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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고다이버, 이 언니를 보라

모든 여성의 몸은 신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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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버, 이 언니를 보라. ‘신의 선물’이라는 이 언니의 이름을 불러 보라.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고귀한 신의 선물이다. 그리고 몸의 노출은 정신의 노출이기도 하기에 몸을 통한 정당한 발언은 멈출 수 없다. 그러니 퀸의 노래처럼, 지금은 멈추지 말고, 레이디 고다이버처럼 달려라, 힘껏 외치며 달려라.

레이디 고다이버.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공항 면세점이었다. 초컬릿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벌거벗은 여인이 긴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말을 타고 있는 상표가 인쇄된 초컬릿 박스를 발견한 것이다. 아니, 이 독특한 언니는 누구시지? 애마부인인가? 사소한 부분의 역사를 미치도록 궁금해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초컬릿을 녹여먹으며 책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 매력적인 원조 나체 시위자 언니를 만났다.


코벤트리 마을 중앙 광장에 있는 레이디 고다이버의 동상

레이디 고다이버(Lady Godiva)는 바이킹의 일파인 데인족이 영국을 침략해 지배하던 시절인 11세기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머시어의 2대 백작 레오프릭의 아내였다. 고다이버란 이름은 고대 영어로는 고디푸(Godgifu)였는데 이는 신의 선물(God gift)란 뜻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신앙심이 깊던 고다이버 백작부인은 무거운 세금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을 보며 가슴아파했다. 1016년 데인족 국왕 커누트가 즉위한 이후 덴마크 정복에 나서면서 원정비용을 위해 데인족 지배자들은 가혹할 정도로 많은 액의 세금을 영국에서 징수해갔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데인인들에게 낸 세금을 데인겔트라고 부르는 용어가 따로 생길 정도였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성당에서 농민들을 위해 기도하던 고다이버는 남편 레오프릭 백작에게 세금을 낮춰달라고 부탁한다. 거듭된 간청에 화가 난 남편은 “만약 당신이 알몸으로 코벤트리 동네의 시장거리를 한 바퀴 돈다면 그렇게 하겠다!”라고 소리 지른다. 이에 당시 10대 중반의 소녀였던 고다이버는 말을 타고 코벤트리 마을을 달려 버렸다.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 들어가 커튼을 내리고 그녀의 알몸을 보지 않았다. 고다이버가 돌아오자 감동한 레오프릭은 세금을 낮추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이후 영지를 자비롭게 다스렸다고 한다. 영국 런던에서 서북쪽으로 150km에 위치한 코벤트리 지역에서는 1678년 이래 그녀의 승마 시위를 재현한 퍼레이드를 벌였으며 1949년에는 마을 중앙 광장에 그녀의 기마상을 세워 현재까지 그녀를 기리고 있다.

레이디 고다이버의 일화는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라파엘 전파에 속하는 화가 존 콜리어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도 말을 탄 레이디 고다이버의 그림을 그렸다. 영화도 2편 제작되었다. 피터 가브리엘은 ‘모던 러브’에서, 그룹 퀸은 ‘돈 스탑 미 나우’의 가사에서 레이디 고다이버를 언급하기도 했다. 레이디 고다이버, 그녀의 숭고한 저항 정신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고다이버 초컬릿, 맥주, 영화 포스터

그러나 이런 그녀의 원조 나체 시위는 역사적으로 실재(實在)한 사실이 아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레오프릭 백작은 실재 인물이지만 이 유명한 나체 시위는 그들 부부가 살아있던 당대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역사학자들은 지배자들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대한 반감이 과거 민중들 사이에 평판이 좋았던 레이디 고다이버의 독실한 신앙심 그리고 농노에 대한 자비심과 더해져 후대에 성립된 전설이었다고 본다. 이 전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각국의 작가들에 의해 재창작되었지만, 정작 레이디 고다이버의 고국인 영국의 역사책에서 그녀가 등장한 부분을 찾아보면 겨우 이 정도 언급 뿐이다.

