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가슴 앞에 있는 것
저자에 의하면, 실존의 사랑은 가슴에 있다. 그런 한편으로 사랑은 현상 세계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가슴의 앞부분에 자리 잡고 있단다. 반면 고요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어서 가슴 뒤에 있다. 심장 앞에 위치한 ‘사랑의 방’이 있다. ‘고요의 방’은 등 쪽에 있다.
“사랑은 기독교의 대명사다. 고요는 불교적인 주제다. 불교에서 본질의 세계는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얼굴을 보고 싶으면 거울을 보듯, 본성과 원인의 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원인의 세계를 중심으로 본 것이 부처다. 그래서 드러난 세계를 살짝 무시하고, 깊이 들어가면 그렇지 않지만, 색의 기준에서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기독교와 불교, 두 개의 종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가슴을 보니 앞은 기독교, 뒤는 불교다. 가슴은 종교가 발생되는 원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슴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를 짓고, 절을 짓는다.”
저자는 우리 안에 기독교와 불교가 다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두 개를 가르는 것은 머리가 하는 일이라는 것. 본성과 공(空)이 삼라만상을 펼쳐놓고 자신을 들여다본다. 역설적이게도 공은 일원성이며, 현실세계로 드러나는 순간부터 이원성으로 갈라진다. 저자가 보기엔 이것이 문제다. 일원성이 자신의 일원성을 봐야하는데, 삼라만상으로 펼쳐지는 순간, 이원성으로 떨어져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거울을 보는 순간, 내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고, 다른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의 본질이 나온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현상 세계로 나오는 순간, 이원성으로 분화된다. 따라서 현상 세계의 이원성을 일원성으로 묶어줄 근원이 필요하다. 저자에 의하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사랑이며, 우리 몸 세포를 묶어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 즉, 분화된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 저자는 사랑을, ‘우주의 끈끈이풀’, ‘우주의 아교’, ‘우주의 접착제’라고 표현했다.
“사랑이 중요한 것은 이원성의 세계에서 ‘우리’라는 틀로 묶어주기 때문이다. 개체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나를 죽이고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개체성을 유지하면서 개체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럼으로써 공이 자신을 체험하는 것이다. 개체성을 소멸하면 공으로 간다. 공은 색을 통해서 공을 본다. 머리에서 하는 공부는 여기에서 끝난다. 그런데 가슴을 알게 되면 다르다. 사랑의 방에 존재의 중심을 두면 각 개체성에서 하나 됨이 이뤄진다. 분리돼 있으면서 하나인, 하나인 동시에 분리돼 있는 것이다. 분리만 돼 있으면 이원성의 세계고, 분리된 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저자는 우리가 갖는 두려움의 실체에 대해서 언급한다. 두려움은 하나가 둘이 됐을 때, 쪼개졌을 때 생기는 것이라는 것. 그런 분리 불안에서 두려움은 발생하고 그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이에 저자는 우리의 가슴에는 현상의 세계에서 하나 됨을 실현시키는 ‘사랑의 방’이 있음을 강조한다.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좋지만, 한 차원 더 높은 관계로서의 사랑, 남이 아닌 내 자신이 사랑이 되는 것, 내가 하는 것이 다 사랑인 것은 가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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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두려움의 근원은 바로 우리가 전체와 분리되어 있다는 무의식에 기반합니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이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사랑은 지상의 분리되어 있는 듯 보이는 모든 환영을 하나로 묶어 전체성을 복원시켜주기 때문입니다.”(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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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가슴 뒤에 있는 것
머리에서 제일 먼저 수행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생각 없애기’라고 말한다. 내 몸과 호흡을 정적으로 했을 때 드러나는,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없어지는 것을 이원성 혹은 상대적 고요라고 전했다. 반면 등 뒤에서 만나는 고요는 ‘일원성 고요’라고 일컬었다. 누가 말을 시키든, 뭔 일을 하든, 소리를 지르든,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일원성 고요라는 것이다.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고요와 원래 가슴에 있던 고요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가슴의 세계에서도 사랑과 고요가 있고, 머리에서도 사랑과 고요가 있다. 머리에서 하는 사랑은 상대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가슴에선 그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하든 사랑을 한다. 사랑의 방 뒤에는 심장이 있는데, 심장은 수행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지구는 영혼의 수련장이며, 어둠을 통해 빛을 배우는 곳이다. 두려움을 통해 사랑을 배우는 장이다. 세상은 비인격적인 세계, 인격적인 세계가 있다. 농사를 보면, 비인격적인 논밭과 계절이 있고, 인격적인 농부가 있다. 농사는 그렇게 이뤄진다. 인격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기독교다. 비인격적인 우주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교다. 농부가 땅과 사계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나? 농부 없이 농사가 가능한가? 그러니 두 가지를 동시에 봐야 한다.”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말을 잇는다.
