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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꼭꼭 숨지 못한 머리채 휘어잡기

우리 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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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숨바꼭질>이 표현하는 집은 단순한 주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계층의 극명한 상징성을 담고 있기에 더욱 공포스러운 대상이 된다. 허정 감독은 아파트를 욕망하고 과시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회 계급을 드러낸다. 여기에 중산층이 바라보는 하위계층에 대한 편견, 자신의 위치를 침탈당할까 두려워 찍어눌러버리고야 말겠다는 그들의 확고한 이기주의를 가시화하면서 사람들의 욕망이 공포가 되는 순간을 드러낸다.


가장 편안해야 할 개인의 공간에 불쑥 찾아온 낯선 침입자. 견고하게 지켜져야 할 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순간, 드러나는 개인의 공포와 이기심은 생각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다. 허정 감독의 <숨바꼭질>은 얼핏 반짝이는 것 같지만 모래성처럼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중산층의 허영과 위기의식을 아파트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생생하게 현실로 불러온다. 1970년대 개발의 바람 속에 난립하기 시작한 아파트는 중산층의 표상이 되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아파트는 점점 더 크고 화려해지고, 브랜드를 가진 아파트는 중산층의 허울 좋은 표상이 되어간다. 하지만 재개발에서 멀어진 낡은 아파트는 70년대의 낡은 세속을 끌어안은 채, 하나의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어 그 궁핍한 삶은 후대에 세습된다. 이렇게 아파트는 극명하게 드러나는 계층 간의 갈등을 그 속에 숨긴 채 우뚝 서 있다. 어떤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낡은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하층민의 괴담 <소름>이 될 수도, 모두 모여 살지만 아무도 소통하지 않는 공포 <콤플렉스>일수도 있다. 그리고 고급 아파트와 낡은 아파트 사이를 오가면서 계층 간의 공포를 이야기 하는 <숨바꼭질>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영화가 표현하는 층위는 모두 다르지만, 주거환경과 가족주의의 근원적 ‘공포’는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숨바꼭질>이 표현하는 집은 단순한 주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계층의 극명한 상징성을 담고 있기에 더욱 공포스러운 대상이 된다. 허정 감독은 아파트를 욕망하고 과시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회 계급을 드러낸다. 여기에 중산층이 바라보는 하위계층에 대한 편견, 자신의 위치를 침탈당할까 두려워 찍어눌러버리고야 말겠다는 그들의 확고한 이기주의를 가시화하면서 사람들의 욕망이 공포가 되는 순간을 드러낸다. 내 속에 숨어 있던 날선 이기심을 발견하는 순간이야 말로, 관객들이 가장 무서운 순간이다. <숨바꼭질>은 주인공 성수의 형, 성철의 이웃집 여성의 집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몰래 드나드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철거가 결정된 허름한 아파트, 집집마다 적혀있는 암호 같은 표식들은 스산한 공포감을 안겨준다. 성공한 사업가 성수(손현주)는 두 자녀와 아내 민지(전미선)와 함께 서울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형 성철이 행방불명된 것 같으니 짐을 정리해 달라는 관리인의 전화를 받는다. 수십 년 동안 연락하지 않던 형의 집에서 성수는 집집마다 초인종 밑에 의문의 암호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집으로 돌아온 성수는 어느새 자신의 집과 이웃집에서 성철네 집과 같은 표식이 생긴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괴한이 침입해 성수네 가족을 공격하는 사건에 휩싸인다.