크누트도 또한 해외에 오래 머무르는 기간에 영국정부를 위해 애를 썼다. 1017년에 그는 왕국을 노섬브리어, 이스트 앵글리어, 머시어와 웨식스의 네 개의 백작령으로 나누었다. 이것은 분명히 지역적 분리주의 감정을 재생시킬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는데, 특히 노섬브리어와 이스트 잉글리어의 백작들이 모두 데인인들이었기 때문에 그러했다. 치세가 끝나갈 무렵에는 대부분의 중요한 인물들은 노섬브리어 백 시워드, 머시어의 백 레어프리크(그의 아내는 코븐트리의 유명한 고디바였다) 그리고 웨식스 백 고드윈이었다.-「옥스포드 영국사(p.121), 케네스 모건 엮음 / 한울아카데미」

이런 박한 서술은 레이디 고다이버의 승마 시위 일화가 그녀 생존 당대에 기록된 역사서에는 보이지 않으며, 사후 150여년이 지나서야 웬도버의 로저(Roger of Wendover)가 쓴 연대기인 <역사의 꽃들(Flores Historiarum)>에 그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저자 웬도버의 로저는 세상의 창조부터 1235년까지의 세계사를 이 책으로 정리했다. 그는 그 시절 연대기의 경향대로 사실 외에 전설도 포함하여 기록했다. 특히 수도승인 저자는 등장 인물의 신앙심을 보여주는 일화를 중요시 여겼다. 그러기에 레이디 고다이버의 일화 역시 학계에서는 구비전승되다 기록된 전설로 보고 있다. 그래서 웬도버의 로저 이후에 나온 다른 저자의 연대기에는 레이디 고다이버가 긴 머리를 풀어 알몸을 가렸다거나, 몰래 백작부인이 지나가는 것을 엿보던 톰이란 재단사가 천벌을 받아 눈이 멀었다는 에피소드가 더해지기도 한다.


<역사의 꽃들(Flores Historiarum)> 웬도버의 로저 지음

고다이버 전설은 이중적 주제를 갖고 있다. 겉보기로는 고귀한 귀족 부인의 애민정신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설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 지배계급의 구미를 맞추려는 위장이다. 속 깊이 숨겨진 이면적 주제는 지배계급의 착취를 폭로하는 것이다. 압제자 레오프릭 백작은 침략자 데인인으로, 선량한 고다이버 백작부인은 피지배자 앵글로색슨족 여성으로 설정하여 민족 갈등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전설은 영주와 농민 사이의 계급 갈등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 엿보는 톰(이 일화에 등장하여 관음증 환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피핑 톰(Peeping Tom) ’)이 한 명씩은 숨어 있는 법, ‘아름답고 고귀한 젊은 여성의 나체 승마’라는 쇼킹하고 에로틱한 소재 역시 이 전설이 오래 지속되고 전 세계에 퍼지게 만든 큰 요소임은 틀림없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왜 레이디 고다이버의 전설이 사실이 아닌데도 이런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왜 어떤 여성들은 수치심을 무릅쓰고 나체 시위를 할까? 남성들의 나체 시위보다 여성들의 나체 시위가 더 충격적이고 호소력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레오프릭 백작이 자신의 아내에게 나체 요구를 한 것은, 그렇게 하면 요구를 들어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는 세금을 감면해 주라는 당신의 요구를 절대 들어줄 수 없다.”라는 강한 거부의사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 고려가요 <정과정>에서 ‘구운 밤을 모래 땅에 심어서 싹이 나면 그때야 사랑하는 님과 헤어지겠다’는 조건을 다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이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 아내의 나체라는 조건을 대뜸 내건 것일까? 레오프릭은 변태였던 것일까?

농토에 대한 세금 감면이란 부분에 주목해 보자. 산업혁명 이전의 생산과 풍요란 전적으로 토지에서 발생하는 농작물의 수확과 여성의 출산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농토와 여성의 몸은 같은 셈이다. 그래서인지 중세 서양에서는 풍요를 빌기 위해 여성이 나체로 밭을 도는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즉 백작부인의 나체를 내보이는 것은 그 자체로 영주인 지배자의 토지와 그 풍요에 대한 권리를 일부분 양보하여 영민에게 나눠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고다이버는 옷도 장신구도, 옷과 장신구가 의미하는 신분도 자존심도 다 벗은 알몸으로 시위를 하기에 농민을 위한다는 그 주장이 더 진실하고 강하다. 이렇게 알몸으로 시위하는 레이디 고다이버에게는 대지의 어머니, 생명을 살리는 여신의 이미지가 반영되어 있기에 전설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원초적인 감동을 준다. 그래서인지 현재 환경보호와 재개발 등 토지 문제와 관련한 여성들의 시위에는 나체 시위가 종종 등장한다. 그 경우 개인적 주장을 내세우는 나체 시위보다 호소력도 큰 편이다.


