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인권 영화제 다섯 번째 시간, ‘인간의 표준은 없다’는 주제로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이날 인문카페 창비에는 유달리 빈 자리가 보였다. 여전히 공식적인 석상에 성소수자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어려워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거짓말>과 <Bomb Bomb Bomb>을 관람했다. 박용제 감독의 <거짓말>은 게이와 레즈비언의 계약 결혼을 소재로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김곡/김선 감독의 <Bomb Bomb Bomb>은 성소수자로 오인 받아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 음악으로 폭력에 대항하는 것을 그린 음악 영화다. 영화를 관람하고 <Bomb Bomb Bomb>의 김곡, 김선 감독과 사회적 커밍아웃을 한 김조광수 감독과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진행: 인권 영화제를 2월에 시작하면서 언제 6월이 오나 생각했었는데 벌써 왔습니다. 인권영화제 마지막 시간입니다. 늘 강연장이 꽉 찼는데 빈자리가 보입니다. 오늘 다루는 주제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것인가요? 우선 감독님의 자기 소개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조광수: 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면서, 성적으로 소수자입니다. 세상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겪었지만, 이제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며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살아가는 김조광수입니다.
김선: <Bomb Bomb Bomb>을 만든 김선입니다. 2006년 즈음에 만든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니 남이 만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좋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곡: <Bomb Bomb Bomb>을 함께 만든 김곡입니다. 이런 자리에 제 이름을 단 영화가 상영된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니 생소하고 어색합니다. 하지만 예전에 만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너무 설렙니다.
백 마디 말이 현 하나의 떨림만 못하다
진행: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 감독으로써 여러 주제가 있었을 텐데 왜 동성애자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셨나요?
김선:
다양한 주제가 있었는데 중고등학생이 성소수자로 오인 받아서 왕따를 당하는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만들었을 때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밴드 부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장면도 많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동물원은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실제로 있었던 왕따 방식입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왕따 학생 한 명만 빼놓고 전부 다 교실 밖으로 나갑니다. 같이 교실 안에 있으면 나도 왕따를 당할까 너무 무서워서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관객: 왜 베이스와 드럼을 치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선:
밴드에서 베이스와 드럼은 박자를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베이스나 드럼은 혼자 가지 않고 함께 합니다. 둘이 죽이 잘 맞아야 음악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이스와 드럼을 치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했습니다. <Bomb Bomb Bomb>은 음악이 무척 중요해 실제로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는 아이들로 캐스팅을 했습니다. 마선이는 여드름이 있고 수줍지만 드럼 스틱만 쥐면 날라다니는 아이를 그려보았고, 마택이는 조금은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속에는 감성적인 부분이 있는 아이로 연출해보고 싶었습니다.
관객: 영화 제목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김곡:
꽝꽝꽝 이런 느낌입니다. 폭탄이 하나 떨어지고 그걸 맞받아치는 이미지입니다.
김선:
교실 밖에서 교실 안에 있는 아이를 원숭이 쳐다보듯 바라봅니다. 이런 폭력적인 시선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음악입니다.
김곡:
교실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환상으로 보이겠지만, 안에서 연주를 하는 아이들에게는 현실이고 행복입니다.
김선:
연주를 하면서 동물원이 콘서트 장으로 바뀝니다. 교실 밖에서 바라보던 아이들은 처음에는 따돌림을 했지만 나중에는 공연에 열광하는 관객이 됩니다.
관객: 영화 중반부터 나오는 드럼 스네어 소리가 인상적입니다.
김선:
<Bomb Bomb Bomb>은 음악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연주하는 음악이 영화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감정 떨림을 스네어와 베이스의 잔향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음악은 보는 사람의 감성을 건드립니다. 아무리 대사를 많이 해도 음악 보다는 약합니다.
김곡:
마선이가 마택이의 베이스를 튜닝해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원래는 서로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너 이런 밴드 알아?” “어, 나 알아.” 이런 대사를 주고 받는데 다 찍으니 씬이 너무 후졌습니다. 백 마디 말이 현 하나의 떨림만 못했습니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동지애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우정입니다. 함께 잼 연주를 할 수 있는 우정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나의 결혼은 이성애자가 만든 결혼 제도에 균열을 내는 것
관객: 최근에 신문에서 김조광수 감독님의 웨딩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가 축하하기 위해서 보도를 한 건지, 아니면 감독님이 의도적으로 웨딩 사진을 내보낸 건지 궁금합니다.
