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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사이코패스 인간에 흥미 많다”

『28』 출간한 소설가 정유정의 향긋한 북살롱 세헤라자데는 내 운명, 소설가보다 이야기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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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일, 향긋한 북 살롱이 열리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뜨거운 열기로 행사장을 북적이게 한 이날의 주인공은 최근 『28』을 출간한 소설가 정유정이었다.

『7년의 밤』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 잡은 정유정 작가의 이번 신작은 발간되기 전부터 이미 큰 화제였다. 한국 문단에서 보기 드문 강력한 서사와 장르적인 긴장감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써나가는 소설가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설 『28』은 출간 2주 만에 8만부가 팔리며 한국 소설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주인공이 섹시해야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 작가보다는 소설가, 소설가보다는 이야기꾼이 좋다고 말하는 소설가.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 곁을 찾아온 이야기꾼 정유정의 ‘향긋한 북살롱’ 그 유쾌했던 시간을 옮긴다.




제목을 『28』이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28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밖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고, 괴질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시간. 그 시간 속에 삶은 너무나도 폭력적이다. 이 무기력한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 28일을 잡았다. 또 다른 것은 암시다. 2 8은 10. 결국 0이다. 제목에서부터 이 도시가 폐허가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독자들이 살다가 화가 나셨을 때, 책 제목을 한번 크게 소리 내 읽어보시라고 정한 거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슬럼프를 심하게 겪었다고 들었다. 어떤 이유인가?

초고를 끝낸 다음이었다. 보충 취재를 나가서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고 다시 원고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6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처음 2주 정도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지리산 둘레길을 8킬로씩 걸었다. 2주가 지나고 나니 서서히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글이 점점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료조사를 너무 많이 한 탓이었다. 처음에 쓴 2,500매를 버리고 시놉시스만 가지고 다시 글을 썼다. 그렇게 4개월 정도 쓰고 나니 이제 책을 출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작품을 쓸 때, 수정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는 뺄셈의 방식으로 글을 쓴다. 일단 초고를 많이 쓴 다음, 읽어가며 덜어내는 식이다.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번 소설은 수년 전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들이 대거 생매장되는 장면을 보면서 구상했다. 누군가가 몰래 찍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이었다. 구제역이 의심되는 돼지들이 산 채로 땅에 묻혔고, 돼지들의 울음소리는 새벽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 울음소리가 내 몸을 쥐어뜯는 것 같았다. 참담했다. 많이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저 돼지들은 인간 때문에 죽어간 것 아닌가. 우리를 위해 죽어간 저 동물들을 위해 최소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 저렇게 작대기로 함부로 처넣을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전작보다 감성적이다. 로맨스도 등장한다.

나름대로는 세기의 로맨스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편집자 분들이 웃더라. 인물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쓸 때는 신이 났다. 하지만 이야기를 점점 진행시키면서 내가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는 일이 마음 아팠다. 사실 독자들이 작품을 읽으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는 사이코패스 인간에 흥미가 많다. 그런데 독자들은 이 부분을 괴롭게 읽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사이코패스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머를 많이 넣으려고 노력했다. 조금 편하게 읽으시라는 배려였는데, 더 무섭다는 반응이 많다. 작품 속 인물 중 수진이 같은 경우는 내 개인사가 많이 들어갔다. 엄마나 동생, 그리고 꿈 이야기까지 모두 다 내 이야기다. 스스로의 개인사를 집어넣은 인물을 끔찍하게 죽여야 했다. 그 부분을 쓸 때 가장 고통스러웠다.

특별히 여성 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설 속에 멋진 남자 주인공이 나와서라는 의견도 있는데 왜 그런 것 같은가.

소설 속 인물은 일단 섹시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해서 따라온다. 주인공이 섹슈얼한 매력이 없으면 독자들이 반응하지 않는다. 사실 멋진 주인공은 착한 인물일 필요가 없다. 사이코패스지만 섹시할 수도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을 보면 한니발 렉커박사를 보면 전혀 착하지 않지만 매력적이다. 이번 작품의 경우, 주인공이 이런 부분은 좀 약하다. 하지만 이 남자의 진정성을 알아봐주시리라 믿는다.

한국 문학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가 많다. 꼭 미국드라마의 주인공 같기도 하다. 이 인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사이코패스와 가정폭력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는 보통 뇌가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은 감정적인 것을 느끼는 게 아니라 학습한다. 표현의 경우도 느껴서 하는 게 아니라 흉내를 내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는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이코패스가 유전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가정폭력은 악마를 만드는 또 다른 요소라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성장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트라우마 때문에 자기 안의 지옥이 만들어진다. 이런 관심들 안에서 인물이 만들어졌다. 또 다른 면을 생각해본다면 나는 정보를 통해 세계와 인물을 만들어가는 작가다. 취재도 많이 하는 편이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에 맞는 인물들을 만들고 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떨어트려 놓는다. 그러면 인물들이 움직이면서 역할을 해준다. 이번에도 인물들이 제 역할을 잘 해주길 바랐는데, 실제로 잘 해낸 것 같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 역시 한국 소설에서는 특이한 공간인데, 정유정 작가의 소설에는 자주 등장한다.