존 콜리어의 그림 <레이디 고다이버>

대부분의 문화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나체를 보여주는 것을 더 꺼린다. 여자는 남자보다 성적 대상이 되는 데 더 익숙하다. 이상적인 신체상에 맞추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더 크다. 남자보다 성적 학대와 강간을 더 많이 당하고, 강간을 당하면 임신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잃을 것도 더 많다. 따라서 뜻을 전달하기 위해 옷을 벗는 행위는 남성보다 여성이 할 때 더 영향력이 크다. 옷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보다 주장을 더 앞세운 것은 주장에 전념하겠다는 의미니 말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오래전부터 나체 시위에 참가해도 유독 고다이버 부인이 하나이 상징이 된 것도 그런 이유다.-「나체의 역사(p.120), 필립 카곰 지음 / 학고재」

그러나 모든 여성의 나체가 레이디 고다이버의 경우처럼 보호받을 대상으로 고귀하게 여겨지며 대접받지는 않는다. 다음의 예는 1977년, 인천에 있는 동일방직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7월 25일, 민주 노조를 붕괴시키려는 회사 측에 대항하고자 농성중인 여성 노동자들을 강제 진압하기 위해 폭력 경찰이 투입되었다. (동일방직 노동운동 회고 기사가 2013년 8월 현재 한겨레 신문에 <길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이다.)

이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세 안팎의 여성 노동자들이 일제히 작업복을 벗어 던졌다. “아무리 무지막지한 경찰이라도 알몸으로 버티는 우리들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다. 모두 옷을 벗자. ” 누군가의 말에 따라 노조 사무실에서 농성하고 있던 70명이 순식간에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경찰은 알몸으로 저항하는 이들 여성 노동자들을 덮쳐 곤봉과 주먹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빗발쳤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노동자들이 속출하였다. 한마디로 당시의 현장은 생지옥 그 자체였다.-「다시쓰는 한국 현대사 2(p.279), 박세길 지음 / 돌베개」

레이디 고다이버의 경우, 귀족 여성이라는 신분 덕분에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녀를 보호할 경우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확실히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위의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이나, 재개발 지역의 용역 철거 깡패들에게 맞서는 철거민 여성들의 나체는 보호받지 못한다. 사람들이 여성의 몸을 보는 이중의 잣대 때문이다. 실제로 옷을 벗고 재개발 지역의 포크레인을 막아서는 여성들의 몸 위로 떨어지는 것은 알몸을 가려줄 옷이나 담요 대신 “미친년” 이란 욕설이다. 심지어 같은 동료인 철거민 시위대원에게서도 그런 욕을 듣는다.

“소시지와 돼지비계 덩어리를 보여줬더라면 더 좋아했을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는 2013년 4월 8일 독일 하노버 산업 박람회 개막식에 상의를 벗고 등장한 우크라이나 여성 사회운동 단체 페멘(FEMEN) 시위대를 보고 놀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성극단주의(Sextremism)’를 행동 강령으로 삼는 페멘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억압의 상징인 가슴에 구호를 써 드러냄으로써 여성의 나체를 저항의 도구로 삼는다. 이날도 현장의 페멘 회원은 가슴을 내보이며 “푸틴은 독재자”라고 외친 후 현장에서 바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 도착한 푸틴은 기자회견장에서 “내가 아침 먹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아름다움보다 소시지나 돼지고기 지방을 보여줬더라면 더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푸틴은 시위 여성의 벗은 가슴에서 소시지나 돼지 비계를 떠올린 것일까?


피멘 회원의 시위를 보고 놀라는 푸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지위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나뉜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는 그녀의 태어난 성과 몸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흔히 이분법으로 구분된다. 성녀와 창녀, 조강지처와 애인, 곰과 여우 등등. 이런 인식은 구체적인 형상, 몸을 지니고 있다. (반면 여자들이 남성을 평가하고 나눌 때는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자상한 남자, 능력있는 남자, 유머있는 남자 등등. 대개 구체적 몸의 형상을 가지지는 않는다.) 남성들은 자신이 속한 가족 영역 안의 여성들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몸을 가진 대상으로 여기고, 그 여집합에 속하는 여성은 자신에게 서비스해야할 몸을 가진 여성으로 여겨서 각각 그에 맞게 대해야 한다는 편견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본다면 대부분의 여성을 자신이 존중해야할 인간으로서의 몸이 아닌,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하찮은 몸을 가진 존재로 여기게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시위하는 여성의 몸에서 서양에서 평범한 먹거리인 소시지나 돼지고기를 떠올린 푸틴이 그것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유머랍시고 기자회견장에서 말한 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일부 남성의 무의식적 인식을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는 여성의 몸을 영혼과 주장이 없는 욕망 충족의 대상, 먹는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한 가지 예가 더 있다.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의 단편 <비곗덩어리(Boule de Suif)>를 보자. 1870년 보불전쟁으로 프로이센에 점령당한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 피난 마차가 남쪽으로 출발한다. 마차 안에는 혁명가와 부자, 귀족, 수녀 외에 ‘비곗덩어리’라고 불리는 뚱뚱한 창녀가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곗덩어리를 비웃지만 그녀가 준비해간 음식을 얻어 먹으며 좀 친해진다. 국경을 경비하는 프로이센 장교가 성적인 요구를 하면서 마차를 통과시키지 않자 일행은 애국심에 적국의 장교를 거부하는 비곗덩어리를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한다. 그러나 일행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돌아온 그녀를 일행은 노골적으로 경멸한다. 이렇듯 여성의 몸, 특히 지위가 낮고 경제력이 없으며 성적이든 성적이 아닌 다른 노동이든 서비스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몸은 하찮은 ‘비곗덩어리’로 여겨진다. 모든 여성의 몸이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합당하게 존중받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비곗덩어리’에게 발언권이란, 없다.

