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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 매운 핑계를 찾아서

남해, 그리고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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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의 매운향이 이상하게 싫지 않다. 코를 찌르거나 눈을 맵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이게 바로 난지형 마늘의 특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그래서 요 근래 들어서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나지 않은 성정이 바로 이 마늘이 자란 땅의 사람들을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통영에서 살아온 지 일 년이 지난 지금에야 하게 된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목적지가 있는데 그냥 가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겸연쩍어지는 순간이 있다. 누가 물어보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이유를 찾게 되는 그런 상황은, 난감하면서도 설레기 마련이다. 지난 유월의 초입, 나와 아내가 남해로 달려갔을 때도 그런 심정이었다.


남해, 그리고 마늘


그게 무엇이든, 어디서 구입을 하든 특산물을 믿고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부터 인증받은 곳을 찾는 것이다. 물론 시장 등지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이 비쌀 테고 종류가 다양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짧지 않은 기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특히 시장의 상인들, 그들과 얽혀 있는 공무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때때로 직접 구입하며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 지방 관청의 이름을 달고 있는 곳 혹은 인증마크를 붙여 놓은 곳에서 특산품을 구하는 게 제일 안전한 일이었다. 마늘 역시 그러한 곳에서 구입했다.

“올해 마늘 농사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이렇게 알이 굵은 것도 별로 없고. 가격이야 당연히 올랐죠.”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을 배웅하고 돌아온 아주머니에게 작년보다 마늘금이 오른 거 같다 했더니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 지난 겨울과 봄이 예년과 다른 기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밖에 내놓은, 그러니까 그 가게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마늘들은 꽤 실해보였다. “저희랑 거래하는 작목반 중에 제일 농사 잘 짓는 집에서 수확한 거예요. 이건 좋아요.”


남해를 비롯해 제주, 고흥 등지에서 재배하는 마늘은 난지형 마늘, 그러니까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품종이란다. 의성과 서산, 삼청 등지에서 재배하는 한지형 마늘보다 매운맛이 약하고 보관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반대로 달고 부드러운 맛이라 양념용으로는 오히려 육쪽마늘로 대표되는 한지형 마늘보다 낫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보관이야 요즘 집집마다 한 대씩은 있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대강의 설명을 마친 아주머니는 흑마늘로 만든 제품이라며 진액과 젤리 같은 것들을 주었다. 신기한 맛이었다. 마늘을 통재로 구운 맛일 거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그 맛이 젤리와 음료 모두에게서 나타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먹는 형태만 다를 뿐이지 맛의 차이는 하나도 나질 않았으니 마치 초등학생 때 보던 공상과학소설 속의 미래 음식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못 먹을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외려 뒷맛이 구수한 게 괜히 식욕을 당기게 하는 힘도 갖고 있었다. 몇 개 더 먹어보면 좀 파악이 되겠다 싶었지만, 시식으로 가게를 문 닫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자신의 남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아내가 내 등을 떠밀어 운전대를 잡게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따라 나오시며 냉장고에 넣어 차게 만들어놓은 드링크 두 병을 굳이 쥐어주셨다. 남쪽 마늘처럼 부드러운 마음 씀씀이에 우리는 깊이 감사드렸다. 특별히 비싼 것을 산 것도 아니었고 이러이러하니 책에 이곳 홍보를 해드리겠노라 허풍을 떤 것도 아니었지만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통영까지 내려 와 사는 젊은 부부가 예뻐 보였노라며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셨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무슨 무슨 성분이 강해져 몸에 좋을 수밖에 없다는 흑마늘보다 훨씬 더 우리의 마음을 밝게 만들어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흑마늘 덕분에 살아난 식욕을 달래는 건 별개의 문제였기에 우리는 지난 번 남해 여행 때도 들렀던 식당에서 제철을 맞은 멸치 요리로 배를 채웠다. 초여름이 제철인 멸치였기에 무침과 찜 모두 훌륭했지만, 특히 맥주를 무한대로 불러들일 법한 ‘포스’의 구이는 정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 했다. 통영에서, 그리고 이 남해안에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더욱 단단해지는 한 끼였다.


이것저것 신경 쓰고 돌아보고 점검해야 할 게 많았던 우리 부부는 팔월이 시작된 요즘에야 남해에서 사온 마늘을 까고 있다. 남들 다 갖고 있다는 그 흔한 김치냉장고도 없는 집에서 뭘 믿고 그렇게 많은 마늘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마늘에는 별 이상이 생기지 않고 있다. 우선은 당장 먹을 것들만 꺼내 다듬는데, 그럴 때마다 좁은 집안에는 마늘향이 가득해진다. 하지만 그 매운향이 이상하게 싫지 않다. 코를 찌르거나 눈을 맵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이게 바로 난지형 마늘의 특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그래서 요 근래 들어서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나지 않은 성정이 바로 이 마늘이 자란 땅의 사람들을 닮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통영에서 살아온 지 일 년이 지난 지금에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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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정환정 글,사진 | 남해의봄날
한 손으로는 들 수 없는 1미터에 가까운 대구, 정감 있는 이름만큼이나 깊은 육수 맛을 내는 띠뽀리, 겨울 추위를 부드럽게 녹이는 푸딩 같은 식감의 생선 물메기, 따뜻한 남쪽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달콤한 여름 과일 비파.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깊고도 넓은 남해안의 맛의 세계와 그 매력에 풍덩 빠진 서울 부부의 좌충우돌 통영 정착기를 생생한 입담으로 만날 수 있다. 발로 뛰어 찾아낸 남해안 맛 지도는 이 책이 주는 특별한 보너스이다.

 



오늘은 이렇게 먹어볼까?

시가 있는 효재밥상
미녀들의 식탁
나를 위한 제철밥상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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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환정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 그리고 절반만 이룬 ‘세계일주’가 오랜 꿈인 프리랜서 여행 작가. 대학에 합격하면 배낭여행을 보내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 덕분에 스무 살 여름이 되던 해 여행의 맛에 눈뜨게 됐다. 그 후 잡지사, 여행사, 기업 홍보 에이전시 등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북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몇 달 만에 탕진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살려 여행서 『나는 아프리카에 탐닉한다』를 쓰고, 여행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중남미 여행을 꿈꾸며 프리랜서 작가로 국내 곳곳을 여행하고 맛보는 일을 하던 중 한 여인을 만나 계획을 수정해 우선 서울 탈출을 모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3년 후 아내가 된 그 여인과 함께 한반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우연히 통영에서 날아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여행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먼 길도 마다 않는 서울 토박이 부부. 낯선 남해 바닷가 도시 통영에 살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 정 깊은 사람들, 그리고 신선한 맛에 조금씩 눈뜨고 있다. 서울 살 때는 미처 몰랐던 남해안의 펄떡이는 맛과 멋을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 게스트하우스 ‘뽈락하우스’를... 열고, 운영하며 그것들을 여행객들과 나누기 위해 고심 중이다.
www.bbollak.com
blog.naver.com/j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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