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바로크 시대를 수놓았던 세 명의 거장이 동갑내기입니다. 바로 바흐와 헨델, 그리고 이탈리아 태생의 하프시코드 명인이었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입니다. 세 명은 모두 1685년에 태어났습니다. 바흐는 평생 독일을 떠나지 않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헨델은 20대 중반에 런던에 정착해 40대 초반이었던 1727년에 아예 영국인으로 귀화했지요. 나폴리에서 태어난 스카를라티는 로마에서 활약하다가 포르투갈 리스본의 궁정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공주의 음악선생으로 살았습니다. 훗날 그 공주가 스페인의 페르디난드 4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자 자신도 스페인 궁정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결국 마드리드에서 타계하지요.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 바흐는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한데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은 아직 얼굴을 비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헨델 이야기를 해볼 참입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흐와 대비되는, 동시대를 살았던 동갑내기 음악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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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 [출처: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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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년 2월 23일 ~ 1759년 4월 14일)은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다. ‘음악의 어머니’로 불린다. 헨델은 46곡의 오페라와 우수한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쳄발로, 오르간 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명쾌하고 호탕하고 신선하여 생생한 리듬에 성악적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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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은 독일 작센 지방의 할레(Halle)에서 태어났습니다.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존 바비롤리가 지휘했던 할레 오케스트라의 거점으로 잘 알려져 있는, 독일 중부의 공업도시입니다. 헨델의 아버지는 외과의사이자 이발사였다고 하지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피가로의 직업이 외과의사 겸 이발사였던 것을 보더라도, 당시에는 이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하는 일이 흔했던 모양입니다.
‘고향을 떠나다’라는 것은 ‘아버지를 벗어나다’와 거의 동의어입니다. 헨델의 삶을 들여다볼라치면 그런 생각이 종종 들곤 합니다. 그는 열여덟 살에 고향인 할레 대성당의 오르간 주자를 제안 받지만 그 자리를 뿌리치고 북부 독일의 음악 중심지인 함부르크로 갑니다. 법률가가 되기를 학수고대했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그렇게 한발씩 벗어났던 것이지요. 물론 그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헨델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워나갑니다. 함부르크에서 자신의 첫번째 오페라 <알미라>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이번에는 아예 시선을 이탈리아 쪽으로 돌립니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한 마디로 유럽 음악의 종주국이었습니다. 특히 극음악(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본향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발원한 이 두 개의 장르가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곳곳으로 퍼져가면서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 헨델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많은 것은 보고 배우면서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구축했을 겁니다. 같은 독일 태생인 바흐와 확연히 구분되는, 오히려 이탈리아 풍에 가까운 헨델의 음악이 이 시기에 배태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많은 음악가들과 국제적 교류를 시작했을 무렵에 헨델은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1706년부터 1709년까지였지요. 애초에 법학을 공부했던 헨델은 바로 그 시기에, 화려하게 약동하는 리듬과 화성을 자신의 음악 스타일로 구축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리듬’과 ‘화성’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들은 선율(멜로디)을 그다지 비중 있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선율은 여러 음들이 하나씩 차례로 이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음악적 흐름이지요. 바로크가 끝나고 고전의 시대로 접어들어야 비로소 선율이 제대로 대접받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아련한 선율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여러 음이 동시에 울리면서 만들어지는 화성이 더 주목받고 있었지요. 그래서 바로크 음악은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많이 듣는 바흐의 음악을 휘파람으로 흉내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마 잘 안될 겁니다. 심지어 첼로 한 대로 연주되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나 바이올린 한 대로 연주되는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같은 곡에서도, 바흐는 여러 개의 현을 동시에 연주하는 주법으로 화성을 구축하지요.
바흐의 화성은 무겁고 어두운 편입니다. 독일적이지요. 반면에 헨델의 화성은 밝고 환합니다. 게다가 이탈리아풍의 출렁거리는 리듬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화려하게 약동하는 분위기를 풍깁니다. 특히 현악 파트가 간결하면서도 힘찬 화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헨델 음악의 특징으로 손꼽힙니다. 왕과 귀족들의 흥취를 고조시키기에 이만한 음악이 별로 없었을 겁니다. 헨델은 그렇게, 자신의 뿌리(아버지)인 독일풍의 음악과 상당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헨델은 기본적으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 주력했던 음악가였지요. ‘극음악’이라는 범주로 묶이는 그 두 개의 장르가 당대 음악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는 모두 46곡, 오라토리오는 32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장르에서 헨델이 써낸 아리아들의 서정성과 성악적인 기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물론 그의 오페라는 오늘날 국내에서 전막으로 공연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요. 하지만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라는 아리아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라토리오로는 그 유명한 <메시아>가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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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 강에서 헨델(좌)과 조지 1세(우). 에두아르 장 콘라드 함만(Edouard Jean Conrad Hamman) 作 [출처: 위키피디아] |
오늘 듣는 <수상음악>(Water Music, HWV 348~350)은 <왕궁의 불꽃놀이>와 더불어 헨델의 관현악 모음곡을 대표합니다. 이탈리아에 머물던 헨델은 1710년 6월부터 독일 하노버 궁정의 악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같은 해에 1년간의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이때 영국에서 공연했던 오페라 <리날도>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지요. 물론 헨델은 휴가 기간을 어기지 않고 자신의 고용주였던 하노버의 게오르그 선제후 곁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성공과 환대가 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나 봅니다. 자신이 예속돼 있는 하노버 궁정은 영국에 비한다면 오페라에 대한 인기가 시들했습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헨델은 1712년에 다시 한번 선제후에게 허락을 받아 영국으로 건너가지요.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앤 여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음악가로 승승장구합니다.