김조광수:
결론부터 말을 하면 의도적으로 노출했습니다. 하지만 제 의도와는 별개로 기자가 너무 빨리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특종이라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저는 동성결혼을 통해서 한국사회가 정말로 평등한지를 질문하려 합니다. 앞으로도 제 결혼 이야기는 계속 나올 겁니다. 영화처럼 포스트도 만들고 예고편도 만들 겁니다. 지겨울 정도로 계속 나갈 테지만, 재미있어서 지겹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결혼식에 많이 오셔서 축하 해주시고 축의금도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축의금을 모아서 LGBT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의 약자로 성소수자를 지칭한다) 센터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객: 한국은 유교사회다 보니 가문을 잇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합니다. 그러니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박해가 더 심하지 않나요? 외국과 비교해서 한국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김조광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한 곳은 이슬람 국가 입니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 중에는 남성 동성애자를 공개 사형에 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심한 건, 보수적인 개신 기독교 신자가 많은 나라입니다. 한국의 경우 유교적 전통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보수적인 기독교 층의 공격을 합니다. 대를 잇지 못한다는 주장은 반론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성애자 커플도 여러 이유로 아이를 안 낳거나 못 낳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외국이든 한국이든 아이를 못 낳는다는 논리로 동성애를 접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진행: 국가인권위원회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모입니다. 다양한 이슈를 진정하기 위해서 오는 분도 있지만, 시위를 하기 위해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잊을 수 없는 구호가 있습니다.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이냐! 동성애를 권장하는 인권위는 자폭하라!” 얼마나 강력한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인권위에서 발간하는 잡지에서 편집자 주로 “동성애든 이성애든 모든 사랑은 아름답습니다”라는 글귀를 넣었다가 엄청난 항의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정도인데 커밍아웃을 하신 김조광수 감독님은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이리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견뎌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조광수:
성소수자는 우선 자기를 혐오합니다. 타인의 혐오보다 자기 스스로를 혐오하는 게 더 힘듭니다. 하지만 자기 혐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사회로부터 투쟁을 할 때도 즐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혐오에서 벗어난 다음부터는 꽤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저를 보고 힘들고 어렵게 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두려움이나 어려움보다는 기대가 더 큽니다. 제가 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밝혔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를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물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만 해도 동성애하면 손가락질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뒤에서 숙덕거리는 경우는 있어도 제 앞에서 혐오를 내보이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히려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세상이 성소수자를 벼랑으로 밀지는 않습니다. 성소수자를 양지로 끌어내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 합니다. 다만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의 일부가 자신의 혐오를 지나치게 드러낼 뿐입니다.
제가 결혼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면 몇몇 분은 이성애자가 만든 사회적 제도에 투항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결혼은 이성애자가 만들어 놓은 결혼 제도에 균열을 내는 것입니다. 제가 결혼을 하면 상대측 부모님은 저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며느리도 아니고 사위도 아닙니다. 저는 새 아들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새 아들이 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새 아가도 있고 새 언니도 있는데 새 아들이 안될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성애자 결혼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여러분도 동성애자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고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 변화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관객: 사회적 커밍아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조광수:
많은 게이가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 합니다. 다만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 커밍아웃을 할 계획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 합니다. 준비를 해두지 않는다면 막상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순간에 침묵하게 됩니다. 침묵은 또 다시 자기 혐오를 불러 일으킵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기 때입니다. 홍석천의 경우는 아웃팅을 당해서 커밍아웃을 한 케이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커밍아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홍석천은 지금도 커밍아웃은 안 하는 게 좋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면 커밍아웃을 준비하던 사람도 준비를 접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커밍아웃에 대해서 스스로 준비해 나갈 때 자기 혐오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적 커밍아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따가운 시선뿐만 아니라 따스한 시선도 있습니다. 따스한 시건을 더 크게 생각하고, 자신의 커밍아웃으로 인해 변화할 사회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김선:
가족에게 커밍아웃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조광수:
가족에게는 가장 마지막에 이야기하게 됩니다. 오히려 사회적 커밍아웃보다 더 나중의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에게는 쉽게 말을 하지 못합니다. 내가 편하자고 말을 꺼내서 부모님을 힘들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면 초반에는 정말 힘들어 합니다.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힘듭니다. 그래도 그 과정을 겪고 나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벽이 해소되기 때문입니다.
진행: 어떤 단어로 불리느냐에 따라서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용어 자체로 차별을 드러내지 않고 상태만 드러내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독일입니다. 한국에서는 미혼모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뜻이니, 차별이 몇 개나 들어있는 단어입니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독신모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18살이라도 65살이라도 같은 엄마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성소수자를 가르키는 단어도 참 많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LGBT, 동성애자, 성적지향 등등.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불러주는 것이 가장 좋은가요? 반면에 어떤 표현이 잘못된 표현인가요?
김조광수:
게이로 불러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게이는 즐거운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즐거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게이는 우리가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 게이라고 불러주면 가장 좋습니다. 반면에 정상, 비정상이라는 표현은 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대놓고 비정상이란 표현을 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정상이라고 표현하면, 그 말에는 너는 비정상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김곡:
나름대로 게이를 많이 만나봤습니다. 하지만 연습이 부족하다고 해야하나요? 게이를 만나면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조심스럽고 위축됩니다.
김조광수:
공식적인 용어는 편견을 안 담고 있는, 상태를 드러내주는 단어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에 말 실수를 해도 뉘양스를 들으면 혐오가 담겨 있는지 안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지나친 배려는 도리어 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인권 영화, 지속적인 성원이 필요하다
관객: 앞으로 인권 영화를 계속 만들 텐데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진행: 처음 국가 인권 위원회에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대한 뉘우스를 부활시키냐는 비아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만들었던 여섯 개의 시선이 호평을 받은 후에, 공공의 돈을 들여서 괜찮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선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좋은 공공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는 좋은 기획자도 있었지만 좋은 감독님이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영화를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보러 와주시는 분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인권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성원해주시고 개봉하면 보러도 와주시고 입 소문도 많이 내주신다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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