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하루 24시간 돌아가는 가전은 냉장고뿐이다.’ 아니, 이런 관찰력을 봤나. 단 한 번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맞다. 밤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일하는 티를 내는 유일한 가전. 365일 멈추지 않는 가전. 컴퓨터를 하고, TV를 보고 전기코드를 뽑아놓지 않으면 머리에 별이 보일 만큼 짜릿한 등짝 스매싱을 가하는 어머니에게도 냉장고는 열외다. 얼마 전,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나 냉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한여름 폭염에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 보다 더한 스트레스와 짜증을 보였더랬다.
대한민국 가정의 냉장고 보급률은 100%를 넘었다고 한다. 한 집당 한 대의 냉장고는 기본이고 이보다 더 갖춘 집이 많다는 뜻이다. 냉장고, 김치냉장고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화장품 냉장고까지 등장한 지 오래다. TV 광고에는 화려하게 꾸민 스타들이 냉장고가 그들의 연인인 양 사랑스러운 눈길로 응시한다. 한 때 부의 상징이며 수입품에서만 볼 수 있었던 양문형 냉장고는 점차 진화해서 이제는 세세하게 4개의 공간으로 나뉘기까지 하며 김치냉장고를 옵션으로 갖추기도 하고, 급기야는 문에 큐빅을 붙여서 ‘당신이라면 이 정도 화려한 냉장고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소비심리를 자극한다. 모든 가전제품이 초소형, 간소화를 추구하는 마당에 오직 단 하나. 냉장고는 대형화를 택했다. 사는 집이 크건 작건, 냉장고는 크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우리를 파고 든다.
10년쯤 전 구입한 양문형 냉장고를 놓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냉장고가 너무 작다.’ 나와 동생은 늘 말한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 아버지도 늘 말씀하신다. ‘도대체 냉장고에 뭘 그렇게 많이 넣어 놓는 건가.’ 일주일 오래는 열흘에 한 번, 대형 마트에 들러 한 가득 장을 봐 오고 냉장고에 넣어놓는다. 살 때는 대단위로 단가는 더욱 싸게 구입하지만, 정작 얼마나 쓰고 있는 걸까. 근래는 창고형 마트까지 등장해 판매단위는 더욱 커지고, 장을 보는 절대금액도 점점 커지지만, 단가는 줄어든다는 명목 하에 우리의 소비도 한없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누굴 위해 증가하는 소비규모인지는 찬찬히 생각해 볼 일이다.
신선한 야채를 쌀 때 왕창 구입해 냉장고에 넣고 시들시들 해질 때까지 꾸준히 먹는 것과 먹을 때 조금씩 사놓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좋을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먼 길 건너 온 싼 가격의 식 재료를 한 번에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과, 집 근처의 농장에서 생산한 재료를 조금 더 주고 먹을 만큼만 구입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좋을지도 마찬가지다.
냉장기술의 발달로 세계각지의 음식을 신선하게, 이전보다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으나 이와 함께 전세계 어딘가의 농장에서 발생한 유해세균이나 질병유발물질도 가속도를 더해 확산된다. 몇 해 전 유럽에서 발생한 기이한 형태의 변종 대장균도 이런 냉장기술을 등에 업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국의 푸드마일은 세계적으로 그 거리를 자랑한다. 1인당 식품수입량 역시 전세계 1위를 차지한다. 우리의 식탁은 전에 없이 풍성해졌지만 우리의 건강은 시시각각으로 위협받고 있다. 지금 당장 당신의 냉장고에 든 것의 리스트를 작성해보라. 같은 재료를 계속 구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확인하라. 정말 필요한 것이 그 안에 있는지. 냉장고 구석 어딘가에 당신의 생명을 위협할 상한 재료가 있지는 않은지. 더 이상 대형마트와 전자 제품회사의 상술에 휘둘리지 마라. 당신의 건강은 물론, 통장의 잔고까지 지킬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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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하는 냉장고 KBS 과학카페 냉장고 제작팀 | 애플북스
『욕망하는 냉장고』는 냉장고에 보관되는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건강, 질병, 과학기술, 경제적인 가치, 전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문제, 현대인의 욕망과 습관, 그 습관과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까지 담은 책이다. 냉장고는 어떻게 태어나고 우리 곁에 왔는지, 지금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각각의 개인에게는 어떤 존재로 머물고 있는지, 미래를 위해 진짜 가치 있는 냉장고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냉장고에 대한 문화인류학’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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