 방을 들여다보았다. 북 채를 잡은 고수는 소녀처럼 작고 여린 할머니였다. 긴 머리를 묶어 비녀를 꽂아 넣은 할머니의 팔뚝은 무척이나 위태로웠지만 북을 두드리는 순간만은 무엇보다 강인해 보였다. 소리는 자진모리로, 자진모리로 이어졌다. 자진모리는 이야기가 격동하는 대목이나 여러 사연을 늘어놓는 대목에서 사용된다고 했다. 자매처럼 개개인의 사정을 모두 아는 아낙들은 서로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듯 조심스레 소리를 이어갔다. 두 음으로 갈라지는 목소리가 한데 모이다가 흩어지고 다시 같은 음을 내었다. 그러다가 툭하니 감정을 쏟아내고, 다른 사람들은 뒤에서 등을 토닥거려주는 것만 같았다. 한 할머니의 소리에선 그만 울음이 터질 뻔 했다. 주먹을 쥔 손 때문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꽉 쥔 작은 주먹이 흔들리는 것 그 자체로 충분했다. 소리가 트인 사람들이 온몸으로 그 가락을 표현해 낼 때의 감동이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음에 끌리는 소리가 곧 심금을 울리는 소리라고 했다. 소리는 소포를 휘돌아 저 높은 하늘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귀를 열었다. 그리곤 답을 해주듯 조용히 어둠을 내렸다.
 
“내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청춘이지. 소리를 못하면 세상 다 간 것이여.”
 
북 채를 쥔 할머니가 말했다. 아니, 북 채를 쥔 한 청춘이 말하듯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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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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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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