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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연극 <나비잠>, 불면의 세계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장가”

9월 19일~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공연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연극 연출가인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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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 <나비잠>은 잃어버린 자장가의 기억, 그 안의 모성을 되돌려주기 위해 시인 김경주가 들려주는 한 곡의 자장가다. 그것은 시의 언어로 이루어진 노랫말과 라이브 연주, 인형극과 그림자극이 한 데 어우러진 새로운 형태의 자장가이며, 동시에 새로운 모습의 시(詩)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아’ 라는 말은 지금 이 도시에서는 너무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단잠’을 꿈꾸는 시대, 도대체 단잠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언제부터 우리 곁에서 희미해져버린 걸까. 마지막 단잠의 기억, 그 끝은 언제나 어린 시절로 이어진다. ‘숙면’의 의미도 알지 못했고, 그것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던 시절. 바로 그 지점에서 단잠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생애 첫 단잠이 시작되었던 순간에 다다르면 그곳에는 나 자신보다 더 익숙한, 그래서 사무치게 그리운 목소리와 리듬이 숨 쉬고 있다. 토닥토닥 어루만지는 엄마의 손길과 젖가슴 냄새를 품고 있는 ‘자장가’가 그것이다. 결국 엄마의 자장가와 단잠은 한 몸처럼 우리를 어루만지다가 어느 순간 아스라이 멀어졌다. 쉬이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세계, 이곳은 자장가를 상실한 공간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시인 김경주는 자장가를 이야기한다. 그에게 자장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모성이 낳은 노래,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모성인 노래. 김경주 시인에게 자장가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자장가를 잃어버린 이곳은 시인의 눈에 너무나 위태로워 보인다. 모성이 사라져버린 곳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흐릿해지는 그 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시인 김경주는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자장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극 <나비잠>을 탄생시킨 것이다. 9월 19일부터 29일까지 열흘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상영되는 이번 작품은 시인 김경주가 직접 대본을 쓰고, 미국의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연극 연출가인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가 협력연출로 참여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모성과 자장가에 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두 사람을 채널예스가 만났다.




시와 극이 한 몸인 듯한 연극, 시극 <나비잠>

“저한테 시와 시극은 한 몸에서 태어난 두 개의 가지 같은 거예요” 김경주 시인은 자신에게 있어 시와 연극 작업은 쌍생아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시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극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관심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시극 운동을 해왔다는 사실은, 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독자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시극은 생소한 장르다. ‘시로 이루어진 연극인가?’ 짐작만 할뿐 쉽게 다가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막연한 짐작이 틀리지 않은 까닭이다. 시극은 연극의 대사가 시의 형태로 쓰인 희곡을 말한다. 산문이 섞여있기도 하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운문이다.

김경주: “T.S. 엘리엇의 『캣츠』도 시극이거든요. 열두 마리의 고양이에 대한 시집이에요. 그 이야기가 처음에는 시극으로 상연되다가, 후에 브로드웨이 제작자의 손을 거쳐서 뮤지컬이 된 거죠. 셰익스피어가 쓴 모든 극들도 사실은 무훈시라고 불리는 시극이고요. 요즘에는 시극을 마치 실험의 한 부분인 것처럼 취급해 버리는데, 시극의 시적인 느낌과 은유와 상징의 작업들은 오히려 연극의 가장 본질이라고 할 수 있죠.”

김경주 시인은 스토리텔링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시극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현상을 안타까워했다. 시극이 품고 있는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작업들은 거세되고, 친절하게 모든 이야기들을 채워 넣어주는 이야기들에 밀려 무대를 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차원에서 연극 무대가 균형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시적인 연극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시와 극이 한 몸인 듯한 연극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출발한 시극 <나비잠>은 그러한 시인의 오랜 갈증을 해소시켜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경주: “시극은 멸종하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시심을 잃어가고 있어요.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시가 마치 사치나 감정의 산물처럼 노출되고 있죠. 그런 측면에서 시극의 멸종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점점 시극이 상연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비잠>을 통해서 더 많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누군가 또 이런 시극 작업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촛불처럼 서로의 손으로 불씨를 옮기면서 살려가야 되는 작업인 거죠.”




모성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노래하다

시인 김경주의 시를 한번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 그는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섬세한 결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촘촘한 체로 단어들을 거르고, 그것들을 지독하리만치 꼭꼭 씹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킨다. “결국 시극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그 나라 모국어의 속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경주 시인 특유의 ‘언어를 대하는 방식’은 시극 <나비잠>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갓난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이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 ‘나비잠’을 작품의 제목으로 삼고, 모국어의 속살이 잘 반영되어 있는 자장가들을 찾아 직접 노랫말을 다듬은 사실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그가 ‘시인은 그 나라의 모국어에 가장 예민한 족속 중에 한 명’이라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김경주 시인에게 이 모든 작업은 지독한 것이 아닌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감독에게도 우리 모국어의 질감이 그대로 전달되었을까.