“우리 영혼은 공과 색의 중간에 위치한다. 즉, 개체성을 가진다. 공은 진화할 필요가 없지만, 색의 세계는 끊임없이 진화를 해야 한다. 진화의 주체가 영혼이다. 영혼은 개체성을 가지면서 전체성을 가진다. 깨달은 사람은 영혼이 없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어둠 속에서 헤매지만 실은 빛의 존재다.”
우리가 빛의 존재라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이미 우리는 부잣집 아들인데, 가난을 경험해야 하는가? 저자는 그것은 다른 문제임을 언급한다.
“우리 존재가 완벽한 존재고,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과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다른 문제다. 우리가 완벽한 존재라는 사실과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 모두 다 잘 산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내가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뿐이다. 부자인 것과 부자라는 것을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영혼은 완벽한 존재이나, 단점이 있다면 영혼 자신은 완벽하다는 것을 모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어떤 차이일까. 사랑의 방에서 사랑의 존재가 돼 있어도 머리로 이해가 없으면 안 된다. 머리와 가슴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가슴을 강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슴이 머리에 비해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다. 개념과 실존의 세계가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그는 이런 예를 든다. 가난했던 사람이 부자가 됐을 경우와 부자가 돈 쓰는 것은 다르다.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은 남이 어려울 때 도와줄 줄 안다고 부연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의 존재이면서 어둠과 두려움을 체험해야 하는 이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가 불안전한 존재여서 두려움의 별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둠을 통해서 빛을 알고, 두려움을 통해서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 것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단다.
두려움과 대면해서 이기는 법
“두려움을 통해 사랑을 배우는 것은 좋은데, 많은 사람이 그전에 두려움의 포로가 된다. 두려움이 필요하긴 한데, 갇히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긴다. 지구에 와서 두려움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두려움의 부작용에 빠져선 안 된다. 그렇다고 건너뛸 수도 없다. 지구에 와서 일원성의 존재가 이원성을 체험한다. 이원성은 분리감, 두려움, 고통이다. 영적인 체험을 하고 고통에서 빠져나가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영혼은 완전한데, 영혼이 완전함을 알기 위해서 물질세계에 들어오고 체험하는 것이 여러분의 몸이다.”
그렇다면 두려움과 부딪혀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두려움의 체험에는 2단계가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1단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고통에 빠진다고 말한다. 종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2단계를 모르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
“1단계는 물질을 체험하는 것이고 이때 두려움이 형성된다. 이 책은 2단계인 두려움을 풀어내는 법을 알려준다. 1단계는 인간적 체험, 2단계는 영적인 체험이다. 인간은 영적인 진화를 위해서 지상에 있는 것이다. 지상을 해석하는 안목 없이 지상만 들여다봐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가 일어난 같은 차원에서 해결하려고만 해서 안 된다. 한 차원 높은 차원에서 해결점이 나온다. 물질세계에서 일어난 현상을 영적인 차원에서 볼 때 근원적인 해결책이 있다.”
저자는 화, 비애, 슬픔 등은 에너지 상태로 각 장기에 가서 저장된다고 전했다. 그런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누그러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그 에너지가 풀어지면서 우리 영혼은 그것을 낚아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영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통에 빠지는 감정은 몸이 만드는 것이다. 영적이려면 단순해야 한다. 아픔과 고통은 다르다. 물질이 현실이고, 감정은 현실이 아닌데, 아스트랄계(영적세계)에서는 감정체가 현실이 된다. 감정이 하나하나의 인격체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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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에 대한 치유와 사랑으로 깨어나기 홍호기 저 | 보리별
두려움의 부정적 감정이 머무는 곳은 가슴이다. 따라서 가슴에서 이 부정적 감정 에너지를 직접 만나 풀어줘야 한다. 두려움에 대한 명상은 부정적 감정 에너지를 심장에서 불러내어 내적 체험으로 전환하여 준다. 두려움에 대한 명상법을 하고 나면 기억은 남아 있으나, 사건에 대한 감정에 대해서는 자유로워진다. 이 책은 두려움에 대한 명상을 통하여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동시에 육체의 체험을 영혼의 체험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감정치유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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