영화는 성철과 성수의 과거와 의문의 암호, 그 사이를 파고드는 미스터리를 오가면서 무서운 퍼즐 게임을 펼친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와 맞닿아 가는 지점에 충분히 공감할만한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손현주, 문정희, 전미선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열연은 아쉬운 영화의 균열 사이를 촘촘하게 채운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이어지던 영화의 어조가 중후반부 넘어가면, 집을 지키려는 자들과 생존해야만 하는 사람들 사이의 지독한 사투로 변모하는데, 중산층 가정의 얼굴을 대표하는 손현주와 전미선의 불안과 지긋지긋한 삶을 벗어나길 희망하는 문정희의 욕망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이입되어, 마치 내 삶의 터전을 위협당하는 것 같은 불안함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침입에 대한 불안함과 공포 때문에 중산층 가족들은 더욱 곤고하게 문을 걸어 잠그지만, 이미 침입자는 내부에 있다. 그 순간 집이라는 공간은 외부와 단절된 끔찍한 공간이 된다. 가장 안락해야 할 공간이 가장 끔찍한 공간으로 변화하는 순간의 불안함이야말로 <숨바꼭질>이 드러내는 공포의 근원이 된다. 게다가 내 집에 숨어들어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리는 존재가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라, 나와 함께 숨 쉬고 나와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소름끼치는 현실을 반영한다.


꼭 걸어 잠근 집 현관문을 다시 한 번 힐끔 쳐다보고서도 안심이 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숨바꼭질>의 소재가 픽션이 아니라 실화라는 사실 때문에 그 공포는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된다. 계층 간의 갈등과 그를 통한 비판적 시선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지만, 허정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로 공간과 계급, 그 사이의 공포라는 어려운 주제를 꽤 능숙하게 다뤄낸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현실의 공포가 내 삶의 공간에서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가 불쑥 올라탈지 모르는 엘리베이터, 현관문을 열기 전 뒤를 돌아보거나, 초인종 아래 표식은 없는지 살피게 거나, 집안에 들어서서 꽉 닫힌 문과 옷장 사이를 기웃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들


<테이크 쉘터>

제프 니콜스 감독의 2011년 작품 <테이크 쉘터>는 미국 중산층의 위기와 병적 불안을 종말에 담아낸 영화이다. 35세의 성실한 가장 커티스(마이클 섀넌)은 악몽에 시달린다. 폭풍우가 몰려오고 갈색 비가 내리고, 애완견에게 팔이 물어 뜯기는가 하면, 좀비가 자신의 가족을 헤치려 하기도 한다. 환영과 환청에 사로잡힌 커티스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커티스는 지구에 종말이 오리란 징후를 느낀다. 여기에 어머니의 정신분열증이 자신에게 유전되었으리란 불안함에 사로잡힌다. 지구의 종말이 오건, 자신이 정신질환에 사로잡혔건 어떤 경우라도 가족은 위험하다. 홀로 맞서 싸우면서 커티스는 대출금도 갚지 않은 집을 담보로 방공호를 만들지만, 불안은 그를 계속 엄습해 온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들이닥쳤던 하우스 푸어에 대한 상징 같지만 묵시론적 메시지는 미국이 아닌 우리 사회에도 대입해 볼 수 있는 현실성 있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하녀>


<4인용 식탁>

이외에도 중산층 가정 혹은 가족을 소재로 한 공포 스릴러 영화도 있다. 가정이라는 내밀한 공간과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생채기는 조금만 드러내면 익숙하면서도 섬뜩한 스릴러가 되곤 하는데, 중산층 가정의 저열한 속내가 공포가 되는 순간은 이미 고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1960년 작품 <하녀>는 하녀의 욕망과 그녀를 밀어내고 견고한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중산층의 위선을 스릴러 장르에 녹여낸 작품이었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가족 멜로(부르주아적 남편과 부인 사이에 끼어든 여성)로서의 스릴러 혹은 공포 영화로 발전하는데, 2003년 이수연 감독의 <4인용 식탁>은 낯선 침입자를 원혼 혹은 유령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가장 잘 안다는 전제하에 아주 깊숙한 뼛속까지 파고드는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녹여낸다. 같은 해 <아카시아>는 피가 섞이지 않은 대체 가족 사이를 맴도는 원혼의 이야기를 통해, 중산층의 허위와 위선을 피로 물들이는 영화였다. 그보다 앞선 2001년 윤종찬 감독의 <소름>은 가족 살해라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허름한 아파트를 통해, 모성애와 가족애의 균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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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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