데오도라: <나비잠>은 대단히 아름답고, 응축되어 있고, 의미가 깊은 이야기예요. 그래서 빨려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고통과 사랑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시가 아닌 대사를 통해서도 그걸 느낄 수 있었죠. 한국어는 알 수 없지만 그 리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마을 사람들이 수군대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저 아이는 누구지?(who is that baby?)’ ‘그 아이는 그 아이야(that is that baby)’ ‘우리가 버렸던 아이(that is the baby that we abandoned)’ 와 같은 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리듬이 느껴지고 극적 긴장감이 느껴지는 거죠.”

시극 <나비잠>은 서울의 사대문 축성을 배경으로,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엄마(모성)를 그리워하는 두 형제의 엇갈린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 없이 남겨진 아이를 마을 사람들이 젖동냥을 해가며 기르고, 그렇게 자란 아이를 통해 또 다른 이가 잃어버렸던 모성을 찾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 전통의 정서와 풍습을 담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감독은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 안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신화적 보편성을 발견한 까닭이다.

데오도라: “한국의 역사라든지 여러 가지 디테일한 배경들은 알 수 없지만, 정서적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 작품은 대단한 은유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머리카락이 계속 길게 자란다든지, 어린 아이가 버려지고, 균형을 잃어버린 사회 안에서도 생명력을 지닌 초자연적인 존재가 자라는 부분들이죠. 그 이야기를 접했을 때 충분히 정서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보편적인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해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었어요.”




<나비잠>과 고대 그리스 설화는 결국 운명에 관한 이야기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감독은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자신이 경험한 서로 다른 두 문화를 바탕으로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미국의 사회문제와 역사를 다루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 고전에서 영감을 얻어 연극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여성수형자들의 역사를 다룬 <죄 많은 몸 Body of Crime>은 1997-8 시즌 Burns-Mantle 최고의 연극 10선에 선정되었고, 이듬해인 1999년에는 미국 최고 극작가상(The American Theater Wing Design)을 수상했다. 트로이 전쟁에 대한 3편의 연극 중 <이피게니아 Iphigenia>는 2006년 New York Innovative Theater Award를 2개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특히 그리스 철학에 대한 그녀의 이해는 시극 <나비잠>을 연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김경주: “데오도라 선생님은 동시대성의 측면으로 그리스 희랍 설화를 현재화시키는 작업들을 많이 하고 계세요. 저도 고대 희랍 서사를 좋아하다보니까 이야기 축을 만들 때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의견을 같이했죠. <나비잠>은 우리나라의 가상 설화이지만 희랍 설화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희랍 설화는 결국 운명에 관한 이야기예요. ‘인간은 운명을 이길 수 있냐, 못 이기느냐’에 희랍 설화의 모티프가 형성되어있죠. 그래서 이야기의 축을 짤 때도 데오도라 선생님과 함께 했고요. 구체적인 이미지나 장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상징적인 측면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렇다 보니까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전혀 없었어요.”

조각가이자 무대디자이너로서 연극과 처음 만난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감독은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자신이 활동했던 라마마 극장에서도 인형극과 음악, 비디오,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해서 독특한 연극을 창작하며 주목을 받았다. 라마마 극장은 1961년 앨런 스튜어트가 설립한 이후 ‘제 3세계 예술을 전 세계에 알린 진보적 연극센터’로 자리 잡았다.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감독이 <나비잠>에 협력연출로 참여하게 된 것도 라마마 극장에서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

데오도라: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단장도 8년 전쯤 라마마 극장의 단원이었어요. 그때 같이 활동하면서 ‘서로 협업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앨런 스튜어트 선생님께서도 생전에 ‘김혜련하고 데오도라가 같이 하면 대단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둘이 꼭 같이 해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고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올해 3월에 김혜련 단장에게서 콜라보레이션을 하자는 이메일이 왔어요. <나비잠> 대본의 일부를 봤는데 느낌이나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작품이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갖게 됐고 함께하기로 했죠. 김혜련 단장은 무대 언어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해 온 오브제 작업, 즉 인형이나 그림자를 이용하는 새로운 기법을 시어의 무대적 표현방법으로써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김경주: <나비잠>의 대본을 쓰면서 데오도라 선생님의 이미지 작업들을 영상을 통해 충분히 봤어요. 이미 이야기를 설정할 때부터 데오도라 선생님의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자칫 잘못하면 제 언어와 낯설게 충돌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공유한 거예요. 저에게 중요한 건 ‘데오도라 선생님이 어떤 오브제를 쓰는가’ 하는 것보다 ‘그녀가 그런 오브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무슨 철학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냐’를 파악하는 것이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느낌표들을 가지고 온 후에 작업이 이루어졌어요.”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감독은 한국을 처음 방문했지만 이전부터 한국에 대해 친숙하고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었던 라마마 극장의 앨런 스튜어트 대표가 ‘한국은 대단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라마마 극장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는 유미아 감독을 통해서도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감독과 한국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었다.

