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의 어떤 얼굴
포구를 여행하다보면, 평소 친숙하지 않았던 어떤 감정이 불쑥 솟구칠 때가 있다. 내 안에 잠복해 있었음에도 나도 잘 모르는 그 감정은 워낙 돌연해서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낯설고 거북스럽기 일쑤다.
이를테면 해진 그물을 기우는 녹슨 바늘에서, 방파제 사이로 바다를 가르며 돌아오는 한척의 배와 수평선 너머로 숨어드는 붉은 태양 속에서 나는 그 감정에 매몰되고 만다. 물질을 마친 해녀의 빈 그물을 보았을 때도 어김없이 표정이 굳곤 했다. 내가 만난 해녀들은 한 포구에서 오래도록 물질을 해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많았다. 건네는 인사말도 잘 들리지 않아 나의 입모양을 주의 깊게 읽으려 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네들의 감각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바다가 삼켜버린 걸까. 물결에 씻겨간 걸까. 시간이 패 놓은 주름과 세월의 무게로 굽어버린 등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바다로 나가 물질을 했다.
그의 얼굴임자도의 작은 포구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젓갈용 새우를 잡는 배의 선원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선원이 일곱 명인 어선의 조리사였다. 조리사라고 요리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배라는 일터는 어떤 식이건 일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구든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웠다. 그 외에는 다른 무엇도 하지 않았다. 새우잡이 배는 한번 출항하면 일주일 정도는 바다 위에 머물렀다. 선원들은 배 위에서 새우의 품질을 선별하고 곧바로 젓갈을 만들었다. 빈 드럼통에 젓갈이 가득 차면 배는 육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이 해내야 하는 유일한 목표는 드럼통 속에 품질 좋은 새우를 가득 채우는 일이었다.
음력 6월에 잡힌 새우는 담백하고 비린내가 적어 과거에는 수라상에도 올라갔다고 했다. 이를 보고 육젓이라 불렀다. 5월에 잡히는 오젓도 일반 새우보다는 품질이 좋았지만 육젓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것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정수(淨水)가 담긴 물통에 소금을 녹여 새우를 담가두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가라앉은 새우와 떠오르는 새우로 나뉘었다.
그는 요리 외에도 새우가 한가득 담긴 노란 바구니를 물통에 담그는 일을 도맡고 있었다. 키가 백육십 센티미터 정도 되었고, 어깨는 왜소했지만 피부가 단단하고 전체적으로 검게 그을려 다부진 인상을 주었다. 그가 입은 민소매는 국방무늬였다. 팔에 낀 토시 역시 국방무늬였기에 나는 그것에서 어떠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해보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대부분의 선원들이 국방무늬의 옷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깨무는 습관을 가졌는데, 있는 힘껏 연기를 빨아들여 볼이 깊게 팼다가 부풀곤 했다. 선원들 중에서 제법 고참인 그는 앞니가 벌어져 있었다. 그가 명령할 때마다 바람 새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명령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름도, 고향도 알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고, 그에 대한 어떤 질문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부를 수도 없었다. 그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전장포 선상 아리랑조류 시간에 맞춰 대기하는 동안 선장은 나를 이끌고 주방으로 갔다. 주방을 지키고 있던 그는 선장의 부탁으로 얼려두었던 생선 한 마리를 큼직하게 썰어냈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막걸리를 꺼내 주었다. 종이컵의 숫자는 오직 우리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의 잔은 없었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 담배를 뻐끔댈 뿐이었다.
선장이 먼저 회 한 점에 초장을 듬뿍 찍어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단숨에 막걸리를 들이켰다. 나도 익은 김치에 회 한 점을 싸서 넣었다. 침샘이 솟았다. 크게 썰어 식감이 좋았고, 얼린 횟감이 입 안에서 녹아 부드럽고 담백했다. 순식간에 막걸리 한 병이 동났다. 두 병째 막걸리를 개봉했을 때, 물결의 흐름에 따라 몸이 흔들렸다. 그제야 이곳이 바다 위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폐타이어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선원, 밧줄에 낀 이끼를 솔로 제거하는 선원, 가까운 육지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선원, 입에 문 담배가 짧아지자 또다시 라이터를 찾는 선원.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목격했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전장포 앞바다는 부서진 햇살로 눈부셨다.
그는 여전히 담배를 물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잔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막걸리를 가볍게 흔들어 두 손으로 따라주었다. 그는 배시시 웃더니 그 자리에서 단번에 술을 들이켰다. 나는 도마 위에 있는 제일 큰 살점을 집어서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는 입술에 범벅이 된 초장을 팔 토시로 스윽 닦아냈다. 그의 표정은 이전과는 달리 부드러워 보였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기 까지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벌어진 앞니를 내보이며 천진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멀어지는 동안약속된 시간에 맞춰 육지에서 작은 배가 와 주었다. 새우잡이 배는 앞으로 삼일은 더 바다에 머무를 예정이었다. 나는 회만 실컷 먹고 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막걸리 기운에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던지, 선원들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짐을 챙겨 작은 배에 올라타자 배끼리 묶어두었던 밧줄이 풀렸다. 작은 배에 모터소리가 요란하게 났고, 그와는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순식간에 멀어져 버렸다.
멀어지는 것은 언제나 두렵기 마련이다. 친구와 연인과 사람과 과거와. 지금의 멀어짐, 그 간극에는 넓은 바다가 있다. 살아가며, 다시는 볼 수 없을 사람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돌연한 감정처럼 내 안에 머무는 사람들.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시간을 채우고 그들만의 삶을 사는 사람들. 나는 멀어지는 간극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이, 벌어진 앞니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와의 마지막 대화는 이러했다.
그에게는 인천에 사는 두 자녀가 있다. 아들의 나이는……. 그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돌연 말을 삼켰다. 그의 벌어진 앞니 사이로 여린 바람이 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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