이제 앞서 레이디 고다이버 이야기에서 했던 질문을 바꾸겠다. “왜 어떤 여성들은 나체시위를 할까?“라는 질문을 ”왜 어떤 여성들은 나체 시위를 할 수밖에 없을까?“라고. 아마 그녀들에게 무기란 자신의 몸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에게 나체란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물론 의도와 달리 여성의 몸이 도구화, 상품화되는 문제는 있다. 서구권에서 여성의 상체 노출 정도는 이제 주의를 끌지 못하는 반면, 이슬람권 같은 곳에서는 시위 여성의 생명이 위협당하기도 한다. 또 그릇된 시위방법으로 여겨져 정당한 여성운동마저 한꺼번에 비난받기도 하는 문제점이 생기기도 한다. 대중들에게 와 닿지 않는 주장을 내세운 나체 시위는 반감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와 닿는 주장인 경우에도 반감을 사는 경우가 많다.


공유지에서 내쫓긴 멕시코 농민들의 도심 나체 시위 장면

그러나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체 시위의 이점은 언제나 있다. 그릇된 현실과 체제에 도전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는 것을 도발적 행동으로 표현하며, 아무것도 숨길 것 없고 아무 이익을 계산하는 것도 없이 순수하게 맨몸으로 주장만 한다는 시위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데에는 나체 시위만큼 힘이 센 시위도 없다. 더군다나 그 시위하는 몸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몸이라면 더욱 그 주장은 호소력을 더한다. 자, 이제 다시 처음의 원조 나체 시위자 언니를 만나러 가자.

나, 레이디 고다이버. 이 언니를 보라. 비록 전설이긴 해도 나의 나체 시위는 용감한 행동이었고 많은 사람에게 큰 혜택을 주었다. 나의 벗은 몸에 대한 존중은 나의 신분에 따른 것으로,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그래도 나, 레이디 고다이버. 이 언니를 보라. 고귀한 신분의 백작부인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의 몸은 다 신의 선물이다. 그러나 여성의 몸은 남성이나 지배자의 욕망 대상이 되거나 돈 몇 푼에 살 수 있는 싸구려 음식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우리의 몸이 우리의 영혼을 담아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조차 무시당할 때도 있다. 아니, 우리가 아무 의견도 낼 수 없는 비곗덩이가 되어 닥치고 가만있기를 강요당할 때도 많다. 그럴 때는 고다이버, 이 언니를 보라. ‘신의 선물’이라는 이 언니의 이름을 불러 보라.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고귀한 신의 선물이다. 그리고 몸의 노출은 정신의 노출이기도 하기에 몸을 통한 정당한 발언은 멈출 수 없다. 그러니 퀸의 노래처럼, 지금은 멈추지 말고, 레이디 고다이버처럼 달려라, 힘껏 외치며 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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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신영

한글을 뗀 이후로 책 읽고 글 끄적거린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 《소년중앙》과 계몽사 세계 명작 동화 전집, 삼중당 문고와 창비 시선, 문학과 지성사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 숙명여대 국문과 입학 후 대하 역사소설을 쓰겠다는 커다란 꿈을 품고 사학을 부전공했다. 그러나 신춘문예에 몇 번 떨어진 이후 그동안의 과대망상과 능력 부족을 깨닫고 겸허하게 독자로 돌아가기로 결심, 한동안 조용히 책 읽고 밥벌이를 하며 살았다. 그렇게 혼자 놀다 보니 너무 심심해서 블로그(blog.yes24.com/mkkorean)에 ‘껌정드레스’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 무작정 읽고 쓰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게으른 배짱으로 역사를 공부하며 독서 기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록들이 모여 어느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 책이 2013년 1월 출간한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이다.지금까지 문학, 역사, 인간이라는 세 개의 열쇠로 세상을 여는 역사 에세이를 쓰는 데 주력해 왔다. 앞으로도 익숙한 이야기들에 낯선 질문을 던지는 즐거운 탐험을 계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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