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전건우의 예능과 인생
<짝> 달콤 살벌한 연애의 기록
내가 <짝>을 챙겨보는 이유
그렇다면 세상 둘도 없이 착하고 순진한 내 친한 형님처럼 외모와 직업 모두 평균이거나 그 밑인 사람은 짝은 만날 수 없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이 없어도 내 짝을 찾을 수 있다. 이른바 사랑의 묘약이 주는 기적인데, 나와 상대방의 주파수만 맞으면 서로의 사소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에 빠질 수 있다.
5명 중 1명은 결혼 못하는 대한민국
현재 20대 초반 남성 5명 중 한 명은 평생 결혼을 못하리라는 예상이 나왔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공신력이 흘러넘치는 기관에서 연구를 했으니 틀릴 리가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20대 초반 남성이라면 긴장해야 할 일이다. 여성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같은 연령대의 여성 중 18.9%도 45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못할 거란다. 이쯤 되면 결혼도 피 튀기는 경쟁이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대학 입시처럼 결혼 입시 과외가 성행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결혼만이 아니라 연애도 쉽지 않다. 일단 연애를 해야 결혼에 이를 확률이 높으니 알콩달콩 사랑 놀음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면 결혼 또한 힘들 수밖에.
연애는 고도의 심리전이요, 지구력과 인내심을 요하는 마라톤과 같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행동해야 하니 심리학과도 접해 있으며, 때로는 행운과 신의 가호도 필요하니 신앙적인 측면과도 관계가 깊다. 어디 그뿐이랴, 시인이 되기도 했다가 가수가 되기도 했다가 가끔은 희대의 섹스 심벌도 되어야 하니 그야말로 종합 학문, 혹은 전지전능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반필드(E. C. Banfield, 1828~1887)라는 양반은 이런 말을 남겼을까.
“연애는 악마요, 불이요, 천국이요, 지옥이다. 그리고 쾌락과 고통, 슬픔과 회한이 모두 거기에 있다.”
매주 화요일 안방을 찾아오는 <짝>은 ‘시사 교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어 있다. 내 생각에는 <짝>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능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캐릭터들의 합인데(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이 부분에서 차별화를 이뤘다), <짝>에 등장하는 일반인 출연진들은 이 합을 거의 완벽하게 이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짝>이야말로 리얼 예능
지난 주 전파를 탔던 ‘불개미 여자 특집’에서 남자 3호는 여자들이 데이트를 나간 사이 꽃을 꺾어 방에 가져다 둔다. ‘떠나보내고 나니 더 생각나는 님에게’라는 문구를 넣어서. 제일 먼저 돌아온 여자 1호는 누구에게 선물하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 3호는 되묻는다.
“제가 꼭 그래야만 되나요?”
여기서 시청자들은 남자 3호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 ‘님’이라는 인물이 자신에게 준 꽃이라는 사실을 알겠거니 생각하고 밝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문어발식 관리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특정 인물을 지칭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여자 1호가 딴죽을 걸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남자 3호의 행동은 여자 1호의 ‘리액션’이 없었다면 그저 로맨틱한 일로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의사인데 저렇게 낭만적이라니, 따위의 감상들만 나왔겠지. 헌데 여자 1호가 문제 제기를 하면서 긴장감이 증폭되었다. 시청자들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당연히 자신에게 준 것이라 여기는 여자 3호의 등장과 프로그램 말미의 반전이 맞물리며 <짝>은 시사와 교양이 아닌 ‘리얼 예능’의 세계로 날아가 버린다.
<짝>의 감상 포인트는 누가 최후의 생존자, 즉 커플이 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짝 찾기’라는 이름의 야생에서 어떤 방법으로 살아남는가를 보는 데 있다. 각자의 가슴에 숫자를 달고 애정촌에 들어오는 남자와 여자들은 자신들만의 필살기를 준비한다. 누군가는 친절과 매너, 다른 누군가는 화려한 입담과 선물,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노래와 악기. 그럼에도, 모두 살아남을 수는 없다. 무려 세 명의 여자에게 선택을 받은 남자 3호가 있는가 하면 번번이 선택을 받지 못해 좌절하는 남자 7호도 존재한다. 여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남자 때문에 좌절하고 또 분노한다. 참! 화면에 거의 나오지 않았던 남자 5호도 있었지.