데오도라: “한국의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의 배우나 스태프들이 상당히 개방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이디어를 서로 교류하고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데 있어서 편협적이지 않고 굉장히 오픈되어 있어요. 하나를 만들어서 보여주면 잘 받아들이면서 개방적으로 서로 터놓고 얘기해요. 다양한 미디어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는 것에도 망설임 없이 개방적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자장가는 ‘달래는 노래’

시극 <나비잠>은 김혜련 단장의 서울시극단장 취임 후 첫 작품으로 ‘서울의 혼’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평소 김경주 시인의 작품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김혜련 단장이, 서울의 사대문 안을 배경으로 서울의 영혼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나비잠>은 탄생되었다. 시인 김경주의 눈에 사대문 안의 이 도시는 ‘모성을 잃어버린 불면의 세계’였고 그는 자장가를 통해 이곳에 모성을 되돌려주기로 했다.

김경주: “sleeping rhyme(나비잠)이라는 게 잠으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리듬이잖아요. 사람을 무의식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 노래라는 건 가장 편안한 노래라는 거죠. 그런 잃어버린 자장가도 복원하고, 그 자장가에 담겨있는 모국어의 속살을 가장 시적인 형태로 전달해서 보이고 싶은 게 이번 작품의 특징이에요.”

그는 자장가에 대해 모성이 가장 응축되어 있는 노래이자 ‘달래는 노래’라고 이야기했다. ‘달랜다’는 말, 그것은 시인 김경주가 <나비잠>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였다.

김경주: “‘달랜다’라는 단어가 줄 수 있는 질감이 굉장히 모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비잠>의 주인공들은 모성에 대한 그리움이 강한 인물들이에요. 잃어버린 모성을 그리워하는 그 인물들이 자장가를 통해서 모성을 찾아가고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대문을 축성하는 과정 또한 모성성과 닿아 있다는 것이 작품 안에 녹아들어가 있고요. 저는 우리 시대가 모성을 회복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단순히 ‘엄마를 그리워하자’ 이런 맥락이 아니에요. 우리가 국어가 있고 모국어가 있잖아요. 국어가 그 나라에 필요한 언어를 사전화시키는 작업이라면, 모국어는 내가 선택할 수가 없는 거예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중얼거렸던 말이고, 태어날 때 이미 모국어를 갖고 세상에 나오는 거잖아요. 나라는 버릴 수 있지만 엄마를 부정할 순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모성이라는 건 그런 거죠. 굉장히 본질적이고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그리움의 한 지점에 닿아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 모성이 담겨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소리로 문학을 전달하다

시인 김경주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졌다는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어려워 읽기 힘들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듣기도 한다. 사실 그의 시가 읽기 쉽지 않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작가는 독자를 찾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독자를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자기 안의 질서로 들어와 볼 것을 주문하는 그에게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평이한 언어들을 들려 달라 말하는 것은 무리한 부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작품 <나비잠>을 통해 자신이 대중에게 낯설거나 불편함만 주려고 하는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질감들을 고민하면서, 기존의 작품들보다 조금 더 따뜻한 질감으로 모성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시극이라는 낯선 장르를 선택한 이유도 대중에게 낯선 장르를 읽히겠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시적인 연극이 우리에게도 있어요’라는 한 마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시를 읽지 않는 시대와 사람들을 향해 ‘시적인 방식’으로 시를 들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김경주: “시를 읽는다는 건 다 설명하지 않고도 전달될 수 있다는 거예요. 이야기는 채워가는 거잖아요. 시는 상징이고요. 결국 시에 대한 애정은 시극에 대한 애정과 같은 말이겠죠. 시와 시극은 결국 침묵을 만들어내는, 침묵의 질을 표현하는 작업이에요. 시라는 건 행간을 읽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행과 행 사이를 만들어내야 되기 때문에 침묵의 질을 표현하는 작업이에요. 시와 시극의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 침묵의 질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 하는 방법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에게 시극이란 또 다른 방식으로 시를 만날 수 있는 무대인 동시에, 미디어와 영상의 시대에 시와 대중을 만나게 해주는 접점이다. 시인 김경주가 종이 위를 벗어나 무대 위에 서서 시를 이야기하는 이유, 관객들이 시극 <나비잠>을 통해 만나게 될 시의 모습은 무엇일까. ‘독자에게 소리로 문학을 전달해야 한다. 한국 문학이 살려면 소리가 살아야 한다’고 말해온 그의 이야기를 통해 대답을 대신한다.

김경주: “우리는 입시 교육과 제도권 교육으로 인해서 묵독에 익숙해요. 어떤 텍스트를 중얼거려 보거나 소리 내 보거나 체감해볼 수 있는 기회자체가 없는 거예요. 눈으로 읽고 다 안다고 생각해요. 인식은 고급화 되는데 몸으로는 하나도 못 만나는 거죠. 아무리 어려운 책도 소리 내서 읽어보면 작가의 호흡을 그래도 가져갈 수 있어요. 문학은 숨 쉬는 경험이에요. 숨 쉬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없고, 작가도 숨 쉬지 않고 글을 쓸 수 없어요. 모든 문장은 악보와 똑같이 호흡이에요. 그걸 소리 내서 읽는 순간 작가의 몸이 내 안으로 들어와 숨 쉬는 경험이 그대로 전달돼요. 낭독은 그걸 보여줌으로써 진화되고 발전된 시의 형태나 현대의 많은 텍스트들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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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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