아마 직접 경험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예전에 소설을 쓰기 위해 일주일 정도 폐쇄병동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스스로 공주라 생각하는 환자분이 있었다. 버킹검공주라 불리는 그분은 나를 엄마라 불렀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병원의 여왕님이었다. 처음에는 입원하려고 했는데 의사가 그러지 말고 작가로 왔다고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취재 때문에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고 말이다. 일주일간 취재를 마치고 헤어지는데 버킹검 공주가 울면서 우리 한을 좀 풀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오면서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집에 올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경험 때문에 계속해서 소설에 쓰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소설에서는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보다 처음으로 여주인공을 썼다. 지금껏 여자인물을 조연으로만 썼는데, 걱정이 많아서였다. 여주인공을 쓰면 내가 튀어나올까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남자 주인공들만 써왔다. 이번에 여자 주인공을 쓴 건 나에겐 중요한 의미다. 또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는 단일 플롯을 사용했다가 이번엔 여섯 개의 플롯으로 메인으로 엮었다는 거다. 여기에 대해서는 끝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무엇보다 스펙트럼 확장의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정말 힘든 일이어서 다음에는 1인칭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여섯 명을 쓰면서 옆으로 확장했으니 다음 번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출간된 작품에서는 마지막에 두 사람이 살아남는데, 원래는 윤주 혼자 살아남는 이야기였다고 들었다.

윤주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역사를 의미한다. 생각해보니 기록하는 사람 외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전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누구를 살릴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랬더니 기준이 밖에 없었다. 누군가 남편의 직업과 기준의 직업이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전혀 사심은 없었다.

이 작품을 읽고 광주 민주화운동이 생각난다는 이야기가 많다. 의도한 부분인가?

우리 현대사에서 이 소설 속 장면과 비슷한 게 딱 하나다. 소설을 설계하면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다. 5.18 자료집을 놓고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소수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반드시 찾아보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 소록도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인터넷 댓글에 그들에 대한 혐오가 잔뜩 달려 있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미안함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생각했다. 한번쯤 진실을 알아봐야 한다고 느낀다.

5.18 당시 광주에 계셨다고 알고 있다. 그때 상황을 이야기해 달라.

그날은 내가 소설가가 된 계기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15살 고등학생이었다. 어느 저녁에 시민군이 도청에 있다고 하고 총소리가 난무했다. 집주인 아저씨가 위험하다가 이불로 창문을 모두 막아주셨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그날 방에서 밤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읽었다. 어떻게 보면 책을 읽으며 버틴 거다. 밤새 굉음이 들리다가 총소리가 그칠 때쯤, 책을 모두 읽었다. 그날 밤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오열하듯 울었다. 그리고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이런 새벽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유정 작가, 독자와 대화

윤주의 과거가 궁금하다.

내가 머물던 지리산 근처에 통닭집이 있었다. 그곳을 보면서 스케치를 했다. 아빠는 나이가 많고, 엄마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다. 걸어서 등교를 하는데 아주 멀어서 힘들게 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지리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악착같이 자기 욕망을 따라가는 인물이다. 책에 윤주의 과거를 자세히 쓰지 않은 건 수진이의 과거나 나오기 때문이다. 모두의 과거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윤주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묘사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궁금하다. 그 표현력은 어떻게 나오나?

연습이다. 표현을 잘하는 건 기술이다. 나는 시체에 대해서 쓰면 시체를 독자의 품에 안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냄새, 촉감, 무게감까지 모두 전달되어야 하는 거다. 습작기에는 방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면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이야기를 A4 3장, 4장이 되도록 묘사했다. 그런 묘사 속에서 내면의 이야기도 함께 묻어나는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위해 직장을 과감하게 그만두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나?

일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한 건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벼랑 앞으로 밀어 넣을 필요가 있었다. 돌아갈 길이 없도록 말이다.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도전하고 싶었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자신을 벼랑 끝에 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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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유정 저 | 은행나무
작가는 리얼리티 넘치는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무저갱으로 변해버린, 파괴된 인간들의 도시를 독자의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5명의 인물과 1마리 개의 시점을 톱니로 삼아 맞물린 6개의 서사적 톱니바퀴는 독자의 심장을 움켜쥔 채 현실 같은 이야기 속으로 치닫는다. 극도의 단문으로 밀어붙인 문장은 펄떡이며 살아 숨 쉬는 묘사와 폭발하는 이야기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며,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강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소설은 모든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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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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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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