그런데 앤 여왕이 1714년에 사망합니다. 그 자리를 이은 사람이 하필이면 헨델의 고용주였던 하노버의 게오르그 선제후였지요. 영국 왕 조지 1세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부터 <수상음악>을 둘러싼 하나의 ‘설’이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똥줄이 탄 헨델이 1717년 여름에 템즈 강에서 국왕이 뱃놀이 연회를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서둘러 작곡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국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수상음악>을 작곡해 템즈 강에서 초연했다는 ‘설’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그저 ‘떠도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어쨌든 <수상음악>은 1717년 여름, 조지 1세의 템즈 강 연회에서 초연됐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야외음악회였습니다. 헨델과 악사들(50명)이 배에 오른 채, 왕과 귀족들이 탄 배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연주했다고 전해집니다. 강에서 연주했던 까닭에 호른이나 트럼펫 같은 관악기들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집니다. 그래야 음악 소리가 들렸겠지요. 기록에 따르자면, 그날 국왕은 음악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면서 모두 세 차례나 연주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수상음악>은 크게 보자면 모두 3곡으로 이뤄진 모음곡입니다. 왕과 귀족의 야외 연회에서 연주된 행사용 음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헨델의 특징인 밝고 화려한 화성과 출렁이는 리듬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전체 3곡 중에서 ‘모음곡 F장조 HWV 348’은 11곡(악장)으로 돼 있습니다. 각각의 악장은 ‘서곡/아다지오와 스타카토/알레그로-안단테-알레그로 다 카포/미뉴에트/에어/미뉴에트/부레/혼파이프/알레그로/알레그로/알라 혼파이프’로 이뤄져 있습니다.
서곡은 장중하게 시작했다가 중반부에서 템포가 확연히 빨라지면서 경쾌해집니다. 이탈리아풍의 현악 합주가 힘차고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두번째 악장 ‘아다지오와 스타카토’에서 느리고 애달픈 느낌을 잠시 표현하다가 세번째 악장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밝고 힘찬 분위기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느리고 빠름을 순식간에 반복하면서 지루할 틈 없이 음악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바로 연회음악의 특징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1번째로 등장하는 ‘알라 혼파이프’로 사람들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이 곡이 아마도 <수상음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곡일 듯합니다.
‘모음곡 D장조 HWV 349’는 ‘서곡/알라 혼파이프/미뉴에트/렌토/부레’로 이뤄져 있습니다. 또 ‘모음곡 G장조, HWV 350’은 ‘알레그로/리고동/알레그로/미뉴에트/알레그로’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지만 헨델의 <수상음악>은 여러 판본이 존재합니다. 오늘날의 실연, 혹은 음반에서는 앞서 언급한 순서를 고스란히 따르지는 않습니다. 중간 중간 건너뛰기도 합니다.
p.s. 오늘 추천음반은 2종을 올려놓겠습니다. 영국의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트레버 피노크가 잉글리시 콘서트를 이끌고 녹음한 음반(1983년, ARCHIV)은 훌륭한 연주임에도 추천음반에서 제외했습니다. 존 엘리엇 가디너의 음반과 비슷한 성향을 보여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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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ㆍ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1983년/PHILIPS
원전악기를 사용했음에도 절도 있고 힘찬 사운드를 들려준다.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진행이 무엇보다 돋보이는데, 이런 방식이야말로 헨델의 의도에 충실한 연주일 가능성이 높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수상음악>의 판본들은 여럿이고 때때로 생략해서 연주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지만, 가디너는 전곡을 모두 연주함으로써 원전에 대해 충실한 입장을 거듭 드러낸다. 고악기는 힘이 달릴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불식시키는, 탱탱하고 날이 선 연주가 압권이다. 요즘 말로 ‘살아있네!’라고 할 밖에.
▶ 조르디 사발(Jordi Savall)ㆍ르 콩세르 데 나시옹/1993년/Alia Vox
스페인 태생의 원전악기 연주자 조르디 사발과 그가 이끄는 콩세르 데 나시옹이 1993년 3월 카탈루냐의 카르도나 성에서 녹음한 연주다. 2008년 리마스터링해 SACD로 재출시됐다. 원전악기 특유의 고풍스러운 맛을 살려내고 있는 연주다. 우아하고 탐미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애초에 헨델이 가졌던 작곡 의도에 충실한 해석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사발 특유의 해석으로 음악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역으로 보자면 그것이 바로 이 녹음의 가치다. 프랑스에서 디아파종 황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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