사랑과 연애는 별개다. 사랑은 진심어린 마음만으로 충분하지만 그것이 연애라는, 목적 중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사뭇 달라진다. 진심어리기만 한 마음은 오히려 촌스럽게 여겨진다. 연애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눈치도 빨라야 한다. 남자 3호는 첫 만남에서 여자 3호에게 수저받침을 접어서 건넨다. 모기약도 선물한다.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른 남자들에 비해 월등하다. 하지만 남자 3호의 기술에는 요령이 없다. 여자 3호와 여자 2호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다음 주까지 지켜봐야하겠지만, 연애 7년 끝에 결혼에 성공한 유부남이 보기에는 그 전망, 그다지 밝지 않다.
반면 남자 1호는 기술이 턱없이 부족하다. 애정촌에 들어와서 여자 5호에게 반하게 된 그의 순정은 아름다우나,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감상에 젖는 것만으로는 연애를 할 수 없다.
여자 1호는 바쁘다.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데이트를 할 때도, 남자를 대할 때도 여자 1호의 조급함은 쉽게 드러난다. 빨리 판단하고 빨리 결론을 내린다. 여자 1호는 세상에서 제일 비효율적인 일이 연애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짝을 만나기 위해서는 때로 바보 멍청이가 될 필요도 있음을, 한없이 기다리고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여자 1호는 모른다.
<짝>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
<짝>에는 거의 모든 유형의 연애가 등장한다. 우리가 <짝>을 즐겨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많은 출연진 중 적어도 한 명은 나와 같으니까. “어휴, 답답해” 하면서도 어느 순간, “저건 내 모습이야!”를 외치며 등골 서늘해지는 순간이 <짝>의 애청자라면 한 번씩은 있었으리라.
나와 다섯 살 차이나는 친한 형님도 <짝>의 애청자다. 이 형님은 지금껏 솔로다. 짝을 찾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은데 도저히 그 소원을 이룰 수가 없어 대리만족 겸 <짝>을 즐겨본다. 목요일 아침이 되면 지난 밤 시청했던 <짝>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야, 어제 남자 1호 있잖아. 진짜 답답하지 않냐? 거기서 그 말을 하면 어떻게 해?”
마흔을 앞둔 시커먼 남자가 아침으로 컵라면을 들이켜며 <짝>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애잔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형님은 <짝> 출연진들의 품평에 바쁘다.
“여자 2호가 내 취향이야. 3호는 성격이 좀 그렇고, 그런데 남자 중에서 제일 괜찮은 건 6호인 것 같아…….”
<짝>에 대한 감상을 한참 동안 나누다 보면 마지막은 꼭 형님의 신세한탄으로 끝난다.
“근데, 내 짝은 도대체 어디에 있냐? 난 여기 있는데.”
그게 문제에요, 형님.
나는 몇 번이나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한 자리에 서 있으면서 짝을 찾고만 있는 게 문제라고. 연애는 수동적인 사람이 살아남을 만큼 만만한 세계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배제’ 당한다. 다른 이에게 내 짝을 뺏기고 만다. <짝>에서 수도 없이 나왔던 장면들이다. 출연진들이 펼쳐놓는 각종 이벤트와 말들, 그리고 심리전이 유치하고 민망하게 느껴지면서도 끝내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살벌한 경쟁이 주는 비장함과 긴장감 때문이다. 연애는 달콤하지만 그 과정은 살벌하다. <짝>은 출연진들의 말과 행동을 빌어 그 사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짝>의 출연진들이 안정된 직장이나 뛰어난 외모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그런 조건들이 연애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결혼으로 이르는 길을 순탄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들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 둘도 없이 착하고 순진한 내 친한 형님처럼 외모와 직업 모두 평균이거나 그 밑인 사람은 짝은 만날 수 없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이 없어도 내 짝을 찾을 수 있다. 이른바 사랑의 묘약이 주는 기적인데, 나와 상대방의 주파수만 맞으면 서로의 사소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에 빠질 수 있다. 큐피드의 화살은 저 옛날 그리스의 신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없어 답답하긴 하나 여자 5호에게 첫눈에 반한 남자 1호의 모습은 그래서 신선하며 한편으로는 응원해 주고 싶다. 다음 주 그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그의 진심이 통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리고 <짝>에서는 아주 가끔 그런 기적의 광경들이 펼쳐진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
내가 <짝>을 챙겨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10,800원(10% + 5%)
33,750원(1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